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182화>
아레스의 군세 (1)
운사?
어디서 들어 본 이름인데…….
그의 안내를 따라가니, 현대식의 빌딩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 경치는 도원경인데, 빌딩 하나가 떡하니 있으니 뭔가 안 어울리는군.
빌딩 앞까지 가니, 커다란 유리문에 회전문까지 있었다.
정말 흔하게 볼 수 있는 고층 빌딩인데.
“들어오시지요.”
운사가 손을 흔드니, 유리문 앞에 푸른색의 포탈 게이트가 생겨났다.
영혼 분해를 통해 봐도, 별 이상은 없어 보이는 포탈.
딱히 함정은 아닌 것 같아, 운사의 뒤를 따라 포탈에 들어갔다.
포탈에서 나오자 드러난 공간은 커다란 방이었다.
전방은 커다란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아까의 도원경을 그대로 비추고 있었다.
남은 공간에는 커다란 책상에 각종 전자기기가 있었는데, 신계에 온 게 아니라 IT 기업 회장실에 들어온 것 같았다.
“우리 신계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영혼신.”
회장 책상에서 일어나는 한 사람.
검은 양복 차림에 넥타이까지 맨 핸섬한 아저씨다.
검게 기른 수염이 가슴팍까지 내려온 걸 제외하면, 현대인의 복장에 딱 맞았다.
나에게 악수를 청하는 그 신에게 마주 악수했다.
“예. 반갑습니다. 김지호입니다.”
“환웅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환웅?
아. 운사라고 할 때 어디서 들어 봤나 싶더니.
우리나라 신화였구나?
“환웅이면 혹시, 한국 신화 맞나요?”
“그렇습니다. 역시 알고 계셨군요.”
환웅이 단군 아버지 아닌가?
민족의 시조나 다름없는데 존댓말을 들으니 어색하군.
“우리나라 신화 정도 되면 그래도 중소 신계는 아닌 줄 알았는데…….”
“후후. 그건 영혼신께서 한국에서 태어나셔서 그렇죠. 전 세계의 인구 중 우리를 아는 이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신자의 숫자와 지명도로 신계가 커지는데, 저희는 아무래도 크게 부족하지요.”
“그렇군요.”
“따지고 보면 이 자리도 그렇습니다. 저희의 신화에서 최고신은 사실 제가 아니지만, 유명세로 따져 주신의 직책을 맡게 되었지요.”
하긴, 세계적인 지명도를 따지는 거니 그런가.
아르테미스도 옆에서 동의한다.
이거 참 환웅에게 존댓말을 들으니 등골이 간지러워지는군.
하지만 이제 사도신이 되라고 제의해야 하는데, 반말하라고 하기도 그렇고…….
그냥 간지러움을 감수하기로 했다.
“그래서, 어떻게 오셨습니까?”
“제우스의 올림푸스 군단이 지금 오고 있는 것, 알고 계십니까?”
“흠. 올림푸스가요.”
크게 놀라지 않는 표정으로 내 말을 받은 환웅.
나를 바라보더니, 수염을 쓰다듬는다.
어째 눈치가 영…….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뭐야. 당신, 알고 있었어?”
바로 환웅에게 물어보는 아르테미스.
목소리에 살짝 날이 서 있었다.
“여러분, 그 소식만을 알려 주시기 위해 이렇게 허락도 없이 행차하셨습니까? 그런 소식은 아수라님에게도 들었습니다만…….”
아르테미스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반대로 물어보는 환웅.
어째 분위기가 석연치 않았지만, 찾아온 목적을 이야기한다.
제우스가 중소신계에게 자신의 수하가 되라고 손을 뻗치고 있지만, 결코 그 끝이 좋지 못할 거라는 점.
지금까지 네 군데의 중소신계를 들렀는데, 모두 흑뢰가 된 상태에서 손쉽게 멸망했다고 이야기를 덧붙였다.
심드렁하게 내 이야기를 듣던 환웅은 네 군데의 중소신계가 멸망했다는 말에 반응을 보였다.
“중소신계 네 곳이 멸망했다고요?”
“예.”
“흠, 올림푸스의 보호는 없었습니까?”
“제가 영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뒤에 있다가 나서는 쿠우가.
오. 언제 찍었대?
모두의 시선이 모이자 머리를 긁적이는 쿠우가.
“주신 김지호님의 휘황찬란한 모습을 찍어 두고 싶어서…….”
“잘했어. 보여 줘 봐.”
“옙!”
아르테미스가 나선 첫 번째를 제외한 2, 3, 4번째 신계의 모습이 재생된다.
태양신의 권능 한 번에 완전히 무너지는 중소신계.
환웅과 운사가 너무나도 쉽게 세계가 붕괴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침음을 흘린다.
“이건…… 속수무책으로 뚫리는군.”
“전혀 보호가 없습니다.”
“영혼신께서 태양의 권능도 사용하셨습니까? 이건 너무 압도적이로군요. 혹시 권능이 너무 강력해서는 아닐지…….”
“태양의 권능은 아폴론에게서 얻게 되었습니다.”
“흐음…….”
선 채로 책상을 툭툭 두드리는 환웅.
그 옆에서 운사가 조심스레 입을 달싹인다.
메시지를 보내는 건가?
환웅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나에게 이야기한다.
“영혼신. 정말 놀라운 것을 보여 주셨군요. 사실, 저희도 저들의 제안을 받기는 했습니다.”
“제우스에게서요?”
“제우스에게 직접 제안이 오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올림푸스 소속의 전쟁의 신 아레스에게서 제안이 왔습니다.”
아레스가?
저번에 흑뢰가 소멸할 때도 아레스를 언급하더니…….
이번 일의 책임자가 그인가?
“영혼신께서는 중소신계의 사정에 대해 얼마나 아십니까?”
“자세히는 모릅니다만, SP가 부족해서 신계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습니다.”
“대신계의 핍박에 대해서는 아시는 바가 없으신지요?”
“핍박이요?”
환웅이 갑자기 책상 옆에 있는 모니터에 손짓한다.
그러자 켜지는 모니터.
거기에는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민족의 유구한 영광, 저희와 함께 이어 가지 않으시겠습니까?’
지금처럼 양복을 입고 홉쇼핑 진행자처럼 제스처를 취하는 환웅.
민족과 얼을 강조하던 광고는 십초도 지나지 않아서 종료되었다.
광고가 너무 민족을 강조하는데, 개인주의적인 나로서는 딱히 와닿지 않았다.
그런 내 표정을 읽은 것인지 쓴웃음을 짓는 환웅.
“한민족임을 강조하는 광고. 요즘 용어로 이야기하면 국뽕 광고라고 해야 하나요?”
국뽕을 환웅한테 들을 줄이야…….
“인터넷 용어를 많이 아시네요.”
“신계를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여론을 좀 공부했습니다. 어쨌든, 이런 민족주의적 광고…… 요즘 시대엔 전혀 먹히지 않지요. 하지만 이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 사정이 어떤 겁니까?”
“대신계가 얼마 전 서로 협약을 체결했지요. 한 인간에게 너무 과도하게 혜택을 부여하지 말자고.”
“그래서요?”
나에게 차근차근 설명해 주는 환웅.
“저희 같은 중소신계는 대신계에게 혜택 측면에서 결국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차별화를 하기 위해선, 선택과 집중을 위해 소수에게 큰 혜택을 부여하거나 자질이 떨어지는 이를 받는 수밖에 없지요. 한데…….”
“한데?”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자질이 떨어지는 이도 대거 흡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반인도, 곧 죽어 가는 노인도 모두 신자로 받아들이더군요. 이에 반해 다른 대신계, 가령 불교와 아스가르드는 소수에게 혜택을 더 부여하더군요. 이들은 그러면서, 자기들이 주는 혜택 이상은 주지 말라고 강요했습니다.”
와.
도둑놈들이네?
한쪽은 기존에 안 가져갔던 이들까지 싹 다 쓸어 가고…….
한 쪽은 정예 몰빵도 못하게 했네.
요즘 같은 시기에 대신계랑 중소신계가 조건이 같으면 나 같아도 대신계 쪽의 신자가 되지.
“중소신계는 어떻게 살라는 겁니까?”
“지금까지 모집했던 기존 신자들만 관리하라고 하더군요. 중소신계는 애초에 신앙심이 대신계에 비해 낮은 편인데. 어떻게 관리하라는 건지…… 사실상 말라 죽으라는 격이지요.”
한숨을 토해 낸 환웅.
“거기에 저희를 보호하겠다면서 온 아스가르드의 신들도 가관이었지요.”
“예? 그들이 왜요?”
“보호비를 요구했습니다.”
“……보호비요?”
이 새끼들.
깡패냐?
“예. 자신들이 이런 작은 신계에 지켜 주러 왔는데, 당연히 대가는 받아야 하지 않겠냐고 하는군요. 아스가르드도 따지고 보면 올림푸스와 결탁한 적이었는데…… 전혀 반성한 기색이 없이 기껏 모은 SP를 수탈해 갔습니다. 저희는 양반이었죠. 다른 신계는 여신에게 수청을 들라고 했다는군요. 이런 문제에 대해 대신계에게 하소연해 봐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한통속이었습니다.”
할 말을 잃었다.
대신계…….
내 앞에서는 영혼 중개 때문인지 모두 호의적으로 대하더니.
약자에게는 가차 없구나.
여신들에게 수청까지 들라고 그래?
호가호위도 정도껏 해야지. 이건 뭐…….
“거기에 또…….”
날 슬쩍 바라보는 환웅.
나는 왜?
“영혼신께서 사도신으로 데려가신 신들도 연락을 받지 않더군요.”
“네? 저요?”
“예. 결사대로 선발한 신들 가운데에선, 버리는 신들도 있었지만 나름 중소신계에서 차기 대신급으로 기대받던 신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대부분 다시 돌아오느니 영혼신 밑에 있겠다며 연락을 끊더군요.”
“쿠우가. 다른 사도신들이 그랬어?”
아니, 영혼 중개 맛을 얼마나 봤다고?
쿠우가에게 물어보자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긍정한다.
“주신. 당연한 일입니다. SP가 하루 자고 일어나면 그렇게 쏟아지는데요.”
“그건 나도 인정해. 나도 SP 오르는 거 보고 사도신에서 독립하고 싶지 않아지더라. 내가 얻는 게 이런데 우리 주신께서는 대체 영혼 중개로 얼마나 버는 거야?”
“뭐, 좀 벌지.”
“음…… 그러면 하루에 몇천만?”
“겨우 그거로 어디에 비비냐?”
“겨우? 몇천만이 겨우?”
“역시 주신이십니다. 스케일이 다르시군요.”
눈이 휘둥그레지는 아르테미스.
쿠우가는 존경의 눈빛을 하염없이 보내고 있다.
이거, 그렇게 높은 수치였나?
자세한 소득은 굳이 밝히지 않는 게 좋겠군.
“다른 신계에서 뽑혀 온 신들은 SP에 목마른 이들이 많습니다. 주신께서는 사도신에게 너그러우신 데다가 SP는 하염없이 주시니 다들 이 안락한 사도의 정원에서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아하죠.”
“이런저런 일들로 인해 저희는 고사되고 있었습니다. 이대로라면 신들을 빼앗긴 채, 신계 전체가 봉인될 거라고 생각했죠. SP 수급처는 사라져 가고…… 대신계의 수탈에 신들의 이탈까지…… 결국 저희는 고사 끝에 멸망을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레스가 접촉하더군요.”
전신 아레스?
흑뢰로 이루어진 신계를 부술 때가 생각났다.
[으으…… 아…… 아레스…… 약속을 어기다니……! 지켜 준다더니……! 크…… 크으……!]
무너지는 신계의 중심에서 아레스를 저주하던 목소리.
올림푸스의 신 중에서는 그가 이번 일과 관련이 있는 건가.
“아레스는 저희의 상황을 꿰뚫어 보며, 올림푸스의 편을 들라고 회유했습니다. 안정적인 SP 공급, 영원한 불가침을 약속하면서.”
“조건은 좋지만 이해가 안 되는군요. 그들은 올림푸스입니다. 신들을 모두 봉인해서 이번 사달을 일으켰던 원흉이죠. 한데 그 말을 어찌 믿는단 말입니까?”
“아레스는 자신을 걸었습니다.”
쿵.
환웅이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친다.
“제우스와 헤라의 적자. 올림푸스의 가장 고귀한 혈통. 전쟁의 신 아레스가 자신의 불멸을 걸었습니다. 자신의 대신격을 걸었습니다. 시스템에 맹세해 저희의 안전과 SP를 약속했지요. 우리는 이를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칫. 그 녀석이 고귀한 혈통은 무슨…… 제우스의 자식이면 다 비슷비슷하구먼.”
아르테미스가 옆에서 투덜거린다.
제우스랑 척을 진 후에도 이런 건 또 신경 쓰이나 봐?
“근데 그 말대로라면 이상하네. 우린 벌써 네 개의 신계를 멸망시켰잖아. 그럼 아레스는 계약 위반으로 시스템의 페널티를 받을 텐데…….”
“신계가 멸망할 정도면 페널티도 상당할 텐데요. 강제 봉인급도 가능할 것 같은데…….”
“저도 시스템의 영상을 보지 않았다면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데 우사가 확인해 본 결과, 아레스는 멀쩡하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저도 멀쩡하구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는 환웅.
“환웅, 너 설마 스스로를 걸고 테스트 해 본 거야?”
“아레스가 페널티를 받지 않았다면, 제가 그와의 비밀 누설 계약을 어겨도 페널티가 없겠지요. 후후. 아레스와의 계약 내용을 말했음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군요.”
“아니, 환웅 당신, 시스템을 통해서 계약했다며. 확실히 계약한 거 맞아? 시스템을 통해서?”
“당연합니다. 아르테미스. 신계의 명운을 건 계약을 제가 소홀히 했겠습니까?”
“그럼…… 시스템 계약으로 사기를 칠 수 있다는 거잖아? 이건 절대 대신이 할 수 없는 일인데…….”
제우스 짓인가?
시스템을 사칭해서 사기 계약이라니…….
진짜 별 짓거리를 다하는구나.
이것도 EX등급에 올라서 가능한 건가?
“최후에는 사기라. 하. 완전히 당했군…….”
허탈한 음성을 흘리는 환웅.
그가 굳은 표정을 지은 채 우리를 바라본다.
“이렇게 된 이상, 거리낌 없이 이야기해도 되겠군요.”
“…….”
“아레스의 최종 목표는 아스가르드.”
아스가르드.
동맹 계약 때문에 방해되어서 그런 건가……?
“그들은 흑뢰를 통해 라그나로크를 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