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109화>
109 신왕의 서약
[드디어 된 겁니까?]
[그래, 인도의 신들이 접촉하기로 했다. 인드라가 너와 거래하기로 했지.]
인도의 신이면 힌두교인가?
뭐, 스킬만 주면 어떤 신이든 상관없지.
[그럼 어떻게 거래하면 되죠?]
[던전에 들어서라. 그러면 내가 네가 있는 곳에 포탈을 열지.]
아버지의 말에 난 던전으로 걸어갔다.
가는 김에 모아 둔 2천만 SP를 투자해 영혼 중개도 레벨 9로 올렸다.
[영혼 중개 LV.9]
[신들의 영혼 흡수를 중개합니다. 180%의 효율을 창출하며 사용자는 개중 최대 50%를 수수료로 받을 수 있습니다. 최대 28명의 수호신과 중개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영혼 밀수가 가능합니다.]
[수수료 비율은 최대 50%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더 늘릴 수는 없습니다.]
이제 더 이상 수수료는 올릴 수 없는 건가?
아쉽군.
그리고 자리는 하나 늘어서 28자리.
28명의 자리라면 남는 자리는 8자리로 엄청나게 여유가 남는다.
이번에 스킬 받는 거로 중개해 주면 몇 자리 남을 테니 슬슬 투자해 둬야겠어.
당장은 영혼 중개의 상대를 늘리지 않은 채 A급 던전 포탈로 들어섰다.
그리고 던전 안에서 아버지에게 메시지를 보내자 바로 열리는 새하얀 포탈.
여기에 들어서자 예전에 보았던 원탁의 공간이 나타났다.
“왔느냐.”
내가 도착하자 저번처럼 가면을 쓰지는 않고 맨얼굴로 나선 아버지.
기억 속의 아버지보다는 피부가 탱글탱글하지만 그 모습은 아버지와 판박이였다.
“예, 좀 오래 걸렸네요?”
“폴룩스란 놈, 참 강하더구나. 거기에 무슨 원한이 있는지 눈에 불을 켜고 감시를 하니…….”
아버지가 혀를 차면서 폴룩스 때문에 늦어졌다고 토로했다.
그러고 보니 아수라를 깨워서 상대한다고 하지 않았나?
“아수라는 뭐한대요?”
“그는 좀 더 만전을 기해서 폴룩스를 단번에 제압하려고 한다. 지금은 하급 신 정도의 힘만 회복해서 싸우면 쉽게 이기지 못할 걸 아는 거지.”
“하긴, 너무 오래 치고받고 있으면 올림푸스에서 바로 구원군을 보내겠죠.”
“그래. 그래서 적어도 SS급까지의 힘을 회복한 이후 일을 벌이려고 한단다.”
“근데 일도 벌이지 않았는데, 어떻게 신들이 나왔나 보네요?”
“인도 신화는 아느냐?”
알 리가 있나.
내가 어깨를 으쓱하자 아버지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접할 일이 없겠지. 인도에 인드라라는 신이 있다. 신 중 왕이라지만 그 위에는 세 절대신이 있지. 브라흐마, 비슈누, 시바라고…….”
“뒤에 두 신은 어디서 슬쩍 들어 본 거 같네요.”
“뭐, 그럴 법도 하다. 어쨌든 그 세 절대신은 봉인지에 없더구나. 봉인지에 있는 힌두교 신의 왕은 인드라. 그가 애써 힘을 써 가지고 폴룩스 몰래 아바타를 만들어 냈지.”
그러며 아버지가 손가락을 툭 치자 내가 들어왔던 하얀색 포탈이 다시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걸어 나오는 갈색 피부의 사람.
검은 머리는 빡빡 깎아 스포츠머리고, 얼굴은 가면을 쓰고 있다.
다만 웃통을 벗고 있어서 남잔 줄은 알 수 있었다.
“당신이 영혼 중개자인가?”
나에게 바로 말을 건네는 인드라의 화신.
번역 마법이라도 쓰나?
말은 한글이 아닌 거 같은데 의미가 쏙쏙 들어온다.
“그런 당신은 인드라의 화신?”
“그래, 미카엘의 제안에 따라 스킬을 준비해 왔는데…….”
나를 보고 영 못 미덥다는 눈빛을 보내는 인드라의 아바타.
“쉬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 영혼 각성자라면 우주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특별한 영웅일 텐데…….”
가면 속에서 자꾸 눈동자를 굴리는 인드라의 아바타.
자꾸 간을 보는 그 모습에 내가 말했다.
“아버지도, 관세음보살의 아바타도 나의 영혼 중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데? 그래도 못 믿겠다는 거냐? 아, 싫음 말고. 너 말고도 손님 많아.”
“큼, 못 믿겠다는 건 아니고…….”
“할 거야, 말 거야?”
“하, 할 거다.”
어차피 이럴 거면서 왜 자꾸 뜸을 들여.
미카엘의 화신인 아버지의 주관하에 나와 그는 계약했다.
영혼 중개 수수료 25%로 인도의 신 둘과 영혼 중개 계약을 체결하고, 대신 나는 인도의 신에게서 사도를 다룰 수 있는 스킬을 받기로.
“먼저 해 줄 수 있겠는가?”
선불을 요구하는 인드라의 화신.
뭔가 신이 쪼잔하구만…….
뭐, 나도 방법이 있지.
“그럼 약속하자. 내가 언제든지 원하면 파기할 수 있도록.”
“파기도 가능한가?”
당황한 기색의 인드라.
이 자식은 왜 당황하는 거야? 설마 파기가 불가능한 줄 알고 선 계약을 요구한 건가?
그럼 선 계약했다가 저놈이 스킬 못 주겠다고 하면 말짱 황이잖아.
이놈 꼼수 쓰네.
“야, 머리 그만 굴리고 계약할 건지 안 할 건지만 선택하지그래. 내가 스킬 스톤을 원하는 것도 아니잖아? 이야기 들어 보니 대신에게 SS스킬까지는 뭐 큰 지출 없이 주더만.”
“그거야 내가 대신의 힘을 회복했을 때의 이야기지. 지금의 나는 하급 신의 힘밖에 없어. 여기서 SS급 스킬을 주는 건 타격이 심대하다.”
“심대하든 말든 적당한 대가 없이는 중개 못해 줘. 너희도 빨리 빼앗긴 터전을 찾고 싶잖아? 인드라 당신, 신들의 왕이랬나? 지금 제우스와 오딘이 번갈아 가면서 네 신앙에서 나오는 SP를 쓸어 담고 있겠네.”
“큼…….”
그 말에 주먹을 불끈 쥐는 인드라의 아바타.
아버지도 옆에서 추임새를 넣었다.
“인드라의 아바타여, 당신이 조심스러운 건 알겠지만 어차피 그의 영혼 중개가 없으면 당신의 신앙도 되찾을 길이 요원할 거요. 현명한 판단 하시오.”
그러며 영혼 중개로 인해 얻은 소득을 설명해 주자 눈이 커지는 인드라의 아바타.
그는 곧 결심했다.
“후…… 알겠소. 스킬을 드리겠소.”
[신왕(神王)의 서약.]
[스킬 등급 SS.]
[사용자와 대상 간에 서로의 동의하에 서약을 맺습니다. 둘 간의 서약은 그 어떤 존재가 와도 깰 수 없습니다. 서약은 사용자가 대상보다 강할 시 영원히 유지됩니다. 신왕의 서약은 한 대상에게 3번 할 수 있습니다. 서약에 천벌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심플한 설명이군.
그냥 약속 스킬이네?
천벌은 뭐야?
“이거로 비밀 엄수가 되나? 그리고 그냥 약속 스킬인데 SS등급이나 하네.”
“무슨 소리! 그 어떤 존재가 와도 서약을 방해할 수 없다는 게 중요한 거다. 거기에 천벌까지! SS급은 충분하지.”
“그런가?”
“그래, 사기를 치는 대신이 얼마나 많은데. 일반적인 약속 스킬이라면 바로 그들이 개입해 항목을 재조정해 버리겠지. 하지만 신왕의 서약은 다르다. 그들이 전혀 개입할 수는 없어.”
그러며 스킬에 대해 설명해 주는 인드라.
“서약은 중첩될수록 더욱 강하다. 네가 비밀 엄수를 제일 지키고 싶다면, ‘나와의 일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마라. 발설할 시에는 천벌이 내릴 것이다.’ 라고 서약을 세 번 중첩해라.”
“응? 천벌?”
“그래, 세 번 중첩하면 시스템이 이를 대행할 거야. 그 효과는 네가 보면 알 거다. 아주 대단하지…….”
몸을 부르르 떠는 인드라의 화신.
시스템의 천벌로 영혼까지 소멸한다며 그게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나직이 읊었다.
“천벌까지는 너무 센 거 아냐?”
“지금 지구를 장악하는 신에게 대항하는 일이다. 하나가 붙잡혀서 모든 비밀을 알려 주게 되면 우리는 일망타진 당할 수 있어. 최대한 조심하는 게 맞는 길이다.”
아버지가 주의를 주었다.
하이고 이거 참, 세력 키우기 힘들구나.
“근데 이게 적 신이 붙잡아서 기억을 끄집어낼 수도 있잖아. 기억만 없애는 정도론 안 되나?”
“흠, 그렇게도 가능할 거다. 그게 서약상 SP 소모도 줄어들겠군.”
“SP도 소모돼?”
“당연한 거 아닌가.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는가? 그 시스템이 대행해 주는 건데.”
그럼 천벌까지는 하지 말고 기억 상실 정도로 계약해야겠군. 비밀로 하는 항목이 새어 나갈 시 싹 사라지게.
그럼 이 스킬을 가지고 사도를 하나씩 늘려 가면 되겠네.
“근데 시스템은 대체 정체가 뭐야? 이런 거도 대행해 줘?”
그러자 탐탁지 않은 표정을 하는 아버지.
“시스템에 대해선 대신들이 감히 이야기할 수 없는 금기다. 아마 한 등급 더 올라가야 언급이 가능하겠지…….”
“그냥 우주의 질서라고 생각해라.”
둘 다 별로 시스템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어 하지 않은 눈치다.
뭐 알기는 아는 거 같은데…….
에이,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좋아, 그럼 영혼 대행 2자리 주지. 누구누구 하면 되나?”
“나 인드라와 가네샤를 부탁하지.”
“알겠어.”
둘을 중개하자 28자리 중 6자리가 남았다.
이 남은 자리, 이제 밀수로 메워야겠네.
오딘 다음으로 SP를 많이 주는 드라키아와 엘프리안을 밀수하니까 남은 자리는 2자리.
2자리 정도는 예비용으로 남겨 뒀다.
“흠…… 정말 이런 스킬이 있다니 신기하군. SP, 기대하지.”
인드라가 손을 흔들고 떠났다.
아버지와 단둘이 남자 나는 그동안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특히 헤라클레스가 자신의 존재를 걸고 맹세를 했다는 이야기에 뛸 듯이 기뻐하는 아버지.
“헤라클레스가 직접 그런 말을 했다고? 아주 다행이다. 이제 저들을 축출하기만 하면 되겠어.”
“흠. 봉인지에서 신들이 다 풀리면 가능할까요?”
“사실 봉인이 다 풀리기만 하면 금방 가능할 줄 알았는데 네가 말한 소울 배리어가 걸리는구나. 그러고 보면 적의 대신에게 우리의 공격이 아예 먹히지 않았거든.”
헤라클레스의 스킬인 영기발출과 소울 배리어를 다른 대신들도 다 사용 가능하다면 그건 재앙일 거라며 미간을 찌푸리는 아버지.
“그래서 과거 회귀를 여러 번 하는 한이 있더라도 힘을 최대한 모을 생각이다.”
“근데 저는 과거 회귀 어떻게 해요? 이번에야 저들이 보내 준 건데, 혹시 쟤들이 절 버릴 수도 있잖아요.”
공식적으로 경고도 날렸는데, 더 깽판을 치면 날 손절하고 과거로 돌아갈 수도 있잖아?
이런 내 걱정에 아버지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네가 벌어오는 SP를 보면 절대 버릴 거 같지는 않지만 뭐 대비는 해야겠지. 크로노스의 파편이 있으면 가능하다.”
“이 정도면 되나요?”
내가 인벤토리에서 크로노스의 파편을 꺼내자 아버지가 이를 매만졌다.
그러자 새하얀 빛을 발하는 크로노스의 파편.
“이걸 지니고 있으면, 과거 회귀 때에 같이 딸려 갈 수 있을 거다.”
“엄청 심플하네요?”
“매우 복잡한 신성력 부여의 과정이 있지만, 굳이 알고 싶니?”
“아뇨, 괜찮습니다.”
그래도 미카엘은 미카엘인가 봐.
손에 가져다 대기만 했는데 크로노스 파편이 빛을 내며 과거 회귀가 가능하네.
“그럼 가 보거라. 스킬 써 봐야지.”
“옙, 알겠습니다.”
아버지의 말에 들어왔던 포탈로 나왔다.
가볍게 A급 던전을 클리어하자 갑자기 뜨는 시스템 메시지.
[신격에 도달하기 위한 조건을 하나 달성했습니다.]
[‘1일 SP 획득 100만’ 조건이 클리어되었습니다.]
아니, 벌써 백만이 넘었어?
인드라와 가네샤, 거기에 두 신의 밀수를 했다지만 이렇게까지 소득이 느나?
스킬 레벨이 9로 상승해서 효율이 전반적으로 다 좋아진 것도 있겠지만 이건 어마어마한 성장률이다.
영혼 중개 레벨 10에 필요 SP 수치는 4천만.
2천만에서 2배 뛴 수치였다.
하지만 100만씩 벌어들이니, 이거 뭐 금방 하겠네.
상쾌한 기분으로 이진성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야, 스킬 테스트 좀 해 보자.]
[으, 나 던전인데. 수호신님, 형 레벨 98임.]
[뭐 이렇게 빨리 올라?]
[내가 진짜 지금까지 수호신들에게 사기당하고 있었어. 경험치가 뭐 팍팍 오르던데? 능력치도 싸우다 보면 알아서 올라. 레벨업 하면 4포인트씩 주고. 근데 무슨 스킬이야?]
진짜 고속 성장이네.
내가 이번에 얻은 스킬에 대해 이야기하자 흥미를 보이는 이진성.
[야, 나한테 한번 실험해 보면 되겠다.]
[어떻게?]
[기억 상실로 서약하고 내가 비밀을 발설하려고 하는 거지. 그럼 어떻게 페널티가 올지 궁금하지 않냐?]
[너 기억 잃으면 다시 또 말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정도 고생은 감수해야지.]
했던 말 또 해야 하나.
뭐 자기가 몸소 실험체가 된다는데 감수해야지.
곧 던전에서 나온 이진성을 역소환하고, 바로 내가 있는 산 정상으로 불렀다.
“그럼 테스트해 볼까?”
“신왕의 서약.”
비밀 엄수와 비밀에 대한 기억 상실을 두고 서약을 맺는다.
서약을 맺자마자 나에게 말하는 이진성.
“자, 그럼 과거 회…….”
그러더니 눈동자에서 점차 힘이 풀리더니 곧 표정이 멍하게 변해간다.
[대상 ‘이진성’이 신왕의 서약을 어겼습니다. 비밀에 대한 기억을 잃습니다.]
[SP가 1,200 소모됩니다.]
“어? 지호야, 여기는 어디야?”
“야, 기억 안 나?”
내가 이것저것 물어봐도 뭔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냐고 날 바라보는 이진성.
그에게 처음부터 자초지종을 쭉 설명했다.
납득을 못하던 이진성은 자기가 상태창을 열어 보더니, 거기에 뜬 내 이름을 보고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더니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말해 준다.
“기억이 그냥 사라지고 재조립되던데? 한 달 전에 너한테 그 이야기 들었다고 그랬지? 난 여자 만난 기억으로 바뀌어 있었어.”
빈틈도 알아서 메워 주네.
“근데 네 앞에서는 이야기해도 되는 거 아냐? 앞으로의 일을 토의하기 위해서라도.”
“그렇지, 서약 내용을 바꿔야겠네. 같은 편은 예외로 지정해야겠어.”
“그리고 기억만 잃는 게 아니라 아예 사도에서 축출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상태창 보면 이상한 게 티가 나는데.”
“그래야겠다.”
그렇게 따져 보니 서약 조항을 만들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 사도 좀 받겠다고 시작한 일인데 뭐 이리할 게 많아.
올림푸스 아스가르드에 욕을 퍼부으면서 서약에 들어갈 조항을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나에게서 통신 화면이 떴다.
[김지호, 그간 잘 있었나? 요즘 재미 많이 보는 거 같은데? 수호신도 파기하고…….]
생글생글 웃는 검은 머리의 미남자.
로키가 날 웃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