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 2개-127화 (127/240)

<내 상태창 2개 - 127화>

127 오딘의 소환

오딘이 SP 거래소에서 대출을 한다고?

아니, 거기에 명의 도용이라니…….

“무슨 신이 명의 도용을 당해?”

“아스가르드 신들은 오딘에게 모든 걸 다 걸었거든.”

“그렇다고 다른 신 이름으로 대출도 끌어 쓸 수 있는 거냐?”

“후우우, 나도 돌겠다.”

“……너도? 너도 채무자에 포함된 거냐?”

로키는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한 백억 빚졌다.”

“헐, 이자 10%인 건 아냐? 1년에 10억씩 우리 거래소에 바쳐야 한다고.”

“10억……? 하아…….”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절망스러운 얼굴을 한 로키.

이건 좀 황당한데.

“빌려 준 SP거래소 주인이 말하는 것도 뭣하지만 이 정도면 거의 사기죄 아니냐? 오딘한테 당장 철회하라 그래.”

“그럴 수는 없다……. 오딘과 아스가르드가 맺은 맹약을 위배할 수는 없어.”

“그놈의 맹약이 뭐기에?”

“무한회귀를 할 때 오딘이 아스가르드의 일원 모두와 맺은 맹약이지. 자세한 내용은 맹약에 위배되어서 말을 하지 못하지만…… 우리의 운명을 오딘에게 건 거라고 보면 된다. 그를 창조주로 만들기 위해서.”

올림푸스도 비슷한 게 있을 거라고 이야기하는 로키.

자세한 맹약의 내용은 말하지 못하지만 어쨌든 위반은 못한다, 이거구만.

“어이구, 그럼 이자나 꼬박꼬박 내라. 안 내다가 채무추심 당하지나 말고.”

“채무추심당한다고?”

“그래. 예언처럼 불타 오르지나 말라고…… 아.”

“예언? 그게 무슨 소리냐. 또 다른 예언이 있었어?”

아 놔.

어째 말하다 보니 저번에 말 안 했던 세 번째 예언 이야기를 언급하게 되었네.

내가 로키의 시선을 피하자 그가 내 어깨를 꽉 잡았다.

“무슨 예언이야. 말해 줘.”

“너랑 오딘은 맹약으로 이어져 있다며. 다 그리로 넘어가는 거 아니야?”

“그런 맹약은 아니야. 그랬으면 내가 오딘 뒷조사나 하고 다녔겠냐? 야, 어차피 나는 네 채무자잖아. 나도 모르게 백억이나 빚진…….”

백억 이야기하니까 또 우울해지는 로키.

확실히 오딘에게 가서 꼰지를 거 같지는 않은데…….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채무추심을 당해 불타오르는 아스가르드.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불길에 휩싸이는 오딘.

그 장면이 바로 세 번째 예언이었지.

이걸 왜 오딘은 어떻게든 못 보게 하려고 한 걸까?

그 의도, 나 혼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파악할 수가 없었다.

한데 지금은 힌트가 하나 생겼어.

지금 로키의 말을 들어 보니, 오딘이 아스가르드 명의를 죄다 끌어 써서 내 SP 거래소에 막대한 빚을 졌다고 했지.

이 자식들, 그렇게 빚져놓고 갚질 않아서 불타오른 거 아닐까?

아스가르드 신계가 죄다 불타오를 정도면 대체 빚을 얼마나 떼먹으려고 했던 거야.

로키에게 자문을 구해 볼 만하긴 한데…….

이 녀석 믿어도 될지 의문이 들어.

“뒤통수의 달인을 믿고 이야기하기는 좀 그런데.”

“아, 대신의 격을 걸 테니 이야기해 줘. 지금 소울 배리어도 처져 있겠다, 딱이구만.”

“흠…….”

“오딘이 자꾸 이상한 짓을 하는 거, 아무래도 제우스랑 관련이 있는 거 같아. 이대로 제우스의 의도에 놀아나는 게 아닌가 걱정스러워서 그런다.”

“그래, 그럼 격을 걸어.”

그러자 ‘치사하게 진짜 걸라고 하냐?’ 투덜거리면서도 맹세를 하는 로키.

대신의 격을 걸고 발설을 하지 않겠다는 로키의 맹세가 시스템 창에 떴다.

[로키의 맹세를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시스템 창에 뜰 정도면 믿어도 되겠는데…….

좋아, 머리가 돌아가는 놈이니까 이 녀석에게 말하고 실마리를 좀 찾아보자.

“아스가르드 신계는 얼마 가치일까?”

“SP 적으로?”

“어.”

“어마어마한 가치지. 왜 그런 걸 물어? 설마…….”

“세 번째 예언에서는 아스가르드가 불타오르고 있었지.”

로키는 내 말에 굳은 표정으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SP 거래소에서 대출한다고 해도 그렇지, 한 신계를 파괴시키는 게 가능한 일인가……?”

“그래?”

“신계는 수없이 많은 신들이 거주하는 공간. 행성에 궁극적으로는 종속되나 평소에는 분리되어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지. 아무리 빚을 많이 졌다고 해도 세계가 불타오를 정도라고는…….”

신계 아스가르드.

신들이 모여 만든 세계인만큼 그 가치는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아무리 빚을 졌다고 해도 세계 자체가 파괴되기는 힘들다는 로키의 의견.

“조 단위의 빚 가지고는 아스가르드를 모두 불태우기는 힘들 텐데. 대신 몇이 사라진다면 모를까.”

“아스가르드가 아닌가? 하지만 오딘이 그렇게 이야기하긴 했는데……. 이게 아스가르드의 최후냐고 한탄했었지.”

내가 본 광경에 대해 이야기하자 로키는 아스가르드가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스가르드 내의 오딘 신전, 그게 불타오를 정도면 아스가르드는 끝이 났다고 봐야지.”

“그렇군.”

“스쿨드가 본 우리의 미래가 정말 그게 맞는 건가?”

“어, 난 그렇게 봤어.”

“뭐 다른 이야기는 없었고?”

로키의 말에 예언을 다시금 떠올려 봤다.

빼먹은 게 있었나?

아……!

“분명 내가 신위에 오른 걸 확인하고 봉인했다고 했지.”

“아아, 그거다.”

그러자 단번에 이해하는 로키.

“시스템의 페널티를 받았군! 페널티에 채무추심이 겹치면…… 그런 광경이 나타날 수도 있겠어!”

시스템의 페널티라면 그럴 수 있다고 납득하는 로키.

“시스템이 그 정도로 강력한가?”

“당연하지. 그 어떤 질서보다도 가장 위에 있는 게 시스템이다.”

예전에 폴룩스가 천사화 하니 마니 하던 시절.

B등급에 오르자마자 태도가 바뀌었던 게 이해가 된다.

시스템의 페널티가 이렇게 강력하다니…….

채무추심이 합쳐졌다지만 시스템의 페널티 때문에 아스가르드가 무너질 정도니까.

“S등급이 되었음에도 페널티가 있는 건가? 신위에 올랐는데도 페널티라니…… 시스템의 케어가 너무 심하군. 아무리 영혼신이라도 해도 그렇지…….”

로키가 나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내 생각에는 중립 진영 상태창이 아직 S등급이 안 돼서 그런 거 같지만…….

굳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지.

“스쿨드는 아스가르드를 위해 최선의 예언을 해 주었군. 널 건드리지 말라는. 근데도 오딘이 이를 무시하고 다른 신의 명의까지 써서 막대하게 대출을 끌어 쓴 건 문제가 심각하다.”

“그러게. 예언대로 되고 싶은 건가? 빚을 안 지면 애초에 채무추심당할 이유가 없잖아.”

“예언대로 되고 싶다고……?”

내 말에 로키가 눈을 크게 떴다.

“예언대로 된다면…… 오딘과 아스가르드는 멸망한다. 엄청나게 빌린 SP는 다 어디로 가고……? 그렇게 되면 결국 누가 이득이지?”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로키.

“우리가 없으면 올림푸스와 아스가르드의 동맹은 자동적으로 파기된다…… 동맹의 대가를 지불할 필요도 없어……. 창조주에 오르지 못한 진영도 같이 케어하기로 한 맹약을 지킬 필요가…… 커억!”

갑자기 입에서 피를 토하는 로키.

그의 몸이 순식간에 반투명해지고 있었다.

어, 뭐지?

소울 배리어는 굳건한데?

“보, 본체에 공격이…… 오딘……! 이 미친놈이……!”

급격하게 사라져 가는 로키.

그는 사라지기 직전, 나에게 한마디만을 남겼다.

“김지호, 아스가르드를 살려야 한다. 안 그러면 제우스에게 놀아나는 꼴……!”

말을 끝마무리 짓기도 전에 순식간에 소멸한 로키의 아바타.

오딘에게 걸린 건가?

유언처럼 아스가르드를 살려야 한다고 하고 사라지다니.

로키의 마지막 말이 신경 쓰였다.

창조주에 오르지 못한 진영을 케어하기로 했다고?

만약 제우스가 창조주의 직위에 올랐으면, 아스가르드를 팽하는 게 아니라 그래도 동맹이라고 케어해 준다는 의미인가.

그런데 이 상황에서 만약 아스가르드가 채무추심에 페널티를 맞고 불타오른다면?

그러면 제우스랑 올림푸스 쪽은 아스가르드를 케어할 필요가 없어지겠네.

알아서 사라져 줬으니까.

위이이이잉.

하나둘씩 생각을 점검하고 있자니, 갑자기 세상이 새하얗게 물들기 시작했다.

뭐지?

소울 배리어는 아직 해제하지 않은 상황.

거실 전체, 아니 거실 밖까지도 새하얀 빛으로 가득했다.

[아스가르드의 대표이자 지구의 관리자로서, 봉인지의 혼란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 지구의 하급신 김지호를 소환한다.]

빛 속에서 들려오는 위엄찬 음성.

이 목소리, 들어 본 적이 있다.

예전에 오딘이 나에게 전능안을 시전했을 때 들었던 목소리.

소울 배리어를 킨 상태로 창가 쪽으로 나가 보았다.

하늘 위에서 거대한 빛의 기둥이 아파트를 그대로 내리쬐고 있었다.

쿠구구구구.

아파트가 흔들리더니 서서히 아파트째로 하늘 위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이거, 소울 배리어 상태인데도 같이 끌려가게 생겼는데?

아직 생각을 정리하지도 않았는데 이대로 끌려가긴 좀 그렇다.

“헤임달의 귀환.”

아바타 교환을 쓸까 하다가 이건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 두었다.

좌표를 케브리안으로 찍고 헤임달의 귀환을 사용한다.

전신이 빛으로 물든다.

그와 동시에 공간을 격하려고 하는 순간.

[소용없다.]

쿵!

배리어째로 몸이 튕겨 나간다.

이런……!

아스가르드에서 받은 스킬이라 방비가 되어 있는 건가?

그렇다면 남은 건 아바타 교환.

이걸 쓰면 도망은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스킬까지 쓰면서 도망가는 게 최선일까?

이건 정말 최후의 수단인데.

거기에 쿨타임도 길고.

여기서 아바타 교환을 쓰면 안 될 거 같은 강한 예감이 들었다.

이거…… 업그레이드된 위험감지가 효과를 보이는 건가?

그래, 한번 가 보자.

오딘 놈이 무슨 짓거리를 하는지 두 눈으로 봐야겠어.

위험하면 아바타 교환으로 토끼면 되겠지.

계속해서 부유하는 몸.

헤임달의 귀환을 쓰다가 튕겨 나오고는 나 혼자만 하늘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아파트는 이미 땅으로 떨어져 부서지고 있었다.

아, 내 집…….

저번 집도 그렇고 지구 집은 뭐 남아나는 게 없구나.

마치 UFO의 빛에 빨려 들어가듯이 계속해서 하늘 위를 날던 내 몸.

최종 종착지는 커다란 보라색 포탈이었다.

포탈에 들어서자마자 내가 선 곳은 예전 예언에서 보았던 공간이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계단과 그 끝에 위치한 커다란 홀.

천장은 없이 하늘이 뚫려 있는데, 이 공간을 둘러싸고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폭풍우가 감싼 신전.

폭풍의 신 오딘의 신전다웠다.

“오랜만이구나. 이 모습으로 본 것은 처음인가?”

한쪽 눈을 검은색의 안대로 가린 거대한 인영.

땅까지 내려오는 새하얀 장발과 수염, 길게 내려온 새하얀 로브가 예언과 똑 닮았다.

지팡이를 들고 있는 것까지.

그의 붉은 눈이 번뜩이며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당신…… 오딘인가?”

“그래.”

“왜 나를 이렇게 강압적으로 소환한 거지?”

“네가 신들을 풀어 주는 바람에 이번 회차에서 아스가르드가 얻을 SP가 극도로 부족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느냐?”

지팡이 끝을 나에게 뻗어 오는 오딘.

그러자 계단에서 발키리들이 하나둘씩 걸어오기 시작했다.

계단뿐만이 아니라 하늘에서도 빛의 날개를 펼치며 나를 포위하는 발키리.

그 수는 이미 수백이 넘었다.

거기에 매우 강력한 힘이 느껴지는 게 적어도 A급, 간간이 S급도 보이고 있었다.

뭔 하급신이 발에 치이도록 많냐……?

“알아서 개입할 명분을 만들어 주다니, 고맙구나. 뭐, 그러지 않았어도 금방 소환했겠지만 최소한의 명분이란 게 필요한 법이지.”

“당신…… 시스템의 페널티가 두렵지 않은가?”

“후후……. 신위에 오른 자를 시스템이 보호해 준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이 자식, 스쿨드의 예언을 뻔히 봐놓고도 모르는 척해?

아무리 봐도 이 오딘은 정상이 아니다.

“로키는 어떻게 되었지?”

“로키? 그 배신자는 네가 신경 쓸 필요 없다.”

그가 지팡이를 땅에 쿵 꽂았다.

그러자 내 몸을 붉은색의 실이 감싸기 시작했다.

마치 밧줄처럼 내 몸을 꽁꽁 묶은 붉은 실.

이에 묶이자 움직이려고 해도 몸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SP 거래소의 지분을 내놔라. 이번에 SP 손해를 많이 보았으니, 20%는 받아야겠다. 그럼 풀어 주도록 하지.”

20%?

이거 완전 날강도네.

미쳤냐?

“싫은데?”

그러자 마치 그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 양 입꼬리를 쭉 올리는 오딘.

그 미소가 내 대답을 아주 반기는 것 같았다.

“그럼 봉인되거라.”

아니, 이렇게 바로?

붉은 실이 나를 조여 온다.

살이 그대로 베이며 어마어마한 격통이 찾아왔다.

크으…….

이야기를 좀 더 해서 오딘 놈의 정체를 알까 했는데 안 되겠다.

이제는 몸을 빼야겠어.

지금…….

지금이 아바타 교환을 쓸 적기다!

아바타 교환.

말문을 열지 않은 채 마음속으로 아바타 교환을 시전한다.

그러자 세상이 새까맣게 변한다.

“어…… 영체가…… 약간 사라지는 느낌이 듭니다. 오딘님.”

“신경 쓰지 마라.”

영체가 케브리안에 보관되어 있는 아바타로 이동되기 바로 직전 들린 목소리.

발키리의 걱정을 그대로 일축하는 오딘.

그 목소리는 평온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오, 씨발. 존나 아프네.”

몸이 움직인다.

주위를 둘러보니 땅굴 안.

엘프리안이 만들어 준 은신처인가?

살았구나.

아까 붉은 실.

대체 정체가 뭔진 모르지만 엄청 아프네.

몸이 바뀌었음에도 계속 몸이 저릿저릿해 전신을 주무르고 있자니 시스템 창에 메시지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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