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111화>
111 사도를 확충하다
대현 길드의 길드 하우스.
마법도시 에룬달에는 각성자를 위한 길드 하우스 거리가 있는데, 대현 길드의 길드 하우스는 이 중 중간쯤 되는 규모였다.
한국에서 제일 잘 나갔었는데 길드 하우스는 큰 편은 아니구만.
“가면 썼네? 뭔가 빛이 일렁인다. 마나냐?”
나를 맞이하는 이진성.
내 얼굴을 보더니 신기해한다.
눈 코 입을 제외하고는 내 얼굴을 완전히 가린 흰색 가면이 빛으로 일렁거리고 있었으니 신기할 만도 하지.
“마법으로 만든 가면이라 그런가 봐.”
“오오…… 목소리도 다르네.”
“이 정도는 위장해 줘야지.”
이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길드 하우스 안으로 데려갔다.
새하얀 벽돌집으로 이루어진 길드 하우스.
내부는 꽤 넓었는데,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는 바로 안내하더니, 길드 하우스 가장 깊숙한 곳에 날 데려갔다.
그 안에 있는 것은 비장한 얼굴을 한 5명의 사람.
그중 내가 잘 아는 얼굴, 강시아와 그녀의 친구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신이 이진성 씨가 말한 사람인가요?”
“그렇습니다.”
“정말 저희를 강하게 만들어 주실 수 있나요?”
“예, 다만 계약이 필요합니다.”
계약 이야기를 하자 모두 표정이 굳어진다.
“저희가 지불해야 할 대가가 뭔가요?”
“더 좋은 수호신, 더 제대로 된 수호신을 믿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음…….”
“이진성 헌터가 이상한 면을 보이던가요? 그는 새로운 신을 믿게 된 덕분에 급격하게 강해졌죠. 지금 레벨이 몇이죠?”
“99입니다.”
그러자 눈을 크게 뜨는 사람들.
옆에서 봐서 강해진 게 체감이 되긴 했지만 레벨이 저렇게 높은 줄은 몰랐다는 듯 놀란 기색이다.
“저는 절대 강요하지 않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만 계약을 추진하시죠.”
그러자 서로를 바라보더니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
대표로 강시아가 나서서 말을 한다.
“저희는 모두 다 준비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신을 믿겠습니다.”
여자 셋에 남자 둘.
강시아는 몰라도 나머지 사람들은 얼굴에 두려움이 깔린 게 느껴진다.
신을 버리라고 했으니 진짜 악마 같은 거라도 추종하는 건 아닌가 싶은 불안감이 드는 건가?
착하게 보이려고 가면도 흰 거로 쓰고 왔는데, 그리고 빛도 번쩍거리는데 효과가 별로 없나 보군.
“좋아요. 그럼 계약 내용을 알려 드리죠.”
인벤토리 창에서 미리 뽑아둔 계약서를 꺼낸다.
나와 이진성이 머리를 맞대고 만든 계약서로, A4 2장을 꽉꽉 채운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아주 꼼꼼히 글을 읽기 시작했다.
20분 정도 지났을까.
다들 계약서의 내용을 한 번 읽은 거 같자 내가 말했다.
“그럼 질문 있습니까?”
“저…… 이 항목 말인데요. ‘수호신은 상태창에서 종전 그대로 보이며 상태창을 절대 외부에 보이면 안 된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요?”
“수호신의 정체는 함구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희 개개인의 강함과 이력을 내보이기 위해 상태창을 보여야 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 상태창을 보이면 기존의 사람들과는 스탯이 너무 달라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대현 길드 정도면 굳이 남에게 상태창을 보일 필요가 있나요? 빨리 B급에 올라서서 B급 던전 클리어로 증명하시면 되죠. 이건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계약 사항 중 하나입니다.”
내가 강하게 이야기하자 알겠다고 수긍하는 사람.
하지만 그중 두 명은 상태창을 못 보여 준다고 하니까 조금 불만족스러운 기색이었다.
“그럼 이 항목은…….”
“이건…….”
그 둘이 계속 물어보았다.
향상된 능력을 가급적 드러내지 말라는 항목 쪽을 집중해서.
내가 다 지켜야 하는 계약이라고 하자 서로를 쳐다보더니 나에게 더듬더듬 말문을 연다.
“이런 조건이면…… 저희는 좀 힘들 거 같은데요…….”
“예……. 이게 세상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상태창을 못 보여 주고 하면…….”
말문을 흐리다 옆에 있는 강시아를 보며 고개를 숙이는 남자.
“능력이 강해져도 이적도 못할 테니…….”
“저희는 물러나도 될까요?”
능력을 과시하기가 힘든 계약 조건을 보자 발을 빼는 두 사람.
그러면서 강시아를 힐끔힐끔 보며 미안한 기색을 드러낸다.
“호성 오빠, 지민이 너! 설마 길드 옮기려고 했던 거야?!”
강시아의 친구, 이혜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짓한다.
강시아의 얼굴도 영 안 좋은 채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그게, 어쩔 수가 없었어. 우리 이제 결혼도 해야 하고…….”
“그래! 우리는 프로잖아. 대우가 더 좋은 곳으로 가야지.”
“아니…… 둘을 우리가 얼마나 대우했는지 알잖아?”
“그건 고마워. 한국 최고의 대우를 해 줬으니까. 하지만 미국은 급이 다르더라.”
호성 오빠라 불린 남자가 벌떡 일어나 지민이라 불린 여자의 손을 잡는다.
“우린 갈게. 이런 계약 조건이면 약속했던 이적도 못하니…….”
“미안해. 어쩔 수 없었어.”
황급히 방을 빠져나가려는 두 사람.
근데 이대로 그냥 나가면 안 되지.
“아, 잠시만요.”
“왜…… 왜죠?”
“저희는 계약 안 할 거예요. 보, 보내 주세요.”
이 사람들 왜 이렇게 날 보고 겁에 질린 거야?
거 참, 가면도 착해 보이는데.
“보내는 드릴 겁니다. 근데 여기 있었던 기억은 지워야죠.”
그 둘의 손에서 계약서를 빼앗고 박수를 짝 쳤다.
“이 계약과 관련된 모든 기억을 지워라.”
간단히 용언으로 명한다.
C급 헌터 정도면 먹히더라.
이진성 녀석이 아주 고생을 해 줬지.
하나하나 지정해서 명하자 두 헌터의 눈이 멍해진다.
그러더니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두 사람.
“어…… 어?”
“어…… 저분은 누구죠?”
그런 둘을 보며 이혜주가 꽥 소리를 지른다.
“당장 내보내요!”
“예이, 예이.”
이진성이 두 헌터의 손을 가볍게 붙잡더니 의자에서 연행해 간다.
“지, 진성아. 뭐하는 짓이야?”
“여기 우리가 왜 있는 거야? 길드장님도 그렇고?”
계약 자체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잊은 채 이진성에게 항의하는 두 사람.
그러나 이진성은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경고했다.
“알 생각 하지 말고 가쇼. 어차피 이적할 생각이었잖아요?”
“뭐, 뭐?”
“아니야……!”
“하아, 난 두 사람 쫓아내고 올 테니 계속 진행해 주세요.”
나에게 존댓말을 하며 떠나는 이진성.
이 와중에도 연기 중이라는 걸 잊지는 않았군.
이진성이 두 사람을 연행해 가자 난 문을 다시 닫았다.
그리고 나머지 셋을 보니 모두 참담하게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흠…… 꽤 중요한 사람이었나 보군요.”
“……제가 한때 가장 믿었던 사람 중 하나였죠.”
강시아가 침울하게 말한다.
서로의 관계는 모르지만 믿을 만하니 이 자리까지 데려왔겠지.
믿을 만한 데다가 길드 전력을 강화하기 위해 데려온 거면 배신감이 더 클 거다.
“지금 계약 가능하시겠습니까?”
“예, 할게요. 꼭 하게 해 주세요.”
배신 때리고 나간 둘 때문에 자극이 된 건지 눈이 이글거리는 강시아.
옆의 중년 아저씨와 이혜주도 둘 다 결연한 표정으로 계약을 요구했다.
“좋아요, 계약하죠. 신왕의 서약.”
신왕의 서약을 사용한다.
한 대상에게 세 번까지 중첩 가능한 서약.
하지만 서약의 조항은 계약서에 나와 있는 대로 쭉 읊으면 다 적용되었다.
내가 두 쪽의 계약서를 쭉 읽는 걸 집중력 있게 보던 세 사람.
서약을 받아들이겠냐는 메시지가 뜨자 모두 예를 누른다.
나에게도 뜨는 메시지 창.
[C급 각성자 강시아가 신왕의 서약을 받아들였습니다.]
[C급 각성자 이혜주가 신왕의 서약을 받아들였습니다.]
[C급 각성자 이재현이 신왕의 서약을 받아들였습니다.]
[신왕의 서약에 따라 그들을 사도로 받아들입니다.]
사도 계약이 체결되자 사도의 정원에 멤버가 셋 늘어났다.
그러자 갑자기 머리를 부여잡기 시작하는 세 사람.
특히 강시아는 더 크게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어! 이 기억은……?”
“설마…… 과거가?”
이진성처럼 과거의 기억을 되찾는 것 같았다.
흠, 이것도 계약상에서 미리 대비했지.
가장 아파하던 강시아는 가장 먼저 일어났다.
그러더니 날 보면서 떨리는 눈으로 말문을 연다.
“설마…….”
“그 이름은 말하면 안 됩니다. 계약서를 생각해 보세요.”
내 이름을 말하려고 하자 황급히 제지한다.
계약서에서 기억과 착오가 나는 사람 이름도 말해서는 안 된다고 했거든.
그러자 안타까워하는 강시아.
“아…… 그렇군요.”
“정말 중요한 일이라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주의를 주자 강시아는 분위기 파악을 하고 조용히 앉아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근데 두 번째로 깨어난 이혜주는 벌떡 일어나더니 나에게 대번에 손가락질했다.
“아니, 설마 당신 김지호 씨? 아니…….”
[이혜주가 신왕의 서약을 위배했습니다.]
[계약에 따라 사도에서 쫓겨나며 기억이 사라집니다.]
아휴, 저거 바본가?
꼭 하지 말라는 짓을 하는 애가 있어요.
“저……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어…….”
나를 호칭하기가 애매하구나.
이적하려던 둘을 쫓아내고 온 이진성이 가볍게 대꾸했다.
“그냥 빛가면이라고 해요. 번쩍번쩍한 거 봐.”
“아이, 미친놈이.”
“저, 호칭이 없으면 수호자님이라고 부를게요. 수호신 대신…….”
수호자님이라니.
뭔가 과분한 칭호 같은데…….
이진성이 옆에서 ‘풋, 수호자님?’ 하면서 웃고 있기에 머리 한 대를 때려주자 낯빛이 조금 부드럽게 풀린 강시아가 말을 이었다.
“혜주 계약, 다시 진행해 주시면 안 될까요? 애가 성격이 급해서 그렇지 아시다시피…… 아, 이 기억은 아니구나……. 네, 알진 못하시겠지만 착한 애예요.”
예전, 왜곡된 강시아의 기억에선 그녀와 인연이 있었나 보다.
하긴 나한테도 갑자기 친한 척했지, 이 여자.
지금은 멍한 눈으로 가만히 서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계약 있다고 해서 왔는데, 이 분위기 뭐죠?”
“어휴, 바보야. 너 서약을 바로 어겼어. 바로 다시 진행해.”
“네?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러자 강시아가 이혜주를 꿀밤 먹이면서 계약을 하라고 종용하자 결국 따르는 이혜주.
그런 이혜주와 다시 계약을 진행했다.
그리고 계약을 진행하자마자 또다시 벌떡 일어나는 그녀.
“야…….”
“아, 진짜! 계약서! 계약서!”
“혜주야!”
“알았어요, 아빠.”
다행히 그녀의 입을 강시아와 아저씨가 바로 틀어막아 해결할 수 있었다.
저 아저씨는 이혜주 아버진가 보네.
그래도 이를 앙다물며 나를 쳐다보는 이혜주.
기억 조작을 어떻게 했기에 저 여자는 왜 저리 아는 척이래.
나는 분위기를 환기시킬 겸 손뼉을 짝 쳤다.
“그럼 이제 끝이군요.”
“이렇게 끝입니까? 더 지불해야 할 건 없나요?”
‘이재현’이라고 시스템 메시지에 떴던 중년 남자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뭐, 악마의 계약처럼 영혼이라도 팔 줄 알았나?
내가 그렇다고 하자 안도의 한숨을 쉬는 남자.
셋을 둘러보며 말했다.
“믿을 만한 분 있으면 더 데려오세요. 이건 저도 좋고 여러분도 좋은 윈윈 거래니까.”
“알겠습니다.”
할 말이 있는지 자꾸 나를 쳐다보는 강시아.
그녀에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말해 줘야겠군.
“그리고…… 말하고 싶은 게 많은 줄은 알겠지만 일단 B급으로 오르는 데 매진해 주세요. 그동안 입조심 하셔서 사도 계약이 취소되지 않게 주의해 주시고요.”
“네…… 알겠어요.”
예전 세계에서 나와 인연이 있지만 그거만 믿고 모든 사실을 공유하긴 아직 너무 이르다.
거기에 아직 C급 헌터니 성장이 우선이지.
강시아는 잠시 서운한 기색이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꼭 B급에 도달하도록 할게요.”
“좋은 마음가짐입니다. 그럼 던전을 돌아보세요. 성장 속도가 달라진 게 확 체감될 겁니다.”
“그래. 시아 님, 가시죠!”
나를 흘겨보던 이혜주가 벌떡 일어나서 강시아의 손을 잡아끈다.
방문을 벌컥 열면서 이진성도 잡아끄는 그녀.
“이진성 팀장님, 같이 가시죠.”
“어……? 어, 그래요.”
이혜주에게 힘없이 끌려가면서 나에게 손을 흔드는 이진성.
저 자식…… 여자에게 그렇게 강한 척하더니 뭐 저리 끌려가?
고개를 흔들며 사도 창을 보았다.
세 명이 사도로 합류하고, 다들 스킬을 영혼 중개로 배정하여 효율이 3% 늘어나 있었다.
흠.
SP 회수도 최소로 했으니 레벨이야 뭐 금방 오르겠지.
남은 자리도 빨리 채웠으면 좋겠는데, 좀 기다려야겠지.
아까같이 바로 상태창 보여 주며 이적하려는 놈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 급할수록 천천히 가는 게 낫겠어.
그리 생각하면서 언제나처럼 산 정상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보이는 A급 던전 포탈.
저걸 또 클리어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을 때 헤라클레스가 불쑥 나타났다.
“이제 곧 에슈타르를 멸망시킬 거니 지구에 가 있어라. 던전에 들어가든가.”
“어…… 그거 조금 늦게 부숴도 돼? 마침 잘 왔어.”
“왜?”
로키가 말해 준 SP 거래소.
이에 대해 헤라클레스가 아는 것도 있지 않을까?
SP 거래소의 일종인 SP 상점이 혼돈 거니까 어찌 보면 경쟁 상대에게 물어본 거나 마찬가지지만.
저쪽은 세계적인 대기업이면 여기는 구멍가게도 오픈 안 한 수준이니까 물어봐도 되겠지.
내가 그간 있던 일을 말해 주자 생각에 잠기는 헤라클레스.
“SP 거래소에 아스가르드가 그렇게 투자를 한다고?”
“어, 조건은 좋은데 하필 신이 사기의 신이라 마음에 걸린단 말이야.”
고개를 끄덕끄덕하던 헤라클레스가 갑자기 뜻밖의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흠…… 그거 나도 투자해도 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