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110화>
110 뜻밖의 제안
“흠, 1년이 벌써 지났나?”
[요즘 바쁘게 다니시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셨구만. 이제는 나도 제한적이나마 개입이 가능하지.]
웃는 낯이지만 말에는 뼈가 있는 느낌.
아, 로키가 개입하면 골치가 아픈데…….
그래도 굳이 의식하지 않고 대답한다.
“그래서, 왜 연락을 하셨나?”
[뭐, 그렇게 경계하지 말라고. 우리 아스가르드는 너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으니까.]
로키는 유들유들하게 말을 이어 간다.
[요즘 그쪽을 통해 SP가 많이 들어와서 말이야. 혹시 영혼 중개 레벨이 좀 많이 오른 거 아닌가 궁금해서 연락했지.]
“뭐, 좀 늘긴 했지. 나도 놀고 있었던 거는 아니니까.”
[그래, 그럼 혹시 영혼 중개 레벨만 올리고 있었나? 영혼 거래는?]
영혼 거래?
대신들끼리 SP 거래를 대행해서 수수료 장사 좀 할 줄 알았더니 막상 거래하는 경우가 없었다.
그래서 그저 방치되어 있는 스킬.
그게 갑자기 왜 튀어나와?
“그건 레벨 6이지. 등급 오르기 전에 5까지 올렸었거든. 근데 왜? 니들은 거래도 안 하잖아.”
[하하하, 아주 잘했어. 거래야…… 지구인 다 회귀시키느라 쓴 힘이 워낙 많아서 말이야. 그렇게 한가하게 대신들끼리 거래할 일이 없었어.]
“근데 그 스킬은 왜?”
[그거 레벨 좀 키워 줄 수 있나? 레벨 10으로.]
갑자기 왜 영혼 거래 스킬을 레벨업 하라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스킬의 우선순위는 거의 제일 마지막인데 말이야.
“언젠가는 올리겠지만 지금은 별로 쓸모없는 스킬이라서.”
[그래, 너한테는 영혼 거래가 쓸모없는 스킬이겠지. 그래서 그 스킬을 레벨업 하는 SP 비용은 우리가 댈게.]
“응? SP 비용을 댄다고?”
이게 무슨 소리야?
SP를 그냥 대 준다고?
이놈들이 이렇게 퍼 줄 놈들이 아닌데……
[영혼 중개 가치가 점점 올라가는데 S급 스킬 줬다고 대가를 받는 게 너무 싼 거 같아서 말이야. 하하하.]
“사기의 신께서 그렇게 정당한 대가를 줄 리가 없지. 속셈이 뭐냐?”
[하하. 뭐, 쉽게 넘어가질 않네. 사실 말이야, 내가 어디서 들은 소문이 있어.]
입가에 씩 미소를 짓는 로키.
화산의 여신 아우렐리아도 저런 얼굴이었는데…….
진짜 이쁘장하게 생기긴 했다.
[영혼 거래의 스킬 레벨이 10 이상이 되면, 거래소를 설립할 수 있다고 해.]
거래소?
거래소 어디서 본 거 같았는데.
영혼 거래 스킬을 다시 살펴보았다.
[영혼 거래 LV.6.]
[모든 존재에게 격에 상관없이 SP 거래를 주관합니다. 거래창을 소환하고, 수수료로 거래량의 0.1%를 받습니다. 한 번에 6,000만 SP까지 거래 가능하며 하루에 10회 가능합니다. 등급이 S급으로 오르고 영혼 거래 스킬 레벨이 오를 경우 SP 거래소를 설립할 수 있습니다.]
그래.
S등급에 영혼 거래 스킬을 올려야 해서 관심을 꺼두고 있었는데, 이게 스킬 레벨 10이 되면 SP 거래소를 설립 가능했구나.
“그걸 네가 어떻게 아나?”
[뭐, 정보를 여러 군데에서 얻었지. 네 반응을 보니 맞나 보지?]
나는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왠지 공짜 SP를 얻을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뭐…… 그렇지.”
[우리가 SP를 다 대줄 테니 거래소 설립 추진하자. 어때? 대신 지분 5%만 팔아라.]
“뭐? 지분? 뭔 지분이야. 내가 무슨 주식회사를 세우냐?”
[후후…… 겨우 지구의 주식회사와는 비교도 안 되지. SP 거래소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게 뭔지 아나?]
SP 거래소와 비슷한 역할이라.
딱히 없어 보이는데…….
아, 혹시……?
“SP 상점?”
[그래, 우리는 SP 거래소가 SP 상점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추측한다.]
SP 상점.
시스템에서 버젓이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상점.
SP로만 거래하며 수수료가 혹독하다고 대신들이 투덜거리던 그 마켓이 SP 거래소랑 관련이 있다고?
“아니, 그럼 혼돈에도 영혼계열 각성자가 있는 거야?”
[당연하지. 혼돈의 군주가 섬기는 혼돈의 신, ‘창조주의 왼손’이 영혼계열이라고 알려져 있다.]
혼돈의 군주 놈들…….
대신급의 힘을 가지고 있는데도 왜 군주인가 했더니 섬기는 신이 있었구나.
근데 왜 신의 이름이 ‘창조주의 왼손’이냐……?
“창조주의 왼손은 뭐야. 그게 진짜 이름?”
[우리는 그를 그렇게밖에 인지할 수 없다. 대신이 되어 우주의 질서를 조금 깨닫게 되면, 그때서야 비로소 그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게 되지.]
언제나 웃는 낯의 로키가 표정을 굳혔다.
[우리도 그에 비하면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 거대한 존재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안도도 하지. 그는 절대 움직이지 않아. 그저 저 하늘의 태양처럼 고고히 존재할 뿐이다.]
영혼계열 각성자 혼돈의 신이라.
왜 갑자기 어마어마한 놈이 튀어나와.
“헤라클레스만 있는 줄 알았더니…….”
[영혼계열 각성자는 헤라클레스만 있는 게 맞지. 혼돈의 신은 감히 각성자라 불릴 수 없다. 혼돈의 신은 우주 질서의 한 축이나 다름없어.]
말을 조심조심하는 로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던 녀석이 경의마저 보이니 신기한 기분이었다.
혼돈의 신.
어마어마한 분이구만…….
그러고 보니 하데스 같은 이가 SP 상점의 관리자로 있는 이유를 알겠다.
“근데 영혼 중개자는 올림푸스에서 만든 거라고 들었는데…….”
[영혼 중개자를 올림푸스에서 고안했다지만 그게 완전한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은 아닐 거다. 기본 틀은 원래 부여된다.]
올림푸스는 그 기본 틀을 바탕으로 영혼 중개자를 구상한 건가.
뭐, 반신밖에 안 되는 나에겐 너무 머나먼 이야기군.
[네 SP 거래소는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 아스가르드는 그 지분을 사고 싶어.]
“들어 보니 팔기가 아까운데. 혼자 세우는 게 낫지.”
[아니지, 관리자가 왜 있겠나. 그리고 SP 거래소를 이용해 줄 고객이 있어야지. SP 상점은 혼돈의 신이 운영하니까 저렇게 큰 거지 네가 운영하면 얼마나 많은 손님을 받겠어? 구멍가게에 불과할 텐데.]
그걸 우리 아스가르드가 이용해 줄 테니, 자신들의 투자를 받아 사업을 확장하자는 로키.
맞는 말이긴 하지만 SP 상점처럼 커다랗게 확장할 수도 있는데 지분 팔기는 아까운데 말이야.
“지분은 좀 아까운데.”
[일단 우리가 주는 SP를 받아서 SP 거래소를 설립해. 그 이후에 살 수 있는 권리만 주면 된다. 네가 거절하면 우리도 못 사는 거지. 대신 다른 이에게 팔 거면 우리에게 우선적으로 팔아 줘라.]
“흠. 우선 협상권 같은 건가?”
[그래, 너에겐 전혀 손해 볼 조항이 아니지 않나?]
영혼 거래 레벨 10까지 SP를 공짜로 주는 데다가, 그냥 우선적으로 살 수 있는 권리를 주면 된다라.
거기에 무조건 팔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남에게 파느니 자신들에게 먼저 팔아달라는 계약이다.
일방적으로 나에게 유리한 계약.
그건 그만큼 SP 거래소에 대해 아스가르드 쪽이 거는 기대가 크다는 의미도 되겠지.
“괜찮긴 한데…… 나 영혼 중개 10레벨 올릴 때 1억 SP 필요했거든. 영혼 거래도 그럴 텐데.”
[1억?]
사실 지금은 4천만이지만, 이건 스킬 스톤으로 인해서 60% 할인된 가격이니 그렇지.
영혼 거래에 스킬 스톤 쓰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 SP 1억이 필요한 건 필연적이다.
“근데 이게 9레벨에서 10레벨 갈 때의 수치거든. 지금 6레벨인데, 7레벨 가려면 1,250만이 필요해.”
[흠. 1,250만, 2,500만, 5,000만, 1억 순인 건가? 많이도 필요하군. 거의 2억이 들겠는데.]
2억이면 SSS급 대신에게도 많은 건가?
“힘드냐?”
[아니, 생각보다 많이 들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지원할 수 있다.]
“오. 그럼 2억을?”
[다른 조건은 없나?]
다른 조건이라.
아. S등급이 되어야 했지.
“S등급.”
[뭐? S등급? 흠…… 정말 그런 조건이 있었어?]
“어, 봐 봐.”
스킬 설명을 보여 주자 표정을 찡그리는 로키.
[반신이 SP 거래소를 운영하기 힘들기는 하겠다만…… 그래도 S등급이라니. 네 승급 조건은 뭐지? 모든 스탯을 S로 꽉 채우는 건 있을 테고. 신위의 자격 획득도 있겠지.]
스탯 채우는 거에 신위의 자격은 원래 다 필요한 건가? 다 아네.
1일 수입 100만은 굳이 이야기할 필요 없고……
“신을 죽이라는데.”
[신을 죽이라니……? 지금 반신에게 신을 죽이라는 퀘스트가 내려왔단 말인가.]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로키.
역시 빡센 조건이긴 한가 봐.
“응. 그래서 나도 골치 아파하던 중이야.”
[신을 죽이라니……. 역시 영혼계열 각성자는 신을 죽일 수 있는 건가. 이건 좀 쉽지 않겠는데……]
생각에 잠기는 로키.
괜히 말했나?
젠장, 2억 SP가 날아가는 거 아냐?
두근두근하면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로키가 입을 열었다.
[10%.]
“지분 10% 달라고?”
[그래, 능력치를 채우기 위해 1억 SP를 더 분할지급해 주지. 거기에 네가 죽일 신도 우리가 마련해 주겠다.]
“10%는 우선 협상권일 뿐, 내가 팔고 싶지 않으면 안 파는 거 맞나?”
[그래. 그 조건은 동일하다.]
이거 조건이 너무 좋은데?
3억 SP에 신살 퀘스트까지 마련해 준다니.
신위의 자격이 문제긴 한데, 드라키아의 용신 각성 퀘스트를 보니 드라키아의 각성 퍼센트가 지금 84%였다.
이대로 가면 드라키아는 스무스하게 용신으로 각성할 것 같고, 스탯이야 1억 받은 거로 채우면 되니까.
신살이 가장 문젠데, 이게 해결이 되었네.
“좋아, 그럼 하자.”
[그래, 계약하지.]
[‘사기의 신’ 로키와 계약을 하시겠습니까?]
사기의 신이라고 떡하니 나오는 메시지 창.
그걸 보니 왠지 이 계약 해도 되나, 하는 심정이 들었다.
[야, 사기의 신이라 꺼려지는 건 알겠지만 항목을 봐라. 네가 손해 보는 건 하나도 없어. 우리에겐 지분 우선 구매권만 있을 뿐이야. 그것도 10%.]
메시지 창을 자세히 살펴보니 과연 그랬다.
[1. 아스가르드의 대표 협상자 ‘로키’는 영혼 각성자 ‘김지호’에게 하루에 SP를 천만씩 30일간 지급한다.
2. 아스가르드의 대표 협상자 ‘로키’는 영혼 각성자 ‘김지호’에게 신살을 위한 신을 마련해 준다.
3. 이 모든 조건을 충족했을 시 아스가르드는 김지호의 동의하에 SP 거래소의 지분 10%를 구입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완전 퍼 주는 항목이 가득하다.
거래소 지분은 나중에 내 판단하에 팔면 되고……, 이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계약이네.
“그래. 하자.”
[좋은 생각이다.]
[사기의 신 ‘로키’와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로키의 계약입니다. 계약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
[계약 미이행 시 강제로 집행됩니다.]
강제 집행이라.
내가 강제 집행되면 10% 지분 그냥 내주는 건가?
이건 좀 그런데.
나는 예를 누르지 않고 로키에게 따졌다.
“강제 집행 내용은 좀 그런데?”
[응? 왜?]
“너희가 날 봉인시키거나 해서 대답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만들면 어떻게 해. 그냥 날아가는 거 아니야?”
[허허, 너무하네. 신 좀 믿지그래.]
“아니…… 그건 아닌 거 같아. 강제 집행은 빼 주고, 1년마다 계약 갱신으로 하자. 생각해 보면 계약기간도 정해지지가 않았잖아.”
그러자 한숨을 푹 쉬는 로키.
[어휴, 까다롭긴. 네가 신이 안 돼 봐서 그렇지, 신에게 있어서 1년이 얼마나 짧은지 모르냐? 차라리 10년 하자. 지분의 대가는 10년마다 지불하도록 하지.]
“10년 너무 긴데, 3년으로 하자.”
[5년.]
“그래, 그러면 내가 꼭 살아 있어야 계약이 갱신된다는 것도 넣어.”
[자식이 겁도 많아…….]
“아니다. 아예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겠다고 해.”
[거래소 주인을 어떻게 건드리냐?!]
투덜대면서도 계약을 수정하는 로키.
수정하기를 잘한 거 같군.
[그럼 오늘치 SP를 주지. 영혼 거래창을 열어.]
영혼 거래창을 열자 SP 1천만을 떡하니 주는 로키.
바로 받자 그가 씩 웃음 지었다.
[그럼 내일 또 보자고. 후후, 신은 네가 능력치를 꽉 채우면 마련해 두지.]
그렇게 해서 받은 SP가 1천만.
그냥 바로 쏘네.
“야…… 그 계약 괜찮겠어? 사기의 신이라는데.”
통신이 열리자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이진성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항목 수정했으니 괜찮지 않을까?”
“흠…… 그렇긴 하다만.”
갑자기 너무 좋은 조건으로 퍼 주는 로키.
예전에 그만 오버하라고 경고를 줬던 아스가르드에서 갑자기 이렇게 퍼 주는 걸 보면…… 조심해도 나쁘지 않아.
강제 집행은 틀어막았지만 대신급이라면 어떤 꼼수를 부릴지 모른다.
거기에 흠, S등급이면 시스템의 보호도 사라지지 않나?
이때 제일 몸조심해야겠군……
“만에 하나의 상황을 좀 대비해야겠네.”
“그게 좋을 거 같다.”
1달의 기간 동안 바쁘게 준비를 해야겠구나.
“그건 그렇고, 사도는 어떻게 할 거냐?”
“아직은 별생각 없어. C급 헌터들만 받을까 했지.”
“그래? 그럼 우리 길드원 중에 받아도 돼?”
“누구 있어?”
“응, 내가 빠르게 강해지니까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여럿 있더라고.”
이진성네 길드면 대현 길드인가?
“믿을 만해?”
“세상에 믿을 만한 놈이 어디 있냐? 그것도 신에게 대항하는 건데. 애초에 큰 정보는 주지 말고 그냥 힘을 얻을 수 있다고 꼬드기는 게 어때? 그러고 신왕의 계약으로 얽매여야지.”
흠, 힘을 줄 테니 계약하자.
이거 악마들이 주로 하는 패턴 아닌가.
뭔가 우리가 나쁜 놈 같은데 그러니까.
“너도 뭐 영혼 중개? 그 스킬 효율 올리려면 사도가 필요하다며. 일단 사도 숫자 채우는 게 좋지 않을까?”
맞는 말이다.
C급 헌터라도 효율이 1%는 오르니까.
12자리 남았는데 다 C급만 채워도 12%다.
“그래, 한번 추진해 보자.”
“좋아, 그럼 우리 길드 하우스로 사람 부를게. 너는 그대로 오지 말고 투구나 가면이라도 써라.”
굳이 정체를 드러낼 필요는 없지.
수호신 김지호…… 이거는 좀 그런데.
하나 이건 간단히 해결되었다.
“신왕의 서약으로 ‘수호신은 기존 수호신처럼 보인다’고 조항 추가해 봐.”
그 조항을 추가한 채 이진성과 서약을 진행하니, 수호신이 예전처럼 바뀐 상황.
이제 모든 준비를 마친 채 이진성의 연락을 기다렸다.
그리고 3일이 흐르자, 이진성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리 길드 하우스로 와. 5명이 대기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