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 2개-171화 (171/240)

<내 상태창 2개 - 171화>

재정비 (2)

아폴론 영혼 조각의 봉인…….

태양신의 권능을 깨달을수록 해제되는 건가?

이거 해제되면 어떻게 상황이 변하는 건지 모르겠군.

“다시 원래의 모습을 되찾으세요.”

내가 불을 진화하면 엘프리안이 나서서 자연을 회복시킨다.

지금까지 신들이 치고받고 싸우기만 하고 파괴만 일삼는 꼬락서니만 보다가, 이런 걸 보니 신선하군.

“엘프리안 님. SP가 부족하진 않으세요?”

“부족하죠…… 그래도 제 영역을 살려 내야, 여기서 다시 SP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태양신의 폭주, 정말로 무섭군요…….”

“1억 정도는 지원해 드릴 의향이 있습니다만.”

“엇, 정말요? 주세요, 주세요.”

엘프리안의 은신처로 도망 오는 바람에 이렇게 초토화되었으니, 도의적으로 1억 SP를 지원해 주었다.

그녀가 아폴론의 불을 진화해 달라고 해서 번 게 1억을 훌쩍 넘으니, 이 정도야 뭐…….

“정말 감사합니다, 김지호 님.”

“고마우면 디아나 잘 돌봐 주세요.”

“예. 그렇게 할게요.”

엘프리안과 훈훈하게 헤어진 후, 드디어 헤임달의 귀환을 사용했다.

휘이이잉.

정겨운 내 집이 보이자, 드디어 길고도 길었던 오늘이 끝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휴우우. 시간 자체는 얼마 안 지났는데, 일이 대체 몇 개가 터진 거냐.”

SS급이 되어 기세 좋게 칼바인 행성에 쳐들어갔을 때만 해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는데…….

아폴론한테 걸려서 죽는 게 어떤 건지 뼈저리게 느꼈다.

물론 이번 원정을 얻은 소득이 워낙 막대하긴 하다만, 너무 긴 하루였어.

칼바인 쳐들어갔다가 아폴론한테 도망쳐서 크아이가와 협력하고, 아르테미스를 사도로 얻고……

“아, 그러고 보니. 그놈 살았을까?”

크아이가와 통신이 연결되어 있나 보니, 딱히 나와 연결은 되어 있지 않았다.

흠…….

아르테미스라면 혹시 연결이 되어 있지 않을까?

“아르테미스 소환.”

거실에서 아르테미스를 소환한다.

“…….”

무릎을 감싸 안은 채, 얼굴을 푹 숙이고 쪼그려 앉아 있는 아르테미스.

엄청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군.

뭐, 쌍둥이인 아폴론이 눈앞에서 먹히는 걸 보았으니 오죽하련만…….

“……왜 불렀어?”

“크아이가와 통신이 되나 해서. 그와의 통신이 없네.”

“……크아이가. 그 망할 자식만 없었더라면. 제우스가 날 제물로 바치질 않았더라면…….”

고개를 잠시 드는가 싶더니 다시 또 처박는 아르테미스.

그녀가 앉아 있는 곳 주변이 어두워진다.

무슨 만화도 아니고, 기분 다운되었다고 주위가 어두워지냐?

형광등이 비추는 방 안에서, 그녀가 앉아 있는 곳만 밤 같다.

“나. 너무 쓰레기 아닐까?”

“네가 왜 쓰레긴데.”

“나 혼자 살려고 올림푸스도 배신하고, 결국 아폴론도 죽게 만들고…….”

“뭔 소리야. 배신은 올림푸스, 제우스가 먼저 한 거지. 제우스 놈 인성 못 봤냐? 아들도 잡아먹는 거.”

“아아아! 아폴론! 내가 진짜…… 그때 널 찌르는 게 아니었어! 그러지만 않았어도, 죽지는 않았을 텐데……!”

머리를 쥐어뜯으며 발광하는 아르테미스.

아니, 아폴론 기습 계획에 잘만 협력해 놓고 왜 이런대.

아폴론이 태양화되었을 때, 일식까지 썼으면서 말이야.

막상 죽는 걸 눈앞에서 보니, 트라우마라도 생긴 건가?

“크아이가의 안에서 어떻게든 나오고 싶었지만, 이런 걸 보고 싶지는 않았어. 아폴론을 아버지가 집어삼키다니…… 영혼신. 당신에게도 아폴론의 느낌이 나네. 당신도 집어삼킨 거야?”

“뭐 의도한 건 아니야. 이게 내 능력인걸.”

“두 신 사이에서 완전히 찢겨졌구나. 아폴론…….”

초점 없는 눈으로 난 쓰레기야를 연발하는 아르테미스.

그렇게나 충격이었나?

아폴론과 싸울 때만 해도 늠름하더니, 갑자기 이러니 적응이 안 되네.

“야. 크아이가랑 통신만 연결해 주고, 들어가 쉬어라. 안 되겠다.”

“크아이가…… 그 녀석, 꼴도 보기 싫어. 그쪽에서 알아서 너에게 연락이 오겠지. 난 못 해.”

완강하게 거부하는 아르테미스.

아니, 사도가 이렇게 주신에게 반항해도 되는 거야?

“아르테미스. 제우스한테 복수해야지. 그 녀석을 조지려면 크아이가의 정보가 필요할지도 몰라.”

“제우스…….”

“눈앞에서 아폴론을 잡아먹던 제우스를 생각해 봐. 그 녀석, 흑뢰로 웃음 마크까지 띄웠다니까?”

“제우스……!”

“그래. 복수해야지. 크아이가한테 널 팔아치운 것도 제우스잖아. 이 모든 일의 시초는 바로 녀석이라고.”

그러자 두 눈을 부릅뜨며 위쪽을 노려보는 아르테미스.

하나 곧 힘이 풀린 채, 다시 고개를 처박는다.

“지금은…… 아폴론이 죽은 것만 떠올라. 근본 책임은 제우스에게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크아이가는 정말 꼴도 보기 싫어.”

“하아.”

“영혼신, 미안해. 조금만 시간을 줘. 지금은 도저히 의욕이 없어.”

“조금만? 얼마나?”

“10년……?”

“야.”

“……10년은 너무 심했나. 1년.”

하아. 이 가시나가 미쳤나.

1년 같은 소리 한다, 진짜.

사돈데 확 뭐 강제 명령 같은 거 해 버려?

에휴…… 그래도 쌍둥이 남매가 죽어서 낙심하는데 그러기도 애매하고.

결국 인벤토리에 손이 갔다.

“이거 보이냐?”

아르테미스의 눈앞에 아폴론의 영혼 조각을 흔든다.

유형화된 영혼 조각은 반으로 쪼개진 금빛 태양 형상이었다.

“그거…… 뭐지?”

“아폴론의 영혼 조각이다.”

“이걸 어디서?”

“흡수하다 보니 발견한 거지. 이게 아폴론의 자아를 구성한다고 하더군.”

휙.

아르테미스가 급히 손을 영혼 조각에 뻗는다.

워낙 빨라, 하마터면 빼앗길 뻔했다.

다시 인벤토리에 넣자, 날 붙들고 소리를 지르는 아르테미스.

“왜! 왜 가져가!”

“그럼 그냥 주냐? 이거, 하데스는 100억 SP 주고 사겠다고 한 물건이야.”

“뭐…… 100억?”

“그래.”

“으…….”

100억이라는 수치에 급격하게 약해지는 아르테미스.

하지만 시선은 여전히 영혼 조각에서 떼지 못한다.

“네가 날 성심성의껏 도와서 제우스를 없앤다면, 영혼 조각을 너에게 줄게.”

“정말!?”

“그래. 대신 그동안은 내 명령에 절대적으로 따르는 거야. 굳이 주신으로서 명하지 않아도. 네가 알아서 날 이롭게 하는 거지.”

100억 SP도 좋지만, 대신 아르테미스가 전력으로 협력하는 게 좋아 보인다.

사도에게 강제로 명을 내릴 수도 있다지만, 그래도 자의로 하는 것과 명령받아서 하는 건 차이가 있겠지.

이러고도 영 말 안 들으면, 그냥 하데스에게 팔아 버리면 되니까.

내 제안에 바로 수긍하는 아르테미스.

“……알겠어. 영혼신. 제우스는 우리 쌍둥이의 원수이기도 하니, 내 모든 힘을 바쳐서 협력하겠어.”

“그래. 좋은 자세다.”

“크아이가에게 연락 바로 해 볼게.”

바로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아르테미스.

효과가 직방이구먼.

통신 화면이 뜬다.

화면에서 보이는 것은 촉수 하나.

어둠으로 이루어진 소용돌이나 보석은 온데간데없고, 촉수 하나만 미약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영혼신. 잘도 두꺼운 낯짝으로 통신을 연결하는구나.]

“오, 살았네?”

[그래. 아폴론에게서 완전히 소멸될 뻔했지. 진짜 네놈…….]

촉수를 비비 꼬는 크아이가.

이가 있었으면 이를 으드득 갈았을 모습이다.

“야. 근데 내가 거기서 싸웠으면 오히려 네 본거지가 다 타 버렸을 거야. 내가 빠져 준 덕분에 그 녀석이 나한테 왔고, 그래서 너도 산 거라고.”

[무슨 소리. 내 본거지는 네놈이 가고 난 후 1분도 안 되어서 불타올랐지. 겨우 촉수 하나 남겨서 재생 중이다…….]

그래서 촉수 하나 남았구나.

자식이 뭐 자기 영역에 들어왔으니 제압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 하더니…….

[아폴론은 어떻게 되었지?]

“뭐, 보시다시피.”

내가 손가락으로 내 머리를 가리키자, 빛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후광이 비치듯이 번쩍이는 빛.

그걸 본 크아이가가 경악한다.

[아니, 그 거…… 아폴론의 힘 아니냐?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어떻게 되긴. 치열한 사투 끝에 내가 이겨서 녀석의 권능을 집어삼킨 거지.”

[도무지 믿을 수가 없군. 그때의 아폴론은 너무나도 강력한 존재였는데…….]

촉수를 설레설레 흔들던 크아이가.

[그런 아폴론을 제압하다니, 역시 영혼신인가…… 그의 힘을 모두 집어삼킨 건가?]

“아니. 제우스가 먹어 치웠어. 아들인데도 가차 없더라.”

[제우스가……? 흠. 명분이 없으면 안 될 텐데.]

내가 아폴론과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니, 촉수를 흔드는 크아이가.

[아스가르드 동맹 조약을 핑계로 아폴론을 집어삼켰구나. 역시 제우스…… 잔꾀에 능해. 페널티에서 벗어남은 물론 성가신 아들까지 먹어 치웠군.]

“아폴론이 성가시다고? 그 녀석 자신의 모든 걸 불태워서 싸울 정도로 충신 아니야?”

[그건 그렇지…… 하지만 우리가 그와 접촉했을 때, 그는 올림푸스의 신들이 필요치 않은 것처럼 보였다…… 아르테미스, 너는 아는 것이 없는가?]

“음…….”

골똘히 생각에 잠긴 아르테미스.

하나 곧 고개를 흔든다.

“나는 모르겠어. 헤라가 뭘 추진하려고 했던 것 같긴 한데…… 듣기 전에 네놈한테 먹혀 버렸지.”

[후후후. 쓸모가 없구나…….]

“이 자식이…….”

[그럼 그건 넘어가고…… 제우스가 토르에게 했던 말이 걸리는군. 내가 좀 알아보겠다.]

아스가르드가 사라지면 동맹도 자동으로 해지되는 게 아니냐던 제우스.

녀석이 그냥 빈말로 그런 이야기를 할 것 같지는 않았다.

뭔가 노림수가 있겠지.

“뭐 짚이는 거라도 있어?”

[으음…… 좀 조사하고 알려 주지. 그럼 가 보겠다.]

그러더니 통신을 끊어 버리는 크아이가.

뭐야 이 자식.

의문만 남기고 사라지네.

뭐, 녀석의 생존을 확인하고, 통신망을 연결했다는 데 의의를 가져야겠군.

“영혼신. 근데 여기는 어딘가? 은신처인가?”

통신 화면이 꺼지자 주위를 둘러보는 아르테미스.

아까는 절망에 빠져 있더니, 이제 주위가 눈에 들어오나 보다.

“좁디좁군. 그런데다가 땅 위에 있다니? 은신처라기에는 너무 맞지 않는 공간이다.”

“여기 내 집인데.”

“집……?”

경악한 눈으로 날 바라보는 아르테미스.

“이런 감옥 같은 공간이 집이란 말이야? 영혼신…… 신이라는 자각은 있는 거야?”

아니, 여기가 얼마나 비싼 아파트인데.

던전 때문에 싸게 산거지.

“진심으로 네 사도의 정원이 백배 낫다. 내 주신이 이런 데에 살다니…… 이게 무슨 수치냐?”

“아니, 잘 살고 있는데 왜 네가 난리야.”

“네가 거느린 신이 얼만데 이런 데서 살아? 사도신 입장에서 보면 펄쩍 뛰며 난리를 쳐야 할 상황이다.”

거 참 마누라도 아니고 떽떽거리긴.

대신 아르테미스의 스케일에 맞으려면 얼마나 커다란 집이 필요한 거야?

그렇게 커봤자 별 필요도 없구먼.

예전 지구에서는 큰 집에 살았지만, 딱히 지금 이 아파트에서 사는 거랑 별다를 게 없었지.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로 하며, TV를 켰다.

[전력공사 부지를 둘러싼 논란이 격화되는 모양새입니다.]

어…… 저거 내 신전 짓겠다는 부지잖아.

하필 켜자마자 저게 나와?

“왜 내 말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TV를 켜는 거야?”

“너 TV가 뭔지는 아냐?”

“나도 21세기까지 산 대신이거든?”

나를 흘겨보던 아르테미스.

TV화면을 보더니 대번에 표정이 굳는다.

“신 김지호가 무슨 말이냐? 당장 신전 건설을 중단하라……? 너 이름이 김지호…… 맞지?”

“어. 맞아.”

TV에서 팻말 들고 시위중인 종교인 단체들.

어째 저번보다 숫자가 더 늘었네.

“저걸 왜 두고 봐?”

“다른 일 하느라 바빴거든. 저 사람들이랑 실랑이할 필요 있냐?”

“그럼 부하를 시켜서 밀어 버리던가, 쫓아내야지. 신의 격이 떨어지잖아.”

“뭘. 민주사회에서 그런 짓을 하냐.”

“하아…… 신이 무슨 민주사회 타령이야. 아직 인간 물이 안 빠졌네.”

날 보고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아르테미스.

그러더니 TV 화면으로 손을 뻗는다.

그녀의 손에서 퍼져 나가기 시작하는 은은한 빛.

“야. 뭐 해. 너 설마 저 사람들 다 죽이게?”

“아니, 날 뭘로 보고 하는 소리야?”

TV화면에서 열성적으로 데모를 해 나가는 시위자들.

그들의 머리 위로 은은한 은색의 빛이 내리쬔다.

마치 커튼처럼 내려오는 빛무리.

[아…… 아니…… 갑자기 이상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하늘에서 빛…… 빛이……! 사람들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빛이 파도처럼 움직여 사람들을 밀어낸다.

그걸 본 기자가 놀라 주저앉는다.

카메라는 곧 기자를 담지 않고, 부지 쪽을 향해 렌즈를 돌렸다.

완연히 빛에 잠긴 전력공사 부지.

“뭐 하려고?”

“내가 지어 줄게. 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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