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166화>
태양을 쏘다 (2)
“아폴론이 밖에 와 있다고?”
그놈은 대체 언제 왔대.
[온 지는 좀 되었다. 하지만 내가 포탈 문을 안 열어 주었지. 만약에 영혼신 그대가 나를 공격했다면, 아폴론에게 문을 열어 줬겠지.]
그 말에 등골이 서늘했다.
괜히 여신을 구하겠다고 싸움을 벌였으면 아폴론과 크아이가의 합공을 맞이했겠네.
영혼 중개로 튈 수도 있었겠지만, 두 대신의 합공이 펼쳐지면 또 어찌될지 몰랐겠지.
내 영체를 융합한 건 올바른 선택이었네.
“아폴론이……? 아폴론을 죽일 건가, 영혼신?”
아르테미스가 애처로운 얼굴로 물어본다.
나에게 호소하는 듯한 모습.
쌍둥이 남매라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겠지.
하지만 지금 올림푸스의 대신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이를 놓칠 순 없지.
“어. 오늘 태양신을 잡는다. 아르테미스, 너도 도와다오.”
“……권유를 한다면 따를 수 없다. 차라리 사도신으로서 명령을 해 다오.”
“알겠다. 사도 아르테미스여. 아폴론을 죽이는 데 있어서 전력을 다해 협력해라.”
내 명령에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아르테미스.
사도가 되면 주신에게 거역할 수가 없는 건가.
이거 아주 쓸 만하군.
[준비가 끝나면 말하게. 바로 들여보낼 테니.]
크아이가의 제안에 남은 SP를 점검했다.
10억 정도 남은 SP.
이 양으로는 충분치 않아 보이는데…….
오늘은 일단 후퇴해야 하나.
하지만 지금처럼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치기는 아쉬운 노릇.
사도들한테 SP를 좀 수거해야 하나?
“사도의 정원.”
사도의 정원창을 열어 봤다.
SS급에 오르면서 정원이 5000명으로 늘어난 사도의 정원.
대신 아르테미스 한 명을 받으니 자리가 100명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대신은 대신인가 보네.
하급신은 10명분을 차지했는데…… 쩝.
“응?”
[SSS급 신을 사도로 임명했습니다.]
[대신을 사도로 임명했습니다. 차후 4명의 대신을 더 사도로 받을 경우, 사도의 정원을 ‘신계’로 승급 가능합니다.]
사도의 정원창을 열자 새로이 뜨는 메시지.
신계 창설이라니…….
중급신인데 스케일이 어마어마하게 커졌군.
사도 아르테미스의 상태창을 보았다.
화려한 면면의 능력치.
나처럼 영력이 있는 게 아니라 힘, 민첩, 마력부터 시작해서 듣도 보도 못한 스탯이 여러 개가 있었다.
그중 SP 수치에 눈이 들어왔다.
“SP 100억……?”
“갇혀 있는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까. 꽤 많이 모였어.”
[내가 좀 빼돌렸는데도 그 정도라니…… 역시 올림푸스의 대신. 세계를 회귀시키며 많이도 모았군.]
100억이나 되는 수치를 보니 경각심이 생겼다.
갇혀 있던 아르테미스가 이 정도면, 아폴론은 얼마나 모은 거야?
“아폴론은 SP를 얼마나 모았을까?”
[그는 태양신이자 광명의 신, 의술, 음악, 이성 등 관장하는 분야가 어마어마하게 많은 신이다. 아르테미스보다 많으면 많았지 절대 적을 수가 없지.
“맞아. SP 수치로만 따지면, 아폴론은 올림푸스 12주신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있을 거야.”
100억 이상의 SP라면 힘든데…….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사도창을 보고 있자니, SP 회수가 눈에 들어왔다.
아르테미스한테도 되려나?
SP 회수를 눌러 보았다.
[SP 회수를 하시겠습니까?]
[사도 아르테미스가 사용자에 비해 등급이 높습니다. SP를 10%만 회수할 수 있습니다.]
오호.
10%면 10억.
내 지금 전 재산과 똑같군.
“아르테미스. 네 SP 좀 쓰겠다.”
“뭣……? 자, 잠깐!”
반박은 듣지 않고 SP 회수를 진행한다.
[대신 ‘아르테미스’의 SP를 총 10억 회수했습니다.]
[등급이 높은 신에게 SP를 회수했습니다. 향후 1달간 SP를 회수할 수 없습니다.]
[막대한 양의 SP를 회수했습니다. SP가 사용자에게 들어오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영혼신 SS등급입니다. 바로 회수됩니다.]
1달 동안은 회수를 못 한다고?
뭐, 지금은 당장이 중요하지.
거기에 막대한 양이라 회수가 늦어지나 걱정했더니, 다행히 아니었다.
좋아. 그럼 다른 사도들에게도 싹 다 걷어 볼까.
[다들 뇌령의 기둥 파괴 중인가요?]
[예. 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흠. 아폴론이 지상은 무시하고 하늘 위에서 계속 대기하나 보군요. 지금 저는 아폴론과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SP가 필요하니, SP 회수를 좀 하겠습니다. 나중에 갚도록 하지요.]
[아, 갚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주신이시여. 저희의 것은 모두 주신의 것입니다.]
흔쾌히 그러라고 하는 사도신들.
나보다 아래 등급인 사도들에게는 50%까지 SP를 걷을 수 있었다.
일단 비상사태니 닥치는 대로 SP를 긁어모으니 여기서도 10억이 보충되었다.
그래도 30억…….
부족한 느낌이 드네.
“10억이 이렇게…….”
허탈한 표정의 아르테미스.
크아이가가 옆에서 비웃었다.
[주신에게 모든 걸 바치는 게 사도의 책무 아니었던가? 기쁘게 받아들여라.]
아르테미스는 크아이가를 무섭게 노려보다가, 곧 나를 쳐다보았다.
[등급 차이가 나서 SP 회수가 10%로 제한된다는데, 당신은 중급신인가?]
크아이가에게 안들리게 메시지로 보내는 건가?
내가 긍정하자 그녀는 놀라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중급신인데 이런 힘이라니…… 놀랍다. 하지만 아폴론을 상대하기는 힘들 것 같은데…….]
그녀는 그리 메시지를 보내더니, 크아이가에게 질문했다.
“네 계획은 뭔데?”
[협력할 마음이 들었나?]
“나는 사도…… 주신께 거역할 수는 없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계획이면 싸우지 말고 후퇴를 권할 것이다. 아폴론은 강한 상대다.”
[그는 물론 강하지. 하지만 이곳은 나의 영역. 그를 유인하여 기습한다면 승산이 있다. 그리고 힘이 부족해 죽일 수는 없다고 해도, 퇴로는 마련해 뒀지. 여기서 그에게 손해를 입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며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는 크아이가.
우리는 그의 계획에 따라 준비에 착수했다.
***
“아르테미스…….”
새하얀빛으로 번쩍이는 아폴론.
그는 공중정원의 포탈 앞에서 표정을 잔뜩 찡그린 채 대기하고 있었다.
‘영혼신의 기운이 여기서 끊겼다. 크아이가와 전투 중인가? 이놈…… 문을 열어 주지 않다니.’
아폴론은 시커멓게 물들어 있는 포탈 중심부를 노려보았다.
크아이가.
아르테미스를 지배하고 있는 거짓된 신.
그 힘은 대신에 필적하며 기기묘묘한 힘을 쓸 수 있어, 일반적인 적이라면 질까 봐 걱정이 안 되겠지만…….
‘불안한 느낌이 든다.’
아폴론은 영혼신과의 전투를 떠올려 보았다.
얼마 전만 해도 그저 인간에 불과했는데, 무섭게도 강해진 신.
이번에 만난 그는 한 차례 더 업그레이드되어서, 대신급과도 자웅을 겨룰 만큼 강해져 있었다.
‘이번에 꼭 그를 잡아 없애야 한다. 성장 속도가 너무 빨라. 아테나에게 말을 했으니, 곧 원군이 오겠지. 빠져나가진 못할 터.’
제우스는 일이 많아 통신을 못 받으니, 그의 최측근인 아테나에게 보고를 올린 아폴론.
칼바인 지상에는 잡신들이 뇌령의 기둥을 제압하고 있는 걸 알았지만, 무시했다.
‘영혼신만 잡으면 된다.’
최대한 힘을 끌어올리며 만반의 준비를 갖춘 아폴론.
그런 그에게, 갑자기 다급한 음성이 들려온다.
[아폴론…… 큭. 도와다오! 영혼신이 너무 강하다……!]
“하. 잡것……!”
그렇게 고전할 거면 진작 문을 열었어야지.
포탈의 검은 부분이 사라지고, 다시 붉은빛의 포탈로 돌아오자 아폴론은 그 안으로 들어섰다.
칠흑같이 어두운 공간.
두 군데만이 빛나고 있었다.
아폴론이 발하는 광명의 빛과, 영혼신이 들고 있는 빛의 검이 내뿜는 빛이.
위이이잉.
빛의 검이 어지러이 흩날렸다.
영혼신을 포위한 촉수가 모조리 베여 불타고, 어둠에 잠긴 아르테미스의 몸에 백색 금이 갔다.
어둠이 타오르며, 조금씩 드러나는 아르테미스의 영체.
“이놈!”
영혼신을 향해 빠르게 다가가던 아폴론.
아르테미스의 영체를 보자 잠시 주저했다.
‘어쩌면…… 아르테미스가 해방되는가……?’
조금만 늦는다면.
빛의 검에 어둠이 모두 걷힌다면…….
아르테미스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잠시 주저하는 아폴론을 향해, 크아이가가 괴성을 질렀다.
[아폴론! 뭘 구경하나! 아르테미스가 풀리길 기다리는 건가? 멍청하긴! 그녀는 퀘스트 보상으로 영혼신의 사도가 된다고 했다. 그녀를 그의 사도신으로 보낼 것이냐?]
“큭…….”
[제우스가 영혼신을 멸한다면 사도신인 그녀는 무사하겠느냐? 평소처럼 제우스가 그녀를 구해 주기를 기다려라. 잔머리 굴리지 말고!]
으드드득.
건방진 언사에 이를 가는 아폴론.
그가 분노하자 그의 몸에서 빛이 쏟아져 나왔다.
화르르르르.
모조리 타오르는 촉수.
어둠의 영역은 어느새 대낮처럼 밝아져 있었다.
[이놈. 뭐 하는 짓이냐!]
“네놈의 무례, 추후 따지도록 하지.”
타오르는 촉수를 쓰레기 보듯 쳐다보던 아폴론.
그의 영체가 완전히 빛이 되어, 영혼신에게 날아갔다.
“소울 배리어.”
아폴론을 힐끗 바라보던 영혼신.
배리어는 쓰나, 크아이가에게 공격은 멈추지 않는다.
눈앞 빈사 상태의 적부터 치겠다는 의지.
빛의 검이 어둠을 불살라 버렸다.
화르르르.
아르테미스의 얼굴이 드러났다.
얼마 만에 본 얼굴인가.
누구보다도 서로를 의지했던 쌍둥이 신.
그 얼굴을 보니 반가움이 앞서나, 그녀가 영혼신의 사도가 되면 끝이라는 생각에 아폴론의 행동이 다급해졌다.
“멈춰라!”
아폴론은 다급한 마음에 영체 상태로 그대로 충돌했다.
모든 전력을 다한 상태.
스킬을 사용하지 않아 SP 효율은 떨어지지만 지금은 한시가 급했다.
쾅!
“큭……!”
몸이 급속도로 튕겨져 나가는 영혼신.
아폴론의 빛 때문에 불타오르고 있는 촉수 더미 쪽으로 훨훨 날아간다.
[내가 촉수로 녀석을 잡겠다. 그 망할 빛 좀 줄여라!]
“네깟 놈의 촉수가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후후…… 그 빛. 사실 내가 견딜 수가 없다. 네놈 때문에 아르테미스가 해방되면 우리의 계약을 위배하는 셈이 되지. 그런 결과를 낳고 싶지 않다면 얼른 없애!]
“하…… 아버지는 왜 이런 약자들과 거래를…….”
약해질 대로 약해진 어둠.
아르테미스의 몸은 반 이상 드러나 있었다.
무표정이지만, 어딘가 애처로워 보이는 아르테미스의 표정.
그걸 본 아폴론이 갈등했다.
‘조금만 이대로 있다면…… 아르테미스가 해방될 텐데.’
광명의 힘을 한 번 더 발휘하면 어둠이 완전히 걷힐 텐데.
아폴론은 잠시 이대로 있을까 충동이 들었지만, 결국 빛의 힘을 줄였다.
그의 몸에서 발하는 광명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좋아…… 촉수가 다시 재생하는군…….]
영혼신이 튕겨 나간 자리에 다시 생겨난 촉수들.
수십 개의 촉수가 영혼신을 묶어 아폴론이 있는 곳으로 끌고 오고 있었다.
“흠. 아까 공격 정도로 쓰러질 놈은 아닌데.”
[그는 나와 혼신을 다한 사투를 벌였지. 녀석도 남은 힘이 얼마 없었을 것이다. 강한 상대였어…….]
촉수에 둘둘 묶인 영혼신.
촉수 사이로 보이는 얼굴은 정신을 잃은 듯 보였다.
“일단 봉인을 시키고 아버지한테 끌고 가야겠군.”
[후후. 그냥 나에게 주는 것이 어떻겠는가? 나에게 영혼신을 넘겨주면 아르테미스를 풀어 주도록 하지.]
“그럴 순 없다. 영혼신의 생사여탈권은 아버지의 소관. 연행하겠다.”
아르테미스가 소중하다고 해도 영혼신의 생포는 제우스가 직접 언급할 정도로 중요한 것.
아폴론은 일거에 그 제안을 일축한 채, 영혼신에게 다가갔다.
‘이대로 당할 녀석이 아닌데…….’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영혼신을 살폈다.
그리고 그가 지척에 다다르자…….
촉수 사이에서, 빛의 검이 날아왔다.
검처럼 생긴 촉수에 묶인 채 날아오는 영검.
“역시! 제압당하지 않았구나!”
불꽃의 방패를 소환하여 검격을 막는 아폴론.
치지지지직.
두 무기 사이에 새하얀 불꽃이 튀긴다.
하나 부딪침은 잠시.
방패에 완전히 금이 가며, 우열은 쉽게 가려졌다.
“크…… 아직 강하군. 크아이가. 힘을 다시 끌어내겠다!”
아폴론의 몸에서 다시 광채가 돌아왔다.
그러며 그의 오른손에 새로이 생성되는 빛의 방패.
그것이 빛의 검을 가로막으려 할 때…….
휘리리릭.
“큭?”
영혼신을 묶고 있는 촉수가 아폴론에게 뻗었다.
팔, 다리, 몸통 할 것 없이 일제히 쏘아 오는 촉수.
어둠이 빛을 견디며 아폴론을 묶었다.
“무슨 짓이냐……?”
“미안해. 아폴론. 나는…… 거역할 수 없어.”
푸슉.
당황하는 아폴론의 가슴을 뚫고 나오는 새하얀 손.
투명할 정도로 흰 손이 아폴론의 눈에 들어왔다.
이 손…….
이 목소리…….
그가 익히 알고 있는 것.
“아르테미스……?”
[잘해 주었다.]
그가 말을 잇기도 전에, 방패를 쥔 손이 촉수에 이끌려 내려갔다.
텅 빈 앞.
빛의 검이 아무런 저항 없이, 아폴론을 그대로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