<내 상태창 2개 - 185화>
아레스의 군세 (4)
커다란 대신계, 아스가르드.
그 옆에 있는 중소신계를 향해서 군단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동하는 숫자가 상당합니다.”
“엇…… 다른 곳에서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오케아노스의 지도에 또 다른 대규모 이동이 감지됐다.
아스가르드를 목표로, 사방에서 몰려드는 군단.
대규모 신의 움직임만 카운트가 된다고 했는데, 그 규모가 셀 수 없을 정도다.
“일이 다 탄로 나자, 아스가르드 침공 계획을 바로 시작하나 봅니다.”
“그럼 옆의 신계는……?”
“아스가르드와 거리가 가까우니, 점령해 두고 전진 기지로 삼을 생각인 것 같습니다.”
벌써 전진하냐?
내가 트라이아나에 타서 여러 신계를 휘하에 넣은 지 하루도 흐르지 않았는데.
신들이 확실히 시간과 공간에 자유로운 만큼, 움직이는 속도도 빠르다.
“어, 저 신계에서는 아예 적 군단이 나오는데?”
“이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르테미스와 쿠우가가 가리키는 두 행성.
거기서는 오히려 적이 나오고 있었다.
“지도를 면밀히 보니, 아스가르드를 향하는 길이 세 군데로군요. 세 개의 신계는 각자 한 길의 통로가 되고 있습니다.”
포세이돈과 크툴루가 개척한 오케아노스의 길.
이 길은 우주 공간처럼 제약 없이 무한하지는 않았다.
신계와 신계 사이를 이어 개척한 거라, 점과 점이 이어지는 직선만 통로가 된 상태.
적은 아스가르드와 통하는 세 신계 중 둘은 장악했고, 하나는 장악하려고 진군 중이었다.
“로키. 아스가르드에 흑뢰 군단이 침입할 것 같아.”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조금 전엔 중소신계를 꼬드긴다고 하더니.]
“들키니까 아예 침공을 강행하는 것 같다.”
[이런……!]
근처의 세 신계를 거점 삼아서 침공할 거라고 알려 주니, 미간을 찌푸리는 로키.
[뭐 이렇게 빨라? 상대가 아레스라고 그랬나?]
“맞아. 그가 주도하는 것 같아.”
[자식이 전쟁의 신답게 바로 바로 행동하네. 그건 그렇고, 근처의 세 신계라니…… 오케아노스의 지도? 그거엔 어느 신계인지 이름이 뜨지 않는다고 했지?]
“어. 포세이돈은 대신계만 표시했어.”
[젠장. 그냥 신계 아무데나 쳐들어오면 대비하기가 까다로운데. 우리도 SP 거래소 대출 사태 이후 SP가 많은 편은 아니라 대비하기가 힘든데…….]
“일단 다른 대신계에도 구원을 요청해 봐.”
[그래야겠다. 알겠어. 소식 고맙다.]
그러며 황급히 통신을 끊는 로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습이다.
“과연 군신, 전격적으로 움직이는군요.”
“아스가르드가 쓰러지면 동맹 계약에 제약을 안 받는 올림푸스가 날뛸 텐데…….”
오케아노스의 길을 가득 메운 적 군단들.
언제 저렇게 흑뢰를 모아 둔 건지, 움직임이 거침이 없다.
“일단 우리는 아직 넘어가지 않은 신계로 가자.”
“알겠어.”
트라이아나의 항로를 돌린다.
지도상 적 군단이 움직이는 것에 비해 훨씬 빠르게 움직이는 트라이아나.
그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자니, 포세이돈과 크툴루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향후 올림푸스는 우리가 완성한 길, 오케아노스를 통해 병력을 보내겠지. 그때, 트라이아나가 있다면 그 이동을 성가시게 방해할 수 있다. 오는 시간도 늦추고, 병력도 모두 이동시키지 못하도록 지연시킬 수 있지.]
지금이 이 기능을 쓸 때인가?
“트라이아나. 적을 방해할 수 있어?”
[예. 가능합니다.]
내 질문에 실내가 울리며 바로 답하는 트라이아나.
“방해는 어떤 식으로 하는 거지?”
[트라이아나의 권능에 따라 물이 범람하여, 통로를 잠시 틀어막는 형식입니다. 공격 효과는 크지 않으나 이동은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습니다.]
“오호. 그럼…….”
바로 명령하려고 했으나, 곧바로 이어지는 답에 고민에 빠졌다.
[적의 이동을 방해할 경우, 트라이아나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래? 그럼 좀 그렇군. 일단 저 신계로 갔다 생각해야겠다.”
[알겠습니다. 이동하겠습니다.]
트라이아나가 계속 순항한다.
도착까지는 조금의 시간이 남아, 아이템과 스킬을 점검해 본다.
쭉 둘러보니 눈에 들어오는 한 스킬.
[아이기스의 방패 ? 파손]
스킬인데, 파손되었다고 사용도 불가능하다고 나온다.
“아이기스의 방패 이거…… 다시 살려야 하는데.”
“아이기스? 그거 아테나 거지?”
“응.”
“헤파이스토스 작품일 테니, SP 상점에서 헤파이스토스의 만능 키트 사면 될 거야.”
“오. 그런 방법이?”
바로 검색해 보니 100만 SP에 팔고 있었다.
싸지는 않은 가격이지만, 아이기스의 방패는 S급 스킬로서의 쓸모뿐만이 아니라 아테나와의 연락책으로도 쓰이니…….
바로 질러서 사용한다.
[헤파이스토스의 만능 키트를 사용하였습니다.]
[아이기스의 방패가 다시 활성화됩니다.]
방패가 다시 재생되자 내 주위를 원형 방패가 둥둥 떠다니기 시작한다.
“근데 그 방패, 너한테 쓸모가 있어?”
“뭐…… 소울 배리어로 강화하면 나름 시너지 효과가 나지.”
진짜 쓸모는 아테나의 메시지지만.
방패 뒷면은 아직 텅텅 비어 있다.
아직은 메시지를 보내질 않나 보네.
자기가 고치라고 하더니…….
언젠가는 오겠지 하면서 방패에서 시선을 돌렸다.
“다 도착했습니다. 주신이시여.”
“그래, 그럼 가 봅시다.”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도착한 곳.
푸른 하늘이 인상적인 신계다.
검은 번개가 깔리지 않아 보기 좋은 곳.
점차로 내려가니 신계의 모습이 드러났다.
드넓은 푸른 초원.
그 위에는 돌무더기가 조악하게 짜 맞춰져 있다.
ㄷ자를 세운 모양의 돌들…….
이거, 스톤헨지 아냐?
“모습을 보아하니 원시 신앙인가 보군요. 흠. 신계를 이룰 정도로 번성했다니…… 한데 신의 흔적은 보이질 않습니다.”
환웅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평원을 둘러본다.
그의 말대로, 신계면 신이 있어야 하는데 딱히 보이는 이들이 없다.
트라이아나가 안 보이나?
“일단 나가 보죠.”
트라이아나를 나서서 땅으로 내려간다.
흑뢰도 없고, 적 군단이 오는 걸 보면 아레스에게 장악당한 신계는 아닌 것 같은데…….
나와서 땅으로 내려가는데도 날 멈추려는 사람이 하나도 없네.
[김지호?]
돌멩이들을 구경하고 있자니,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
이 목소리…… 익숙한데…….
스르르르.
돌덩이 앞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한 인영.
가슴에 검이 꽂힌 채 나타난 거인의 모습에 아르테미스가 화들짝 놀란다.
“아니, 헤라클레스?”
“음. 아르테미스에, 김지호까지……? 뭐냐, 김지호. 너, 올림푸스에 붙었냐?”
그러며 나를 노려다보는 헤라클레스.
이 양반이 여기 왜 있어?
“아르테미스는 올림푸스를 버리고 내 사도가 되었거든?”
“네가 아르테미스 님, 아니 아르테미스를 사도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 반대가 아니고?”
혼돈 쪽이라 그런가 소문이 느리네.
그에게 일의 경위를 대강 설명해 주자, 헤라클레스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아폴론을 네가 쓰러뜨렸다고? 와…… 네가?”
자식.
진짜 믿지를 못하는구먼.
태양신의 권능을 가볍게 보여 주자, 그제야 감탄하는 헤라클레스.
나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영혼 계열의 신을 계속 했어야 했는데…… 정말 말도 안 되게 강해졌구나.”
“뭐, 네 멘토링 덕도 좀 봤지.”
“그래. 세진 건 알겠는데…… 여긴 무슨 일이냐? 게다가 어떻게 들어온 거야?”
“나야말로 묻고 싶은데. 여긴 어디야?”
“내가 먼저 물었다.”
자식이 유치하긴.
오케아노스의 길과 아레스의 진격에 대해 설명해 주자, 빠르게 이해하는 헤라클레스.
“흑뢰가 쳐들어온단 말이지…… 아스가르드를 멸망시키려고.”
“그래. 이젠 내 질문에 답할 차례야. 네가 여기 왜 있어? 이름이 없기에 중소신계인 줄로만 알았는데.”
“흠…… 저거 보이냐?”
“저거? 스톤헨지?”
“그때보다도 더 오래된 거다. 인류가 최초로 신앙생활을 한 신전, 그 원형을 담은 것이지.”
돌덩이를 툭툭 두드리는 헤라클레스.
“혼돈은 모든 것의 어머니요, 만물의 시작점이다. 우리 혼돈의 군주의 거점도 이 모습이 디폴트지. 뭐 다른 혼돈의 군주들은 나름 신계를 꾸미는 것 같지만, 나는 이 모습이 좋다.”
혼돈 자랑을 넘겨들으려고 했지만, 이 모습이 디폴트라니…….
질서와 중립이 생기기 전부터 혼돈은 먼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인가?
돌덩이를 바라봤다.
이건 진짜 원시 시대 느낌인데……
그 시절부터 생겨났던 신앙의 모체.
혼돈도 이에 발맞추어 시작한 건가.
“근데 왜 지구 신계들 모임에 네가 껴 있냐? 하필 아스가르드 옆에.”
“여기가 아스가르드 옆인가? 난 그냥 지구 정벌을 위해 신계 하나 접수하라고 해서 침공한 것에 지나지 않아. 원래는…… 뭐였더라. 켈트 쪽이었나? 기억도 안 나네.”
원래부터 헤라클레스의 신계가 아니었군.
남의 걸 점령한 후에 자기가 신계로 쓰고 있었구나.
황량한 평원에 돌덩이만 남겨 놓다니…….
“어쨌든 여기가 네 거점이란 이야기군. 잘됐네. 혼돈의 거점이니, 여기서 혼돈 세력을 모아서 적을 몰아치면 되잖아.”
“흠…… 혼돈 세력을 모은다고? 그건 힘들다. 하데스를 제외한 다른 혼돈의 군주들은 모두 제우스와의 확전을 반대하고 있어. 녀석들이 올림푸스와 내통한 게 확실하다. 이미 창조주가 되었으니, 제우스를 두고 봐야 한다고 계속 주장하더군.”
이를 으드득 가는 헤라클레스.
“망할 놈들…… 결국 계속 토의 중이다. 시간만 끌고 있어. 어차피 제우스가 창조주에 오른 이상, 그가 지구를 평정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럼 여기에 쳐들어오는 적의 움직임도 방관해야 하나?”
그러자 씨익 웃는 헤라클레스.
“그건 아니지. 혼돈의 세력을 못 모을 뿐이야. 나는 싸울 수 있지. 내가 선빵을 맞는데, 가만히 있을 필요가 있겠냐?”
“그래. 그럼 좀 도와라.”
“당연하지. 하데스에게도 이미 연락을 했다. 그는 도와주겠지.”
오호.
하데스까지?
하데스랑 헤라클레스면, 흑뢰 정도는 쓸어버릴 수 있을 거 같은데?
“아레스 님과의 전투라…… 기대되는군. 어떤 움직임을 보일 것 같지?”
아레스가 중소신계를 흑뢰로 바꾸어, 라그나로크를 일으키겠다고 말하니 고개를 끄덕하는 헤라클레스.
“올림푸스 입장에선 아스가르드와의 동맹 조약이 가장 성가시니 그렇겠지. 하지만…… 그게 달까?”
“그게 다라니?”
“아레스 님은 전쟁의 신이다. 그렇게 뻔히 보이는 수만을 쓰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휙.
그러며 사라지는 헤라클레스의 모습.
[난 본체로 돌아가지.]
그 한마디만을 남긴 채 사라진다.
아레스의 의도라…….
우리 몰래 중소신계를 편입하고 라그나로크를 일으키는 것에다가 또 뭘 꾀한다고?
생각을 좀 해 봐야겠지만…….
일단은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겠군.
“저희도 전투 준비를 하죠. 환웅님은 일단 사도의 정원에 가 계십시오. 혹시 그 안에서도 통신이 돼서 연락이 되는 신계가 있다면, 메시지로 알려 주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사도의 정원으로 사라지는 환웅.
“주신이시여. 사도신들이 모두 참전하겠다고 합니다.”
“흠…… 그래? 고맙군.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모두들 현 사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꼭 참전하게 해 주십시오. 영혼 약탈자 스킬을 쓸 수 있는 저희 전력이라면 꽤 도움이 될 겁니다.”
“좋아. 그럼 아스가르드에서 소환하지. 지금은 헤라클레스가 어떻게 하나 봐서 개입하자고. 하데스도 온다니까.”
“예.”
전투태세를 갖춘 지 한 시간이 지났을까.
쿠르르르.
하늘이 검게 물들기 시작한다.
“왔군.”
콰콰콰쾅!
검은 벼락이 내리친다.
무수하게 쏟아지는 번개 다발.
푸른 하늘은 순식간에 어둠으로 잠기고, 태양빛은 보이지가 않는다.
[누구냐.]
스르르르.
은신해 있던 헤라클레스가 몸을 드러낸다.
그 모습은 평소에 보았던 인간형의 모습이 아니라, 거인의 형태.
하늘까지 닿을 것 같은 크기.
거대한 산과 같은 양팔을 휘둘러 하늘을 헤친다.
두두두둑.
거미줄 끊기듯이 끊어져 나가는 흑뢰.
덩치가 워낙 산만 하니, 나름 하급신 정도의 위력을 보이는 흑뢰도 별수 없이 사라져 나간다.
산만한 덩치가 움직임은 빨라서, 흑뢰로 물든 하늘이 금방 밝아지고 있었다.
“우리가 굳이 개입할 필요가 없겠는데?”
활을 꺼내 하늘을 향하던 아르테미스가 어깨를 으쓱한다.
확실히 그 말대로.
헤라클레스가 워낙 압도적이라, 우리까지 나설 차례가 오질 않았다.
그냥 손으로 허우적거리는데도 다 사라지네.
“그럼 여기는 녀석에게 맡기면 될 거 같은데…… 어?”
여유롭게 아르테미스와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하늘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어. 쟤네들 빠지는데?”
검게 물들었던 하늘이 다시 밝아져 오고, 흑뢰가 사라진다.
[어이쿠. 헤라클레스 님이 여기 있다니…… 무서워. 무서워요.]
그리고 사라진 하늘에는 한 사람이 양손을 비비적거리며 서 있었다.
간신처럼 기른 수염.
꾀 많은 얼굴.
하염없이 손을 비비다가 우리에게 안녕 인사를 한다.
그걸 본 아르테미스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한다.
“오디세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