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 2개-136화 (136/240)

<내 상태창 2개 - 136화>

지구, 또다시 격변하다.

화면 속에서 두리번거리는 아수라.

흉신악살의 끔찍한 외양이지만, 좀 멀리서 찍어서 그런지 끔찍함이 덜하다.

거기에 멍청한 표정으로 그러고 있으니 좀 웃기기까지 하다.

[어, 여길 바라보면 되나?]

OK 사인이라도 난 것일까.

여러 번 목을 가다듬던 아수라.

갑자기 여러 팔에 무기를 소환한다.

검과 창, 도끼 등의 병장기.

그러더니 갑자기 무예 시범을 보인다.

갑자기 이런 메시지가 TV 화면 중앙에 뜬다.

[현 화면은 슬로우 모션입니다.]

뭔 짓거리를 하나 했더니, 갑자기 그에게 총알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두두두두두두.

사방에서 쏘아져 오는 총알.

덩치도 크니 딱 좋은 표적이다.

헌데 그 총격을 현란하게 무기를 휘둘러 막기 시작하는 아수라.

단 한 발도 그의 몸에 닿지 않고, 모조리 총알을 쳐낸다.

슬로우 모션이라고 하지만 아수라의 움직임은 너무 빠르다.

총알은 엄청나게 느리게 날아가는데, 혼자서만 정상 속도로 재생하는 거 같다.

[정상 화면입니다.]

그 자막이 뜨더니 갑자기 빨라지는 재생 속도.

일반인의 눈에서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가는 총알.

아수라 쪽은 엄청난 속도로 무기를 휘둘러, 아예 벽처럼 보인다.

그렇게 총알을 다 튕겨 낸 아수라가 가볍게 발로 땅을 박찼다.

그러자 푹하고 움푹 들어가는 황무지.

아수라를 찍던 카메라가 일제히 떠오른다.

앵글이 자연스레 위로 올라가 아수라의 얼굴을 찍는다.

헛기침을 하는 아수라.

[흠흠. 각성하지 못한 당신도 나 아수라와 함께라면 각성할 수 있다! 사찰로 와 각성 의식에 참여하라. 내가 강하게 만들어 주겠다!]

그러더니 화면이 서서히 어두워지며 뜨는 메시지.

각성 의식이 지원되는 사원 리스트가 나오며, 자세한 건 홈페이지를 방문하라고 나와 있었다.

이거 뭐야?

헛것을 봤나?

황당해하고 있자니, 다음 광고가 뜬다.

이번에 나온 사람은 천사.

[하느님의 의지를 받아, 신자에게 구원을. 올림푸스에게 심판을.]

아수라 때와는 달리 차분한 광고였다.

눈이 하얗게 빛나는데 피부색과 인종은 동양인처럼 생겼다.

미카엘은 아니네. 다른 천사인가?

[믿음의 장소로 와 각성하십시오. 하느님께서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더니 카메라가 중환자실을 비춘다.

그 안을 걸어가는 천사.

그가 가운데서 기도를 하자, 장엄한 빛이 중환자실을 가득 메운다.

그리고 빛이 멈추자, 서서히 눈을 뜨고 움직이기 시작하는 환자들.

말 그대로 천사의 이적을 선보이며, 환자를 보고 자애로운 미소를 짓는다.

그러더니 화면이 서서히 흐려지며, 각성 의식이 지원되는 한국의 성당과 교회 리스트가 나왔다.

자세한 건 홈페이지를 참고하라고 뜬 채.

“세상이 대체 어떻게 변한 거야? 신들이 이렇게 막 개입해도 돼?”

내가 어이가 없어서 계속 이를 쳐다보니, 크고 작은 종교의 각성 권유 광고가 꽤 나오고 있었다.

한국에서 기독교, 불교 쪽에 비해서 세가 딸리는 종교들은 소수 정예, 각성자를 전폭 지원해 준다는 걸 장점으로 내세우며 광고를 하고 있었다.

TV에서 상품 광고보다 어째 각성 광고가 더 많아 보이는데.

“한 달 새에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신들의 능력 자랑 광고를 보다 보니 어느덧 뉴스 시간.

맥주를 한 캔 더 까면서 뉴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첫 장면부터 충격적이었다.

[오늘도 역시 첫 소식으로는 역시 UN과 세계헌터본부의 뉴스부터 알려 드리게 되었습니다.]

[여러 번 본 장면이시겠지만, 다시 한번 재생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재생되는 화면.

UN 본부라고 뜬 커다란 회의장에서 여러 사람들이 열띤 토론을 하는 장면이 비춰졌다.

그러다가 좌중이 엄숙해지고, 회의장 단상에 UN 사무총장이 올라섰는데…….

“인간이여. 하등한 논의를 그만두어라.”

갑자기 화면에서 커다란 인영 하나가 툭 떨어졌다.

푸슉.

UN 사무총장을 그대로 짓밟더니, 그의 몸이 모자이크 처리된다.

하지만 시뻘겋게 된 걸 보아하니 그대로 짓이겨진 게 분명한 모습.

회의장은 패닉이 되고, 경비원이 나서서 총을 쏘기 시작한다.

하지만 총알은 그대로 그를 통과하고…….

“타올라라.”

그가 손가락으로 사람들을 가리키자 모조리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각국의 지도자였던 사람들이 너무나 허무하게 한 줌의 재가 된다.

“으아아악!”

카메라맨이 비명 소리를 지르자 그가 손가락을 이쪽으로 가리킨다.

“멈춰라.”

그러자 완전히 고정되는 카메라.

그 모습을 보고 남자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얼굴, 아레스와 닮았다.

둘의 차이라면 헤어스타일 정도.

아레스가 반곱슬이라면 이 자는 장발의 스트레이트 헤어였다.

“나 아폴론이 여기서 고한다.”

아폴론?

아레스랑 닮았더니, 이복형제라 그런 건가.

그가 오만하게 선언한다.

“인간이여. 그대들의 운명을 받아들일지어다. 아버지 제우스의 심판은 머지않아 재개될 것. 그 때 성심을 다하여 귀의하라.”

그러더니 서서히 흐려지는 아폴론의 몸.

그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아버지 제우스의 심판이 곧 지속될지어다. 마음으로 굴복하고 복종할지어다. 뇌령雷靈이 되거라.”

그러고는 완전히 사라진 아폴론.

UN 사무총장은 짓이겨진 시체가 되고, 각국의 지도자들은 불타 버린 상태.

남아 있는 인간이라곤 이 카메라맨이 전부인가 싶었는데…….

“일어나라.”

“시간역전.”

허공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내 눈에 익은 신이 하나둘씩 등장한다.

아버지의 모습을 한 미카엘, 그리고 봉인지에서 봤던 관세음보살이다.

그들 이외에도 여러 유수 종교를 대표하는 신들이 연이어 UN에 모인다.

그들이 손을 뻗자 차례대로 살아나기 시작하는 사람들.

이 공간의 시간이 거꾸로 되돌아가, 모든 이가 불타오르기 전 살아 있는 모습으로 생환했다.

“이게 대체…….”

“무슨……!”

영문을 몰라 하는 사람들.

“각 나라의 지도자들이여. 나는 미카엘의 아바타.”

“관세음보살의 아바타입니다.”

그러면서 신들이 한 명씩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한다.

다들 영문 모를 표정으로 신들을 바라본다.

“우리는 올림푸스에 의해 봉인되었던 몸.”

“이제 봉인에서 풀려나, 적극적으로 인간을 수호하기 위해 강림했습니다.”

서서히 단상에 올라가기 시작하는 신의 무리.

뉴스 화면은 여기서 끝이 났다.

[이날 이후, 신들께서는 제우스가 모든 인류를 뇌령으로 만드려 한다고 알려 주셨죠.]

[그 이후, 각 종교에서는 자체적으로 각성자 의식을 치르기 시작했습니다.]

[신들께서 말씀하시길, 제우스의 심판은 각성자에게는 효과가 감소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어느 종교는 어느 클래스에 보다 특화되어 있고, 어느 종교는 어디에 특화되어 있는지를 설명한다.

사람이 메이저 종교보다 적은 곳은 대기자가 없으니 보다 빨리 각성자가 될 수 있다고도 홍보하는 뉴스.

[한때 올림푸스와 한통속이 아니냐고 의심을 받았던 아스가르드, 신계연합에서 이를 부인했습니다.]

[오히려 신계연합 측에서는 아스가르드의 결단 덕분에 봉인에서 풀려나게 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아스가르드를 신계연합에 받아들이겠다고 공표했습니다.]

완전 뉴스가…….

일반 뉴스는 싹 다 사라지고, 신들 이야기만 주구장창 나온다.

하긴. 워낙 쇼킹해야지.

뉴스를 둘러보고 인터넷에서 정보도 수집해 보니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제우스가 번개를 떨어뜨리고 시간을 돌린 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있었다.

다만 몇몇 고위 각성자들은 기억을 하고 있었는데, 어마어마한 통증 때문에 정신을 놓거나 미친 사람이 된 사례가 종종 있다고 했다.

그 중에 몇몇은 제우스가 김지호를 언급했다고, 김지호가 대체 누구냐고 물어봤다는데…….

워낙 흔한 이름이라 그런가?

내 정체가 밝혀지진 않았다.

그리고 막상 제우스의 심판이 그때 일어난 이후에는 별일이 없었다고 했다.

한데 이 주 전부터 봉인된 신들이 활동하기 시작하고, 신자들에게 신탁을 내렸다.

그래서 일주일 전에 UN에서 각국의 지도자가 모여 회의를 하게 된 것인데…….

아폴론이 등장해서 죄다 싹 죽여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가 사라지자 신들이 나타나서 모두 부활을 시켜주기까지.

이거 너무 타이밍이 절묘한데?

[크. 나 수호신 아수라님 됐다. 초기 스탯 쩔어. 힘이 20이야.]

[마이너 종교로 가면 각성자 하나하나한테 능력치 몰빵해 준다는데? 내 친구는 천도교 쪽 갔는데, 올스탯 25래.]

[ㄴ 유언비어 자제요. 비주류 영업하지 맙시다.]

[ㄴ 그래. 내 친구는 비주류 갔다가 교단 지원도 형편없고 던전도 못 구해서 망했다더라. 상태창 인증 전에는 헛소문 퍼뜨리지 마라.]

인터넷에선 그 어느 때보다도 종교 논쟁이 한창이었다.

근데 교리로 싸우는 게 아니라, 서로 내가 택한 종교 혜택이 최고다, 이런 느낌으로 싸우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주류는 역시 기독교, 불교.

그리고 그전에 세상을 차지했던 아스가르드도 주류 쪽에 넣어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인기가 좀 떨어지는 마이너 종교 쪽에서도 나름 인터넷 등급이 쭉 나열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믿지 않지만 해외에선 신자가 많은 이슬람이나 힌두교도 나름 안정적인 마이너로 평가되었다.

이쪽은 중동이나 인도로 가면 메이저겠지?

그 아래쪽은 복불복이 많았고.

하도 유언비어가 많아 선뜻 선택하기 꺼려질 터다.

그래서일까.

메이저 종교 쪽에서는 원래 교인들을 제외하고는 적성이 뛰어난 사람을 가려 뽑고 있었고, 마이너에서는 그냥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받고 있었다.

받는 족족 금방 각성하는 사람들.

건강해진 몸, 탱탱해진 피부.

젊음을 되찾은 노년층이 인터뷰하는 모습이 보였다.

“유명한 종교는 원래 교인이 아니면 잘 받아주지도 않습니다. 특히 저희 같은 늙은이는 말이죠. 빨리 아무 데나 가서 각성자가 되는 게 한 살이라도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정훈(73)이 인터뷰를 하는 화면.

얼굴이 3, 40대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다.

신분증까지 까면서 마이너 종교로 가서 이런 젊음을 누리라는 할아버지.

할머니랑 같이 각성해서 젊음을 되찾고 부부 관계도 건강히 하고 있다고 자랑하다가 인터뷰가 끝났다.

와, 할아버지 회춘하셨네.

진짜 이러다 전 국민이 다 각성자가 될 기센데?

[급등한 각성자 수, 이에 비해 모자라는 던전. 던전 수급 대책이 시급하다.]

[폐쇄된 부서진 세계. 일자리가 사라진 헌터 업계.]

[익명의 헌터 관계자, 이러다가는 모두들 F, D급으로 죽을 것이라면서 불안감을 토로.]

뉴스를 둘러보니 이런 내용도 심심치 않게 나와 있었다.

특히 헌터넷 쪽에서 나온 뉴스는 던전 공급에 관한 내용이 많았다.

하긴.

원래 고위 등급은 죄다 부서진 세계에서 레벨 업 했으니까.

부서진 세계도 없으니 레벨 업 루트가 사라졌네.

혼돈 녀석들이 던전은 아직 열릴 거라곤 했지만, 던전 만으로는 저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거 같은데.

“에라이.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거까지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지.

안 그래도 SP 거래소다, 뭐다 신경 쓸 게 얼마나 많은데.

신계연합이라는 것도 생겼나 본데, 거기서 알아서 하겠지.

한 달간 자리를 비워 꺼져 있던 핸드폰.

충전을 시킨 채 켜서 인터넷 웹서핑을 하고 있자니 전화가 온다.

[이진성.]

하긴 전화 올 놈이 이놈밖에 없지.

전화를 받자, 녀석이 다짜고짜 소리를 지른다.

[아이고 신님아! 각성은 끝나셨소이까?]

“어. 어떻게 알았냐?

[나한테도 메시지가 뜨더라. 모시는 신님께서 진정한 영혼신으로 각성하셨다고.]

오호. 사도에게도 메시지가 뜨는구나.

신기하네.

[그래서 전화를 해 봤는데 받는구먼.]

“어. 뭔 일은 없었냐? 각성하는데 한 달이 지나서 지금 뉴스 보고 황당해하고 있다.”

[그게 말이지…….]

약간 뜸을 들이는 이진성.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네 사도를 포기하려는 사람이 생겼어.]

“음? 사도를 포기한다고?”

[어. 네 사도가 됐던 분들 중, 아저씨 한 분 기억나?]

얼굴은 아는데 이름은 기억 안 나네.

이름 확인 겸, 사도 창을 보니 이재현이라고 되어 있었다.

근데 사도 창을 열어보니 그 사람 위에…….

[활동 불가.]

이 메시지가 뜨며 X표시가 나 있었다.

“활동 불가라고 뜨는데, 무슨 일이야?”

[그래? 하아. 사실은…….]

주저주저하더니 사정을 털어놓는 이진성.

[그 아저씨. 제우스의 번개를 맞은 날부터, 혼수상태에 빠지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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