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124화>
“저놈이 네가 믿던 침입자냐? 너무 늦었군.”
“크윽……!”
그가 축구 하듯이 발을 뻥 찬다.
그러자 내 쪽으로 날아오는 붉은 피부의 인영.
머리가 셋, 팔은 여섯인 삼두육비(三頭六臂)의 거인이다.
저거 아수란가.
왜 이리 약해?
자식이 잘난 척하더니 발렸네.
갑자기 시야가 붉어진다.
위험 감지의 신호.
“소울 배리어.”
스쿨드 덕에 업그레이드된 위험감지지만 궤적은 현재 시야에서 보이지 않는다.
일단 바로 소울 배리어를 쓴다.
쾅!
등 뒤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
재빨리 뒤를 돌아보니 폴룩스가 섬뜩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소울 배리어라니. 네놈, 김지호구나?!”
“폴룩스……!”
“네놈 덕에 봉인지에 처박힌 신세가 되었지. 이 원한, 오늘에야말로 갚아 주마.”
지가 내 뒤통수를 쳐 놓고는 어디서 성질이야??
똥 싼 놈이 성낸다더니 딱 맞는 이야기다.
휙.
폴룩스의 신형이 사라진다.
쿵, 쿵.
머리 위.
그리고 등 뒤에서 울려 퍼지는 충돌음.
황금색의 소울 배리어는 금 하나 가지 않은 채 탄탄한 상태다.
방어는 문제가 없어.
하지만 이대로 공격만 당할 수는 없지.
오랜만에 총력을 다해 싸워 보자.
“불사조 소환.”
[정말 오랜만이군, 주인.]
눈앞에 나타나는 불사조.
내가 S급으로 진화했기 때문일까.
예전과 크기는 비슷하나 그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이 어마어마했다.
“영력을 부여할게. 폴룩스를 견제해 줘.”
[알겠다.]
불사조에게 영기를 부여하자 몸이 새하얗게 변하는 블사조.
녀석에게 견제를 부탁하고, 영검을 꺼낸다.
쿵, 쿵.
“칫, 적당히 단단해야지……!”
계속해서 배리어를 두들기는 폴룩스.
그래도 배리어는 끄덕도 없다.
역시 레벨 50까지 올리길 잘했군.
배리어 상태를 지켜보며 영검에 영기를 부여한다.
삽시간에 솟아오르는 영검.
배리어를 뚫고 쭉 뻗어 나간다.
4, 5미터 정도로 길어진 길이.
여의 정도로 길이를 팍팍 늘릴 수는 없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
어차피 영체 간의 싸움.
공격이 닿기만 하면 SP의 양과 효율의 차이로 부딪치는 거 아닌가?
“이게 원조의 배리어인가……. 정말 쓸데없이 단단하군……!”
쿵. 쿵. 쿵. 쿵!
전후방 할 거 없이 모든 방위가 폴룩스의 주먹으로 뒤덮인다.
하지만 그 무엇 하나도 배리어는 뚫지 못한다.
이러면 그냥 솜방망이나 다름없지.
역시 스킬 효율이 내가 훨씬 나아.
공격만 하면 되는데…….
주먹은 보이는데 녀석의 몸은 보이질 않는다.
어디서 뻗는 건지 알 수가 없군.
그래도 5미터에 달하는 영검.
전방위로 휘두르면 하나는 걸리지 않겠어?
발치에 쓰러져 있는 아수라가 닿지 않도록 영검을 휘두른다.
그러나 검에 닿는 느낌은 전혀 없다.
펀치는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최대한 빠르게 검을 움직여도 폴룩스에겐 닿지 못했다.
“큭, 느리군.”
사방에서 떠오르는 폴룩스의 환영.
무슨 분신술을 펼치듯 잔영이 계속 남는데, 셀 수도 없다.
근데 검이 닿으면 스르르 사라지는 잔영.
공격이 하나도 적중하지를 못한다.
허…… 능력 차이가 이렇게 큰가?
같은 대신에 영체끼리 싸우는 건데?
콰지직.
[소울 배리어가 손상되었습니다. 복구를 위해 SP를 충전합니다.]
그런 메시지와 함께 빠져나가는 SP.
지금까지 얼마나 SP가 소모되었나 보니 1,000만이 소모되어 있었다.
SP를 충전하자 천만이 또 빠져나간다.
이거…… 이대로 계속 수세에 몰리면 안 좋은데……?
불사조도 폴룩스를 전혀 잡지 못했다.
[주인, 너무 빠르다!]
“겨우 불사조가 신을 따라올 수 있을 것 같은가?”
하, 열 받네.
배리어가 아직 굳건하게 받쳐주고 있으니 공격이 안 통한 거지, 이게 진작에 부서졌으면 이미 패배해서 봉인행이다.
휙. 휙.
“하하하! 너 같은 범부에게 영혼신의 자격이 주어지다니!”
공격을 단번에 휙휙 피하면서 날 조롱하는 폴룩스.
아오, 저놈 새끼.
영검을 아무리 휘둘러도 내 SP만 소모될 뿐 유효타가 없는 상황.
영검 맞추는 것보다 다른 수단을 생각해 봐야 한다.
쿵!
다시 부딪쳐오는 주먹.
튼튼하게 이를 막아서는 배리어.
흠…… 배리어.
그래 배리어는 적과 닿지.
여기에 영기발출을 담을 수 있을까?
바로 영기발출을 쓰니, 메시지가 뜬다.
[소울 배리어에 영기발출이 담깁니다. 보호의 효율이 줄어든 대신 적의 공격을 반사해 피해를 입힙니다.]
콰콰쾅!
“큭…… 반사라니. 하찮은 짓을!”
열심히 소울 배리어를 두들기던 폴룩스.
갑자기 그의 두 손에 황금빛 폭발이 일어난다.
그러자 공격을 멈추더니, 뒤로 휙 물러서는 폴룩스.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양 주먹을 바라본다.
그의 주먹, 이상하게 짓뭉개져 있었다.
영체 상태라 피는 나지 않을 뿐 주먹 일부가 떨어져나가 있었다.
“영혼신, 정말 골치 아프구나. 아버지 제우스가 그토록 경계한 이유를 알겠다.”
“너야말로 같은 하급신인데 뭐 이리 빠르냐?”
“하. 너 같은 녀석이 나와 맞먹으려고 들다니, 아무리 영혼신이라도 너무 오만하군.”
순식간에 재생하기 시작하는 폴룩스의 주먹.
그는 나를 보고 심호흡을 했다.
“그의 권능은 쓰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군. 영기발출……!”
폴룩스의 주먹이 새하얗게 점멸한다.
그러더니 피어나는 백염.
아니, 왜 영기발출을 저놈이 쓰고 있어?
헤라클레스 이놈은 소울 배리어만 털린 게 아니라 영기발출도 털린 거야?
다시 붉어지는 시야.
소울 배리어에 영기발출을 담고 몸을 피한다.
그에게 근접전투는 상대도 안 된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럼 남은 건 영기발출을 담은 용언이나 뇌신 등의 권능.
모든 방위를 점해서 피하지 못하게 해야 해.
근접 공격에 비해 효율이 반으로 떨어지지만 어쩔 수 없지…….
근데 광역기를 쓰려고 하니 방해물이 하나 있었다.
바로 형편없이 쓰러진 아수라 자식.
이 녀석이 영기발출에 담긴 공격에 적중당하면 죽겠지.
으이그, 쓸모없는 신 같으니라고…….
그가 공격에 안 닿게 뒤로 쭉쭉 물러선다.
전력을 다해 뒤로 물러서는데, 녀석은 나보다 조금 더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막상 속도 자체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런 거 보면 신체능력 차이가 큰 거 같지는 않는데…….
아수라가 닿지 않도록 적당히 물러난 채 하늘 위로 올라서서 스킬을 사용한다.
“뇌신.”
영기발출이 담긴 뇌신.
소울 배리어 밖으로 새하얗게 불타오르는 번개가 사방에 펼쳐진다.
절대 피할 수 없는 상황.
폴룩스는 이를 악물었다.
“소울 배리어.”
이 자식 소울 배리어도 쓸 수 있어?
아, 헤라클레스 자식.
아프로디테의 유혹에 넘어가서 왜 날 이렇게 고생시키냐?!
뇌신이 그의 소울 배리어를 파고들어 공격하려는 찰나, 폴룩스의 주먹이 먼저 닿았다.
쾅!
[소울 배리어가 반파합니다.]
[소울 배리어를 수복합니다.]
[SP가 크게 소모됩니다.]
새하얀 불꽃을 담은 주먹.
그 주먹이 내 소울 배리어를 그대로 강타한다.
영기발출을 쓴 폴룩스의 공격이라 그런가, 아까 간지럽던 수준의 일격이 아니다.
황금빛 보호막이 반 정도 파인 채, 커다란 주먹이 눈앞에 뚝 멈춘다.
그러더니 같은 부위에 이격, 삼격이 이어진다.
하나 부서질 것 같으면 재생하고, 부서질 것 같으면 재생하는 배리어.
폴룩스가 허망한 눈으로 내 소울 배리어를 바라본다.
“제기랄…….”
잔뜩 일그러지는 표정.
그의 주먹이 서서히 불타오르고 있었다.
반사 데미지에 그의 배리어를 뇌신이 살짝 뚫은 탓이다.
“소울 배리어.”
폴룩스는 뒤로 훌쩍 물러나더니, 소울 배리어를 다시 한번 사용한다.
그러자 불붙은 팔이 다시 사라지더니 서서히 재생하기 시작한다.
이거 그대로 봐줄 수는 없지.
다시 한번…….
“집중 강화, 뇌신.”
콰르르르!
번개를 쏘고.
“불사조, SP 아끼지 말고 그냥 싹 다 불 뿌려 버려.”
[알겠다.]
불사조를 공격시킨다.
삽시간에 하늘 세계는 계속해서 내리치는 번개와 새하얀 백염에 휩싸인다.
몸을 서둘러 피하는 폴룩스.
하지만 아까의 검격과는 다르다.
모든 방위를 완전히 점한 탓에 공격을 피할 수 없는 폴룩스.
뇌신과 불사조의 불길이 그의 소울 배리어에 닿았다.
그러자 그의 배리어가 반쯤 깨졌다.
화들짝 놀라 저 멀리 튀는 폴룩스.
“크으으! 이런 범부에게 밀리다니…… 영혼신……!”
뭐, 녀석에 비하면 범부는 맞지.
그래도 무예로는 딸리지만 있는 걸 잘 활용해야 하지 않겠어?
영기발출과 소울 배리어를 다 강탈하긴 했지만 스킬 레벨 자체는 딸리나 보군.
영기발출을 원거리 공격 수단에 담으면 효율이 반으로 떨어진다.
지금 영기발출 효율이 50레벨로 100배니까, 50배가 되는 상황.
근데도 그 효율 낮은 공격에 배리어가 반파되었으니…….
이거, 내가 영검으로 검격 한 방만 맞췄어도 금방 끝날 전투였겠어.
“하, 정말 세상은 불공평하군. 왜 네놈 같은 하찮은 재능에 그런 권능이 주어진 건가.”
“자식이 지도 신의 아들로 띵까띵까 산 주제에. 별로 고생도 안 했더만? 헤라클레스는 12과업이라도 겪었지.”
“하…… 헤라클레스의 12과업은 축복이다. 나 폴룩스, 헤라클레스에 비해 뒤지지 않는 자질을 지녔으나 녀석이 모든 과업을 가져가는 바람에 영웅으로서 이름을 남길 수는 없었지. 나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시련, 내가 수행했으면 내가 그 자리에 올랐을 텐데……!”
“에이, 어디서 헤라클레스랑 널 비교하냐? 난봉꾼 강간마 새끼가.”
무한정력이나 주는 녀석이 말이야.
“지금도 헤라클레스 스킬 쓰는 주제에 말이 많구만. 뇌신.”
거리를 이제 내 쪽에서 좁힌다.
뇌신에도 뚫리는 종잇장 같은 소울 배리어 따위, 단번에 무너뜨려 주지.
나와 불사조가 접근하자 굳은 표정을 하던 폴룩스.
입술을 꼭 깨물더니 주먹을 불끈 쥔다.
“형제여, 나를 도와 달라. 카스토르.”
카스토르라고 말하자 폴룩스의 오른팔이 쇳덩이로 변한다.
그리고 거기에 영기를 담는 폴룩스.
팔 전체가 새하얗게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아까와는 다른 위력.
흠, 좀 세 보이는데?
뇌신을 뿌리며 거리를 뒤로 벌린다.
지지지직.
폴룩스의 배리어를 감싸던 뇌신.
그가 몸을 피하지 않고 잠시 힘을 집중하는 동안, 무수하게 배리어를 두들기고 있었다.
계란 껍질이 깨지듯 금이 가기 시작하는 폴룩스의 배리어.
그는 서늘한 눈으로 자신의 배리어를 보더니, 오히려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러더니 사라진 신형.
주위를 살펴보니, 어느덧 아수라가 쓰러진 곳에 서 있는 폴룩스.
그는 왼팔로 아수라를 번쩍 들더니, 그대로 나에게 던진다.
“크, 크으으윽!”
뇌신에 닿자 비명 소리를 지르는 아수라.
이러다가 단번에 소멸할 각이다.
아, 이 도움 안 되는 새끼…….
확 같이 소멸시킬까 하다가 한번 봐줬다.
뇌신에 영기발출을 해제하자 그냥 감전만 당하는 아수라.
“내려가라.”
용언으로 가볍게 명하고 영검을 꺼낸다.
아수라가 떨어지자마자 그 자리로 치고 들어오는 폴룩스.
오른팔을 새하얗게 불태우며 나에게 접근해 온다.
포탄처럼 날아오는 게 기세가 심상찮다.
후, 엄청 빠르군.
하지만 이제 속도가 조금씩 눈에 익고, 위험감지로 공격의 궤적이 보였다.
아까와는 달리 최후의 일격이라 그런가?
빠르나, 루트가 보인다.
여기선 피하지 말고…….
영검을 뻗는다!
지지지직…….
빛의 검과 강철 주먹이 맞부딪친다.
서로 힘의 우열을 겨루듯 맞닿던 것도 잠시.
펑!
강철 주먹이 그대로 분쇄한다.
팔째로 산산조각이 난 채 그대로 불타오른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는 폴룩스.
그의 전신이 금방 새하얀 화염에 휩싸인다.
“크, 크으으…… 이 무슨 힘이란 말인가……?! 전력을 다했는데…… 카스트로의 힘과 결합했는데 내가 질 리가……!”
그대로 백염에 휩싸이는 폴룩스.
얼굴 표정이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이제 끝인가?
자식…… 진작 검으로 한 대 맞았으면 죽는 거였네.
“이렇게 되면……!”
고통에 몸부림치더니 시선을 아래로 돌리는 폴룩스.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삼두육비의 거인 아수라가 고통으로 뒹굴고 있었다.
“하앗!”
아수라를 향해 튀어 나가는 폴룩스.
뭐야, 아수라 죽이려고 그러는 거야?
도움은커녕 방해만 되었던 아수라지만 이대로 죽게 놔두기에는 뭔가 뒷맛이 개운치 않다.
“불사조, 아수라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
[알겠다.]
그러며 폴룩스의 등 뒤에 뇌신을 뿌린다.
몸이 불타오르는 와중에서도 번개를 휙휙 피하는 폴룩스. 이 자식, 무투파 신이긴 하구나.
하나 뇌신의 여러 줄기를 모두 피하지 못하고, 오른발에 직격당한다.
“크아아악!”
그러자 그대로 꼬꾸라지며 추락하는 폴룩스.
구름 위에 몸이 닿을 때쯤에는 이미 사지가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가슴과 목만 남은 채 고통의 절규를 토해 내는 폴룩스.
영체도 이미 회복하지 않는다.
“크, 크아…… 영기발출을 쓴 이상…… 대신 하나라도 죽여야 하는데…….”
“잘 가라, 내 첫 번째 수호신.”
푹!
그의 가슴에 가볍게 영검을 꽂는다.
그러자 눈빛이 사라지는 폴룩스.
“네…… 놈…….”
끝까지 원한에 찬 눈빛을 한 채 사라진다.
독한 놈…….
그래도 녀석이 내 최초의 수호신이라 그런지 뭔가 복잡미묘한 감정이 스쳐 지나간다.
그래도 처음에는 괜찮은 관계였는데 말이야……
“으아악! 사, 살려 주게! 빨리. 나 죽는다!”
갑자기 옆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
여섯 팔을 마구 허우적거리면서 발광하는 아수라.
아까 뇌신 조금 맞고 몸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하아, 저 도움 안 되는 놈…….
끝까지 진상이구나.
나는 아수라에게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