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 2개-179화 (179/240)

<내 상태창 2개 - 179화>

대공습의 시작 (1)

애초에 오케아노스를 감시한다고 했을 때, 나는 올림푸스만 보면 될 줄 알았다.

길을 아는 건 올림푸스 쪽인 줄 알았으니까.

근데 지금 나온 결과는 내 예상과 너무 달랐다.

“열 군데…….”

최소 열 군데. 대규모의 움직임만 포착된 곳이 열 군 데다.

신계의 이름은 딱히 특정되지 않은 채, 중소신계라고만 적힌 점에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었다.

“바로 옆의 신계로 이동 중이군…….”

중소신계가 중소신계에 이동한다.

이 움직임을 어떻게 봐야 할까?

그냥 방문하는 거였다면 신계에 문을 열어달라고 하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케아노스의 길은 숨겨진 길.

제우스가 포세이돈과 크툴루에게 부탁해 만든, 올림푸스만이 아는 길이다.

이 길을 대규모의 신들이 이용 중이라…….

올림푸스와 연관이 있을 수밖에 없어.

“이동 속도를 보면 아직 며칠 정도는 여유가 있어 보이지만…….”

움직이는 속도를 보니 그렇게 빠르지는 않다.

신들이 움직이는 거라고는 해도, 오케아노스의 길이 그렇게 순식간에 이동할 수는 없나보군.

다행히 대비할 시간은 있을 것 같아.

바로 로키에게 통신을 연결한다.

“로키.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데…….”

[열 군데에서 이동했다고?]

오케아노스의 존재에 대해서 아수라와 나에게 들어 인지하고 있던 로키.

내가 신계에서 이동이 감지되었다고 하니까 대번에 표정을 굳힌다.

[갑자기 적극적으로 나서는군. 제우스…… 어느 중소신계인지는 알 수 없는 건가?]

“다 그냥 중소신계라고만 나와 있어. 특정되어 있지는 않고.”

[이런…… 이름까지 알면 좋을 텐데. 일단 연락이 닿는 신계에 모두 경고를 보내야겠다.]

“그래.”

골똘히 생각에 잠기던 로키.

그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흠. 그리고…… 그리고 나와 미카엘, 아수라가 중소신계에 순차적으로 연락을 돌려 볼 테니, 넌 움직임을 주시하다가 군단의 움직임이 이상해지면 즉각 알려 줘.]

“왜?”

[혹시 우리가 연락하고 지내는 중소신계에서, 적과 내통하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우리의 메시지를 받고 군단의 움직임에 변화가 있다면, 그 신계는 수상쩍다는 거겠지.]

“중소신계에 제우스와 내통자가 있는지 의심하는 건가?”

[만약의 가능성을 대비하는 거야.]

“별로 신계간의 동맹이 굳건하지 않아 보이네.”

[뭐…… 아무래도 지구에서의 이권을 가지고 싸웠으니까. 중소신계에서는 대신계가 신도들을 다 가져간다면서 불만이 팽배했지. 네 사도가 된 신들도 봉인될 것 같으니까 간 거잖아.]

그래.

내 최초의 사도신들은 봉인 직전의 위협에 시달리다가 나에게 왔었지.

“제우스의 흑뢰 사건 이후엔 중소신계를 좀 대우해 주나 했는데, 딱히 그런 건 없었나 보군.”

[대신계가 인간계에서 주도적인 신앙을 쥐고 있다고 해도, 규모가 큰 만큼 SP도 많이 필요해. 우리들도 여유가 없지. 제 식구부터 챙기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야. 인간들도 똑같지 않나? 수많은 나라들도 결국 인류의 이익보다는 국익을 위해 다투잖아.]

“니네는 신이잖아.”

[신이나 인간이나. 자기 생존과 이익 앞에서는 똑같지.]

냉소적으로 말하는 로키.

어깨를 으쓱인다.

[어쨌든, 중소신계에서 내통자가 있어도 이상하지는 않은 상황이야. 저 중소신계에서 중소신계로 이동하는 무리들을 잘 파악할 필요가 있겠어.]

“그래. 그럼 한번 연락을 돌려 봐.”

[알겠다. 침공이 시작되었다고 알리지.]

로키와 통신이 끊어진다.

미카엘과 아수라에게도 연속으로 통신을 하자, 로키와 비슷한 소리를 하는 대신들.

중소신계의 내통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건가?

“사도신이 된 이들을 불러볼까.”

SP가 딸려서 셀프 봉인될 뻔하다가 내 사도가 되고 잘나가고 있는 사도신들.

그중 ‘쿠우가’라고 이름이 지어진 신이 눈에 띄었다.

이 신, 원래는 이름이 없던 신이었지…….

“쿠우가 소환.”

쿵.

쿠우가를 소환하자 거대한 신형이 집 안을 채웠다.

나보다 거의 두배는 커 보이는 신.

이 집이 웬만큼 넓지 않았으면 천장을 뚫어 버릴 것 같았다.

기본적으로 흑인의 베이스에, 곰을 섞어 놓은 듯한 형상.

몸은 털로 덮어져 있는데 얼굴만 인간이었다.

“부르셨습니까. 영혼신님!”

내가 부르자마자 갑자기 절하며 무릎을 꿇는 쿠우가.

아니, 이 양반 왜 보자마자 과잉 충성이래.

“뭐, 물어볼 게 있어서 불렀는데…….”

“언제든지 하교하여 주십시오!”

두 눈을 반짝이며 우렁차게 대답하는 쿠우가.

진짜 간이고 쓸개고 다 빼 줄 만한 충성스런 모습이다.

“……지금 상황이 이렇거든? 대신들은 중소신계에 반역자가 있을 거라고 추측하던데. 네 생각은 어때?”

“저는 중소신계보다도 밑바닥에 있었던, 잡신에 불과한 하급신이었습니다만…… 그들의 추측,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소신계와 소속이 없는 하급신들이 모일 기회가 있었는데, 다들 분위기가 흉흉했습니다.”

“그래?”

“예. 대신계가 서로 협력하자고 말만 하고 자신들의 신도를 다 빼앗아 가고 있다고요. 특히 이런 현상은 올림푸스와 아스가르드가 신을 번갈아 가면서 장악했을 때 심해졌습니다.”

쿠우가가 미간을 굳히며 말을 이어 간다.

“저는 아프리카의 콩고 출신 신인데, 제 신앙은 올림푸스의 하급신과 아스가르드의 하급신이 번갈아 가며 가져가 버렸지요. 나중에 세상이 정상적으로 돌아온 후에도, 아스가르드의 하급신은 콩고 부족의 장악력까지도 놓지 않으려 했습니다.”

“콩고 부족 신앙까지…… 벼룩의 간을 빼먹는 격이군.”

“정말 맞는 비유십니다! 이대로는 소멸인가 해서 절망에 빠져 있었는데, 갑자기 그들이 우리의 주신이신 영혼신님을 소개해 주셨지요. 처음 뵈었을 때의 그 위엄이란! 처음에는 사도신이 되는 데에 거부감이 있었지만, 이제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주신만을 따라가겠다고 매일매일 다짐합니다.”

그러면서 내 낯이 뜨거울 정도로 날 칭송하는 사도신 쿠우가.

얼굴은 험상궂고 몸은 곰인 양반이 이러니까 뭔가 더 낯간지럽군.

“어머. 충성스러운 신이네.”

“어. 언제 왔어, 아르테미스?”

창가에서 휙 들어오는 아르테미스.

얘는 내 집이 지 집인 줄 아나. 불쑥불쑥 튀어나와.

“신전 건설 거의 마무리가 되어 가기에 보러 오라고 들렸지. 근데 왜 저 신이 여기 있는 거야?”

“중소신계의 신들 움직임이 좀 이상하거든. 그래서 그의 경험을 들어 볼까 해서 불렀지.”

“뭐, 어떻게 이상한데?”

아르테미스에겐 말 안 했나?

내가 포세이돈과 만난 이야기를 간략하게 해 주자 눈을 동그랗게 뜨는 아르테미스.

“포세이돈 숙부도 드림랜드의 괴물들과 합체해 있었다고?”

“어. 이제는 먹혔지만.”

“숙부도 상당히 강력하신데…… 올림푸스의 날개가 하나씩 꺾이네.”

나를 보고 감탄하는 아르테미스.

뭐, 다구리 쳐서 순식간에 제압한 거지만, 굳이 그 사실을 자세히 말할 필요야 없겠지.

“오케아노스…… 그런 걸 하고 있었다니. 진짜 내가 모르는 새에 얼마나 많은 일이 진행된 거야?”

투덜거리던 아르테미스는 쿠우가를 바라보았다.

“너는 신계에 소속된 신이 아니지?”

“그, 그렇습니다.”

“그러면 그는 중소신계가 받는 취급에 대해 완전히 알지 못할 거야. 신계에도 소속되지 않은 신들은 딱히 견제의 대상이 아니거든. 뭐, 아까 이야기를 들어 보니 작은 부족의 신앙조차도 빼앗긴 것 같지만.”

“잉? 견제? 중소신계를 왜 견제해?”

“누군 처음부터 대신계였을 거 같아? 김지호. 제우스가 매일같이 후회했던 게 뭔지 알아?”

“뭔데?”

“한때 중소신계였던 기독교를 짓밟지 않은 거야.”

기독교.

예수 그리스도의 사망 이후, 로마에서 알음알음 전파되다가 신도가 많아져서 결국에는 국교로 지정되기까지 했지.

그러고 보니 원래는 올림푸스가 장악하고 있던 걸 완전히 가져간 꼴이구나.

그리고 로마를 기반으로 세계 종교가 되었으니……

“로마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었지만, 우리가 가장 위였지. 로마의 시조도 아레스, 그들 식으론 마르스의 후손이라고 스스로를 지칭했고.”

“전신 아레스?”

“응. 당연히 아레스의 아버지였던 제우스도 최고신으로서의 지위는 굳건했고, 올림푸스는 강력한 대신계로 자리 잡았지. 물론, 그 시기에 우리 같은 대신계가 없던 건 아니었지만, 그들은 너무 멀었고 지중해 세계에서는 우리가 최고였어.”

“뭐 그건 그렇지. 신화 이름부터가 그리스 로마 신화잖아.”

“그래…… 그런 시절이 있었지. 그래서 우리는 자만했고, 중소신계가 크든 말든 관심이 없었어. 아무리 그들이 큰다 한들, 우리의 아성에는 미치지 못할 것 같았거든. 그리스도교가 나타나서 세력을 확장할 때만 해도, 그냥 좀 크다 끝나겠거니 싶었지. 하지만 아니었어.”

뭐 이건 역사에 밝지 않은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결국 대세는 기독교가 차지하고, 올림푸스 신화는 그 이후부터 사양길을 걸은 거잖아.”

“그래…… 제우스는 방심의 대가를 톡톡히 받은 거지. 그리스도교에게 우리는 완전히 패배했고, 지중해 세계의 주권을 넘겨주게 되었어. 중세 시대에 들어서고선 그게 더 심해졌지.”

“뭐 그래도 잘 버텨서 지금은 올림푸스 혼자서 날뛰고 있잖아.”

“지금이야 제우스의 계획 때문에 그런 거지만, 그런 우리도 멸망할 뻔했어.”

그 깡패 같은 올림푸스가?

“기독교에게 주권을 빼앗긴 후, 대신계를 유지할 만한 SP가 들어오지 않게 되었지. 뭐 거기에는 올림푸스 자체의 문제도 있었어. 우리는 한때 잘나가서 SP를 흥청망청 썼거든.”

“그래도 멸망까지 가나? 대신계가 안 되면 중소신계로 가면 되잖아.”

“그러기엔 올림푸스의 대신 숫자가 너무 과도했어. 신계가 강등되면, 누군가는 사라져야 했지. 하지만…… 제우스는 그럴 수 없다며, 자신이 그리스도교와 담판을 짓겠다고 하고 천국으로 갔지. 그리고…….”

“어떻게 됐는데?”

“자세한 일은 모르는데…… 그 날 제우스는 전신이 찢겨나간 채, 굴욕적인 표정으로 올림푸스에 돌아왔지. 협상은 잘 끝났다고 하면서.”

그때를 추억하는 것인지 눈빛이 아련해지는 아르테미스.

제우스 놈, 의외네.

“그 후 제우스는 스스로 봉인에 들어갔고, 우리는 대신계의 명맥만을 유지했지. 그리고 제우스가 봉인에 풀린 날, 그가 대계를 계획했다고 하면서 올림푸스의 일원에게 서약을 시켰어.”

“이번 일에 관한?”

“자신이 천지를 뒤엎고 창조주가 될 계획이 있으니 믿고 따라 달라고 했지.”

“흠…….”

“제우스의 희생을 지켜본 우리는 모두 그를 믿고 따르겠다고 맹세했지. 그때부터 이 일이 시작된 거야. 나도 크아이가 같은 놈한테 제물로 바쳐진 거고…….”

제우스가 이렇게 세상을 뒤집어 놓은 데에는 저런 배경이 있었나?

그리스도교 쪽에서 제우스 사정 봐주지 말고 밟아 버렸어야지. 쯧쯧.

하여간 후환을 남기면 안 돼요.

“뭐, 이건 우리 지중해에 있던 일이고, 이 외에도 중소신계였던 신계에게 역전당한 일이 한두 개가 아니야. 동양의 불교도 시작은 미약했지만 세력이 어마어마하게 커졌잖아? 작은 신계라고 해서 방심했다간, 갑자기 역전당하는 일이 생길 수가 있어.”

“그럼 네 말은…….”

“아무리 제우스가 위협적이라고 해도, 태생적으로 대신계와 중소신계에는 긴장감이 흐를 수밖에 없어. 대신계는 중소신계를 제압하려고 하고, 중소신계는 대신계의 자리를 자신들이 차지하고 싶어 하거든. 그러니 서로 진정한 협력을 이룬다? 꿈같은 소리지.”

감당하기 힘든 외적이 쳐들어왔지만, 그런 배경이 있어서 서로 협력이 잘 안 되는 건가.

거기에 모든 신들이 봉인되었다가 풀려난 지 얼마 안 돼서 SP가 얼마 없기도 하고…….

흑뢰 사건 이후에도 잘 협력이 안 되는 연유를 알겠군.

“골치 아프네. 봉인을 풀어 주면 합심해서 제우스에게 대항할 줄 알았더니…….”

“연합이란 게 원래 그렇습니다. 다들 자기 집단의 이익이 최우선이지요.”

“중소신계는 신도도 대신계에게 빼앗기고, 점점 생존을 걱정하게 될 거야. TV를 보니까 신들끼리 광고하는 게 아주 점입가경이던데? 요즘은 종교계가 최대 광고주라더라.”

얘는 신전을 짓는다더니 언제 그런 것까지 파악했냐.

“제우스의 뭘 믿고 그쪽에 붙지?”

“뭐, 명맥은 유지시켜 주겠다고 서약만 해 줘도 붙지 않을까? 지금은 말라 죽을 상황일 텐데.”

“불멸자인 신은 자신이 봉인되는 걸 제일 두려워합니다. 창조주가 된 제우스가 살려 준다는 약속만 해 줘도, 그쪽으로 붙을 세력이 많을 겁니다. 지금은 대신계에게 사도들 다 빼앗겨서 죽을 지경이니까요.”

그렇군.

중소신계의 상황은 지금 사면초가나 다름없구나.

결국은 신도를 받아들이지 못해 SP 수급이 안 되는 게 문제니.

그때 한쪽에 띄워 놨던 스크린 창에 미세한 변화가 보였다.

열 개의 무리가 이동하는 걸 비춰 주던 화면.

그중 네 군데의 움직임이 멈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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