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113화>
113 신살(神殺) (1)
집에 돌아오자마자 또 협회로 걸어갔다.
이번에는 좀 느긋하게 생각도 할 겸 택시를 탔다.
“손님, 어디 가시죠?”
“역삼역 헌터협회 본부요.”
“네, 알겠습니다.”
차가 움직이자 뭔가 느낌이 낯설었다.
요즘 하도 A급 던전 뺑뺑이만 돌면서 마법으로 날아다니니 이런 문명의 이기를 누리질 못했네.
“후우…….”
신살.
영기발출로 죽여야 하는데 여기서 영검을 꺼내도 되나 의문이다.
영혼 약탈자 스킬 레벨은 지금 모두 19.
헤라클레스의 멘토링 덕분에 필요 SP가 대폭 줄어서 가능한 쾌거였다.
아직 멘토링 효과가 완벽하진 않은데…….
지금 SP를 좀 투자해서 올릴까?
영혼약탈, 특성흡수, 영격강화, 영기발출 스킬을 다 하나씩 올리면 각각 500만씩 2천만이 들었다.
흠, 올려야겠어.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더 할인된 SP로 올릴 수 있겠지만 지금 지르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리 생각해서 스킬 4개를 다 20레벨로 만들자 메시지가 주르륵 떴다.
대부분 레벨 20을 찍고 효율이 대폭 상승했다고 나왔는데, 영기발출을 20 찍으니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영기발출의 효율이 대폭 증가합니다. 이제 SP 소모량의 40배만큼 적의 SP를 소모시킵니다.]
[근접공격 외에도 마법과 투척 무기 등 원거리 공격에서도 영기를 담을 수 있습니다.]
[원거리 수단의 경우 효율이 반으로 감소합니다.]
원래대로라면 레벨이 1개 오를 때마다 효율이 1배씩 올랐다.
그래서 19 땐 28배였는데, 20이되니까 40배로 껑충 뛰었다.
거기에 원거리 수단도 가능하면 이거 뇌신이나 마법에도 영기를 담을 수 있다는 뜻인데.
좋은데?
물론 영검과 함께 싸우는 게 훨씬 효율이 좋으니 원거리는 부가적인 수단이지만 어쨌든 스킬 강화한 보람이 있었다.
거기에 추가로 뜨는 메시지.
[영혼 약탈자 클래스의 스킬, 소울 배리어를 습득했습니다.]
[소울 배리어 LV.1]
[SP를 소모하여 보호막을 형성합니다. 범위가 넓어질수록 소모되는 SP가 많아집니다. 영력이 담기지 않는 공격, 마법은 모두 흡수하며 SP 소모량의 40배까지 보호할 수 있습니다.]
헤라클레스가 외부와의 시선을 차단할 때 썼던 황금색의 소울 배리어.
외부의 감시도 마법적인 수단이니까 이것도 차단하나 보다.
레벨 업 하면 SP가 얼마나 드나 궁금해서 보니 1레벨에 100만 SP가 들었다.
그 많던 SP도 다 써서 이제 300만밖에 없는 상황.
흠, 300만은 남겨 둘까?
신살할 때 SP가 필요할 테니까.
“손님, 다 왔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택시에서 내린 후 협회로 느긋이 걸어갔다.
“김지호 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미리 나와 있던 발키리 한 명이 나를 보고 허리 숙여 인사했다.
그러더니 데리고 간 곳은 협회의 지하 공간.
협회 1층의 깊숙한 곳에 숨겨진 엘리베이터를 타고 B10으로 갔다.
“안녕하세요, 김지호 님. 너는 이만 물러나거라.”
발키리 대장 아리아가 나를 보고 싱긋 웃다가 나를 데려온 발키리에게 싸늘한 어조로 축객령을 내렸다.
그러자 바로 고개를 숙이며 황급히 나가는 발키리.
부하한텐 무서운 대장인가.
지하 10층 공간을 둘러보았다.
지하 공간은 건설할 때는 주차장으로 만든 듯 아스팔트가 쭉 깔려 있었다.
하지만 차는 한 대도 보이지 않고, 대신 인간 동상만 쭉 늘어서 있었다.
마치 예전에 만신전에 갔을 때 보았던 대리석 석상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이건 철로 만들어진 게 다르긴 했지만.
내가 동상을 지켜보자 아리아가 옆에서 설명해 주었다.
“이들은 에인헤랴르입니다. 세계의 종말 라그나로크를 대비하여 발할라에서 영원히 싸우기로 약속된 전사들이죠.”
“아하, 그렇군요. 근데 왜 여기 있죠?”
“세계의 종말에 대비하고 있는 거죠.”
그러며 손가락을 대지 위로 향하는 아리아.
아니, 올림푸스랑 아스가르드가 결탁해서 세계 회귀를 하는 바람에 혼돈이 쳐들어오는 거구만……?
아주 정의의 사도 납셨네.
흠…… 하긴, 발키리 대장이면 정보를 다 알지 못할 수도 있지.
부하 입장에선 모시는 신이 정의라고 생각하겠지, 쩝.
에인헤랴르 동상을 보니 다들 우락부락한 전사인 게 한 가닥씩 하게 생겼다.
그래도 거인처럼 큰 애들은 없네.
“예전에 올림푸스의 만신전에서도 비슷한 걸 봤는데 여긴 거인은 없네요.”
“반신의 경지에 이르면 거인화가 가능하지만 모두가 되는 건 아니지요. 김지호 님도 거인화는 불가능하지 않으신가요?”
“예, 딱히 그런 기능은 없네요.”
“클래스별, 소속별로 차이가 있지요. 발할라의 전사들은 거인화는 할 수 없지만 다른 방면으로 강하답니다.”
그렇게 하며 주제를 돌리는 아리아.
“로키 님에게 들었습니다. 신을 죽이셔야 한다고요.”
“네.”
“사실 그 대상이 방금 변경되었습니다. 아마 로키 님도 지금은 모르실 겁니다.”
그러며 안타까운 표정을 하는 아리아.
왜 저런 얼굴이지?
“원래는 하급신 관우였습니다만…….”
헐, 관우?
관우도 신인가? 실존 인물인데…….
중국에선 신으로 모셔졌으니 하급 신 정도는 되는 건가.
근데 그 관우 대신 누굴 죽이라는 거야?
“김지호 님이 죽여야 할 상대는 중급 신 스쿨드입니다.”
“스쿨드…… 요?”
관우는 알겠는데 스쿨드는 모르겠네.
나의 반문에 아리아는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스가르드에는 운명을 다루는 세 여신이 있습니다. 스쿨드는 그중 막내로 미래를 담당하죠. 대신급까지는 되지 않으나 중급 신의 경지에는 충분히 올라 있습니다.”
미래를 담당하는 시간의 신, 스쿨드.
아스가르드가 자신들의 신을 스스로 죽인다니? 도무지 믿겨지지가 않았다.
아리아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저도 믿기지는 않지만 오딘 님께 직접 명이 내려온 상황입니다.”
“왜 아스가르드가 아스가르드의 신을…….”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딘의 직속 발키리, 명을 그대로 받들어야 하는 입장입니다.”
왜 시간의 여신을 죽이라고 하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담당하는 게 미래니까, 뭔가 보이고 싶지 않은 미래가 있는 걸까?
그럴 게 뭐 있나…….
거기에 그냥 봉인시키는 것도 아니고 죽이려고 하네.
“그런데 그녀가 SS급 신이면 신살을 하기가 힘들지 않을까요?”
“그래서 오딘 님께서 자신에게 영혼 거래를 해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SP 2천만을 더 주겠다면서. 거의 봉인상태이기에 그 정도면 충분할 거라 하셨습니다.”
중급 신을 죽이는 대가로 보너스를 주는 오딘.
왜 그런지 머리가 복잡했지만 일단 지금은 주는 SP를 받자.
영혼 거래 창을 열어 오딘을 작성하니 뜨는 오딘과의 거래창.
그가 단번에 SP 2천만을 하사하자 거래가 종료되었다.
SP는 어느새 2,300만으로 늘어나 있는 상황.
“그럼…… 이쪽 포탈에 여신 스쿨드를 구금해 두었습니다. 포탈에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녀가 가리키는 붉은색 포탈에 들어섰다.
포탈을 지나서자 나타난 공간은 사방이 번개로 번쩍이는 땅이었다.
황량하게 메마른 대지.
비바람은 없는데 그냥 번개만 쾅쾅 내리찍고 있었다.
특히 내가 서 있는 땅 주변에는 번개가 포위하듯이 계속 내리치고 있었는데, 눈이 하도 번쩍거려서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내가 서 있는 이 땅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폭풍의 눈 속에 있는 것처럼 완전히 번개와 단절되어 차단된 공간.
그리고 그 평온한 땅 위에 검은 머리의 여인이 전라가 된 채 사지가 결박당하여 누워 있었다.
그녀의 사지는 대자로 쭉 뻗어 있었는데, 손과 발을 전기가 넘실거리는 밧줄이 묶고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이 산발되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나체인 몸에는 재생되지 않는 상처가 가득했다.
원래라면 아름다웠을 몸이 흉측하기 그지없었다.
“당신은…….”
전기의 사슬에 묶여 있던 여신 스쿨드가 고개를 들었다.
초점 없이 희망이 사라진 눈.
아스가르드의 대신 오딘에게 버림받은 걸로 모자라 고문까지 당한 건가?
보니까 불쌍하기는 하네.
“왜 아스가르드의 여신인 당신이 오딘에게 버림받았죠?”
내가 물어보자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드는 스쿨드.
사지를 묶은 전기 사슬이 지지직거리자 고통에 표정을 찡그린다.
“오딘에게 전하세요. 저는 절대 굴복하지 않을 거라고! 아무리 당신이 절 고문한다 해도 저는 절대 예언을 털어놓지 않을 겁니다.”
말 자체는 기세가 좋았지만, 얼굴과 목소리는 그렇지 않았다.
억지로 힘을 쥐어짜는 느낌.
어쩔 수 없이 버틴다는 인상이 강했다.
그래도 내가 오딘 편이라고 생각하는지 이를 악물며 날 노려보고 있었다.
“전 오딘 편이 아닌데요.”
“허튼 수를 또 쓰는군요.”
아예 믿지를 않는다.
그 예언이 뭐기에 저러는 걸까?
괜히 궁금해지는데…….
주위를 둘러보았다.
번개가 계속 내리찍는 대지.
뇌전을 담당하는 오딘의 땅이라고 아주 내세우는 느낌이었다.
여기서는 무슨 대화를 해도 감청당할 것 같다.
감시의 눈을 피할 겸 소울 배리어를 써 볼까.
2천만도 있겠다, 사용해 볼 만해.
“소울 배리어.”
[SP가 5만 소모되었습니다.]
[외부와 현재의 공간을 차단합니다.]
헤라클레스가 보여 줬듯이 황금색의 배리어가 내 몸에서부터 퍼져 나간다.
번개가 치지 않는 공간을 완전히 장악한 보호막은 나와 스쿨드를 둘러쌌다.
그러자 놀란 눈으로 날 쳐다보는 스쿨드.
“당신…… 영혼 각성자입니까?”
소울 배리어 하나만으로 정체를 파악하는 건가?
정보가 빠삭하구만.
그래도 설득은 쉬워지겠다.
“네, 저들이 영혼 각성자인 저에게 당신을 죽여 달라고 했거든요.”
“오딘……! 나를 소멸시키려고 하다니……! 당신은 어디까지 악해질 것입니까……!”
분한 표정을 짓는 스쿨드.
그녀는 이를 악물더니 나를 보고 말했다.
“당신이 정말 영혼 각성자라면 영기발출로 제 다리를 잘라 주세요.”
“진심이십니까?”
“예, 그래야지만 당신이 영혼 각성자인 것을 믿겠습니다.”
근데 영혼 각성자가 오딘 편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자기 다리를 잘라 준다면 확신을 한다니…….
뭔 생각인지 모르겠네.
뭐, 어차피 죽여야 할 상대.
다리 먼저 잘라 주자.
그녀가 영혼 각성자인 걸 믿으면 뭔가 새로운 사실을 풀어낼지도 모르니까.
나는 영검을 꺼내 영기발출을 했다.
곧 새하얗게 일어나는 검기.
그걸 보자 스쿨드는 오히려 얼굴이 환해졌다.
자기 다리를 잘라 주는 데 환해진다니…….
이 여자도 제정신은 아니야.
서걱.
[SP가 50만 소모되었습니다.]
“아아아아악!!”
엄청난 비명을 내지르는 스쿨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영기발출에 당한 이들은 엄청난 고통을 호소했다.
SS급 신이라고 해도 예외가 없는 것일까.
그녀의 왼쪽 다리가 썩둑 잘려 나가며 영체로 이루어진 왼쪽 다리까지 완전히 타올랐다.
일그러진 얼굴로 자신의 다리가 완전히 사라지는 모습을 보던 스쿨드.
손으로 자신의 잘린 다리 자리를 휘저으면서 확인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자…….
갑자기 미친 듯이 광소를 터뜨렸다.
“흐…… 흐흐흐…… 크흐흐흐……! 키히히히히……!”
아, 이 여자 뭔가 무서운데.
자기 다리가 잘린 데다가 엄청난 고통이 엄습할 텐데 오히려 광소를 짓고 있다.
눈에서는 피눈물까지 흐르는데도 미친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크히히히…… 좋아요, 당신. 정말 맞군요. 당신이 대적자가 맞아요.”
“대적자는 또 뭡니까?”
“제 예언 속에 나오는 인물이죠. 오딘을 파멸시킬 대적자. 그를 끌어내리고 새로운 세계를 열 영혼신……. 그게 당신이었군요…….”
대적자?
스쿨드가 본 미래에서 나와 아스가르드는 그 정도로 원수였나?
뭐, 적의가 없던 건 아니지만 그녀가 미래를 본 것처럼 오딘을 완전히 파멸시키고 새로운 세계를 여는 영혼신이라기에는…… 흠……
지금 솔직히 내 한목숨 살기도 바쁜 데 말이지.
“엄청 거창한데…… 저는 아직 A급밖에 안 되는 애송이인데요.”
“아니, 맞아요. 당신밖에 없어요. 당신이 아니면 안 돼요.”
그녀는 좀 전의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제스처와는 전혀 다른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
그녀는 미치고 있었다.
광소를 터뜨리며 ‘오딘아, 이것 봐라. 내가 맞다’고 계속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이대로 사라지지만 오딘 너는 완전히 파멸할 것이다. 내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지 못하는 게 한스럽구나!!”
혼자서 오딘에게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스쿨드.
원바탕은 여신답게 초절정 미인인데 하도 악에 받친 모습만 보니까 살짝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제가 대적자면 당신의 예언이나 들려주시죠.”
“후후후, 좋아요. 제가 본 광경을 알려 드리죠…….”
그녀가 말을 이으려고 하자, 갑자기 메시지 창이 뜨기 시작했다.
[소울 배리어에 강력한 공격이 들어옵니다.]
[SP가 더 필요합니다. 충전하시겠습니까?]
그 메시지에 사방을 둘러보니, 황금색 배리어를 향해 번개가 미친 듯이 쏘아지고 있었다.
쾅! 쾅!
커다란 폭발음까지 곁든 채 배리어를 넘으려는 뇌전.
여기서 SP를 충전하지 않으면 분명 뚫리겠지.
스쿨드도 배리어가 뚫리려는 걸 본 건지 얼굴 표정이 창백해지고 있었다.
“SP를 충전한다.”
[SP를 10만 소모합니다.]
처음 소울 배리어를 개시할 때는 SP가 5만 필요하더니 뇌전 공격이 강한 건지 10만을 가져가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스쿨드의 예언이 궁금한지라 그 정도 SP 쯤은 가볍게 지불했다.
차츰 더 강해지는 배리어를 보자 스쿨드는 안정을 되찾았다.
“과연, 영혼 각성자답군요. 제가 본 장면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