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 2개-170화 (170/240)

<내 상태창 2개 - 170화>

재정비 (1)

“아버지……?”

아폴론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반문했다.

아폴론과 생사를 두고 대적한 내가 봐도 너무한 처사다.

대신 직위까지 내던지고 날 죽이려던 아폴론 아니었던가.

적으로는 징글징글한 놈이었지만, 제우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충신인데…….

제우스는 아폴론의 절망에 답하지 않았다.

[아테나. 나오거라.]

“……예. 제우스이시여.”

그러자 허공에서 스르르 나타나는 여인.

투구를 쓰고 긴 창을 쥔 채 전신에 갑주를 입은 아테나.

전쟁의 여신에 걸맞은 무장이다.

워낙 갑옷으로 둘둘 싸서 얼굴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얼굴만으로도 좌중을 압도한다.

차가운 모습에 위압감이 넘치는 기세지만, 미모가 워낙 눈에 들어온다.

올림푸스의 여신들은 다들 이렇게 미인이네.

아테나는 냉미녀의 표본이군.

[아폴론을 내 눈앞에서 직접 처형하거라.]

“알겠습니다.”

즉답하는 아테나.

그녀의 창에 새하얀 기운이 맺힌다.

“아…… 안 돼!”

아르테미스가 그 모습을 보고 소리쳤지만, 아테나는 시선조차 돌리질 않았다.

푹!

“커…… 헉…….”

화르르르.

창에 꽂힌 아폴론의 몸이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새하얀 불꽃이 그의 가슴팍에서 시작해, 단번에 전신을 휘감는다.

“정말…… 나를…….”

지지지직.

불꽃에 잠긴 아폴론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기 시작하는 흑뢰.

모양은 번개인데, 마치 구더기가 야금야금 시체를 파먹는 것처럼 혐오스럽게 보였다.

“제우스!”

그 모습을 본 아르테미스가 격분하며 뛰어들려고 한다.

하아…….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그렇다고 아무 대책 없이 뛰어가게 둘 수는 없지.

상대는 제우스잖아.

“아르테미스, 역소환.”

사도의 정원으로 보낸다.

그녀가 역소환되기 전 나를 돌아보며 원망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어쩌겠나.

혼자 간다고 해결이 되겠어?

이미 아폴론은 야금야금 먹힌 상태.

그의 얼굴과 사지가 모두 갉히고, 몸통만이 남았다.

아테나의 창이 꽂힌 중심부만.

[아테나. 창을 빼라.]

“알겠습니다.”

쑤욱.

창이 빠지자마자 다시 행동을 개시하는 흑뢰.

아폴론은 고함을 지를 머리와 입마저 사라진 채, 그렇게 소멸했다.

파아아앗!

아폴론이 사라진 자리에서 거대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구름이 흩어지고, 빛마저 튕겨 나간다.

“진짜 소멸했는가…….”

내 앞을 가로막는 토르.

충격파를 대신해서 막아 준다.

이 아저씨, 나름 보디가드 역할에 충실하네.

별 한 점 없는 밤처럼 어두워지는 하늘.

이 자리에 대신들만 포진하고 있는 게 아니었으면, 충격파에 다 튕겨 나갔겠지.

아폴론이 사라진 자리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메시지가 떴다.

[막대한 양의 SP가 방출됩니다.]

[영혼 약탈이 발동됩니다…….]

[특정한 힘에 의해 영혼 약탈이 가로막힙니다. 스킬 효율이 크게 줄어듭니다.]

특정한 힘?

아폴론을 집어삼킨 흑뢰가 모여 아래가 튀어나온 반원을 그린다.

그 모습, 묘하게 웃는 얼굴을 닮았다.

저 흑뢰에 의해 SP 흡수를 할 수 없는 건가.

검은 번개가 마치 입처럼 꾸물거리며 움직인다.

[토르. 어떤가. 이 정도면…… 죄인에 대한 처벌로 합당하겠지?]

“하아. 미친 새끼…… 네 아들 아니었냐? 그는 네 후계자 후보였을 텐데.”

[내 아들은 셀 수 없이 많다. 또 만들면 될 뿐.]

이 자식.

진짜 쓰레기네?

아테나가 제우스의 말에 눈썹을 살짝 움직였지만, 표정에는 동요가 없었다.

[하지만 아폴론을 집어삼켜 보니…… 참 중요한 순간에 방해했군. 네놈이 나오지 않았으면, 영혼신을 없앨 수 있었는데. 참으로 성가셔. 아스가르드.]

“왜. 우린 동맹이지 않냐? 영원한 동맹.”

[영원이라…… 후후후. 아스가르드가 존재하고 있을 때만 동맹이지. 아스가르드가 사라진다면, 결국 동맹도 자동으로 해지되지 않겠는가?]

“뭐라고……?”

[더 이상은 추후의 즐거움으로 남겨 두마. 그럼, 모두 다음에 보도록 하지. 나는 아들 녀석을 소화시킬 테니까. 하하하하!]

검은 번개가 사라진다.

아들을 소화시킨다는 섬뜩한 이야기만 한 채.

“하. 저놈 완전 사이코네. 아들 희생시키곤 오히려 좋아하잖아. 안 그래, 아테나?”

토르의 말에 고개를 흔드는 아테나.

“대답하고 싶지 않군요.”

그녀는 창을 우리 쪽을 향해 가볍게 휘둘렀다.

적의는 없어 보이는 동작.

바람이 크게 불었지만, 딱히 막아야 할 수준의 공격은 아니라 토르도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바람은 다시 몰려드는 빛을 한 번 더 뒤로 물린 후, 멎었다.

“그럼 저도 가보겠습니다. 다음에는 전장에서 만나도록 하지요.”

“그래. 올림푸스의 방패, 부수는 재미가 있겠지.”

“그러려면 실력을 더 키우는 게 좋을 겁니다. 토르. 그 정도로는…… 훗.”

아테나가 한쪽 입꼬리를 슬쩍 올린 채 사라졌다.

사라진 아테나를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는 토르.

“와. 지금 나 비웃은 거 맞지?”

“그렇죠.”

“하. 다음엔 묠니르로 참교육을 시켜 줘야겠어.”

분한 듯 망치를 휭휭 휘두르는 토르.

이 아저씨, 말보다 손이 먼저 나가는 타입이구먼.

근데 둘의 대화를 들으니 의문이 들었다.

“근데 어차피 올림푸스랑 아스가르드, 동맹이라서 못 싸우는 거 아닙니까?”

“어, 그러게?”

“근데 왜 아테나는 저렇게 말했을까요. 제우스도 그렇고. 아스가르드가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했잖아요.”

“흠…….”

내 말에 의문이 들었는지 잠시 생각하던 토르.

곧 어깨를 으쓱한다.

“머리 쓰는 건 내 전문이 아니야. 로키한테 물어봐야겠다.”

“예. 그러시죠…….”

“그건 그렇고, 너 엄청 강해졌네? 아, 그거 때문인가? 네 영혼 중개가 그렇게 효과가 좋다며. 나도 좀 어떻게 더 안 되냐?”

“미리 보호해 주셨으면 기쁜 마음에 중개를 해 드렸을 텐데…… 제 몸뚱어리를 보시죠.”

빛과 영체가 반씩 짬뽕된 내 몸뚱이.

촉수부터 시작해서 점점 인간에서 멀어지는 기분이다.

하지만, 다시 보니 빛이었던 몸 쪽이 서서히 영체 형태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그걸 보고 나에게 말하는 토르.

“슬슬 원래 영체를 찾고 있구먼, 뭘 엄살이야. 내가 다음엔 일찍 일찍 올게. 아까 아폴론 놈한테 동맹 조약 위배될 만큼 데미지를 입어서 타격이 크다고. 영혼신 양반. 한 번 중개 좀 해 주시지?”

거 참 덩치 큰 양반이 엄살을 부리시네.

그래도 토르 아니었으면 힘들었을 테니…….

뭐 한 자리쯤 줄까?

상태창을 열어 SP를 확인한다.

응?

“왜 소처럼 두 눈을 껌뻑껌뻑하냐?”

“아, 잠시만요.”

SP가 미친 속도로 오르고 있었다.

아까 5천만에서 간신히 넘어간 것이, 지금은 5억.

현재 진행형으로 숫자가 계속해서 올라간다.

뭐지 이거.

아폴론의 것은 제우스가 다 먹어 치운 게 아니었나?

휘이이잉.

등 뒤로 바람이 불어온다.

그와 함께 나에게 밀려오는 빛.

이 바람…… 아테나가 창을 휘둘러 일으키던 것과 닮았다.

[아폴론의 정수, 제 창에 담아 놓았습니다. 흡수하세요.]

바람과 함께 들려오는 아테나의 목소리.

오오. 언제 이런 걸 또 해 주셨대.

[아이기스는 다시 재생하도록 하세요. 당신과 저의 통신 연결이 필요합니다. 이제 곧 제우스가 진정으로 움직일 겁니다. 그의 1차 목표는 아스가르드입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끊기자, 바람도 멎어 든다.

어느덧 밝아진 공간.

빛이 나에게로 모여들었다.

내 왼쪽 영체에 주로 흡수되던 빛.

우측의 영체에도 모여들기 시작한다.

“아니, 제우스가 싹 다 쓸어 간 줄 알았는데…… 창조신이라도 모든 걸 집어삼키긴 불가능한가 보군.”

“뭐, 그런가 봅니다.”

토르에게 아테나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정확한 정보를 알기 전까지는 보류하기로 했다.

그럼 아테나가 나와 통신을 한다는 사실까지 알려야 할 테니까.

“자네는 좋겠네.”

“아주 기분 좋습니다. 기분도 좋은데 영혼 중개 자리 하나 드리지요.”

“아 정말? 고맙네. 자. 아폴론의 흔적 다 먹어 치우시게나. 하하하하.”

껄껄거리면서 자리를 비켜 주는 토르.

[영혼 약탈 스킬 레벨이 오릅니다.]

하도 SP를 흡수하다 보니, 스킬 레벨까지 오른다.

[태양의 권능에 좀 더 친숙해집니다.]

[아폴론의 여러 권능이 사용자의 영체에 잠재됩니다.]

SP만 흡수하는 게 아니라 이런 보너스까지 있었다.

태양의 권능.

아직 감이 잘 오진 않지만, 연구를 좀 해 봐야겠지.

희희낙락해 있는 나에게,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메시지 창이 나타났다.

[아폴론의 영혼 조각이 흡수됩니다. 자아를 구성하는 영혼 조각입니다. 아테나의 창에 의해 봉인 상태입니다.]

아폴론의 자아……?

뭐,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나?

아테나는 언제 이런 걸 봉인해서 넘겨줬대.

이건 뭐…….

애매하네.

나랑 생사대적이었던 아폴론의 자아가 딱히 필요한가 싶은데.

아르테미스가 부탁할 때는 그래도 대신이었던 아폴론이니 사도로 받을 만 했는데, 이건 뭐…….

아무것도 없어 보인단 말이지.

“일단 가지고 있을까.”

인벤토리에 추가된 아폴론의 영혼 조각.

일단은 뭐 버리기도 애매하니, 인벤토리 구석에 보관해 두었다.

“다 끝났는가?”

내가 다 흡수할 때까지 옆에서 지켜보던 토르.

퍼져 나간 빛이 모두 나에게 흡수되자 나에게 묻는다.

“네. 이제는 돌아가도 될 것 같군요.”

“그래. 그럼 내 먼저 가보지.”

나에게 손을 흔들며 사라지는 토르.

뭐, 늦게 오긴 했지만 그래도 덕분에 살았네.

그를 보내고 나도 돌아가려고 하는 차에…….

“김지호 님.”

아래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엘프리안이 지친 얼굴로 날아오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요? 디아나를 정령계에 보내고 돌아온 참이었는데…… 제 영역이 완전히 초토화되었네요.”

“아. 어쩐지 안 보이시더라니.”

아폴론이랑 일전을 벌인 이야기를 하자, 이를 경청하던 엘프리안.

하나 대답은 엉뚱한 곳에서 나왔다.

“킬킬…… 어쩐지. 뭐 저렇게 강한 태양인가 했더니…… 아폴론이 자폭한 거였군요.”

“하데스? 뭐야, 알고 있었어?”

“예. 태양빛은 아무래도 저희와 상성이 안 맞아서 말이죠. 대신 올림푸스에 소식이 안 가게 통신 차단이나 하고 있었습니다. 킬킬.”

섬뜩한 미소를 짓는 하데스.

나를 쑤욱 훑어보더니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상당히 강해지셨군요. 거기에 태양의 힘이라니…… 다가가기만 해도 타오르겠습니다. 킬킬.”

“그래. 오지 마.”

“킬킬. 저랑 좋은 거래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면서 왜 그러실까. 어쨌든 제 용무는 다름이 아니라…….”

주위를 둘러보던 하데스.

나에게 쓱 다가와 은밀한 목소리로 묻는다.

“아폴론의 힘을 흡수하신 것 같습니다만…… 혹시 그의 영혼 조각도 얻으셨습니까?”

영혼 조각?

이놈이 그걸 어떻게 알지?

일단은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영혼 조각? 모르겠는데.”

“흐흠…….”

나를 쓰윽 바라보던 하데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뒤로 몸을 물러선다.

“뭐, 모르시겠다면 어쩔 수 없지요. 하지만 혹시라도 그걸 얻게 되신다면…… 저에게 팔아 주시지요. SP 상점에 올리셔도 되고요.”

“그래. 얼마에?”

“100억.”

“100억이나?”

100억이란 수치에 깜짝 놀랐다.

영혼 조각이 그 정도로 가치가 있어?

“예. 그 정도면 윈-윈 거래가 될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킬킬…… 생각 있으시면, SP 상점에 올려 주시길…….”

킬킬거리며 사라지는 하데스.

엘프리안은 그가 사라진 자리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대신을 언데드 권속으로 만든다고 하더니, 아폴론의 영혼 조각을 이용해서 뭔 수를 꾸미는 모양이에요.”

“아폴론은 힘을 다 잃은 상태인데 그게 가능할까요?”

“그러게요. 저도 방법은 모르지만…… 저보고 빚 갚을 여력 있냐고 자꾸 묻고, 여유 있다고 하면 실망했거든요. 저도 SP 없었으면 영혼 조각으로 만들어 버렸겠죠…… 대신의 영혼 조각이 재료로 쓰이나 봐요.”

흠.

그래서 100억 주고 사려는 건가?

100억 SP면 참 많은 일을 할 수 있는데…….

뭐, 지금 당장은 아폴론의 SP를 흡수했으니, 줄 필요가 없지.

파는 건 생각 좀 해 봐야겠어.

“엘프리안 님.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후우우. 어쩔 수 없지요. 그래도 소득은 있어서 다행이네요. 올림푸스의 상징적 존재이던 아폴론이 소멸했으니…….”

그렇게 말하는 거 치고는 표정이 완전 썩어 있는데?

아폴론이 다 부순 거기는 하지만, 엘프리안의 은신처로 튀었다가 다 파괴된 거니 얼굴 보기가 좀 미안하군.

빨리 집에 가자.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맙네요. 그럼 저는 지구로 돌아가 정비를 좀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래도 불 좀 꺼주세요. 태양신의 힘이 깃든 거라 제가 불 끄려니 너무 힘이 많이 들어요.”

귀환하려는 나의 팔을 붙잡는 엘프리안.

그 제안까지 거절할 수 없어, 다시 대지로 내려왔다.

하늘 아래 대지는 완전히 초토화된 상태.

땅은 완전히 시커멓게 그을려 있고, 바다는 메말라 있다.

케브리안의 모든 바다가 다 증발한 것은 아니라 다른 쪽에서 물이 밀려 오고는 있지만, 해수면은 딱 봐도 엄청나게 낮아진 상태.

지구에서 만약 아폴론과 싸웠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저기, 저 불이 정말 안 없어지네요.”

엘프리안의 지시에 따라 불을 진화한다.

태양신의 권능을 얻어서 그런가, 불 가까이 다가갈 때마다 알아서 나에게 흡수된다.

그때마다 SP가 상승하고, 태양신의 힘을 조금씩 깨우쳤다.

이거, 나름 전리품 수거하는 느낌이네.

처음에는 엘프리안에게 억지로 이끌려 진화 작업에 나섰지만, 이젠 내가 신나서 케브리안 전역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불이 어느 정도 진화되자, 색다른 메시지 창이 떴다.

[‘아폴론의 영혼조각’의 봉인이 10% 해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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