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122화>
122 로키, 의심하다.
SP 거래소 때문에 직접 여기까지 현신한 건가?
“아니, 신이 이렇게 지구로 와도 돼?”
“이건 내 아주 약한 아바타에 불과하지. 협상용이야. 이 정도는 좀 지구에 강신해도 괜찮아.”
어깨를 으쓱하며 여유롭게 이야기하는 로키.
여신으로 변했던 놈이니, 뭐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은가?
“SP 거래소 때문에 왔다고?”
“응, 우리의 거래 때문에 왔지.”
“그건 이미 오딘 강림 이후에 쫑 난 거야. 내가 안 한다고 꽤 많이 말한 거 같은데…….”
나한테 전능안을 써서 조종하는 오딘네한테 지분 줄 거 같냐?
에슈타르에 한 달 동안 있는 사이 에슈타르를 관리하는 프레이야를 통해서 꽤 많은 메시지가 왔었다.
제발 계약하자고.
하지만 수상쩍은 아스가르드와 굳이 계약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싹 다 거절했지.
“SP 거래소 이미 개설했다. 너희한테 줄 지분은 없어.”
“SP 거래소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자본이 필요하지 않아?”
“야, 자본이 필요하긴 무슨. SP 거래소에 지금 맡긴 예금이 얼만지 알기나 하냐?”
“얼만데?”
눈을 반짝반짝하며 물어보는 로키.
아, 이런 놈한테 사실을 다 알려 줘서는 안 되지.
“그냥 어마어마하다고 알아 둬. 니가 원래 얼마 준다고 했냐?”
“크흠, 2억이었지.”
하, 2억……
SP 거래소 레벨 10.
예금 한도 50조.
50조는 좀 큰 액수인지 아직 예금이 꽉 차진 않았다.
거래소 레벨 11로 업그레이드 하려고 하니까 비용이 10조가 필요했다.
SP 거래소의 예금 한도 10%씩 투자가 가능했는데, 이게 불가능해진 셈.
5조만 예금에서 투자 가능하니, 나머지 5조는 구해야 하는데…….
2억도 아껴서 주던 놈들이 5조를 줄 리가 없지.
“하. 2억…… 조 단위로 들어간다는 것만 알아 둬라.”
내가 조 단위라고 말하자 두 눈을 크게 뜨는 로키.
“조? 0을 하나나 둘 정도는 빼고 센 거 아니야?”
“0을 빼긴 무슨. 난 이 세상에 대신이 그렇게 많은 줄은 처음 알았다.”
그와 말하다 보니 자연스레 팔짱을 끼고 있는 나.
사기의 신 로키에게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
“내가 개설하기 전이면 모를까, 지금 너한테 지분을 팔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조 단위라…….”
로키는 잠시 눈을 껌뻑이며 생각하더니 두 손을 든다.
“뭐, 이렇게 되면 지분 얻을 방법이 없지. 호구인 상태였을 때 지분을 얻어 내야 했는데, 이건 뭐 그러기도 쉽지 않고.”
응? 의외로 금방 물러서는 로키.
일어났던 몸을 다시 소파에 뉘인 채 커피를 한잔 다시 마신다.
“영혼신 김지호, 네 목표는 뭐냐?”
“뭐긴, 일단은 생존이지.”
“생존? 널 건드리는 존재가 누가 있다고?”
“글쎄다. 오딘은 나를 잘만 조종하던데.”
내 말에 머리를 긁적이는 로키.
한숨을 푹 쉰다.
“하…… 왜 오딘 님은 쓸데없는 짓을 해서 네 경계심을 이렇게 산 거냐.”
정말 영문을 몰라 하는 로키.
흠…… 이 녀석은 스쿨드의 예언 같은 거 모르나?
아스가르드를 대표해서 여기저기 빨빨 돌아다니는 거 같으니 알 거 같은데……
일단 물어보자.
“넌 몰라?”
“뭘?”
“오딘이 나에게 죽이라고 한 신 말이야.”
“그거 관우잖아. 내가 적당한 신을 골랐다만……. 다른 신을 데려가려고 하니까 그 녀석이 먼저 비장하게 자기의 목숨을 걸겠다고 했지. 하급신이지만 기개가 있었어.”
흠흠, 하면서 차를 한잔 더 마시는 로키.
이 자식, 진짜 모르네?
“내가 죽인 건 스쿨드인데?”
쨍그랑.
두 눈을 크게 뜬 채 놀란 얼굴을 한 로키.
그의 손에서 떨어진 찻잔이 그대로 바닥에서 깨져나간다.
아, 이 자식. 남의 집에서 이게 뭔 행패야.
“뭐……? 네가 그녀를 어떻게 아는 거지? 아니, 스쿨드는 오딘께서 중요한 사안이 있다고 데려가셨는데…… 정말 스쿨드가 맞냐?”
“어, 맞아. 니네 신 미래의 신 스쿨드.”
로키는 대신이라 그런가.
오딘의 사도 아리아는 스쿨드를 언급해도 관우라고 알아듣더니, 확실히 그의 반응은 달랐다.
그는 세 상없을 심각할 표정을 짓더니 나를 제지했다.
“아, 잠깐.”
로키가 손가락을 툭 친다.
그러자 방 안에 뭉게뭉게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이 상태에서 말해 봐.”
“뭐야 이건?”
“혹시 모르니까 연막을 친 거다.”
엄청나게 진지한 얼굴.
언제나 장난스럽던 녀석이 이런 표정을 지으니 낯설었다.
“몰랐어?”
“당연히 관우인 줄 알았지.”
“오딘이 마련한 장소에 가니 스쿨드가 있던데. 그녀는 아스가르드의 운명에 대해 예언을 했다가 오히려 오딘에게 끌려왔다고 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스쿨드 처형에 대해 이야기했다.
제우스가 오딘을 공격하고, 또 다른 예언을 보았다는 스쿨드.
그걸 오딘에게 알리니 오히려 그녀가 유폐되었고, 종국에는 사형 선고까지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물론 로키를 완전히 믿을 수는 없으니 세 번째 예언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저 오딘이 이에 대해 나에게 아는 게 있냐고 윽박지른 게 있다는 식으로만 말했다.
로키는 그래도 아스가르드 편일 텐데, 채무 추심으로 아스가르드가 죄다 불타오르는 거까지 이야기할 필요는 없지.
내 말을 듣자 심각한 표정을 짓는 로키.
몇 번이고 ‘아닌데…….’ 하면서 고개를 흔든다.
“정말 그 ‘예언’이 맞았나?”
“내가 어떻게 아냐. 난 단지 들었을 뿐이야.”
그래.
신살 클리어가 이렇게 쉽다니, 개꿀!
……하면서 갔다가 스쿨드가 나오고, 오딘이 날 지배하고 별꼴 다 봤지.
차라리 관우였으면 머리가 이렇게 복잡하지는 않았겠다.
“하아, 네 말이 사실이라면…… 난 더 이상 오딘 님을 믿을 수가 없다.”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그리 말하는 로키.
“제우스가 오딘 님을 공격했는데 밀렸다고 했지?”
“응.”
“신들의 싸움, 그 정도 대신의 싸움에서 밀렸으면 사실 그때 끝이 난 거나 다름없다. 스쿨드 같은 중급신이 보기에도 밀릴 정도라면…… 사실은 완전히 진 것이나 다름없지.”
로키는 초조한 눈으로 자신의 엄지손가락 손톱을 깨물고 있었다.
저 자식, 이렇게 동요하는 건 처음 보네.
“어떻게 보면 그때 두 대신은 올림푸스와 아스가르드의 명운을 건 승부를 이미 결정지었을지도 모르지.”
“뭐…… 그거야 그런데, 예언이잖아. 먼 미래에 생길 일 아니야? 어차피 니네도 둘 중 하나가 창조신 될 거면 마지막엔 싸우지 않겠어?”
“그건 그래. 하나 미래에 싸울 일이었으면 왜 오딘 님이 스쿨드를 숙청했지? 오히려 그녀에게 고마워해야 하지 않나? 자신이 지는 상황을 예언해 줬으니 더욱 준비를 철저히 할 거란 말이다.”
음…… 그건 그렇지.
나도 내가 정말 중요한 승부에서 졌다는 예언이 나오면 이를 어떻게든 뒤집으려고 했겠지.
그 예언을 한 사람을 굳이 처형시키지는 않았을 거 같아.
또 어떤 미래를 예언해 줄지 어떻게 알고 사형을 시켜?
“네 말을 들으니 지금 내 머릿속에서는 상상하고 싶지 않았던 가능성이 떠오른다.”
“뭔 가능성?”
“이미 오딘 님, 아니 오딘이 제우스에게 패배했을 가능성.”
가능성이 떠오른다고 한 주제에 이미 님 붙이는 걸 빼고 있는 로키.
그에게서는 묘한 확신이 느껴졌다.
오딘이 이미 제우스에게 졌다고?
그러기에는 너무 쌩쌩하게 활동하던데…….
전능안도 쓰고 말이야.
하나 로키는 내 의문과는 상관없이 이미 자기 확신에 들어간 상태였다.
“네가 생각하기에 올림푸스와 아스가르드, 둘 중 누가 우위인 거 같냐?”
갑자기 뜬금없는 내용을 물어보는 로키.
“나야 모르지.”
“그냥 찍어 봐.”
“글쎄.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래도 아스가르드보다는 올림푸스가 좀 더 익숙하지.”
북유럽 등 다른 동네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스가르드보다는 아무래도 올림푸스의 제우스 포세이돈 하데스 이런 신들이 더 유명하지 않겠어?
행성 이름도 생각해 보면 올림푸스 신 딴 게 많잖아.
내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로키.
“맞아, 우리의 인지도는 올림푸스에 비하면 뒤처지지.”
“내 상식선에서는 아무래도 올림푸스 신들이 더 익숙해. 에르, 아니 헤르메스도 가방 브랜드잖아.”
“뭐, 네 말이 맞다. 올림푸스의 개념이 지구에선 더 널리 퍼져 있지.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는 올림푸스에 비해서 약세다.”
로키는 잠시 주저하더니 말문을 이어 갔다.
“애초에 이 회귀의 대계도 그들이 먼저 고안한 것이지.”
“엑, 그래?”
“그래, 오딘께서는 제우스의 제의를 받아들이셨지. 아스가르드 내에서는 반대의 의견도 몇 있었지만 결국 창조신을 위한 길에 모두가 동참하기로 했다…….”
결국 이 무한회귀도 제우스가 시초구만?
제우스의 꼬드김에 넘어간 아스가르드가 그냥 그를 도운 격이네.
“아스가르드는 그러면 뭐 주도적으로 하는 게 없네?”
“올림푸스에 비하면 그런 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우스의 의도에 계속 끌려다닌 거 같아. 오딘에게 몇 번 말했지만 괜찮다면서 내 의견을 묵살했었지……. 그래…… 원래의 교활한 오딘답지 않았어.”
이상하게 올림푸스와 관련된 일이라면 편들어 주는 일이 많았다고 회상하는 로키.
그의 얼굴은 이미 잔뜩 일그러진 채였다.
“내 개인적으로 오딘을 조사해야겠다.”
세 번째 예언도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벌써 불타오르고 있구만.
그래도 아직은 완전히 믿을 수 없으니 알려 주지 말아야지.
이미 SP 거래소에 대한 계약은 안중에도 없었다.
“어…… 그래. 그럼 SP 거래소에 대한 계약은 뭐, 끝내는 걸로?”
“음…… 그거 말인데. 1%라도 주면 안 되나?”
이 자식이 어디서 꼼수야.
“안 되는데.”
“아. 야, 궁금하지 않아? 내가 그래도 어느 정도 실적을 들고 가야지 조사도 하는 거라고. 내가 정보 너한테 샅샅이 알려 줄게.”
“지분이 더 아까운데? 그래, 5조 주면 팔아줄게.”
“야, 5조 있으면 이미 창조신 됐겠다.”
5조가 그 정도의 가치냐?
조는 조 단위구만…….
어쨌든 안 되는 건 안 된다.
내 완강한 거부에 혀를 차는 로키.
“쳇, 어쩔 수 없지. 그럼 이건 가능하냐?”
“뭐, 또?”
“봉인된 신들, 풀어 버려.”
갑자기 봉인된 신들 이야기를 하는 로키.
“잉? 봉인된 신이라니?”
“다 안다. 자식아.”
음…… 내가 그들과 연락을 한다는 걸 역시 알고 있었나?
일단은 모르는 척했다.
“아냐, 뭔 소리 하는지 모르겠는데?”
“돼도 않는 연기 하지 마라. 눈동자가 아주 벌벌 떨리고 있거든? 사기의 신 앞에서 어딜 사기 치려고 그래.”
“쩝…… 뭐 어디까지 아는 거야?”
“봉인된 신들이 풀려나기 위해 발악하는 건 알고 있지.”
그러며 나를 보며 씩 웃는 로키.
“너와의 관계도 짐작 중이다.”
“후…… 그런 건 또 어떻게 다 파악하는 거야?”
“나 로키다.”
“근데 다 아는데 왜 제재를 안 해?”
“봉인지는 올림푸스가 주로 관리하거든. 거기서 문제가 터지면 우리보단 올림푸스 쪽이 피해를 입지. 아직은 동맹 관계니 천천히 터뜨릴까 했는데, 안 되겠어.”
오딘이 제우스에게 당한 게 아니더라도 지금의 격차를 따라잡기 위해서라도 봉인지를 뒤엎어야겠다는 로키.
“지금 봉인지를 지키는 건 폴룩스. 비록 하급신이지만 제우스의 피를 이어받아서 그런지 꽤 강하지. 그가 중급신이 되지 못한 건 승급 조건이 까다로워서라고 들었어. 봉인된 신 중 강력한 무신들도 많지만 SP가 딸리니 폴룩스를 이기기 쉽지 않을 거야. 네가 필요할 거다.”
“흠…….”
“정체를 들키기 싫으면 봉인만 해도 될 테지만 전투를 한다면 폴룩스는 아마 네 정체를 알아챌 거야. 그냥 죽여 버려. 어차피 봉인지 풀리면 대혼란이 올 테니 폴룩스 따위에 신경 쓰진 않을 거다.”
그냥 죽여 버리라고 하니 신살 퀘스트가 떠올랐다.
중립 진영의 신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 신살.
폴룩스를 처단해서, 이 퀘스트 조건을 클리어해야 하나…….
흠, 근데 봉인지를 풀어서 신들이 다 풀려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봉인지의 신들을 풀면 어떻게 되는 거야?”
“인간들은 혼란에 빠지겠지. 우리가 신앙을 강탈한 대상들이 돌아온 거니까. 신들이 풀린 직후라면 약한 상태라 다시 제압하면 되겠지만 저번처럼 쉽게 제압은 안 당하겠지.”
“흐음…… 혹시 그럼 이 무한회귀도 멈추나?”
“그건 모르겠다. 가능성이 반반이야. 하지만 판을 뒤흔들 필요는 있으니까. 이대로 쭉 시간이 지나면 결국 제우스가 창조신이 될 거다. 꼭 스쿨드의 예언 때문만은 아니더라도 이미 격차가 체감될 정도야.”
거 참.
이대로 올림푸스가 이기느니 판을 뒤엎겠다는 건가.
나야 그 사이에서 꿀을 빨면 되지만…….
역시 동맹은 영원하지 않네.
“봉인지 풀면 결국 너희도 피해 입는 거 아냐?”
“괜찮아. 피해는 올림푸스가 더 볼 테니까. 내가 묵인할 테니 깽판 치고 와. 폴룩스가 강하다지만 넌 영혼신이니까 이길 수 있겠지.”
“야! 계약하자, 계약.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밝히지 않겠다고.”
“하, 참. 계약 참 좋아해, 김지호. 오딘의 상황에 따라 이젠 니네 쪽에 붙을까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고.”
“누가 받아 준 대냐? 일단 계약해.”
투덜거리면서도 순순히 계약을 진행하는 로키.
봉인지에 관해선 입을 막겠다고 다짐을 받았다.
“그럼 기대하마. 난 오딘을 조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