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177화>
포세이돈 (2)
“영혼신. 정말 나를 분리해 주지 않을 셈인가?”
말씨름을 한 지 몇 분이 지났을까.
갑자기 목소리를 깔더니 진지하게 물어보는 포세이돈.
“대가를 줘야지.”
“결국 평행선을 달리는군…….”
포세이돈이 삼지창의 끝을 나에게 겨눴다.
힘으로 압박하려는 건가?
그렇다면 나도 행동을 개시해야겠군.
“신의 권역.”
아수라도를 나의 권역으로 선포한다.
그러자 땅 위로 스멀스멀 올라오는 다섯의 형체.
아수라와 그의 일행들이다.
“이들은 누구냐? 아니, 저자는 아수라……!? 왜 이들이 여기 있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것인가.
포세이돈이 나에게 묻는다.
“왜 있긴. 대어를 낚기 위해 올라왔지.”
“네놈!”
바로 삼지창을 치켜드는 포세이돈.
그에 앞서 아수라의 여섯 도가 움직인다.
“영기발출.”
새하얀빛으로 물들어가는 육도.
어느덧 포세이돈의 뒤를 점한 아수라가 도를 휘둘렀다.
“트리아이나. 바다가 되어라!”
삼지창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물결.
눈 깜짝할 사이에 포세이돈의 주변이 물에 잠겼다.
퍼지지 않고 뭉쳐 그를 보호하는 물.
물방울을 커다랗게 확대한 것 같다.
퍼펑!
아수라의 도에 부딪치자 터져 나가는 물방울.
물을 거슬러 검이 포세이돈의 몸에 닿기 바로 직전.
사아아아.
포세이돈의 삼지창에서 물이 범람하더니, 그의 몸이 물결과 함께 이쪽으로 파도쳐 왔다.
호. 바다의 신이라 이거지?
“잡것들…… 아주 기고만장하구나! 모조리 쓸어 주마!”
파도를 탄 채 창을 내게로 향하는 포세이돈.
그 기세가 자못 흉흉했다.
“영기발출.”
영검을 꺼내 기를 발산했다.
그러자 밝아지는 세상.
그러자 하늘이 가려져 있던 색깔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푸른색과 검은색이 절반씩 섞인 파도.
포세이돈이 크툴루랑 결합되어서 그런 건가?
휙!
포세이돈의 삼지창이 날아들었다.
그 뒤를 따라 칼날처럼 날아오는 물결.
그 모두엔 영기가 담겨 있었다.
캉! 캉!
“이놈……!”
육중한 무게감. 포세이돈의 창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가 타고 온 파도의 물결도 나를 견제해, 성가시게 굴었다.
하지만…….
아폴론 때와 비교하면, 그다지 강하진 않군.
아폴론은 힘을 완전히 폭주시켜서 그렇게 강했던 건가?
“영혼 분해. 합성.”
포세이돈의 창, 트라이아나는 쉽게 분석이 되지 않았다. 다만 말 그대로 쉽지만 않았을 뿐.
그의 물결은 나에게 닿기 전 분석이 끝났다.
이를 영검에 합성하자 파도가 저절로 분해되며 물이 영검에 빨려 들어온다.
물결이 휘몰아치는 영검.
그대로 포세이돈에게 되받아쳤다.
쾅! 쾅!
트라이아나와 여러 번 마주하는 영검.
최대한의 힘을 내서 검격을 가하지만, 포세이돈의 반응 속도도 만만치 않았다.
아폴론보다 강한 느낌은 안 들지만, 대신은 대신이군.
“이놈, 하찮은 수를!”
“등짝이 비는구나.”
아수라와 네 신도 합류한다.
아수라처럼 삼두육비를 지닌 무신.
모두 각양각색의 무기를 든 채, 포세이돈에게 쇄도했다.
포위된 채 공격을 받고 있는 포세이돈.
삼지창을 크게 휘두르며, 물로 자신을 보호하지만 꽤 힘에 부쳐 보였다.
아수라가 데려온 네 신은 대신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중급신은 되어 보인다.
그들과 내가 일제히 합공을 가하니 정신을 못 차리는 모습이다.
“김지호. 영기발출 정말 쓸 만하군!”
그와는 대조적으로 신이 난 아수라.
여섯 도가 신나게 움직이며 물살을 거스른다.
트라이아나에서 물이 미친 듯이 나오고 있지만, 나오는 족족 베이는 실정.
거대한 파도 같았던 포세이돈의 물도 크기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나를 포함한 여섯의 파상 공세에 어느덧 그의 몸을 보호할 정도로밖에 남지 않았다.
“이익!”
하늘로 손을 뻗는 포세이돈.
태양을 가린 어둠이 옅어지면서, 그의 손으로 내려온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처럼 보이는군.
“어딜 가려고 하나.”
휙!
아수라의 육도가 하늘을 가른다.
하늘을 가리던 어둠이 여섯 갈래로 베여, 별 모양을 그렸다.
그 사이로 가려져 있던 태양빛이 다시 땅을 비췄다.
포세이돈의 동아줄이 잘려 나간 것은 덤.
이 양반, 영기발출 때문인가?
무시무시한 무예에 힘이 담기니 엄청나구나.
빛을 찾아 줬으니, 나도 써먹어야지.
“태양신의 권능.”
태양신의 권능을 다시 발휘한다.
빛에 영기를 불어넣어, 하늘을 가리는 어둠부터 비췄다.
화르르르.
하늘 위에서 새하얀 불길에 밝아지는 어둠.
내가 한 거지만, 너무 수월한데?
그걸 본 포세이돈이 노호성을 지른다.
“크툴루! 네놈…… 뭐하고 있느냐! 저걸 지켜보고만 있어!? 대항해야 하지 않느냐!”
대답이 없는 크툴루.
어둠이 대부분 걷히고, 포세이돈은 고립되어 있다.
그를 향해 날아드는 창칼.
그를 보호하는 물도 걷혀 가고…….
푹. 푹.
무기가 그의 영체에 꽂히기 시작했다.
“크윽……! 이놈들!”
휘이잉.
온몸에 무기가 꽂힌 와중에도 삼지창을 매섭게 휘두르는 포세이돈.
펑!
그의 창을 맞고 두 신이 나가떨어졌다.
“큭…… 소울 배리어 덕에 살았군.”
“SP가 부족하니, 일단 빠지겠습니다.”
실컷 공격을 가하다가 한 방 맞았는데 SP가 고갈되다니.
아수라가 데려온 다른 신들도 공격이 둔해진다.
봉인에 풀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역시 SP가 부족한 건가.
권역 선포를 했음에도 이 정도라니…….
이거 하지 않았다면 합공도 못했겠어.
그래도 결국은 내가 타격을 입혀야겠군.
감각을 나눴다.
하나는 태양빛을 조절하여 빛을 포세이돈에게 온전히 집중시켰다.
치이이이익.
증발하는 물.
타들어 가는 영체.
포세이돈의 모습이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아폴론의 힘……! 크으윽. 태양빛을 이렇게까지 빼앗긴 건가……?”
그리고 남은 정신은 오롯이 영검에 쏟는다.
빛의 공격이 강하긴 하지만, 지금 내가 가진 최고의 공격 수단은 역시 영검.
포세이돈의 움직임이 둔해진 틈을 타, 검을 그대로 꽂는다.
푹. 푹.
포세이돈의 정중앙을 관통한 영검.
그 주위로 아수라의 육도가 반대로 튀어나온다.
뒤에서 앞으로, 앞에서 뒤로.
몸의 전후방이 죄다 꿰뚫린 채, 온몸은 태양빛에 불타오르고 있다.
“커억……! 이 검……!”
아수라의 육도보다, 태양보다 영검 한 자루에 더 큰 타격을 입은 포세이돈.
가슴에 꽂힌 영검을 떨리는 눈으로 바라봤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영혼 약탈이 발동합니다.]
[대상에게서 영력과 SP를 강탈합니다.]
[영력이 60 오릅니다.]
[SP가 3000만 오릅니다.]
아폴론 때처럼 흡수까지 진행되는군.
그때는 녀석을 완전히 흡수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좀 재미 봐도 되겠어.
[거짓된 신 ‘크툴루’에게 영혼 약탈이 발동합니다.]
[대상에게서 영력과 SP를 강탈합니다.]
[영력이 60 오릅니다.]
[SP가 3000만 오릅니다.]
잉.
크툴루까지 따라서 흡수되네?
대신 둘을 흡수하다니.
이거 완전 꿀이네.
“크…… 으윽…… 내 힘이……!”
[영혼신. 검을 오른쪽으로 움직여라. 나도 힘을 잃고 있다……!]
다급하게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크툴루.
그냥 무시하고 힘을 빨아먹을까 잠시 망설였지만, 그래도 같이 일을 꾸미는 처지.
검을 포세이돈의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아수라가 그에 발맞추어, 도를 빼냈다.
나를 의아한 듯이 바라보면서.
“왜? 끝내지 그러나.”
“포세이돈이 가진 힘이 워낙 막대하여 금방 끝이 나질 않는군요. 그의 힘을 흡수하면서 멸하려 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렇군. 알겠네. 그럼 흡수하고 있게. 난 일단 칼을 뽑지. 내가 경계를 하고 있겠네.”
푸슉.
포세이돈의 몸에 박힌 도가 빠져나온다.
그의 몸에는 이제 영검밖에 남지 않은 상황.
오른편에 검이 이동할 걸 보자, 포세이돈이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크게 소리 지른다.
“크툴루. 네놈…… 배신했구나!”
그러자 포세이돈의 왼쪽 입가가 기묘하게 뒤틀린다.
이제는 메시지를 보내지 않고, 직접 말을 하는 크툴루.
“내가 진실한 신이 되기 위해, 가장 최적의 방법을 찾았을 뿐이지.”
“크으…… 내가 쇠한다고 네가 내 영체를 차지할 줄 아느냐? 우리가 그렇게 간단한 관계가 아님을 네가 더 잘 알 텐데?”
“그래. 널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영혼신의 도움이 있다면 가능하다.”
무슨 도움?
뭘 원하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포세이돈의 힘이나 맛있게 흡수하고 있어야지.
아폴론이랑 싸울 때는 사생결단을 냈는데, 이번에는 완전 꽁으로 얻는 느낌이다.
고생고생해서 얻은 힘도 좋고 보람이 있지만……
역시 이런 공짜, 무임승차가 맘 편하고 최고야.
힘을 계속 흡수한다.
우측의 포세이돈이 약해질수록, 좌측의 영체는 더욱 검게 변하고 있었다.
푸슉. 푸슉.
위엄찬 남신의 영체가 허물어지고, 그 자리를 촉수가 대신했다.
“크으…… 이렇게 허무할 수가…… 올림푸스는 무얼 하는가…….”
“통신을 내가 막았는데, 그들이 어찌 알겠느냐?”
크툴루가 비웃듯이 말을 흘린다.
그러자 정색하는 포세이돈.
“방해한 것이 네놈이었느냐? 하지만 통신은 결국 갔다. 아테나에게 통신이 갔으니……!”
“오호. 결국 통신을 연결했는가? 그럼 지금 한참 오고 있을 수도 있겠구나. 영혼신. 서둘러야겠다.”
“그래.”
아테나가 소식을 접수한 거면, 구원이 안 올 수도 있겠네.
하필 포세이돈, 연락을 해도 아테나한테 하냐?
하지만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일단 제압해 놓고 봐야겠다.
영기발출을 더욱 강화시킨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영혼 약탈이 발동합니다.]
[대상에게서 영력과 SP를 강탈합니다.]
[영력이 60 오릅니다.]
[SP가 3000만 오릅니다.]
또다시 흡수되는 포세이돈의 영력.
이런 벌이, 아주 좋군.
“크툴루…… 네놈……!”
“잘 먹도록 하지. 포세이돈.”
결국 구원은 오지 않은 채, 포세이돈의 영체가 흑색으로 물들었다.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올라오는 검은 피부.
허리 부근까지 올라오자, 포세이돈의 왼쪽 입이 움직였다.
“영혼신. 이제 되었다. 검을 빼 다오.”
“잠깐……! 잠깐만. 할 말이 있다.”
힘을 빼앗기던 포세이돈이 나를 바라본다.
고통으로 얼룩진 와중에서도 눈이 꽤 침착하다.
“아폴론의 힘, 이런 방식으로 빼앗았는가?”
“그래.”
“제우스…… 올림푸스는 그를 안 도와주고 뭘 했지? 네 말대로라면 그는 벌써 EX등급 아니냐?”
“도와주긴 무슨. 제우스는 지 자식을 집어삼켰는데?”
“집어삼켰다고?”
“그래. 아폴론은 나를 공격하는 와중에 토르까지 건드렸거든. 동맹 위반의 책임을 물어 사형시켰지.”
“허…… 허허허…… 제우스…… 설마…….”
그 말을 듣고 허탈하게 웃는 포세이돈.
지금까지 어떻게든 반항하던 그의 몸짓에 힘이 빠진다.
“영혼신. 부탁이 있다.”
나에게 힘이 잔뜩 빠진 얼굴로 요청하는 포세이돈.
만사를 포기한 느낌이다.
“나를 죽이지는 말아다오. 봉인만 해 줄 수 있겠는가?”
“내가 왜?”
“영혼신. 너는 제우스의 적이지?”
“그렇다만.”
“제우스의 적이라면, 더욱 나를 죽여서는 안 된다.”
무슨 소리야?
“원래대로라면 ‘길’을 뚫는 역할을 맡은 나를 원래 이렇게 놔둬서는 안 된다. 올림푸스는 최선을 다해 나를 보호했어야 해.”
“길? 뭐, 보호하려고 해도 우리가 널 빠르게 제압했으니 못 온 거겠지.”
“아니…… 내가 타격을 입으면 즉각 올 수준이 되어야 한다. 한데 지금 상황은 그렇지 않지. 구원의 통신까지 보냈음에도, 날 방치하고 있어…….”
우리 일행과 포세이돈이 싸운 시간은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짧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대신간의 싸움에 몇 분은 충분히 구원을 부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정말 포세이돈이 방치된 건가?
“아폴론 때도 올림푸스의 구원은 오지 않았겠지?”
“맞아.”
“제우스…… 그가 자식을 집어삼키더니, 형제마저 버리는구나. 그는 의도적으로 우리의 죽음을 방관하고 있어……!”
아테나가 통신을 받았으니, 그녀가 연결 안 해 준 것일지도 모르는데…….
뭐, 착각이 아닐지도 모르니 말을 끝까지 들어 봐야겠군.
“왜 방관하지? 같은 올림푸스의 대신이자 형제를?”
“……나도 모르겠다. 올림푸스를 떠나, 길을 개척한 지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어…… 머리는 혼탁하고 자세한 연유를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우리의 죽음을 방치하고 있다는 건 알겠다…….”
이를 악물던 포세이돈.
그가 땅에 삼지창을 꽂더니, 이를 가리킨다.
“영혼신. 나를 봉인만 해 달라. 그럼 트라이아나의 소유권을 넘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