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172화>
재정비 (3)
“신전을 짓는다고?”
“그래. 주신을 능멸한 인간들에게, 이적을 선보여야지.”
아르테미스가 손가락을 움직였다.
쿠르르르르.
빛의 장막 너머로, 지반이 올라온다.
“저거…… 대리석?”
땅에서 솟아나온 거대한 대리석.
크기가 무슨 초고층 빌딩만 하다.
“저건 월석의 일종이야. 대리석보다도 더 쓸 만하지.”
월석?
달의 여신이 소환한 거라 그런가.
아무리 봐도 대리석처럼 생겼는데, 다르다니까 뭐 그러려니 한다.
주춤주춤.
하늘까지 닿을 정도로 높게 솟은 월석 기둥에 사람들이 뒤로 물러섰다.
끝도 없이 뻗어 나가는 월석.
[저…… 저거 뭐야?]
[갑자기 땅에서 저런 게 나오다니…….]
흔들. 흔들.
거대한 월석이 흔들거렸다.
아르테미스를 바라보니 장난기 담긴 미소를 지은 채 손을 흔들고 있었다.
[으아아!]
[땅이 울린다!]
[도망가! 저거 움직이고 있어!]
[신벌이다!]
놀라서 피켓도 집어던지고 도망치는 사람들.
그들을 보고 아르테미스가 킥킥거렸다.
“그러니까 뭘 믿고 우리 주신을 욕하래.”
내 생각해서 그런 거야?
어째 표정은 그냥 장난치고 싶어서 그런 거 같다만…….
이런 게 신의 장난 스케일인가?
[저, 전력공사 일대는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꺄아악!]
보도를 진행하려고 하는 기자.
이쪽을 향해 사람들이 몰려와 아수라장이 됐다.
그러며 중계 화면이 꺼지자, 아르테미스가 허공에 네모를 그렸다.
그러자 전력공사 부지의 모습이 TV처럼 드러났다.
TV보다는 카메라 포커스가 더 자유로운 아르테미스의 화면.
그녀는 이 화면으로 주위를 빠르게 둘러보다,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람들의 동요가 심하네. 이거 서로 짓밟다가 사망자가 생길 수도 있겠어.”
“저 거대한 월석이 흔들거리는데, 다들 도망치지 않겠냐?”
“참…… 신에게 팻말 들고 항의할 정도면 어차피 죽음을 각오한 거 아닌가? 월석 좀 흔들렸다고 저렇게 도망쳐서야.”
쯧쯧 혀를 차던 아르테미스.
“그래도 주신의 신전이 생기는 날인데 사람이 죽으면 꺼림칙하겠지?”
“어. 이제 장난 그만 쳐 봐.”
“알았어. 얍.”
손바닥을 펴는 아르테미스.
그러자 월석의 움직임이 멈추고, 빛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어……?]
[몸이. 몸이 움직이지 않아.]
[으아아아. 죽어. 죽는다고!]
빛이 닿는 범위의 사람들은 모두 몸이 굳었다.
머리만 제외하고는.
“이럼 서로 짓밟지는 않을 테고…… 이제 신전을 지어야지.”
“야. 신전 짓는 건 좋은데. 그리스식으로 짓지는 마라.”
“……왜? 올림푸스 신전보다 멋지게 지으면 되지.”
진짜 그리스 신전처럼 지으려고 했나.
미리 눈치채길 잘했군.
“올림푸스랑 주구장창 싸워야 하는데 뭔 그리스식이야. 그냥 다른 양식 생각해 봐.”
“아…… 참. 그리스 양식만 생각했는데 큰일이네.”
“고민할 거 뭐 있어. 주변에 빌딩들 많잖아. 그냥 대강 저런 느낌으로 지어 버려.”
신전이 뭐 별거냐?
빌딩 건물주나 되어 보자.
“참. 낭만이 없네. 빌딩은 하나도 안 예쁘잖아.”
툴툴거리는 아르테미스.
그래도 내 말을 잘 듣기로 해서 그런가, 군말 없이 나의 리퀘스트에 따랐다.
[인간들이여.]
갑자기 화면에서 울려 퍼지는 위엄찬 목소리.
이거 아르테미스 목소리인데?
그녀를 곁눈질하니, 소리를 내지 않은 채 입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신 중의 신 ‘김지호’의 사도신, 아르테미스다.]
[아…… 아르테미스?]
[아르테미스는 올림푸스 소속 아니었어?]
몸이 굳은 와중에도, 입을 열심히 움직이는 사람들.
[그대들이 감히 우리 주신께 내뱉은 모욕을 생각하면 응당 천벌을 내림이 옳으나…….]
하늘에 빛이 뭉쳐서 유형화된다.
화살촉처럼 뭉치는 빛.
그걸 본 사람들의 안색이 새파래진다.
강렬한 기세의 화살을 보고 평정심을 유지할 사람은 많지 않겠지.
[자비로운 주신 김지호 님께서 그대들을 용서하셨노라.]
휘이이잉!
빛의 화살이 하늘에서 일제히 떨어진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떨어지는 화살.
[아아아아악!]
[살려…… 살려 줘요!]
화살이 눈앞에 날아오자 사람들이 비명을 토해 냈다.
하지만 매섭게 날아오는 화살은 사람들의 몸에 박히는가 싶더니, 그대로 그들의 몸에 흡수되어 사라졌다.
그러더니 그들의 이마에 초승달 모양의 은빛 형상을 새겼다.
[으아아악!]
[이마…… 이마가 뜨거워…… ]
[다만! 내 너희를 지켜볼 것이니, 향후에도 이와 같이 신을 능멸한다면 가만히 있지 않으리라.]
위엄찬 음성으로 선언한 아르테미스.
동시에 월석도 빛에 휩싸여 형태가 바뀌어 나간다.
“이건 이렇게 하고, 이렇게 돌리고…….”
흥얼거리면서 손으로 허공을 주물거리는 아르테미스.
찰흙을 빚는 것처럼 단순한 손동작이지만, 이에 의해 생겨난 변화는 굉장했다.
“와. 진짜 빌딩을 만들었네.”
현대의 빌딩과 모습이 흡사한 초고층의 빌딩.
재질이 월석이라 그런가.
커다란 탑 같기도 하다.
아래층은 일자로 뻗어 있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신전 구조.
검 같은 모양인가 싶더니, 맨 위에는 원반처럼 커다랗게 퍼져 있다.
마치 접시를 올려놓은 듯했다.
아니, 자세히 보니 반월 모양.
반달을 찌른 검 모양이다.
“맨 꼭대기는 왜 저래?”
“맨 위에는 네가 살아야지. 주신이 살 공간인데 좁아서야 되겠어?”
“아니, 반월 모양 말이야.”
“아. 내가 지은 건데 그래도 트레이드마크를 새겨야지. 원래 초승달로 할까 하다가 공간 더 마련해 준거야. 고맙게 알아.”
하. 참 고맙다…….
“저거…… 안 떨어지냐?”
“괜찮아. 괜찮아. 월석은 단단하고, 내 힘도 깃들어 있거든.”
소요 사태로 인해 잠시 방송 사고가 났던 TV 화면이 다시 바뀌며, 새로 만들어진 빌딩을 찍는다.
[시청자 여러분들, 보이십니까? 빛이 번쩍하더니 거대한 건축물이 생성되었습니다.]
[이를 만들어 낸 신은 자신을 아르테미스라고 지칭했습니다. 아르테미스는 올림푸스의 12신 중 한 명으로, 순결의 신, 달빛의 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종교계에서 신계에 접촉 중입니다만, 각 신계에서는 이에 대해 사실을 확인해 보겠다는 답변만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조금 전 태양빛이 사라진 상황에 더해서, 올림푸스의 여신마저 등장하자 그들의 본격적인 침공이 시작된 거 아니냐며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아르테미스가 내 사도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다들 사실 확인하기 바쁘겠지.
[지호야. 통신 가능하냐?]
마침 아버지에게 통신이 딱 왔네.
“네. 아버지. 가능하죠.”
[아르테미스가 뭔 말이니?]
“아버지? 미카엘이 네 아버지야? 천국 쪽 진영이었어?”
옆에서 통신을 훔쳐보던 아르테미스가 의아한 얼굴로 반문한다.
하이고…….
두 신에게 사정을 설명해 주자, 납득하는 아버지.
[그렇구나. 하루 만에 많은 일들이 있었군.]
“예. 일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아폴론이 소멸하다니…… 그것은 반갑지만, 제우스가 자꾸 신경이 쓰이는구나. 알았다. 신도들에게 그렇게 알리마.]
그러면서 통신을 끊는 아버지.
아르테미스는 그걸 보며 나에게 물었다.
“지금 지구 상황이 어때? 신들과 관련해서.”
“지금은 대 종교의 시대지. 다들 신도 받으려고 난리야.”
“신들 힘은 어느 정도 회복했고?”
“완전히는 아니지만 회복 중이지. 다들 각성자 모집하고 난리도 아니거든.”
“음…… 그래? 근데 왜…….”
곰곰이 생각하던 아르테미스.
곧 모르겠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한다.
“아니다. 아직 뭐 현 지구 상황은 아는 게 없으니. 영혼신. 난 신전의 내부를 꾸미러 가 볼게. 외부는 잘 꾸몄다지만, 내부 공사는 아무래도 직접 봐야겠어.”
“아, 이상하게 짓지는 마라. 현대식으로 해.”
“일단 내가 알아서 지어 볼게. 마음에 안 들면 갈아엎어.”
“뭐 어떻게 지으려고 그러는데? 아. 잠깐.”
창밖을 나서려는 아르테미스를 붙잡는다.
“왜?”
“내 인간 사도 하나 파견할게.”
“내 센스를 못 믿는 거야?”
“아. 믿어. 믿어. 일단 네 맘대로 지어 보고, 사도랑 조율하면서 내부 공사를 가다듬자. 걔, 그 땅 주인이기도 하거든.”
“하루도 안 걸려서 처리할 수 있는데…… 알았어. 보내 봐.”
입을 삐쭉 내밀던 아르테미스가 휭 하고 사라진다.
녀석에게만 맡기면 내부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까, 강시아도 보내서 좀 안을 살 만하게 만들어야지.
바로 강시아에게 전화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렇게 되었으니, 부탁해.”
[예……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보좌해서 내부 공사를 끝내라는 말씀이시죠?]
“응. 자꾸 자기가 센스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말 듣지 말고 사람 살 수 있게 만들어 줘.”
[예. 아르테미스 님을 보좌해서 만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근데…… 어차피 신께서 머무시는데, 굳이 사람이 사는 공간처럼 만들 필요 있을까요?]
그녀의 대답에 집 안을 둘러보았다.
분명히 넓은 거실에 TV, 소파…….
인간 시절이었을 때에는 좋은 주거 환경이었지만, 케브리안에서 태양빛을 피해 움직일 때를 생각하니 갑자기 좁아 보였다.
“그렇긴 하네. 내가 사는 공간은 넓게 쓰게 해 줘. 그래도 아래층은 명목상 신전인데. 찾아오는 사람들은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알겠습니다. 온 힘을 다해서 잘 꾸며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강시아에게 지시를 내리고, 상태창을 열어 SP 수입을 체크했다.
SS급이 되고, 아폴론과 싸우며 영력도 크게 올랐다.
거기에 대신까지 사도로 얻었으니 영혼 중개의 효율도 올랐겠지.
하루에 이제 얼마나 주려나?
영혼 중개창 쪽을 열어 보니, 어지러이 메시지가 쏟아졌다.
그중 핵심만 추려 보았다.
[영혼 중개를 통한 SP 일일 수익이 5억에 도달합니다.]
[행성 ‘지구’에서의 영혼 중개로 얻을 수 있는 SP가 한계치에 달했습니다. 지구에서 더 이상 영혼 중개를 통해 SP를 얻을 수 없습니다.]
5억…….
어마어마한 수치다.
예전에 S급 때 하루 1억이었으니까, 5배가 는 셈.
하지만 한계치에 도달했다는 내용이 마음에 걸렸다.
수입 내역을 자세히 확인해 보니, 내 의문을 풀어 줄 메시지가 나타났다.
[행성 ‘지구’의 인간은 하루에 0.1SP를 거래하며, 그중 반이 거래의 비효율로 인해 사라집니다. 영혼 중개는 거래의 비효율을 개선하고 사용자가 대신 SP를 얻어 가게 됩니다.]
[각성자의 경우 SP 거래량이 크게 늘어납니다.]
[행성 ‘지구’에서 사용자가 얻는 SP 양은 4억 1232만입니다.]
지구 인구가 80억이면, 그중 일반인은 하루에 0.05 SP 가치.
그럼 여기서 4억이 나오는데, 각성자들은 SP 수치가 일반인에 비해 높으니 그걸 포함해서 4억 1232만이 나오는 것 같았다.
그럼 나머지 수치는 다른 행성에서 얻는 건가?
케브리안의 신들도 중개하고 있으니…….
어쨌든 지금은 5억이 최고군.
이 한계를 더 늘리려면 다른 세계의 신과 영혼 중개를 하던지, 지구의 사람들을 더 각성자로 만들어야겠네.
둘 다 만만해 보이지는 않는군.
“수입을 늘릴 방안은 일단 넘기고…….”
아이템과 스킬을 체크한다.
영검은 아직 SS.
아이기스는 완전히 파괴되어 인벤토리 상에서 액체로 남았다.
이걸 수복해야 아테나와 통신을 연결할 수 있는 건가…….
이건 수리할 방안을 찾아보고…….
“스킬은…….”
새로이 추가된 ‘태양신의 권능’ 스킬.
스킬 등급이 무려 SSS급이다.
[태양신의 권능 LV.1]
[SSS급 스킬]
[세계로 내리쬐는 태양빛을 지배합니다.
태양이 떠 있을 시, 영체가 강화되며 빛을 다룰 수 있습니다.
스킬 레벨이 오를수록 빛에 점차 동화되어 영체가 빛 속성으로 변합니다.
같은 세계의 다른 태양신보다 스킬 레벨이 높을 경우, 행성의 태양빛에 대한 우선권을 지닙니다.]
태양이 뜨면 강해지고, 스킬 레벨이 오르면 결국엔 빛으로 변하는 건가.
스킬 레벨이 지구에서 최고가 되면, 다른 태양신에 비해 태양빛을 먼저 지배할 수 있고…….
이건 연구가 좀 필요하겠네.
그래도 SSS급 스킬.
잘 키워 둬야지.
촉수 하나 생기고 만 아수라도보단 나은 거 같단 말이지…….
[대신 ‘아수라’에게서 통신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허, 타이밍 봐라.
[김지호. 김지호. 있는가?]
“후. 양반은 아니시군요.”
[뭔 소리 하나?]
아수라도 스킬에 대해 생각하자마자 아수라에게서 온 통신.
그는 나에게 다급히 말했다.
[아르테미스. 아르테미스가 대체 왜 나온 건가?]
“아 그거…….”
아버지도 그렇고…….
나와 인연이 있는 신들은 다 통신이 오는 건가?
아수라에게 대강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자, 그가 크게 놀라워한다.
[그러니까 자네가 아르테미스를 사도로 삼고, 아폴론을 제압했단 말이지?]
“네. 마지막은 제우스가 먹어치웠지만.”
[허…… 정말 대단하군. 폴룩스 같은 하급신에게 고전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영혼신은 확실히 일반신과 수준이 다르구나.]
아수라의 세 얼굴, 여섯 눈이 나를 일제히 바라본다.
내 위아래를 천천히 지켜보던 여섯 눈.
시선이 아주 강렬하다.
[자네, 그 정도면 괜찮겠군.]
“무슨 말씀이시죠?”
[자네가 아수라도를 얻을 자격이 된다는 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