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174화>
아수라도 (2)
“여기가 아수라도인가.”
아수라도.
이름은 무시무시하지만, 막상 풍경은 녹음이 우거진 산골 초원이다.
분신이 전해 주는 풍경만 같이 공유하다가 직접 오니 기분이 남다르군.
“신참이다.”
“죽여!”
바스락.
수풀이 흔들리더니, 무기를 쥔 적들이 뛰쳐나왔다.
성별과 외양은 모두 가지각색.
인간같이 보이는 적이 있는가 하면, 괴물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이들도 보였다.
어느덧 사방을 포위한 적들.
한데 다가오다가 몸을 멈춘다.
“잠깐…….”
“이자. 뭔가 다르다.”
“덮치지 마. 산개해!”
나를 바라보더니 빠르게 판단을 내리는 적들.
그들을 보니 진입하기 전, 아수라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수라도의 일원은 모두 투쟁을 위해 존재하지. 도망이란 없어.]
아수라 아저씨, 그렇지 않던데요.
“아수라도에도 태양은 뜨는구나.”
손가락을 하늘 위로 향한다.
태양신의 권능, 전투에서 사용해 볼 때군.
“태양신의 권능.”
태양빛이 권역으로 들어온다.
막대한 양의 정보가 머릿속에 어지러이 난립한다.
“일단 정리하고.”
SP 1000 이상의 적들만을 검색한다. 그 이하는 아수라도에 없겠지.
곧 내 주위의 적들을 모두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을 보고, 듣고, 만진다.
좋아. 완전히 손아귀에 들어온 꼴이군.
“빛이여. 적을 멸하라.”
화르르르!
태양의 권능이 발현된다.
대지를 내리쬐는 태양빛.
모든 빛을 다룰 수는 없지만, 지금 내 주변의 빛 정도는 컨트롤하기 수월하다.
빛에 영력을 담으니, 적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일제히 타올랐다.
“으…… 으아아아악!”
아니, 한 놈은 그래도 좀 버티는군.
온몸이 불길에 휩싸인 적.
믿을 수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그대로 태양의 불길에 먹힌다.
“빛에 닿으면 끝이구나. 거기에…….”
탕! 탕! 탕!
내게는 익숙잖은 총성.
이들을 멸하자마자, 전후좌우 모든 방향에서 총탄이 날아왔다.
미끼를 먼저 보내고, 총격을 가하는 거군.
하지만 이미 빛에 의해 모두 파악되었다.
“나를 보호하라.”
가볍게 빛에 명하니 날아오던 총탄이 모조리 불타오른다.
거기에 좀 더 먼 지역으로 감각을 확장하니, 은신해 있던 저격수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거기 있군. 사라져라.”
카멜레온처럼 자연에 동화되어 있는 저격수.
하지만 빛을 피할 수는 없지.
스르르르.
온몸이 불타오르는 저격수.
고통에 입을 쩍 벌렸지만,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불타 사라진다.
대번에 다섯을 처치하고 나니 뜨는 메시지.
[아수라도에서 강력한 힘을 뽐냅니다.]
[아수라도에서 현재 결과를 토대로 당신의 서열을 측정합니다…….]
[놀라운 힘, 측정이 불가합니다. 현재 등급에서의 최고 등급을 내립니다.]
[1000위권 안에 들었습니다. 당신은 이제 약한 이에게 방해받지 않습니다.]
최고 등급이라고 해도 1000위권 안이냐?
생각보다 짜구먼.
“뭐, 좋아.”
44위까지 오르면 되는 거지?
날 방해하는 놈들을 모조리 없애다 보면, 언젠가 그 서열에 들겠지.
태양의 권능을 해제하고 걸어간다.
초당 10만 SP가 날아가니, 아낄 필요가 있었다.
휘이이잉.
발을 한 걸음 내딛자 몸이 총알처럼 날아갔다.
태양신의 권능을 해제했음에도 영체는 아직 빛이 번쩍번쩍 나고 있는 상태.
그 때문일까.
영체가 평소보다 가볍고, 빠르다.
단숨에 숲 지역을 돌파하고 산악 지대에 들어섰다.
“크르르릉…….”
“대어다.”
“적, 분명 강한 녀석이다. 하지만, 그러니까 잡으면 우린 어마어마하게 강해질 수 있어. 크르르…….”
흙이 뭉개지더니, 여러 큰 개들이 튀어나온다.
사람의 말을 하는 개.
가까이서 보니 개보다는 늑대.
아니, 그보다도 더 큰…… 하마와도 비교할 만한 육중한 몸을 지닌 짐승들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강해 보이는 이들.
붉은 피부에 내 상반신만한 송곳니가 흉악하다.
예전이었다면 상대하기 힘들었겠지.
하지만 지금 나에겐 너무나도 쉽다.
“사라져라.”
한 마디.
한 마디로 충분하다.
그들이 가루가 되기까지.
신언이 아니라 용언도 막지 못했을 짐승들.
미처 비명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사라진다.
“죽여!”
민둥산을 이루는 흙더미에서 무더기로 튀어나오는 짐승 무리.
대체 뭘 믿고 이렇게 무모하게 덤비는 걸까?
단지 한 마디면 충분하다.
“죽어라.”
사아아아.
그 한마디에 모두 소멸하는 괴물들.
이제 이들은 나를 대적할 수준이 아니다.
[아수라도의 수문장, 낭아 무리를 단번에 소멸시켰습니다.]
[아수라도에서 현재 결과를 토대로 당신의 서열을 측정합니다…….]
[독보적인 힘, 측정이 불가합니다. 현재 지역에서의 최고 등급을 내립니다.]
[순위가 300위권 안에 들었습니다. 아수라도의 외곽 지대를 돌파합니다.]
이게 외곽 지역이었나?
이거야 원.
적이 너무 약해서 심심했는데 잘 됐군.
몸이 빛이 되어 날고, 산을 오른다.
“저자, 영혼신이라 들었다…….”
“죽어.”
이상한 놈이 튀어나와 날 가로막지만 그냥 말로 없앤다.
“가, 강하다. 최대한 대비하라. 어떻게든 저 녀석을…….”
“사라져라.”
“으으…… 저자, 우리가 감당할 적이 아니다. 아무리 아수라도의 일원이라 할지라도 후퇴해야 할 때에는…….”
“그러면 입 털지 말지 그랬어. 없어져.”
각양각색의 적이 나오고 팀을 짜 보지만 모두 내 상대는 되지 않는다.
신언 한 마디조차도 견디지 못하는 적들.
서열은 계속 오르지만, 별 감흥이 없었다.
이렇게 쉬웠나……?
지역이 바뀐다.
산 정상.
정상에 발을 밟으니, 가운데에 붉은색 포탈이 생겨난다.
“가 보자.”
포탈에 발을 디디니 풍경이 변화했다.
지금까지는 숲에서 산으로 오르는 과정이었다면, 이제 보이는 것은 절.
수백 명이 동시에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한 절 문이 눈에 들어온다.
스르르르.
문이 저절로 열리고, 누군가가 나온다.
쿵.
그리고 다시 재빨리 닫히는 문.
“영혼신! 죽어라!”
“죽어.”
갑자기 튀어나오는 적에게 가볍게 말했다.
“크으윽……!”
“오호?”
하지만 이번 적은 저번과 달랐다.
내 신언을 견뎌 내는 적.
드디어 말로 죽일 수 없는 적이 나타나는 건가?
“신언으로 죽지 않는군.”
“나도…… 나도 신이니까. 당연하다!”
“오. 그래? 반갑다.”
적어도 하급신 수준일 테니, S급 이상이겠네?
그걸 인지하자 적이 눈에 들어온다.
아수라와 비슷한 괴상한 신체의 신.
머리는 두 개, 팔은 네 개가 달린 채 도깨비처럼 머리에는 뿔이 달렸다.
피부는 시뻘겋고 어금니는 커다랗게 튀어나와있다.
저 모습…….
“너도 삼두육비 스킬이 있는 거냐?”
“큭…… 이건 원래 나의 모습이다!”
“아하. 그러면 나와 싸울 거야?”
“그…… 렇다!”
잔뜩 몸을 움츠리면서도, 고슴도치처럼 앙칼지게 소리치는 하급신.
거참.
“싸우면 백 프로 죽을 걸?”
“크윽…….”
“뭐, 아까 전 적들은 영혼이라도 남겨 놨지만. 신들은 영기발출로 그냥 쓸어버릴 건데.”
“하…… 하지만…….”
“죽느니 그냥 항복하지 그래? 왜 굳이 싸워야 하지?”
“아수라도의 일원은 투쟁을 통해 성장한다. 내 비록 소멸할지라도 위대한 아수라께서 다시 부활시켜 주실 터! 나는 투쟁한다!”
내 질문에 오히려 열을 내며 전의를 돋구는 하급신.
“네 영혼이 사라져도 아수라가 그걸 살릴 수 있다고? 이거 봉인 아니야. 소멸이야.”
“음…… 가능하실 것…… 이다!”
“그래? 그럼 진짜 싸운다?”
“죽어라!”
갑자기 달려드는 하급신.
나름 아수라도에서 잔뼈가 묻었기 때문일까.
그 움직임, 군더더기가 없고 빠르다.
네 손 중 두 손에서는 단검이 총알처럼 날아오고, 창과 장검은 교차하여 나를 찔러 왔다.
하지만 그것도 하급신들에서나 통하는 무예.
태양빛을 지배하는 나에게는 너무나도 느린 속도다.
우드드득!
푹!
“컥……!”
손으로 네 무기를 으깨고, 촉수로 목을 찔렀다.
단번에 제압된 하급신.
휘리리릭!
내 다른 촉수에 의해 몸이 묶인 채, 그대로 나에게 끌려온다.
“전의는 높게 산다만, 상대를 보고 덤벼야지.”
“크윽…….”
“아수라 아저씨. 이놈 죽여야 서열 오르는 건가요? 어디 영기발출로 없애 봅니다?”
영검을 꺼내 하급신의 목에 댄다.
이거 참.
촉수로 묶고 검을 대니, 악당 같구먼그래.
[자네. 너무 강하군. 부탁이니 영기발출은 자제해 주게. 봉인 정도는 괜찮아.]
“그러죠.”
그래도 아수라와는 우호적인 사이.
이 정도 부탁은 들어 줘야지.
영검을 인벤토리에 넣고, 촉수로 적을 파헤친다.
“커…… 컥……!”
“그래도 봉인 풀리면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거다.”
“자비…… 고맙다…….”
영체가 엉망이 되었음에도 나에게 오히려 고마움을 표시하는 하급신.
죽음을 면해서 그런가?
그대로 몸이 희미해지더니, 스르르 사라진다.
그가 사라지자 열리는 문.
무슨 던전도 아니고…….
“다음 상대는 나…….”
“에라이.”
상대도 보아하니 아까의 하급신과 비슷한 수준.
근데 왜 또 이놈을 상대해야 하는 거지?
이거 뭐 차륜전인가?
서열 44위까지 가려면 50명은 쓰러뜨려야 해?
갑자기 귀찮아졌다.
“태양신의 권능.”
빛을 지배했다.
그러자 보이는 적들.
이런 문이 내 앞에 열 개는 더 있고, 그 뒤에 스무 명의 하급신이 배치되어 있다.
이런 귀찮은 것들…….
문을 하나하나 열 필요도 없다.
한 번에 쓸어버린다.
“빛이여. 신을 봉인하라.”
쾅! 쾅! 쾅! 쾅!
연속적으로 들리는 폭발음.
내 눈앞의 전각이 모조리 불타올라 폭발한다.
“이…… 빛…… 무슨…….”
“컥……!”
“이런 공격을 받고 봉인되다니…… 영광이외다.”
문을 지키고 있는 하급신도 모조리 불타 사라졌다.
영기발출을 담지 않았음에도 막강한 힘에 짓눌려 버리는 신들.
그들 하나하나가 봉인되는 장면이 모두 정보로 들어온다.
이것이 태양신의 권능.
하급신을 개미처럼 짓눌려 버릴 수 있는 힘.
진짜 대량 학살에 있어서는 최고의 스킬이다.
“SP 소모도 미쳤지만…….”
하급신 스물을 봉인하고 나니 하나당 5천만의 SP가 사라졌다.
가볍게 날아간 10억.
영기발출을 썼으면 더 좋은 효율로 제압할 수 있었겠지만, 그거 잘못 썼다간 죽일 거 같단 말이야.
아수라와는 우호적인 관계인데…….
SP 좀 소모하고 말지.
스르르르.
붉은빛이 눈앞에 번쩍였다.
“허. 이 무슨 힘이란 말인가.”
내 앞에 나타난 아수라.
세 얼굴 모두 어이없고 황당한 표정이다.
“아무리 영혼신이라고 해도, 신이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존재.”
“혹시라도 아수라도의 도전이 실패할까 봐 걱정했건만.”
“아폴론을 소멸시킨 것은 온전히 그대의 힘이었는가. 너무나도 강력하구나.”
세 얼굴의 입이 순차적으로 말을 꺼낸다.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얼굴.
그의 여섯 팔에는 핏빛으로 빛나는 장도가 들려 있었다.
“그대의 서열은 이미 50위.”
“다른 중급신이 그대에게 패배하기만 해도, 이미 우리의 목적은 달성하겠지.”
“하지만 나도 무신. 그대와 같은 강적과 칼을 나누고 싶다네.”
순차적으로 말하는 세 얼굴.
완전히 싸울 마음 가득이다.
“쉽게 쉽게 가지…….”
“후후. 그렇게 타협하고 살았으면 내가 이 경지까지 오르지 못했겠지.”
여섯 도의 끝이 나를 향한다.
그와 동시에 세상이 여섯 갈래로 베인다.
위는 하늘을 베고.
가운데는 대기를 베고.
아래는 대지를 벤다.
여섯 팔이 이뤄 내는 일격.
세상이 갈라지고, 천지가 뒤집힌다.
강력한 검기. 무의 극한.
일격으로 천지를 파열시키는구나.
하나 천지의 파열은 그가 의도하지 않은 것.
그저 검을 휘둘렀는데, 부수적으로 나타난 효과일 뿐이다.
모든 일격은 나를 노린다.
“소울 배리어.”
영체를 보호하는 황금빛 배리어.
소환하자마자, 순식간에 파인다.
처음에 보이는 것은 여섯 선.
하나 그 선은 무한정 증폭되더니, 배리어에 끝없는 균열을 만들었다.
하지만 균열이 생기자마자 복구되는 소울 배리어.
공격은 무시무시하지만 방어를 뚫지 못했다.
“흐음. 단단하군.”
어느새 아수라의 신형이 눈앞에 섰다.
캉! 캉! 캉!
동일한 위치에 그대로 꽂히는 일격.
일점一點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노린다.
수 백, 수 천 번의 검격.
이를 견디지 못하고 배리어가 순식간에 깨져 나갔다.
[소울 배리어가 부서지기 직전입니다. SP를 소모해 복구합니다.]
그대로 몸을 뒤로 빼고, 영검을 꺼냈다.
이제 제대로 싸워야지.
“영기발출.”
영검에서 발하는 순백의 화염.
영력이 올라서 그럴까.
갈무리된 기세가 강력하다.
좋아. 싸워 볼 만하겠어.
“호오…….”
그걸 본 아수라가 몸을 뒤로 뺐다.
제대로 싸워 보려는 건가?
한데 그의 팔이 갑자기 축 늘어졌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의 손에서 사라지는 육도六刀.
뭐야?
“그만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