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164화>
거짓된 신의 공중정원 (3)
[특별 퀘스트]
[난이도 ?]
[거짓된 신 ‘크아이가’를 진정한 신으로 재구성하라.]
[한 인간이 만든 신화 속의 신, ‘크아이가’는 진정한 신으로 발돋움하고 싶어 합니다. 그는 제우스를 지금껏 도와 왔지만, 제우스가 EX등급에 오른 후 계약을 이행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자 그를 더 이상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들은 영혼신인 당신에게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제의를 수락할 경우, ‘그레이트 올드 원’은 영혼신과 동맹을 체결하게 될 것이며, 제우스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얻게 됩니다.]
퀘스트 보상 - 그레이트 올드 원과의 동맹. 제우스에 관한 정보.
“그레이트 올드 원?”
[나와 같은 신화에 속한 신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하나하나 대신 급이지.]
소용돌이 안의 보석이 번쩍거리자, 내 앞에 창이 떴다.
각종 괴물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문어 괴물, 도마뱀 괴물, 개구리 괴물의 모습 등등…….
어떤 녀석들은 압도적으로 거대하고, 어떤 녀석들은 그냥 인간 크기 정도.
크기는 각양각색이지만, 다들 하나하나 생긴 게 다 역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이 그레이트 원인가?”
[그렇다.]
“지금은 뭐 하고 있는데?”
[그건 네가 우리의 제의를 받아들일 때 이야기해 주지.]
“흠. 제안 자체에는 관심이 있다만…… 내가 뭔 수단으로 너희를 진정한 신으로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군.”
[그대에겐 그 검이 있지 않는가.]
손가락으로 나의 영검을 가리키는 크아이가.
소용돌이가 더욱 빠르게 회전했다.
[나의 어둠조차도 베었던 ‘그 검’. 그 검이라면 아르테미스의 영체를 완전히 망가뜨릴 수 있어.]
소용돌이가 보석과 함께 위로 부유했다.
그러자 소용돌이가 있던 자리에 머리가 나타났다.
두 눈을 감고 있는 여인의 얼굴.
검은 머리를 위로 땋아 올렸으며, 피부는 투명해 보일 정도로 희다.
성숙한 여인이라기보다는 십대 소녀처럼 어린 외모였지만, 그 미모는 눈이 번쩍 뜨일 정도.
그녀의 이마에는 초승달 모양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누군지 짐작이 가는군…….
[아르테미스의 영체를 그 검으로 베어라. 단번에 베지는 말고. 천천히 망가뜨려라.]
크아이가가 나에게 권유한다.
[그대가 베면, 내가 재생할지니. 처음은 눈을 파괴하자. 그러면 그녀도 통증을 못 이기고 깨어날 수밖에 없을 거다. 그리고 자신을 벤 상대가 영혼신인 것을 알면, 절망에 빠지겠지.]
담담하게 섬뜩한 내용을 말하는 크아이가.
초록빛 보석이 번쩍거리는 게 뭔가…… 신나 보였다.
[아르테미스가 그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사실, 알고 있다. 유일한 희망이나 다름없던 영혼신이 칼로 자신의 얼굴을 베면, 볼만하겠구나. 개인적으로 예측해 보지. 콧대 높은 처녀신은 그래도 당황하지 않은 척, 의연한 척을 할 것이다.]
말문이 빨라지는 크아이가.
보석의 빛이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그때 그대의 그 검으로 그녀의 날카로운 콧대를 뭉개버리는 것도 좋겠지. 외모에 대한 자존심이 대단한 여신이다. 얼굴을 하나하나 망가뜨리면서, 거울로 그 모습을 보여 주도록 하자. 육체와는 달리 영체를 손상시키면, 그녀도 정신적으로 타격을 입겠지.]
그러면서 그녀의 절규를 들으면 좋고, 아니면 또 다른 데를 괴롭히면 된다고 하면서 낮은 톤으로 웃는 크아이가.
저음이지만 너무나도 즐거워하는 크아이가.
그 웃음에 정원 위에 님프 시체들이 갑자기 떠올랐다.
각양각색의 신체 조각을 정원 중앙에 전시해 놓은 모습이.
[아. 더 좋은 생각이 났다. 처녀신의 처녀를 그대가 빼앗아라. 그녀의 육체는 부하를 시켜 많이 굴려 놓았지만, 영체는 아직도 금남의 영역. 마지막 희망인 줄 알았던 그대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나면, 확실히 절망하겠군.]
신난 어조로 말을 이어 가는 크아이가.
온갖 고문 이야기가 나오는데 듣다 보니 역해서 그냥 자동 필터링되는 수준이다.
이런 게 악신惡神인가?
생각해 보면 지금껏 만났던 신들은 완연한 악이라는 게 없었지…….
이들은 순수하게 악행을 즐거워하는군.
나는 그에게 물었다.
“왜 직접 하지 않고 나한테 요구하는 거지?”
[후후. ‘우리’는 그녀의 영체에 직접적으로 손을 대지 않겠다고 서약했지. 때문에 그럴 수는 없는 노릇. 거기에 아르테미스는 영체에 스스로 강한 방어를 쳐 놓고 제물이 된지라, 일반적인 대신도 타격을 입힐 수가 없다. 하지만 그 검은 가능할 것 같군…….]
그러며 나에게로 한 발 다가오는 아르테미스의 영체.
머리만 여신의 얼굴이고, 육체는 그림자 몸이니 머리만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다.
선택을 해야 할 때인가.
아르테미스의 퀘스트를 떠올려 본다.
‘아르테미스를 해방하라.’는 퀘스트.
방법론에 대해서는 딱히 나오지 않았지만, 여기 있는 크아이가를 소멸시키면 해방되는 거겠지.
그럼 대신 아르테미스를 사도로 얻을 수 있다.
크아이가를 힐끗 바라봤다.
확실히 대신급 힘이 느껴진다.
한 인간이 만든 신화 속의 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강력한 모습.
무슨 수단을 썼는지 모르지만, 지금 내 눈앞의 크아이가는 확실히 SSS급이다.
거기에 이 공간은 그의 영역.
전투를 치른다면 쉽지 않을 거다.
아까의 아폴론보다는 약해 보이지만, 그도 또 어떤 스킬을 사용해서 강력해질지 모르지.
거기에 이놈이 튀기라도 하면 아르테미스 퀘스트는 언제 깰지 요원해진다.
그에 반해 크아이가의 퀘스트.
심플하다.
이미 붙잡힌 아르테미스를 고문하다가 그에게 넘겨주면 되는 퀘스트.
아르테미스는 도망갈 염려도 없고, 그냥 붙잡힌 걸 영검으로 공격하면 된다.
하는 짓은 완전히 악당 짓거리기는 하지만, 보상이 달콤하다.
그레이트 올드 원이라는 대신 집단과의 동맹.
거기에 제우스에 대한 정보까지.
이들이 알고 있는 제우스의 정보는 분명 꽤 가치가 높을 거다.
이들이 중요했기에, 제우스도 딸 아르테미스를 팔아먹은 거겠지.
효율은 크아이가와 협력하는 쪽이 단연 앞선다.
“영기발출.”
위이이잉.
영검이 불타오른다.
이를 천천히 아르테미스의 얼굴 쪽으로 가져다 댄다.
이제 여기서 눈을 찌르고, 깨어난 아르테미스의 절규를 들으며 각종 고문을 시행하는 건가?
나로서는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악행이다.
크아이가의 제안을 모두 따르면, 내가 행할 것은 고문뿐만이 아니겠지.
처녀신을 완전히 바닥으로 추락시키며, 그녀의 파멸을 즐거워하며 악신과 협조한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영혼신이여. 주저하는구나. 그러지 말라. 어차피 그대와 올림푸스는 적. 특히 제우스는 그대를 집중적으로 노리지 않는가. 아르테미스는 그의 자식. 그대에게 어떤 보상을 약속했을지 모르겠지만, 제우스의 딸을 믿을 수 있겠는가?]
내가 주저하자 요사스럽게 말을 시작하는 크아이가.
[인간 시절의 도덕과 규범에 얽매어 있는가? 그대는 영혼신이다. 우리와 같은 일반 신과는 궤가 다른 위대한 신. 그대는 이제 더 많은 우주를 경영하고 행성을 지배해야 할 운명이다. 겨우 이런 여신 하나 베는 것쯤, 그에 비하면 쉬운 일이지. 우리 ‘그레이트 올드 원’들이 협력하겠다.]
위대한 신을 강조하면서 내 결단을 촉구하는 크아이가.
내 검이 거의 다 닿는 상태에서 행동을 하지 않자 마음이 급해진 모습이다.
[그렇게 양심에 걸리는가? 아르테미스도 선한 신은 아니다. 자신의 시종 칼리스토가 제우스에게 겁탈당했음에도, 처녀가 아니라고 내쫓았지. 자신을 따르는 님프들의 순결함을 강조하면서도, 제우스에게 강간을 당하면 님프를 비난하고 벌을 내렸지.]
그녀의 결과론적인 순결의 강조에 의해 피해받은 케이스를 나열하는 크아이가.
그 목소리는 뱀처럼 교활하고 점점 나를 설득시킨다.
어차피 적 제우스의 딸.
올림푸스의 주구는 벨수록 좋다.
양심에 걸린다고?
그녀는 위선자.
그녀를 따르던 님프들은 피해자임에도 그녀에게 비난받고 퇴출당했지.
버림받은 님프는 질투에 들끓는 헤라에게 처벌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짐승으로 변하게 되었다.
아르테미스의 이야기를 시처럼 낭송하는 크아이가.
그 울림이 묘하게 사람을 현혹시켰다.
나의 등급이 한 등급만 낮았더라도, 바로 현혹되어서 아르테미스의 목을 영검으로 지졌겠지.
하지만 지금, SS등급인 나는 그 음성에 현혹되지 않는다.
단지 무엇이 나에게 유리한지를 저울질할 뿐.
“아니다.”
그때 아르테미스의 눈이 번쩍 뜨였다.
검은 머리칼에 어울리는 검은빛 눈망울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껏 봉인되어 있었음에도 나약함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강인한 눈빛.
사냥의 신이기도 해서 그런가? 전사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네놈, 얌전히 들어줄 수가 없군.”
그와 함께 빛이 일렁이는 초승달 문신.
아르테미스의 악행을 계속해서 읊는 소용돌이 안의 보석, 크아이가가 화들짝 놀란다.
[호오. 무슨 일인가. 이렇게 행차하시고?]
“네놈이 가당치도 않은 말로 나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을 더 이상 들어 줄 수가 없구나.”
자신의 머리 위의 소용돌이를 매섭게 노려보는 아르테미스.
소용돌이가 빙빙 돌며 비웃음을 흘린다.
[후후. 처녀신 아르테미스의 명예는 이미 저 밑까지 떨어졌다. 훼손될 게 뭐 있다고 그러는가?]
“나의 육체에 관한 세간의 추문 따위, 내가 영체를 회복하면 다시 되돌아갈 것이다. 칼리스토는 별자리의 배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추방했던 것. 그가 이야기했던 사실과는 전혀 다르다.”
크아이가의 말에 반박하는 아르테미스.
꽤 필사적인 모습이다.
지금까지는 스스로를 봉인했지만, 이제는 가만히 있다가 죽을 거 같으니 나온 건가?
“영혼신이여. 그대야말로 잘 생각해 봐라. 거짓된 신은 태생부터가 허구. 만들어진 존재다. 거기에 극악무도한 본성을 갖추고 있지. 그들이 과연 목적을 이루고도 그대에게 순순히 협조하겠는가?”
[우리 그레이트 올드 원은 언약을 지킨다.]
“헛소리. 그렇다면 제우스와 척을 질 제안을 지금 왜 하는가? 계약을 이행해야지?”
[그것은 제우스가 먼저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다.]
소용돌이와 머리만 남은 아르테미스가 언쟁을 시작했다.
둘 다 다 일리가 있는 말을 해서, 쉽사리 결정하기가 힘들군.
일단 아르테미스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널 해방시키면, 나의 사도신이 된다고 했나?”
“그렇다. 영혼신.”
고개를 팍 쳐들며 거만하게 얼굴을 끄덕이는 아르테미스의 머리.
목숨이 위험한 상황인데 자존심이 강한 건지, 뻗대고 있다.
“하지만 난 네 아버지인 제우스와 싸울 건데. 딸인 너를 어떻게 믿지?”
“후…… 아버지라…… 날 팔아넘기고, 창조주가 되고도 못 본 체하는 아버지를 말하는가? 나도 그에게는 원한이 있다. 제우스를 정벌하는 일이라면, 그대에게 더욱 성심을 다해 협력하겠다.”
그녀에게서 그런 다짐을 듣고, 이번엔 크아이가에게 묻는다.
“내가 아르테미스를 베면, 너와 네 무리들이 어떻게 대신이 되는 거지?”
[그건 베면 말해 주겠다.]
“아니, 그것부터 들어야겠다. 베야 말해 주겠다고 한 게 너무 많아서 믿음이 안가. 거기에 이건 핵심적인 사안이니 꼭 들어야겠다.”
[흠…….]
말하기를 꺼리는 크아이가.
아르테미스가 거 보라는 듯이 머리를 치켜들었다.
“보아라. 대답을 못하지 않느냐? 저 악신들이 진실로 영혼신에게 협력할 거 같으냐? 그에 반해 나는 사도가 되겠다고 했다. 내 모든 것을 걸은 거지. 나를 도와 다오. 영혼신이여.”
아르테미스의 호소에 피식 웃으며 말을 시작하는 크아이가.
[후후후. 영혼신이 아직 인간 물이 안 빠져서 말하기를 주저했을 뿐…… 방법은 간단하다. 네 영체를 조각조각 분해하여, 집어삼키면 된다.]
“날…… 먹어치운다고?”
미간을 찌푸리며 입술을 깨무는 아르테미스.
그런 그녀를 지켜보며 크아이가가 즐거이 말한다.
[우리는 대신의 영체 조각이 필요하다. 대신 이성은 필요 없어야 하지. 자신을 놔 버린 대신의 영체 조각…… 그러기 위해서는 타락하기 쉽고, 이성을 잃어버리기 쉬운 대신의 영체가 필요하다. 제우스는 그대가 가장 정신이 약할 거라며 우리에게 추천해 주었지. 후후후. 아버지에게서 가장 정신력이 약한 대신으로 선택받으니 어떠한가?]
“제우스가……?”
동공이 점차 흐려지는 아르테미스.
아버지에게 배신당했다는 걸 또다시 확인시켜 주니 충격 먹은 건가?
하지만 다시 곧 의연한 표정으로 되돌아와, 곧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와. 목만 있는데 저게 되네.
“그가 어차피 배신한 거…… 다 알고 있어. 상관없다. 영혼신. 나는 이런 처지다. 그러니 더 날 믿을 수 있지 않아?”
[잘 생각해라. 영혼신. 쉬운 길을 굳이 마다할 필요가 있는가? 우리는 서로 다툴 필요가 전혀 없다. 아르테미스의 영체를 백치로 만들고 우리에게 넘겨 다오. 아니, 백치까지 굳이 만들지 않아도 된다. 고문만 계속하면 영체의 일부분은 결국 굴복하기 마련. 내가 그것부터 갉아먹겠다…… 후후후…….]
아르테미스의 얼굴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뱀처럼 기다란 그것은 아르테미스의 얼굴 위에서 기어 다녔다.
얼굴밖에 없으니 떼어 낼 수도 없어 그저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이를 바라보는 아르테미스.
“더러운 것…… 이래서 눈을 뜨지 않으려고 했건만.”
[이 정도도 못 견디니 제우스에게 정신력이 약하다고 선택을 받았겠지. 처녀신이여.]
이대로라면 끝이 안 나겠군.
크아이가의 말을 듣고 이미 마음의 결정은 끝냈다.
“오케이. 결정했다.”
둘의 시선이 나에게 향한다.
결론을 기다리는 둘.
둘 중 아르테미스는 희망보다는 포기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아무래도 조건, 난이도 차이가 크긴 하지.
다른 신이었다면 아주 선한 신이 아닌 이상에는 결국 크아이가의 제안에 귀를 기울였으리라.
하지만 난, 다르다.
난 영혼신이다.
“둘 다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