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107화>
107 헤라클레스의 맹세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감싸는 이진성.
A급 던전을 이야기하다니……?
“너 설마……?”
“으으…… 과거? 엘프랑 드워프 도우미, 질서 진영…… 이게 맞는 거 아니었어? 뭐야, 이 중립은……?”
설마 예전 세계의 기억이 기억난 건가?
“후우, 후우…….”
크게 숨을 몰아쉬던 이진성이 다시 일어났다.
그러더니 디아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라이아나 님?”
저 이름을 알다니.
이거 이전 세계 기억이 난 게 맞네.
“으으. 이거…… 대체 뭔 일이냐?”
나는 올림푸스와 아스가르드의 신들에 의해 회귀했다는 사실을 설명해 주었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워하던 이진성이었지만 30분이 넘게 힐도 주면서 설명을 하니 차츰차츰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올림푸스 신들이 다른 신들을 다 봉인…… 아, 그래. 우리 집 원래 불교 신자였어.”
“그치. 그것도 기억 나냐?”
“어…… 네 사도라서 그런가? 그리고 이놈들이 SP? SP는 또 뭐냐…… 어쨌든 그거 먹으려고 세계를 계속 과거로 돌린다는 거지?”
“어.”
“아…… 개새끼들이네. 이런 씨발…….”
씨발을 필두로 쌍욕을 하기 시작하는 이진성.
그 욕을 듣자 묘한 표정을 짓는 디아나.
“저런 것도 통역 마법으로 다 해석이 되나?”
“네, 근데 엘프어 중에는 번역이 안 되는 욕도 많네요. 인간의 욕은 참 종류가 다양하군요.”
“음…… 그중 한국어가 욕은 제일 많을 거야.”
“아, 이 언어는 지호님 나라 언어군요.”
“에이 씨…… 됐다.”
고래고래 쌍욕을 지르던 이진성은 우리를 바라보더니 허탈하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날 바라보고 진지한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하게?”
“흠, 아직은 뭐 그때그때 대처하고 있어. 나도 살아남기 바빠서. 사도로 모집한 이유는 A급 던전에 대처하기 위해서지.”
“A급 던전이 나오면 10일은 갇혀 있으니까?”
“응, 지금 신들이 우리의 레벨과 기억을 다 갖추게 한 후 회귀시킨 건 영혼 계열 각성자를 찾기 위해서거든. 근데 이들이 영혼 계열을 찾거나 아니면 못 찾았다면 어떻게 될까? 결과가 나왔는데 또 비싼 비용 치르고 시간 돌릴까?”
“흠…… 그럼 초기화 시킨다는 거야? 신들만 과거로 돌아간다고?”
“어, 그렇게 될 거라 생각해.”
이진성은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반문했다.
“근데 그럴 거면 굳이 A급 던전 막을 필요 있어?”
“응?”
“아니, 어차피 과거로 계속 돌아가면서 루프하면 우리가 굳이 던전 막을 필요 있냐고. 막아 봤자 걔들이 시간 돌리면 끝 아니야.”
“그동안 피해를 막아야…….”
“피해 생겨도 어차피 되돌리면 땡인데?”
“흠…….”
“거기에 우리가 A급 던전 클리어 한다고 나대면 쟤들이 견제하는 거 아니야?”
이 자식 말 들어 보니 그럴 거 같은데?
조금 전까지 머리 아파서 뒹굴던 녀석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그리고 저 신들 막으면 혼돈 새끼들은 안 쳐들어오는 거 맞대? 확답이라도 받아 봐.”
“확답?”
“그래, 저래 놓고 쳐들어오면 우리는 신도 없이 쳐 발리는 거 아니냐?”
“흠…….”
“아니면 우리도 같이 회귀 열차 타면서 아예 올림푸스나 아스가르드처럼 쭉쭉 커 볼까? 시발? 사도 더 모아서 죄다 신으로 만들면 김지호 신계 만들 수 있는 거 아니냐? 올림푸스, 아스가르드 지들만 신이야? 우리도 가자. 시발, 가즈아!”
갑자기 손을 번쩍 들더니 가즈아가즈아 하면서 폭주하는 이진성.
아오, 미친 새끼.
김지호 신계 같은 소리 하네.
근데 옆에서 듣던 디아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를 경청하고 있었다.
“지호 님, 상당히 괜찮은 방법이에요.”
“……괜찮다고?”
“네, 신계까지는 너무 나갔지만 세력 구축은 저도 찬성이에요. 던전을 공급해 주는 헤라클레스도 있겠다, 저들이 계속 시간을 돌리면 저희도 같이 가면서 세력을 차츰차츰 늘려야 해요. 지호 님 혼자서는 아무리 강해져도 두 세계의 대신들과 대적하기는 힘들어요.”
“그건 그렇지.”
“일단 지호 님의 완전한 우군 세력이 필요해요. 지금이야 사도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약하지만 정말 시간 회귀를 계속한다면 다들 강해질 거고 믿을 만한 우군이 될 거예요. 다만 비밀 엄수가 잘 되냐가 중요한데…….”
“그건 그렇지. 나야 뭐 배신 때리겠느냐마는 다른 사람들은 어찌 나올지 모르니까. 아, 그래. 나도 갑자기 저놈들이 잡아서 막 마법으로 기억 뽑고 이러면 다 들키는 거 아니야?”
흠. 처음에는 그냥 사도를 모아서 나중에 A급 던전 나올 때 대비하려고 한 건데, 막상 제대로 세력 키우려고 하니까 고려할 게 많구나.
신계를 상대로 몰래 힘을 키우는 게 빡세긴 하네.
“이거 원 복잡하네.”
“크으……나도 마찬가지야. 조금 전까지만 해도 토르랑 관우 빠였는데, 너 때문에 토르 팬심 날아갔다. 역시 관우가 짱이야.”
“아오, 미친 새끼. 야, 너 한번 역소환 해 볼게. 넌 사도 공간이 어떤지 봐 봐.”
“오케이.”
이진성을 역소환하고 디아나와 의견을 교환했다.
“녀석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일리 있는 말씀을 많이 하신 거 같아요.”
“그래?”
“네, 근데 인간에게는 엘프의 맹세처럼 서약할 수 있는 강제성 있는 것이 없나요?”
“그런 건 없지…….”
“음, 그럼 비밀 엄수를 위해서라도 그런 류의 스킬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 전에는 친구분은 그렇다 쳐도 다른 인간분은 쉽게 받기가 힘들겠어요.”
그건 그렇다.
용언으로 맹세를 시켜?
근데 6서클밖에 안 되는 불안전한 용언으로는 완벽한 비밀 엄수가 될 거 같지 않아.
뭔가, 뭔가 쌈박한 스킬 없을까.
흠, 비밀 엄수에 관한 건 봉인된 신들에게 물어보자. 저들도 비밀 결사 같은 느낌인데 뭔가 방도가 있지 않겠어?
로키가 간첩으로 들어온 거야 어쩔 수 없다지만.
“거기에 헤라클레스에게 확답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 올림푸스와 아스가르드 음모를 막으면 정말로 혼돈이 멈출 건지 확답을 들어야지.”
디아나를 역소환하고 일단 미카엘의 아바타가 된 아버지에게 시스템으로 통신을 넣었다.
[그래, 지호야. 무슨 일이냐?]
“제가 사도를 소집하려고 하는데 말이죠.”
[사도? 네가? 넌 A급이잖아?]
“다른 세계의 신에게 받은 스킬이 있어요. 이게 계속 회귀하는 세상 속에서 저도 세력을 좀 구축해야 할 거 같아서 그런데…….”
내가 이진성 이야기를 하자 반가워하는 아버지.
[진성이 녀석도 헌터인가 보지? 그래도 친구 없는 널 잘 상대해 주나 보구나.]
“제가 놀아 주는 겁니다.”
[다른 사도 후보 친구는 있고?]
“큼…… 상황이 엄중한데 제 질문에 대답해 주시죠.”
[그래, 잠시 기다려 봐라. 미카엘께 여쭈어 보겠다.]
그러자 잠시 침묵을 지키던 아버지가 대답했다.
[사실 아들이 신위에 올라서 사도를 모집한다니, 유일신 하느님께 귀의한 나로서는 만족스럽지 않다만…… 미카엘께서 허락하셨다. 네가 딱 원하는 종류의 스킬이 있지.]
“뭐죠?”
[네게 스킬스톤을 주지 못해서 아직 영혼 중개를 못한 진영이 존재한다. 그들에게 말하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거야. 내가 며칠 뒤에 연락하마.]
“옙, 알겠습니다.”
서약에 관한 내용에 대해선 이제 아버지 쪽에게 연락을 기다리면 될 거 같고……
헤라클레스에게 가 봐야겠군.
헤라클레스가 있는 쪽으로 헤임달의 귀환을 쓰려고 할 때 갑자기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핸드폰에 뜬 번호는 아리아.
지구의 발키리 대장이다.
어째 딱 역적 모의할 때 전화가 걸리네.
“여보세요?”
[김지호 님 핸드폰 맞으시죠?]
“예, 아리아님.”
[반신에 오르셔서 부서진 세계에 가실 수 없으셨죠? 재조정을 통해 지호 님은 통과가 가능하도록 조치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A등급이 돼서 부서진 세계 입장도 못하고 거절되었지.
그때 일을 지금 알려 주나 보다.
“예, 감사합니다.”
[몇 번 연락했는데 받지를 않으시더군요. 하필 부서진 세계 쪽이 난리가 난 때와 비슷한 시기에 말이죠.]
갑자기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을 시작하는 아리아.
[저희 아스가르드는 영혼 각성자이신 지호 님과 긍정적인 관계를 계속 유지하기를 바랍니다. 혹시 불만스러운 점이 있으시더라도 이야기해 주세요. 저희도 이에 맞추어 개선하겠습니다. 그러니 지호 님도 저희와 함께 우호적인 미래를 그리길 바랍니다.]
평소처럼 나직이 이야기하는 아리아.
하지만 말 속에 뼈가 있다는 건 바보라도 알 수 있었다.
“예. 알겠습니다, 아리아 님.”
[네, 그러면 부서진 세계를 이용하실 때 꼭 저희를 이용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럼……]
전화를 끊는 아리아.
결국 그녀의 말을 요약하면 ‘그만 나대고 우리 편으로 들어오렴.’인가.
거기에 부서진 세계로 이동할 때 헤임달의 귀환을 쓰면서 가는 건 좀 자제하라고 하는 느낌이군.
일단 전화까지 받았으니 이번에는 헤임달의 귀환 쓰지 말고 도보로 가지, 뭐.
“어서 오십시오, 김지호 님.”
서울 강남의 헌터지부.
부서진 세계로 가는 통로에 아름다운 얼굴의 아리아가 방긋방긋 웃으며 나를 반겼다.
웃는 낯은 평소와 변함이 없었지만 전화 내용 때문인지 눈초리가 왠지 감시하는 느낌이군.
“김지호 님, 어디로 이동하시겠습니까?”
“에슈타르로 가려고요.”
“알겠습니다. 제가 직접 안내하겠습니다.”
어느덧 부서진 세계로 가는 사람들이 많아진 상황.
“저 사람은 뭐야?”
“왜 아리아 님이 직접 안내하지?”
다들 아리아가 직접 안내하는 날 보며 쟤는 대체 뭐냐고 웅성거렸다.
“부럽다…….”
“발키리들이 가까이 접근도 못하게 하던데…….”
허이구, 부럽냐?
나는 사고 치지 말라고 밀착 감시하는 느낌인데.
발걸음을 빨리해서 에슈타르의 포탈로 가니 아리아가 나직이 이야기했다.
“지호 님, 제 이야기를 명심해 주셨으면 합니다. 신들께선 모든 것을 굽어보십니다.”
“알겠습니다.”
다시 한번 경고를 준 후 고개 숙여 물러나는 아리아.
흠…….
최근 이것저것 일을 많이 벌이긴 했지.
이젠 좀 조심스레 움직여야겠어…….
“너 대체 뭐 하고 다니기에 저놈들의 주시가 이렇게 강해졌냐?”
헤라클레스가 포탈을 열어 주는 산 정상으로 가니, 그가 갑자기 불쑥 나타나 그리 말했다.
“뭐, 좀 난리를 피우긴 했지.”
“하이고, 이 정도면 말하는 거 다 들리겠네. 불편해서 안 되겠다. 소울 배리어.”
소울 배리어를 쓰는 헤라클레스.
그걸 보니 아킬레우스 생각이 났다.
“그거 아킬레우스도 쓰더라.”
“소울 배리어? 아니, 그놈이 왜? 그 자식 나 영혼 약탈자라고 엄청나게 질투했었는데. 자기도 대영웅인데 왜 안 되냐고 술 먹고 나한테 와서 징징거린 적이 얼마나 많은지…… 쯧쯧.”
혀를 끌끌 차던 헤라클레스.
곧 표정이 굳어진다.
“으음, 그러고 보니 자꾸 나한테서 샘플 수집을 하긴 했어. 영혼 계열 각성자에 대해 알아본다면서.”
“샘플 수집한다고 그 스킬을 쓸 수 있나?”
“크흠…… 뭐 피나 머리카락 가지고는 모르겠는데, 샘플 수집하는 아프로디테가 자꾸 꼬드겨서…….”
흠흠, 하면서 멋쩍은 미소를 지은 헤라클레스.
이놈 했구만, 했어.
“생각해 보니 아프로디테, 디아나한테 빙의했던 거 같은데. 나보고 고자냐고 하면서 디아나의 몸에서 나갔었거든.”
“그래? 너 생각보다 대단하구나? 그 유혹을 이겨 내다니. 어쨌든 네 말을 들으니 아프로디테가 좀 걸리긴 하네……. 넌 유혹당하지 마라.”
헤라클레스가 근엄한 어조로 주의를 준다.
“자식이 지는 다 즐겨 놓고…….”
“흠흠, 나야 이럴 줄 알았냐?”
“그건 뭐 그렇다 치고, 내가 물어볼 게 있는데 말이야.”
“뭔데?”
“너희, 진짜 올림푸스와 아스가르드의 시간 회귀가 끝나면 물러나는 거 확실하냐?”
그러자 침묵을 지키는 헤라클레스.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더니 나직이 나에게 물어본다.
“그건 왜?”
“확답을 들어야 할 거 같아서. 올림푸스와 아스가르드의 음모를 분쇄했는데 너희가 그냥 막무가내로 쳐들어오면 지구 멸망이잖아?”
“내가 그렇다고 이야기했을 텐데.”
“올림푸스와 아스가르드의 회귀를 막는 거야? 아니면 이들을 파멸시켜야 하는 거야? 그것부터 알고 싶은데.”
“흠…….”
“그리고 혼돈이 개입하지 않겠다는 언약 수준의 확언을 듣고 싶어.”
헤라클레스는 내 말에 침묵을 지키더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대답 없이 그저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헤라클레스.
그가 다시 말문을 연 것은 10분이 지난 후였다.
“좋아, 내가 맹세하겠다. 올림푸스와 아스가르드의 무한 과거 회귀를 멈추면, 혼돈이 지구로 침공하지 않을 거라고 혼돈의 군주로서 맹세하지.”
헤라클레스는 굳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맹세를 어길 시 내 스스로 나의 검을 혼돈에게 돌려 적대하겠다. 그게 불가능할 시 내 스스로 소멸하도록 하지. 이는 혼돈의 군주로서 존재를 건 언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