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 2개-176화 (176/240)

<내 상태창 2개 - 176화>

포세이돈 (1)

“난 아폴론이 아닌데.”

[그럴 리가. 이 힘, 확실하게 기억난다. 아폴론의 태양의 힘 아닌가.]

물컹. 물컹.

빛에 닿기 시작하는 기분 나쁜 감촉.

꿈틀거리는 게 지렁이 같은 느낌이다.

“아니라니까. 그보다 넌 누구야?”

[아폴론…… 결국 날 찾아내다니…… 나는 제우스가 시킨 일을 충실히 하고 있다…….]

“아폴론 아니라니깐.”

[다만 통신이 잘 되지 않아…… 이 영체는 나와 익숙하지 않거든…….]

“거참, 아니라니까. 넌 누군데 그래?”

[아폴론…… 딱 봐도 너의 권능인데 언제까지 발뺌할 셈이냐…… 나는 계속 일을 수행하겠다…… 올림푸스에서 창조주를 만들기 위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자, 올림푸스 소속인 느낌이 드는군.

근데 창조주를 만든다니.

“무슨 소리야. 제우스 그 새끼 이미 EX 등급에 올랐구먼.”

[……그게 무슨 소리냐. 아폴론. 제우스가 EX등급이라니.]

“아폴론이면 제우스보고 그 새끼라고 했겠냐?”

[묻는 말에 대답하라. 제우스가 EX 등급이라고?]

“어.”

[근데 왜 난 이 상태지……?]

꾸물꾸물.

빛에 닿는 무언가가 움직인다.

처음에는 삼지창 모양이었던 것이 어마어마하게 불어나기 시작했다.

튕겨 나가는 빛.

정찰 갔던 하늘 밖의 하늘에, 갑자기 커다란 벽이 쳐진 것과 같았다.

[나는 왜 이대로란 말이냐!]

쿠르르르!

무언가가 빛을 짓누른다.

동시에 하늘이 어두워진다.

[태양빛이 차단됩니다. 태양신의 권능이 급격히 약화됩니다.]

[태양빛이 완전히 차단됩니다. 태양신의 권능이 해제됩니다.]

“뭐야, 저게……?”

어둠이 머리 위에 깔린다.

하늘은 마치 빛 한 점 없는 밤 같다.

삼지창의 변화가 아니었다면, 나도 그렇게 생각했겠지.

하지만 조금 전 태양신의 권능으로 느껴 보지 않았던가.

저건 지금 삼지창의 형태가 변화한 거다.

그 조그마한 게, 한 세계를 뒤덮을 어둠으로 변했다.

푸슉!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온다.

푸른색으로 빛나는 삼지창.

그 창은 내 영체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소울 배리어.”

쾅!

소울 배리어를 사용하자, 창이 그대로 튕겨 나가더니 아수라도의 땅에 꽂혔다.

소울 배리어를 보니 그다지 금이 가진 않은 상태.

다행히 위력은 그리 크지 않았군.

툭.

땅에 꽂힌 삼지창에 어둠이 내려앉더니, 곧 사람의 형체를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어둠인간은 곧 삼지창을 땅에서 뽑아 올렸다.

“정말 아폴론이 아니로구나. 미를 중시하는 아폴론이 그런 얼굴을 하진 않겠지.”

나를 바라보더니 납득하는 어둠인간.

이 새끼, 보자마자 시비구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넌 누구냐?”

“너 먼저 말해 봐.”

“난 포세이돈…….”

포세이돈?

그 이름은 익히 알고 있다.

바다의 신.

제우스의 형제잖아.

저 정도면 상당한 대신일 텐데…….

영검을 꺼내고 경계 태세를 갖췄다.

왜 아수라도의 천외천에 이놈이 있는 줄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적 진영의 대신.

전투 준비를 해야지.

“그리고…….”

“나는 왜 소개하지 않느냐. 포세이돈.”

어둠 형태의 인간이 다른 목소리를 냈다.

확실히 다른 존재라고 느껴지는 목소리.

“넌 또 뭐야.”

“나는 만들어진 신화의 존재.”

어둠인간의 반신이 변형된다.

오른쪽은 인간을 유지하지만, 왼쪽은 흐물흐물해지더니 가닥가닥 실처럼 분화했다.

그러면서 나풀거리는 실.

“한 인간이 만든 거짓된 신화의 신. 하지만 이제 거짓은 진실이 될 것이다…….”

이거 비슷하게 이야기 하는 놈, 좀 전에 만나 봤었는데…….

“너 혹시 크아이가라고 아냐?”

“흠?”

“말하는 게 비슷한데. 드림랜드? 그쪽 소속 아니야?”

“오호…… 신기한 신이로군…… 나를 알아채다니.”

실이 뭉치더니 문어 형태로 변화했다.

반쪽은 문어, 반쪽은 인간 형태.

완전 언밸런스하지만, 다행히 어둠 형태라 그런지 크게 역하지는 않았다.

“크툴루. 닥치고 가만히 좀 있어라. 그에게 물어볼 것이 있으니.”

“우후후후후. 그리하지…….”

크툴루?

그 이름, 들어 본 적이 있다.

크아이가의 거짓된 신화의 이름이 바로 크툴루 신화였던 거로 아는데.

포세이돈과 크툴루가 결합한 거면, 꽤 골치가 아프겠군.

“네 말이 사실인가?”

“뭐?”

“제우스가 정말 창조주가 됐는가? 근데 나는 왜 아직도 이 모양이지? 왜 아직도 이 괴물과 결합 상태냐 이 말이다!”

“괴물이라니. 섭섭하군…….”

“크툴루, 좀 닥치고 있어라!”

포세이돈의 검은 영체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강렬한 투기 속에 잠재된 한이 느껴진다.

이거 대답 잘 해야겠는데.

그의 상태를 곁눈질한다.

크아이가에게 먹힌 아르테미스와 비슷한 상황인 것 같았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포세이돈과 크툴루가 서로 비슷한 힘을 지닌 채 공존한다는 점?

크아이가는 아르테미스를 봉인했지만, 이들은 합체한 상태다.

포세이돈은 지금 제우스가 왜 자신을 이대로 내버려 뒀냐고 분노한 상태.

그러고 보면 아르테미스도 제우스가 창조주가 되었음에도 전혀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아, 나에게 퀘스트를 주고 구원해 달라고 했지.

“나는 아르테미스를 만난 적이 있다. 크아이가에게 봉인당한.”

“아르테미스…… 그래…… 그녀도 나와 비슷한 경우였지…….”

“제우스는 창조신이 되었음에도 그녀를 전혀 도와줄 생각을 하지 않았지. 그래서 아르테미스는 나에게 해방시켜 달라는 퀘스트를 부여했어.”

“너한테……? 평범한 대신 같은데…….”

“크아이가는 나에게 아르테미스를 장악하게 도와 달라고 퀘스트를 줬지.”

“호오…… 그래서 누굴 택했느냐?”

“둘 다 택했지. 난 영혼신이거든.”

내 대답에 화들짝 놀라는 포세이돈.

“영혼신이라고? 그럴 수가…… 헤라클레스 이후 영혼 계열의 클래스가 또 나왔단 말인가.”

“어떻게 그리했지?”

이 양반은 진짜 소식에 무지하네.

반면 크툴루는 진지한 목소리로 나에게 방법을 물었다.

내가 택한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주니, 이를 묵묵히 듣던 둘.

“그런 방법이 있었군.”

“영혼신이라서 가능한 방법인가…… 후후…….”

생각에 잠기는 것인가.

움직임을 멈춘 검은 인간.

그들의 행동을 주시하며, 아수라에게 은밀히 메시지를 보냈다.

[아수라 님. 제 아수라도의 영역에 포세이돈이 침입했습니다.]

[포세이돈? 올림푸스의 포세이돈 말인가? 허. 스킬을 배우자마자 자네가 끌어들인 건가? 뭐 배우자마자 스킬을 쓰나?]

이 양반, 내가 포세이돈이랑 싸우다가 아수라도 소환한 줄 아는구먼.

[그게 아니라 아수라도의 하늘에 있었는데요? 제가 빛으로 발견한 겁니다.]

[무슨 소린가, 그게? 아수라도의 하늘에 포세이돈이 왜 있어?]

[제가 묻고 싶습니다. 거참 아수라도 영역 꾸미려다가 무슨 이런 폭탄을 만났는지…… 빨리 이쪽으로 와 주세요. 이 녀석이랑 싸울 수도 있으니까요.]

[흠. 알겠네. 정예를 데리고 가지. 영역 선포 준비하고 있게나.]

휘이이잉.

아수라와 통신을 끝낼 때쯤, 갑자기 바람이 불어왔다.

소금기가 나는 바람 냄새. 마치 바닷가에 온 것 같다.

스르르륵.

바람을 맞자 어둠인간의 몸이 갑자기 형체를 바꿨다.

아니, 형체를 바꾸기보다는 어둠이 걷혀 진면목이 드러났다고 보는 게 정확하리라.

푸른 장발의 사내.

나신 상태인데 몸 대부분은 기다란 수염에 가려져 있었다.

외모는 올림푸스의 신다운 미남 신.

한데 왼쪽 눈알은 오른쪽에 비해 튀어나와 있고, 피부도 벌레 기어가듯이 핏줄이 툭툭 튀어나와 있었다.

피부도 일부분은 갈라지고 일부분은 번들거려서 보기 흉한 상태.

크툴루랑 합체해서 그런가?

좀 징그러운데.

“영혼신. 아르테미스를…… 구원했다고 했지?”

“그래.”

“그럼…… 나한테도 해라.”

자신의 가슴을 팡팡 치는 포세이돈.

“대격변을 위해 희생한 지도 벌써 셀 수 없는 시간이 흘렀다. 나는…… 이 괴물과 너무 오랫동안 같이 있었다. 해방되고 싶어. 아르테미스를 도와준 것처럼, 나도 도와라.”

대신의 위엄을 가득 뽐내는 포세이돈.

아주 도우라고 명령을 하는구먼.

그런 그에게 간단하게 반문한다.

“대가는?”

“……뭐?”

“아르테미스는 내 사도가 된다고 해서 구원해 준 건데? 애초에 나, 올림푸스랑 적대 관계야. 내가 왜 적을 도와줘?”

말하는 본새가 어째 명하는 말투란 말이야.

기브 앤 테이크는 확실해야지.

“아르테미스가…… 사도가 되었다고?”

“그래. 거기에 아르테미스는 봉인만 된 거지 댁은 합체한 상태잖아? 그럼 더 해결하기 힘들 거 같은데? 그러니 적어도, 사도 정도의 대가는 받아야겠는데.”

쿠르르르르.

내 말에 얼굴이 시뻘겋게 물드는 포세이돈.

아수라도의 땅이 촉촉하게 젖어 들어 늪지대처럼 흐물흐물해진다.

과연 바다의 신…… 인가?

“감히 나 포세이돈을 사도로 삼으려 드느냐! 고야안!”

“사도가 싫으면 그만한 대가를 제시하던가. 일단 퀘스트를 주지 그래. 시스템이 중재해서 계약을 해야 할 것 같으니까.”

“이놈…… 감히 나 포세이돈에게 조건을 걸다니! 나는 크로노스의 아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다!”

아니 그건 아는데 말이죠.

줄 건 줘야지. 자꾸 자기가 뭐였단 소리를 왜 해?

받을 건 받아야지 어디서 공짜로 일을 해결하려고 들어?

이거 완전 꼰대구먼.

[영혼신…… 조심하라.]

그때 나에게 들려오는 메시지.

크툴루의 목소리다.

[포세이돈은 너와 이렇게 말싸움을 하면서, 올림푸스와 연락을 시도하고 있다…… 후후. 내가 그의 정신을 많이 흐려 놨거늘…… 제우스가 EX등급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자 정신을 차린 것 같구나.]

내 말이 그의 정신을 일깨운 건가?

[내가 통신이 닿지 않게 방해하고 있지만…… 오래가지 못할 것 같다. 그가 연락이 닿으면 꽤 피곤할 거야…… 포세이돈과 나는 그들의 ‘길’. 결코 포기하지 않을 거다.]

길이라고?

일단 안 들리는 척, 포세이돈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예. 예. 크로노스의 아드님. 위대하신 포세이돈. 그렇게 위대하신데 대가를 주셔야 하지 않겠어?”

“……영혼신. 내가 내 이름을 걸고 대가를 주겠다.”

“그러면 계약을 하자. 시스템 통해서.”

“으드득. 이놈…… 네놈은 장사치인가? 대신을 믿지 못하는가? 나 포세이돈을 믿지 못하는가? 일단 나를 분리해라. 그러면 대가를 주도록 하지!”

그냥 막무가내로 떼를 쓰듯이 분리해 달라는 포세이돈.

크툴루가 메시지를 전해 주지 않았으면, 뭐 이런 꼰대 양반이 있냐고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포세이돈이 시간을 끄는 느낌이 났다.

[영혼신. 포세이돈은 계속해서 올림푸스에 통신을 연결하려고 한다…… 그와 더 이상의 말씨름은 시간 낭비…… 그를 공격하라. 네가 그를 공격하면, 내가 안에서 동조하여 포세이돈을 집어삼키지…….]

나에게 은밀하게 제안하는 크툴루.

이 녀석, 믿을 만한가?

잠시 뜸을 들이자니 그가 또다시 메시지를 보낸다.

[크아이가의 이야기를 듣고 그와도 연락을 한 참이다. 그에게 촉수 하나를 실체화시켜 줬다지? 영혼신…… 어차피 그대는 올림푸스의 적. 포세이돈은 제우스의 형제며, 지금도 계속 올림푸스와의 연락을 모색하고 있다…… 지금 제압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아수라에게서도 연락이 온다.

[김지호. 우린 이미 도착했다네. 정말 포세이돈이군…… 허. 그가 왜 하늘 위에 있었지?]

아수라의 영역이라 그런가?

메시지 보내자마자 금방 도착했네.

포세이돈과 입씨름을 하면서, 판단을 내렸다.

끝까지 시스템을 통한 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포세이돈. 그와는 아르테미스 때와는 달리 거래가 불가능하다.

그럼…… 적이지. 뭐.

[제가 영역 선포를 하면, 바로 합류해 주십시오.]

[알겠네. 스스로 찾아온 대어를 잡아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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