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 2개-129화 (129/240)

<내 상태창 2개 - 129화>

129 제안을 거부하다

로키와 헤르메스라.

아스가르드의 세상으로 변한 이후, 헤르메스에게는 별 연락이 없었지.

일단은 로키와 통신을 해 보자.

[김지호!]

통신을 열자마자 다급히 소리치는 로키.

가슴 부위가 뻥 뚫려 있었다.

“너 살았네?”

[오딘이 제정신을 차렸다. 봉인 직전에 풀려났어.]

영체 상태임에도 가슴 부위가 원형으로 도려내진 로키.

이 녀석도 나름 고생했음이 느껴졌다.

“연락은 왜 했냐?”

[아스가르드에 페널티를 가했나?]

“아직 안 했지. 제우스만 도와주는 것 같아서. 근데 오딘이 제우스 부하나 다름없으니, 페널티 가하는 게 맞나 고민하고 있었어.”

[안 돼. 이젠 괜찮아! 지금 아스가르드가 소멸하면 완전히 제우스의 승리로 끝난다!]

“흠, 하지만 5조를 제우스한테 넘겨줬잖아. 이건 어쩔 건데?”

그러자 움찔하는 로키.

잔뜩 찡그린 표정이 애처로울 지경이다.

여유 넘치던 예전 모습은 어디로 가고, 사고 치는 보스에게 시달리는 느낌으로 변해 버렸군.

[5조…… 하아, 꼭……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갚겠다. 그러니 페널티는 멈춰 줘!]

5조에서 잠시 멈칫하더니, 갚을 수 있다며 페널티를 멈춰 달라고 사정했다.

“알겠어. 나도 이대로 제우스 좋은 꼴 보긴 그러니까.”

[아, 그럼…….]

“헤르메스가 뭔 소리 하나 들어는 볼게. 금방 연락하마.”

[야…… 야!]

일단 통신을 껐다.

페널티를 가할 생각은 아직 없지만, 여기서 그냥 넘어가면 안 되지.

뭔가 한 번에 요구를 들어주면 호구 같단 말이야.

헤르메스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들어 보고.

헤르메스와 통신을 연결했다.

[오랜만입니다, 김지호 님.]

“아주 재밌는 짓을 해 주셨더군.”

[후후…… 이제 김지호 님께서 화룡점정을 찍어 주시면 됩니다.]

양 날개가 달린 모자를 쓰고 깔끔한 양복을 입은 헤르메스.

여유로운 태도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자신만만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하긴, 올림푸스의 승리로 기울어지고 있으니 그럴 법도 하지.

“나보고 아스가르드에 페널티를 넣어 달라고 하는 건 아니지?”

[오, 맞습니다. 이야기가 빠르겠군요.]

“내가 왜?”

[김지호 님. 저희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헤르메스는 생글생글 웃었다.

[아스가르드에 채무 추심을 가해도 페널티를 집행하시면 5조가 넘는 SP가 나올 겁니다. 그 거대한 신계를 해체하면 부산물이 상당할 거예요. 김지호 님은 수많은 SP를 벌게 되겠지요.]

“대신 제우스는 더욱 완벽해지겠지.”

[예. 윈-윈이지요. 김지호 님은 막대한 SP를 손에 넣고, 제우스님은 더욱 완벽해지는…… 최고의 결과입니다.]

“후후…… 근데 신기하네. 5조 SP나 벌어 놓고도 아스가르드가 걸리나 보지?”

나는 옆에 있는 하데스를 가리켰다.

“하데스는 자기가 소멸할 거라고 길길이 날뛰더니 아직도 팔팔하고 말이야.”

“킬킬…… 헤르메스. 제우스가 아직 창조주가 되지 못한 모양이군요.”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내 쪽으로 다가온 하데스.

절망에 빠져 있던 얼굴은 어느새 살판난 채 밝아져 있었다.

“킬킬. 이 영혼신 멍청한 줄 알았더니, 나름 쓸 만한 구석도 있군요. 그래, 아스가르드를 멸망시키지 않은 건 칭찬해 주지요.”

“꺼져. 너 같은 놈의 칭찬은 사양이다.”

“저희 사이에 왜 이러실까.”

해골 좀비와 함께 이쪽으로 다가오는 하데스.

신나 죽겠다는 발걸음이다.

“아. 좀비 데리고 옆으로 오지 마.”

“아, 실례. 너무 좋아서 말이죠. 킬킬.”

탁.

하데스가 손가락을 튕기니 사라지는 해골과 좀비.

헤르메스는 하데스의 얼굴을 보고 표정을 찌푸렸다.

[거기서 왜 튀어나오십니까, 숙부님?]

“당신네들이 궁니르의 파편을 5조에 팔기에 그를 만났죠. 킬킬.”

[후…… 김지호 님. 그의 말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곧 죽을 대신이니까요. 저희끼리 생산적인 이야기만 하시면 됩니다.]

“생산적은 무슨! 김지호 님. 생각을 해 보세요. 아스가르드도 망하면 저놈들이 당신 가만 놔두겠어요? SP 거래소라는 보물을 지니고 있는데?”

[아니, 그렇지 않아요. 김지호 님, 안전은 보장하겠습니다. 지구는 인간이 살 수 없는 땅이 될 테니, 타 행성으로의 이동도 주선하겠습니다.]

지구는 인간이 살 수 없는 땅이 된다고?

이 새끼들, 대체 뭔 짓을 저지르려고……?

그러더니 아! 하면서 표정을 밝히는 헤르메스.

[아! 아예 케브리안에 있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하데스 소멸하면 무주공산이니까요. 저희는 케브리안을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면서 케브리안에서 신 노릇을 하라고 설득하는 헤르메스.

[솔직히 말해 아스가르드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입니다. 제우스님은 하루라도 더 빨리 완전한 창조주로 등극하고 싶어서 김지호 님에게 제의를 드리는 것뿐이에요. 저희의 제안을 거절하신다면…… 결코 끝은 좋지 못할 겁니다.]

이젠 살포시 협박을 곁들인다.

[헤라 님은 뭘 풀어 주냐고, 봉인해서 샅샅이 해부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씀하셨지만 제가 좋게 좋게 말해 뒀습니다. 하하하.]

하. 헤라.

헤라 이 여자는 나랑 전생에 원수라도 졌나?

어째 언급될 때마다 적의가 넘쳐.

어쨌든 우리 말 따르지 않으면 재미없을 거라고 협박하는 거잖아.

음…….

사실 살짝 끌리기도 했다.

제우스가 너무 강해 보여서.

이 녀석과 싸우느니 그냥 케브리안에 정착할까 싶었다.

하지만 저놈들 말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아스가르드 뒤통수 때리는 거 보면, 동맹이고 뭐고 신경 안 쓰던데.

이놈들 말 믿다가 배신당하면 그냥 끝장이다.

“싫어.”

그러자 예상했다는 듯이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는 헤르메스.

[결국 그리 선택을 하신 겁니까. 무의미한 저항을 왜 하려는지 이해할 수가 없군요.]

“킬킬킬. 김지호 만세, 만세!”

하데스가 옆에서 만세 삼창을 하니까 뭔가 짜증이 샘솟는다.

헤르메스가 그 광경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손으로 이마를 짚다, 화들짝 놀란다.

갑자기 옆을 보고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는 헤르메스.

화면의 앵글이 갑자기 옆으로 돌아갔다.

[후후. 형제여, 여전히 멍청하구나.]

빛.

눈부신 빛이 번쩍번쩍한다.

통신 화면을 볼 수가 없을 정도로.

계속해서 지켜보니 서서히 빛이 눈에 익어 간다.

그리고 그 안에 하나의 인영이 보였다.

기나긴 금발 곱슬머리와 수염.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에 전류가 번뜩이며, 눈은 새하얀 빛으로 번쩍번쩍한다.

신이 빚은 듯한, 조각과도 같은 외모.

강렬한 위엄과 그림 같은 미모가 공존했다.

누군지 알 거 같군.

[얼굴을 마주하는 건 처음이군. 영혼 각성자.]

“당신이 제우스인가?”

[그래. 나는 신왕(神王) 제우스. 태양계의 지배자니라.]

자신을 태양계의 지배자라고 정정당당하게 선포하는 제우스.

화면 속의 모습임에도, 선포할 때만큼은 어마어마한 압박감이 들었다.

확실히 그는 지금까지 봤던 수많은 SSS등급 대신과는 달랐다.

격이 다르다는 게 무슨 말인지 체감이 되었다.

신들의 왕이라는 칭호가 딱 어울렸다.

[그대, 헤르메스의 제안을 정말로 거절하겠는가?]

“어.”

[그대는 이길 수 없다. 나는 이미 한 차례 격이 올라섰으며, 올림푸스의 일원은 헤라클레스의 스킬을 장착한 상태다. 이기기는커녕 소멸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아닌가?]

“여기서 굴복한다고 살려 줄 네놈은 아닐 거 같아서 말이지.”

내 대답을 듣자 껄껄 웃기 시작하는 제우스.

바로 내 말을 긍정한다.

[하하하하! 그 정도는 파악하니 다행이구나. 내 걸림돌이 될 자격이 있어. 암. 오딘이 내 마지막이어서야 너무 싱겁지.]

“역시 살려 둘 생각이 없었나?”

[SP 거래소는 한낱 하급신이 가지기에는 너무 귀중한 보물이지. 응당 태양계를 차지한 전리품으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제우스 이 자식…….

역시 가만히 날 놔둘 생각은 없었던 거 같군.

이젠 뭐 딱히 속이려고 하지도 않네.

급이 올라갔다, 이거지.

“창조주 급으로 올라섰는데 겨우 SP 거래소에 욕심을 내나?”

[후후…… 등급이 올랐다 한들 아직 나는 시스템에 얽매여 있다. 전 우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SP 거래소는 중요하지. SP 거래소는 ‘겨우’라고 폄하될 물건이 아니다.]

“하. 진짜 욕심이 끝이 없구나.”

[그래. 욕심! 그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지.]

자신의 욕심과 야망을 긍정하는 제우스.

번쩍거리는 게 찬란하기 그지없다.

그걸 본 하데스가 이를 간다.

“제우스……!”

[순진한 형제여. 아직도 헛되이 페르세포네의 망령을 쫓고 있는가?]

“이 자식, 죽인다. 너만은…….”

[쯧쯧. 그렇게 페르세포네를 원한다면, 내가 다시 부활시켜 주마. 네 옆의 김지호를 제압해서 나에게 데려와라.]

바로 하데스를 꼬드기는 제우스.

아니, 생긴 건 찬란한 빛의 신인데 뭐 이렇게 딜을 한대?

하데스가 페르세포네한테 워낙 죽고 못 살아서 혹시 그 말을 들을까 염려되었다.

그에게서 잠시 떨어지니, 나를 보고 미쳤나는 듯이 머리에 손가락을 돌리는 하데스.

말도 거칠어졌다.

“김지호. 내가 이 새끼 말을 들을 거 같냐?”

“아니, 뭐. 혹시라는 게 있잖아.”

나를 잠시 노려보던 하데스가 통신 화면을 다시 바라보았다.

“꺼져라. 네가 부활시킨 페르세포네는 그저 그녀를 똑 닮은 껍데기일 뿐이겠지. 네가 그녀를 영혼까지 완전히 부활시킬 수 있었다면…… 그 힘으로 날 죽였을 거다. 안 그런가?”

[후후, 형제여. 넌 역시 날 너무 잘 알아.]

와.

진짜 입만 열면 거짓말이네.

급도 오른 신이 저래도 되냐?

“네놈. 꼭 죽여 주마…….”

[기대하지.]

이를 으드득 가는 하데스.

제우스를 보자마자 여유를 완전히 잃어버린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미소를 지으며 지켜보던 제우스.

그가 우리에게 선포했다.

[지구를 지켜보아라.]

그러더니 통신이 휙 끊어진다.

또 뭔 짓을 하려고 저러는 거야?

진짜 다 이긴 듯 행동하는 게 얄밉네.

아오.

페널티를 못 먹이나, 제우스한테는?

나한테 직접적인 가해를 안 했으니까?

오딘을 지배해서 간접적으로 사주한 거니까, 어떻게 페널티 먹일 수 있는 명분은 되지 않나?

조금이라도 페널티를 먹이고 싶단 말이지…….

[‘불완전한 창조주’ 제우스에게 페널티를 가하시겠습니까?]

오.

가능한 건가?

예를 누르려고 보니 장문의 설명이 뒤따라왔다.

[아스가르드의 오딘을 지배해 간접적으로 영혼신에게 위해를 가했습니다. 페널티 조건으로 인정됩니다. 하나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아, 페널티의 효과가 감소합니다.]

[대상이 ‘불완전한 창조주’, EX등급입니다. 시스템 페널티의 효과가 감소합니다.]

이외에도 이런저런 조건 때문에 계속 페널티의 효과가 감소한다고 한다.

거기에…….

[‘불완전한 창조주’ 제우스에게 페널티를 가할 시, 아스가르드에게 페널티를 집행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시행하시겠습니까?]

아스가르드에 페널티를 가하지 못한다는 내용까지.

이 메시지를 보자 조금 전 헤르메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스가르드를 불태우면 그 부산물로 더 많은 SP를 벌 수 있을 거라는 내용이.

하지만 아무리 효과가 감소한다고 해도, 내 선택은 자명했다.

제우스가 SP 거래소를 노리는 이상, 그를 조금이라도 더 엿 먹이는 게 내 신상에 이롭지.

아스가르드에는 어차피 과도한 페널티를 못 가할 뿐, 빚이야 받을 거니까 괜찮다.

“제우스에게 페널티를 가한다.”

['불완전한 창조주‘ 제우스에게 페널티를 집행합니다.]

[제우스의 SP 획득량이 크게 감소합니다.]

[이 효과는 제우스가 ‘완전한 창조주’가 되기까지 유지됩니다.]

엑?

이게 끝이냐?

지금 있는 SP를 깎아 먹는 것도 아니고, 겨우 수입 감소야?

아…….

아스가르드 전체를 불태울 페널티가 겨우 SP 획득량 감소로 바뀐 건가.

갑자기 급 아쉬워지네.

“제우스, 이 자식 뭔 짓을 하려고…….”

한편 옆에서 계속해서 이를 갈던 하데스.

갑자기 허공에 손짓을 하자, TV처럼 커다란 화면이 떴다.

그 안에 보이는 광경은 지구.

“별거 없는데?”

“아니, 이쪽이 이상합니다.”

내 말에 고개를 저으며 다시 존댓말을 하는 하데스.

좀 평정을 되찾은 건가?

평소 때의 광기는 한 점 보이지 않고, 신중한 표정으로 화면을 조종했다.

화면상에서 푸른 행성, 지구의 모습이 커지기 시작한다.

구름이 걷히고 지형이 보이며, 확대되기 시작하는 땅.

계속해서 줌 인하던 화면이 어느덧 익숙한 풍경을 보이고 있었다.

“어. 이거, 우리 집 쪽인데?”

오딘의 소환으로 인해서 아파트 째로 뽑혀 나갔던 성수동.

하늘 위로 올라갔다가 추락한 때문인지 모습이 가관이다.

아파트 추락으로 인해 여러 건물이 허물어지고, 소방차와 구급차 여러 대가 출동한 상황.

“찾았다.”

하데스는 화면을 휙휙 돌리더니, 한 곳에 화면을 고정했다.

내 아파트가 뽑혀 나갔던 그 자리로.

거기에는 황금색 번개가 꽂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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