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149화>
혼돈 진영의 상태창 (1)
제2 금융권이라니, 저축 은행 말하는 건가?
바로 OK! 부르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애써 참았다.
조언자가 필요해. 이건 나 혼자서 판단하기가 어렵겠어.
그래. SP 거래소 매니저를 아예 이 자리에서 불러 보자.
“꿀꿀. 주인님. 부르셨습니까?”
오랜만에 나오는 황금돼지.
그 돼지를 보자 하데스가 깜짝 놀란다.
[아니. 그는……?]
“꿀꿀…… 하데스!?”
“뭐야. 둘이 아는 사이야?”
그러자 표정을 찌푸린 황금돼지.
“전 직장 후배입니다. 꿀꿀.”
“엑? 너 혼돈의 군주였어?”
[으음…… 아니, 그는 SP 상점의 매니저였습니다. 등급 올리러 간다고 사표 내고 사라졌더니, SP 거래소에 있었군요.]
“꿀꿀. SP 상점의 일개 매니저보다, SP 거래소의 치프 매니저가 더 좋은 법입니다.”
[뭐, 당신은 등급이 낮아서 더 오르기는 힘들었죠. 킬킬. S급이 매니저라니. 킬킬킬.]
“싸가지는 여전하군요. 꿀꿀.”
돼지와 하데스가 잠시 서로를 노려봤다.
전 직장 선후배 사인데 별로 사이는 안 좋아 보이네.
돼지가 먼저 고개를 휙 돌려 나를 쳐다봤다.
황금빛이 강하게 났다.
“꿀꿀. 주인님. 무슨 일이십니까?”
“응. 하데스가 이런 거래를 제안했는데…….”
하데스의 제안을 곰곰이 듣던 황금돼지. 이내 나에게 다시 말문을 연다.
“주인님, 주인님에게 혼돈 각성이 꼭 필요한 겁니까?”
“흠. 다음 단계로 나가기 위해서라면 필요하긴 해.”
“꿀꿀.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SP 거래소는 1천 년만 지나면 완전히 성장하여 SP 상점 부럽지 않게 될 겁니다. 하지만 주인님의 각성을 위해서라면…… 꿀꿀, 몇 가지 고려하여 제안을 받아들일 수는 있지요. 고려해야 할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황금돼지가 자신의 팔로 안경을 스윽 올렸다.
번쩍거리는 황금빛.
“첫째, 예금 이자입니다. 저희는 1%씩 받고 있는데, 하데스의 제2 금융권이 들어와서 이자율을 높게 받으면 자본이 모두 그리로 갈 겁니다.”
“아. 그러네.”
“둘째, 대출 이자도 저희보다 싸게 받을 수 있지요. 저희는 10%에 빌려 주는데 7-8%로 빌려 주기만 해도, 다들 그리로 빚을 빌리기 위해 몰려가겠지요.”
그렇군…….
100조에 눈이 멀어서 그냥 은행 오픈하라고 했으면 망할 뻔했구나?
하데스가 2% 예금 이율, 8% 대출 이율 측정하면 손님들 다 그리로 갈 거 아니야?
“망할 수도 있었겠네.”
“꿀꿀. 주인님, SP 상점은 지금 쌓아 놓은 SP가 어마어마합니다. 경쟁 상대 망하게 하기 위해 처음에 손해 좀 봐도 될 정도입니다. 꿀꿀.”
[에헤이. 안 그래요. 그냥 SP 거래소에 같이 입점해서 서로 상부상조하자는 겁니다. 지금 SP 거래소 대출이 10조밖에 안 되니 신들이 지금 아우성이에요. 불편하다고. 킬킬킬.]
“꿀꿀. 예금은 아예 받지 않고, 대출만 가능하게. 대출 이자는 저희보다 무조건, 5% 이상 높게 하십시오.”
황금돼지의 말에 어깨를 으쓱하는 하데스.
[킬킬. 애초에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김지호 님과 상부상조하려고 했지요. 의심만 많아, 진짜. 킬킬.]
“꿀꿀…… 저놈이 제 등급 낮다고 계속 문제 제기해서 SP 상점 매니저 승급 심사에서 탈락했던 기억이 떠오르는군요. 주인님. 꿀꿀.”
[어허. 저라는 증거 있어요? 킬킬.]
“어쨌든, 이 조건에 임대 기간까지 받아야 합니다. 백 년이면 적합하겠군요.”
[에이. 백 년은 안 됩니다. 100조나 투자하는데 100년이면 저 잘려요. 천 년 합시다.]
“흠. 200년.”
[어허. 이 양반이 진짜.]
둘이 몇 년 임대해 줄지를 놓고 입씨름하기 시작했다.
아.
매니저 부르길 다행이야.
저런 협상, 내 입으로 안 해도 돼서 좋네.
그래. SP 1%씩 떼서 주는데 이 정도는 해 줘야지.
“330년. 그 이상은 안 됩니다.”
[킬…… 킬…… 재수 없게 당신을 만날 줄이야. 뭐, 알겠습니다. 대신 재계약은 가능하게 해 주시죠.]
“알겠습니다. 꿀꿀. 그건 330년 후에 이야기하도록 하죠.”
자세한 내용은 협의하기로 하고 이 문제를 끝낸 두 협상자.
하데스는 협상이 끝나자 나를 쳐다봤다.
[킬킬. 참 SP 매니저 잘 뽑으셨습니다그려.]
“오늘 보니 그런 거 같네.”
[어쨌든 약속은 약속이니, 100조와 혼돈의 각성구슬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100조를 전부 준다고?
예금 불가, 대출 이자 제한, 거기에 기한까지 남아 있는데 선뜻 SP를 보내 주다니…….
내가 의아하게 쳐다보자 하데스가 말했다.
[골드버그와 이야기해 본 결과 SP 거래소가 업그레이드되어야 저희도 영업하기 편하더군요. 과감히 100조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돼지 이름이 골드버그야?”
[킬킬. 저희 쪽에서 부르던 이름입니다. 본명은 저도 모르지요. 그럼, 공식적으로 투자와 입점을 위한 거래 계약서가 인벤토리로 갈 겁니다. 그때 결제해 주시죠.]
“알겠어. 그건 그렇고, 혼돈에서 이제 지구에 대한 개입은 어떻게 할 건데?”
[크…… 웃는 얼굴의 악마 이 새끼가 자꾸 회의에서 훼방 놓고 있습니다. 딱 봐도 제우스랑 내통한 게 분명한데 말이죠. 아직은 회의 중이라, 지구에는 예정대로 던전이 생길 것 같군요. 킬킬.]
“그래? 이제 지구에도 각성자들이 많아져서 던전 와 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텐데?”
[킬킬. 저희도 던전 보내는 거, 쓰레기 던지는 거랑 비슷한 겁니다. 잘 처리해 주면 저희야 좋죠.]
원래는 던전을 클리어 하지 못해서 점점 혼돈이 들어올 공간이 넓어지고.
혼돈의 군주가 결국 강림해서 세계 멸망한다는 시나리오였는데…….
지금은 강림은 뒷전이고, 그냥 던전만 생성시키나 보다.
저쪽에도 제우스에 대한 갑론을박이 한참인 것 같았다.
[뭐 변동 사항이 있으면 알려 드리지요. 그럼 결제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더니 통신을 끊는 하데스.
그러자 황금돼지가 날 바라보며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꿀꿀. 죄송합니다. 주인님. 더 협상을 좋게 끌어갔어야 했는데…… 혼돈의 각성구슬을 얻어야 해서 벼랑 끝 전술을 사용하진 못했습니다.”
“아니야. 빠르게 업그레이드하는 편이 나한테도 좋거든.”
제우스 때문에 빠르게 업그레이드하는 편이 낫다고 하자 황금돼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사정이 있으셨군요. 꿀꿀.”
“협상 아주 잘해 줬어. 난 그런 맹점이 있는 줄도 캐치를 못했는데.”
“꿀꿀. 주인님에게 배당을 받는데, 이렇게라도 일을 도와야죠. 그럼 들어오는 100조는 모두 업그레이드에 투입하도록 하겠습니다.”
“음…… 내가 쓸 수는 없는 거지?”
100조 중 1%만 내가 써도 그냥 팍팍 영력 올려서 평정할 수 있을 거 같은데.
하나 예상대로 단호하게 고개를 흔드는 황금돼지.
“투자 목적으로 들어온 100조를 사적으로 유용할 수는 없습니다. 꿀꿀. 그러다가 혼돈에서 문제 제기를 하면 골치가 아파집니다. 혼돈의 저력은 어마어마하거든요.”
“그 정도야?”
“꿀꿀. 예. SP 상점과 고리대금으로 축적한 SP 자본이 상상 이상입니다. 전 우주를 경영할 정도로 스케일이 크지요.”
“혼돈, 이놈들은 대체 뭐하는 애들이야?”
황금돼지는 머리에 쓴 학사모를 다시 정돈하더니 혼돈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꿀꿀. 혼돈 세력은…… 우주의 균형을 해치는 이에게만 나타납니다. 청소부 역할을 하는 거죠.”
“그래? 던전이 아무 데서나 생기는 게 아니었어?”
“무언가 정상적이지 않은 우주에 천천히 생기기 시작합니다. 일단 던전을 보내면서 사태를 파악하는 거죠.”
덧붙여서 던전은 혼돈 세력이 멸망시킨 행성의 잔재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케브리안에서는 용이 혼돈을 막 소환했는데. 그건 우주의 균형을 해친 게 아니라 아예 부른 거잖아?”
“꿀꿀. 세력이 너무 커져서 발생한 문제지요. 혼돈의 기본 대의는 균형을 해치는 이에게만 강림하여 정화시키는 것입니다만…… 혼돈에 속한 구성원이 많아지고 혼돈의 군주도 수가 계속 추가되다 보니 자신의 힘을 키우기 위해 멀쩡한 세계도 멸망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혼돈의 대신인 창조주의 왼손은 그걸 방관해? 어마어마한 대신이라며?”
“애초에 그의 아바타끼리 경쟁하는 데서 촉발된 겁니다. 꿀꿀. 그래도 적당한 선에서 멈춥니다만…….”
흐음.
처음에는 이레귤러만 정리하다가, 이제는 창조주의 왼손 아바타끼리 세력 다툼을 하는 지경에 이른 건가.
“꿀꿀. 100조 투자를 받은 것으로 업그레이드를 진행하면, SP 거래소 레벨을 20까지 단번에 올릴 수 있습니다.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그래. 그렇게 가자.”
“알겠습니다. 계약서를 받으셨으면 저와 같이 읽어 보시고 서명을 하시지요. 꿀꿀. 하데스가 함정을 숨겨 놨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럴 법하군.
황금돼지 있을 때 처리해야겠어.
[혼돈의 군주 ‘사령대제’에게서 물건이 도착했습니다.]
[수령하시겠습니까?]
시스템 메시지가 뜨자 예를 눌렀다.
그러자 인벤토리에 추가되는 두 아이템.
‘SP 거래소 입점 계약서’와 ‘혼돈의 각성구슬’이었다.
일단 SP 거래소 입점 계약서를 꺼냈다.
계약서 조항을 황금돼지가 면밀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십여 분을 쭉 바라보던 황금돼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꿀꿀……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하데스와 또다시 협의하기로 했습니다만, 그것은 운영상의 문제일 뿐. 중요한 사항은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 내가 보기에도 문제는 없어 보여.”
“그럼 계약을 진행하시겠습니까?”
“그러자.”
계약서에 싸인을 하자 계약서가 갑자기 허공에 떠오른다.
그러더니 황금색 불길에 조금씩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그걸 보고 있던 황금돼지가 갑자기 환희에 차 소리질렀다.
“오오. 주인님. SP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꿀꿀!”
“좋아. 바로 투자하고 있어!”
“알겠습니다. 꿀꿀!”
SP 거래소는 황금돼지에게 맡기고, 나는 혼돈의 각성구슬을 꺼냈다.
검은빛의 주먹만 한 구슬.
인벤토리에서 꺼내자마자 바로 메시지가 떴다.
[창조주의 왼팔이 만든 혼돈의 각성구슬입니다.]
[신위에 오른 이도 진영 각성이 가능합니다. 혼돈 진영으로 각성하시겠습니까?]
좋아.
혼돈 진영 상태창까지 얻으면, 이제 융합의 권능도 써먹을 수 있는 건가.
바로 예를 누른다.
그러자 구슬이 서서히 사라지더니, 검은 안개처럼 흩어진다.
그리고 그 검은 안개가 그대로 내 몸 주위를 맴돌면서 일부는 내 안으로 빨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혼돈의 힘을 받아들이는 중입니다…….]
메시지와 함께 영체가 조금씩 변화하는 게 느껴졌다.
[이미 신위에 오른 각성자입니다.]
[혼돈 진영 상태창의 등급이 B등급까지 오릅니다.]
F부터 시작하진 않는구나.
그러면서 다시 혼돈의 각성구슬에서 퍼진 기운이 내 영체를 감싸기 시작한다.
영체 주위를 회전하던 검은 안개.
안개 양은 서서히 적어지고, 흡수되는 양이 늘어났다.
시스템은 계속 [흡수중입니다…….] 라는 메시지만 보내고 있었다.
“빨리. SP야, 더 차라! 꿀꿀!”
지금 이 로딩처럼, SP 거래소에서 100조의 SP가 바로 확 들어오는 게 아닌가 보네.
“좋아. 1단계 업!”
황금돼지의 리액션을 보고 있자니, 내 주위를 감싸던 검은 안개가 거의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더니 마지막으로 메시지가 떴다.
[혼돈의 각성구슬의 기운을 대부분 흡수하였습니다.]
[마지막 부분까지 흡수할 시, 혼돈 소속이 되며 혼돈 진영의 등급이 바로 S등급으로 오릅니다.]
[흡수하지 않을 시, 사용자의 진영은 현재처럼 독립 상태가 되며 혼돈 진영의 등급은 B등급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완전히 그쪽으로 전향하면 S등급으로 해 준다는 거지?
아니면 그냥 B등급에서 시작하고.
흠…… 혼돈이 센 건 알겠지만 굳이 전향할 필요는 없지.
자유의 몸이 좋다.
“흡수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