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165화>
태양을 쏘다 (1)
“그게 무슨 소리인가?”
[영혼신.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군…….]
아르테미스의 표정은 살짝이지만 화색이 감돌았다.
반면 크아이가는 언짢은 기색.
아무래도 둘의 조건을 따져 보면, 크아이가 쪽을 택할 확률이 높았으니까 그런가 보군.
“크아이가. 네 쪽은 결국 대신의 영체 조각이 필요한 거잖아.”
[그렇다. 그것도 일반 대신이 아니라, 이성이 사라진 순백의 영체 조각이 필요하지.]
“그런 거라면 나도 줄 수 있는데 말이야.”
[아니…… 어떻게? 아, 영혼신이라 가능한 건가?]
“그래. 흠. 아르테미스 팔뚝 좀 꺼내 봐 봐. 영체 조각 좀 채취해 보게.”
그러자 어둠으로 덮여 있던 아르테미스의 오른팔이 드러났다.
새하얗지만 나름 근육이 도드라진 팔뚝.
[이 정도면 되는가?]
“그래. 그럼 영체를 채취한다. 아르테미스도 동의하지?”
“어…… 알겠다.”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르테미스.
주인의 동의도 얻었으니 영검을 팔에 가져다 댄다.
“영기발출을 조절하고…….”
검기가 식칼 정도의 크기로 미세하게 작아졌다.
난 아르테미스의 팔뚝 영체를 짚고, 이를 미세하게 잘라 나갔다.
지지지직.
“으으…….”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고 있는 아르테미스.
하지만 입술을 점차 강하게 깨무는 걸 보면, 아프긴 아픈가 보다.
영기발출 출력을 약하게 하긴 했지만, 그래도 통증이 있나 보군.
[후후. 이 정도에도 벌써 통증을 느낀다니. 영혼신.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고문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 금방 끝날 거 같은데.]
“거참. 기다려 봐.”
지지지직.
계속해서 영검에 조금씩 잘려 나가는 아르테미스의 영체.
출력을 약하게 해서 그런지, 대신의 영체라 그런지 금방은 안 잘리는군.
툭.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칼질을 하니, 결국 영체의 일부가 분리된다.
팔뚝 살, 그것도 일부의 아주 미세한 양의 영체.
“이 정도면 재생 가능하겠지. 아르테미스?”
“으…… 그렇다. 그 정도라면.”
“그래. 그럼…… 영혼 융합.”
영혼 융합창을 연다.
주에는 아르테미스의 영체 조각을 넣고, 제물에는…….
“분신 소환.”
내 분신을 소환한다.
제물용이기 때문에 굳이 나의 형태를 갖출 필요도 없이 구형 형태로 생성한다.
[호오…….]
“읏…… 지금 뭐하는 거지? 내 영체와 그대의 영체를 합치는 건가?”
“어. 그럼 괜찮은 녀석이 튀어나올걸?”
얼굴이 시뻘게진 채 당황하는 아르테미스.
왜 저래?
아르테미스는 그냥 놔두고 융합을 시작했다.
[영혼 융합 중입니다…….]
영혼 융합창이 빛나기 시작했다.
결과물이 나오기 전, 순수한 영체 조각이 나오기를 마음속으로 원한다.
융합시 나, 영혼신의 의지가 깃들여 있으면, 그런 쪽으로 결과물이 나올 확률이 높아질 거다.
SS급에 오른 이후, 나는 이를 본능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나의 의도가 결실을 맺어, 결과물은 흡족하게 나왔다.
[SSS급 신의 영체 조각이 생성되었습니다.]
[영혼신의 영체 조각과 함께 융합되었습니다. 영체 조각의 크기와 순도가 증가합니다.]
융합 성공했군.
성공한 영체 조각은 투명한 유리구슬 같았다.
아르테미스의 흰 영체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
그걸 보고 크아이가가 흥분했다.
[오오…… 그 영체……! 좋구나. 좋아……!]
완전히 흥분하는 크아이가.
반면 아르테미스는 핼쑥한 얼굴로 나에게 물어 왔다.
“잠깐. 그걸 정말 저 신에게 줄 셈이야?”
“어. 당연하지.”
“아니, 그래도 내 영체와 네 영체가 혼합된 건데…… 그걸 어떻게 줄 수가 있지?”
“응? 뭐 어때. 너도 재생 가능할 정도의 영체라며. 나도 마찬가지거든.”
“영체와 영체를 합쳤으니, 우리의 자식 같은 존재잖아!?”
아니, 이걸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지……?
기상천외한 상상력에 말문을 잃었다.
“……너 미쳤냐? 저거 네 팔뚝 살이었어.”
“그건 네가 인간의 관점으로 봐서 그렇지! 영체는 그 부위가 어떻든 간에 신의 정보를 담고 있다고! 두 영체가 융합한 거면 우리의 후계자를 얻은 거나 마찬가지야!”
[후후후. 저건 그저 영체 조각일 뿐이다. 아르테미스. 헛소리는 그만하고 네 목숨 줄이나 걱정해라. 처녀신이 상상하는 것 하고는…….]
크아이가가 바로 반박한다.
하지만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드니까, 확실히 살펴보자.
“영혼 분해.”
영혼 분해를 사용해서 영체 조각을 살펴봤다.
나와 아르테미스의 영체 정보가 들어가 있는지 면밀히 찾아보았지만 그런 건 없었다.
순수한 영체 조각이 나오기를 원했기 때문일까?
이들 거짓된 신들이 원하는 건 결국 자신의 영체를 치환하기 위한 텅 빈 대신의 영체.
이건 넘겨줘도 되겠군.
“이건 너와 나의 정보가 없는 순수한 영체야. 그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음…… 그래도…….”
“그리고, 넘겨주지 않으면 어쩔 건데. 여기서 죽을 거야?”
“……그건 아니다.”
결국 납득하는 아르테미스.
그래. 자기 목숨이 제일 소중하지.
크아이가는 이를 비웃었다.
[대신 죽을 것도 아니면서 발칙한 상상을 하긴…… 영혼신. 그 조각을 줄 수 있겠는가?]
“이 조각 양으론 네 목적을 달성하기 터무니없이 부족한 건 알고 있지?”
[그래. 그대도 그걸 알고, 체험용으로 만든 거 아닌가? 나보고 실감을 해 보라고.]
“빨리 알아채니 좋군.”
[소용돌이 속으로 영체 조각을 던져 달라.]
크아이가의 소용돌이에 영체 조각을 던졌다.
영체를 단번에 집어삼킨 소용돌이.
초록빛의 보석이 번쩍번쩍 거린다.
[오오오. 이것…… 정말 효과가 있구나……!]
미친 듯이 돌아가기 시작하는 소용돌이.
보석도 하도 번쩍번쩍거리니 마치 클럽 천장의 미러볼인가 싶었다.
“미안하다…….”
그 모습을 이를 악물며 쳐다보는 아르테미스.
아니, 이 여자는 내가 아니라고 했는데도 뭐 저리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냐.
누가 보면 자식 팔아먹은 줄 알겠네.
위이이잉.
그렇게 번쩍번쩍 거리기를 10분.
소용돌이의 회전이 점차 느려졌다.
그러더니…….
[드디어, 하나를 구현했다!]
지직. 지직.
어둠의 소용돌이 중 한 가닥이 변하기 시작했다.
살구색 빛의 고깃덩이가 갑자기 나오더니, 서서히 스스로 모습이 변해 가며 길게 뻗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 자리에 생긴 것은 촉수.
문어 다리 같은 느낌에 빨판까지 생겨난다.
“으…… 또 촉수냐?”
[이렇게 만들어진 걸 어찌하겠나. 우릴 고안해 낸 인간은 바다를, 해산물을 싫어했던 것 같군.]
촉수 하나를 기쁜 듯이 흔들면서 대꾸하는 크아이가.
이놈 생각한 인간은 대체 어떤 놈이야? 나중에 지구 가면 검색 좀 해 봐야겠네.
하. 이젠 무슨 인간이 만든 신화까지 알아봐야 하냐.
[영혼신이여. 우리에게 이런 영체 조각을 공급해 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 드림랜드의 신들이 그대를 돕도록 하겠다.]
“드림랜드?”
“저들 거짓된 신들의 신계라고 보면 된다.”
흠.
올림푸스 같은 건가.
하지만 크아이가만 신으로 재구성하는 게 퀘스트 내용이었는데.
그레이트 올드 원과의 동맹도 퀘스트 보상으로 나와 있으니, 굳이 영체를 공급할 필요가 있나?
“내가 받은 퀘스트는 너만 신으로 만들면 되는데. 그레이트 올드 원과의 동맹도 퀘스트 보상이었고.”
[후후. 지금 상황에서 제대로 된 그레이트 올드 원은 나밖에 없다. 나머지는 모두 드림랜드에서 힘을 모두 사용하고 봉인된 상태…… 제대로 된 전력을 얻고 싶다면 영체를 공급해 다오.]
“뭐야. 사기 친 거냐? 동맹 맺는 걸 보상처럼 내놓았는데 쓸모가 없잖아?”
[어차피 아르테미스의 영체를 분해하면 내가 먹을 거 밖에 나오지 않았으니까. 거짓은 아니지. 나밖에 없으니 쓸모가 없냐고 물어본 거라면…….]
촉수를 꿈틀거리며 동그라미를 만드는 크아이가.
아오, 이 새끼가 진짜.
알고 보니 개털이었어?
아르테미스도 어이없는 표정을 짓다가, 나에게 말했다.
“영혼신…… 힘도 없이 사기만 치는 저런 놈들을 믿을 거냐? 그냥 저놈 베어 버리고 날 해방시켜 줘라. 내가 성심성의껏 그대를 돕겠다.”
[후후…… 힘도 없다니. 제우스의 ‘천지개벽’ 작전을 시행한 게 우리다. 지구의 모든 신들을 일시적으로 가사상태에 만들고, 올림푸스 측이 이들을 봉인했지…….]
수많은 신계의 신들이 일시에 봉인되었던 사건.
그걸 ‘드림랜드’ 측에서 한 건가?
아르테미스도 이에 대해선 부정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지구의 모든 신들을 일시적으로 멈추게 할 정도면 드림랜드의 신들도 SP 다 털렸을 텐데, 그런 애들 도와준다고 쓸모가 있겠냐?”
[후후…… 신의 영체를 얻게 된다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제우스가 벌일 일을 생각하면 말이지.]
소용돌이 앞의 허공으로 촉수가 뻗는다.
그러자 커다란 화면이 뜨며, 무언가를 비춘다.
“뇌령의 기둥인가?”
[영혼신이여. 칼바인 행성을 기습한 일은 칭찬할 만 하다. 제우스의 SP 공급을 크게 차단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계획은 진행될 것이다.]
화면상에 일곱 개의 뇌령의 기둥이 눈에 들어온다.
하나 색이 좀 독특했다.
그냥 흰빛이 아니라 무지갯빛으로 일렁이고 있었는데, 딱 봐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제우스는 지구의 신계를 침공하려고 한다.]
“신계에 쳐들어간다고? 지구에도 번개를 일주일마다 쏴 대는데, 거기에 또 일을 벌일 여력이 있을까?”
[그는 EX등급에 오른 신이다. 그의 저력을 경시하지 마라. 영혼신.]
어느 신계를 침공할지는 모르지만, 이제 얼마 안 있어서 대대적인 침공을 개시할 거라는 크아이가.
그는 촉수로 무지갯빛 번개를 툭툭 친다.
[이 번개가 침공 때 커다란 변수가 될 거다. 우리 거짓된 신의 권능도 들어간 것 같으니.]
“신들을 가사상태로 만들었던?”
[그래. 거짓된 신이어서 가능했던 이적이지만, 제우스도 EX등급에 올랐으니 흉내 낼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든 가공해서 사용하겠지. 하지만 이 힘, 우리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러니 자신들 드림랜드의 신들의 힘을 회복시키고 동맹을 맺자는 크아이가.
참, 진정한 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몸이 완전히 달았구먼.
“일단 너와의 퀘스트부터 클리어하고, 다음 일은 다음에 생각하자. 영혼 융합도 하루에 무한정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흠…… 그러한 이적, 쉽사리 이룰 수는 없는 거겠지. 알겠다…….]
영체 조각 가치가 그렇게 뛰어난 건지, 순순히 수긍하는 크아이가.
[그럼 영체 조각을 일단 나에게 공급하겠다는 계약을 맺도록 하자. 그럼 아르테미스를 풀어 주도록 하지.]
“그래. 일단 매일 한 개씩은 만들어 보마.”
[매일 한 개씩이면…… 회복엔 일 년 정도 걸리겠군. 혹시 가능하다면 더 빠르게 부탁한다.]
“알겠어.”
그렇게 크아이가와 영체 조각을 공급하기로 계약을 맺자, 아르테미스를 풀어 줬다.
나신이 완연히 드러난 아르테미스.
새하얀 몸이 눈부시다.
키는 160정도 될까. 그다지 크지 않으며 소녀처럼 여리여리한 몸이지만 그 속에 근육이 꽤 탄탄하다.
복근도 있네.
몸이 글래머러스한 굴곡은 별로 없고, 굳이 따지자면 일자형 몸매다.
흠. 흠.
얼굴도 그렇고 몸매도 그렇고, 뭔가 미성년자, 중고딩 느낌이 나는군.
“뭘 보느냐!?”
아르테미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몸을 툭툭 치니, 새하얀 원피스가 생겨나 그녀의 몸을 가렸다.
[후후. 사도가 되었으면 주신께 복종해야지…… 불경하기 이를 데가 없구나.]
“크으…… 아직 아니다.”
아르테미스가 아직은 아니라며 부정을 할 때, 갑자기 퀘스트 완료창이 뜨기 시작했다.
[아르테미스를 해방하셨습니다.]
[특별 퀘스트를 클리어 하였습니다.]
[대신 아르테미스가 영혼신 김지호의 사도로 들어옵니다.]
아르테미스도 메시지를 확인한 걸까.
침울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어 온다.
“……이제는 사도신 맞군. 다시 벗어?”
“아니, 됐어. 볼 것도 없구먼.”
난 글래머 몸매가 좋으니 됐어.
손사래를 치자 안도한 표정을 짓는 아르테미스.
[후후. 내가 음탕한 광경을 많이 보여 줬는데 아직도 그깟 알몸 하나 따위에 부끄러워하다니. 애구나.]
“닥쳐라. 괴물아. 내 지금까지 받았던 치욕, 여기서 갚아 주지.”
아르테미스가 활을 소환하여 크아이가를 겨눴다.
지금까지 갇혀서 온갖 치욕적인 꼴을 봤으니 그 심정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단독 행동을 해서는 안 되지.
“멈춰. 아르테미스. 그와도 협력해야 할 게 많으니. 원한은 모든 일이 끝난 후에 둘이서 풀어.”
“큭…… 알겠다.”
순순히 활을 내려놓는 아르테미스.
그래도 사도라고 내 말은 통하네.
[영혼신. 내 좋은 제안이 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크아이가.
음습하고 교활한 음성으로 말문을 연다.
[지금 밖에 아폴론이 와 있다…… 쌍둥이 남매를 걱정해서인가? 꽤 오랜 시간 대기하고 있었지. 이번 기회에 그를 소멸시키는 게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