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103화>
103 영검 소환 (2)
영검은 또 뭐야?
이거 끝까지 반응 안 하더니, A급 되니까 반응하네.
일단 발동해 보자.
“발동한다.”
[SP 5만을 소모합니다.]
5만? 뭐 이리 많이 들어?
갑자기 쇠막대기에서 치솟는 빛 무리.
1미터가 좀 넘는 빛의 검의 형태를 이룬다.
어…… 이거 뭐야. 광선검이야?
새하얗게 올라온 빛의 검은 곧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영기발출을 쓸 때 나오던 새하얗게 불타오르는 검기처럼.
어…… 이래서 영검인가?
위력 테스트를 해 봐야지.
“투창!”
창이 이번에는 정면으로 날아온다.
24개의 창.
마나가 담긴 채 똑같은 속도로 접근한다.
“멈춰라.”
용언으로 명하자 바로 속도가 줄어드는 창.
하지만 6서클의 한계일까.
완전히 멈추지는 않는다.
영검을 들고 정면을 돌파한다.
내 눈에는 천천히 날아오는 창을 향해 가볍게 검을 휘두르니 순식간에 백염(白炎)에 휩싸이며 소멸하는 창.
검을 정면으로 들고 있기만 해도 휙휙 사라진다.
“아레스 님이 주신 창이……!”
“이런!”
전신 아레스.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군.
전신의 가호를 쓸까 하다가 올림푸스 애들 앞이라 참았다.
한 걸음, 두 걸음 발걸음을 떼자 몸이 쭉쭉 나아간다.
“빠르다……!”
놀라며 방패를 들고 더 단단히 대비하는 적.
방패와 창 모두 푸른 마나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 영검이 영기발출과 흡사하다면 전혀 막지 못할 터.
영검을 그대로 내리찍자 방패가 두부처럼 갈라진다.
그 뒤에 있는 사람도 같이.
“으아아악!!”
얼굴이 반으로 조각나기 전까지 비명 소리를 지르다 곧 새하얀 불꽃에 휩싸여 사라지는 전사.
심상치 않은 공격에 남은 전사들은 재빨리 진을 풀고 나와 거리를 벌리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적의 공격을 막자 타오르는 창.
내가 공격하자 단번에 소멸하는 방패.
방패를 가를 때마다 하나씩 불타오르는 전사들.
“마나 실드를 단번에…….”
눈 깜짝할 사이에 스물을 베자 나머지 넷이 아예 등을 돌린다.
그러곤 왔던 방향으로 다시 뛰어가는 전사들.
“도망쳐라, 정찰대에 알려야 해!”
그러나 그 등판과 다리에 정령 화살이 빠르게 꽂힌다.
쓰러지고 잠시 멈추는 적을 추격해서 싹 다 베어 넘기니 어느새 상황은 정리되어 있었다.
[영검의 지속시간이 12분 남았습니다.]
지속시간 12분?
지금 적들 제압하는 데 3분쯤 걸린 거 같았는데.
그럼 처음부터로 따지면 15분인가?
5만 쓰고 15분?
화르르륵.
내가 영검을 바라보자 갑자기 하얀 불길이 거세진다.
확실히 이거 영기발출이야.
일반 검에 써도 되는데 왜 굳이 이런 장치가 있는 거지?
“음…… 끌 수 없나?”
검 손잡이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뭔가 버튼이라도 있으면 툭 꺼질 거 같은데, 그런 건 없었다.
“꺼져라.”
명령어로 반응하는 건지 한 번 말해 보았으나 오히려 내 말이 ‘용언’으로 분류돼서 마나가 움직였다.
그러며 검을 압박하자 오히려 더 활활 타오르는 영검.
어찌할지 애매해하니 나보고 보란 듯 메시지가 떴다.
[영검 해제를 원할 시 ‘영검 해제’라고 명령어를 외쳐 주십시오.]
“영검 해제.”
그러자 빛이 휙 사라지는 영검.
[영검을 해제합니다. 남은 시간은 11분 24초입니다.]
[재발동 시 남은 시간이 1분 감소합니다.]
껐다 켜는 데 에너지 소모가 있나 보다.
나는 완전히 꺼진 쇠막대기를 바라보았다.
미래의 김지호가 보낸 물건 중 어디다 쓰는지 알 수 없었던 물건.
그런데 영기발출과 같은 검기를 뽑아내는 물건일 줄이야.
근데 난 영기발출이 가능한데 뭔 쓸모지?
SP 소모량이 작긴 하다.
5만 SP 지불하고 15분인데 더 이상 SP가 들지는 않았거든.
저번에 용사랑 싸울 때 10만 날린 거에 비하면 싸게 먹힌 거지.
그렇긴 해도 SP 효율 빼고는 메리트가 없는 건가.
“지호 님, 괜찮으세요?”
나한테 전력으로 뛰어오는 디아나. 엘프리안은 그 뒤에서 느긋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나에게 달려온 디아나를 보고 쇠막대기, 영검을 내밀었다.
“디아나, 이거 한번 써 봐.”
“네.”
디아나가 영검을 들자 그녀의 손에서 지지직거리던 영검이 다시 나에게로 튕겨져 나왔다.
잠시 표정을 찌푸리던 디아나가 나에게 말했다.
“‘영혼 각성자가 아닙니다.’ 라는 메시지가 뜨더니 튕겨 나가네요.”
“그래? 일반 직업은 못 쓰나보네.”
“저도 좀 봐도 될까요?”
어느새 다가온 엘프리안이 호기심 가득 영검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고개를 갸웃한다.
“이건 전혀 모르겠네요…… 아까 검기에 영력이 느껴지긴 하던데.”
“그래요?”
“일단 도망치면서 이야기하죠.”
그래, 적이 곧 몰려올 수도 있으니.
엘프리안이 앞장서서 뛰고 우리가 그 뒤를 따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지호 님, 신급이 되면 어떻게 싸우는지 아세요?”
“하늘과 땅을 가르고 번개가 쾅쾅 내려치고 불이 피어오르고 이러지 않을까요?”
제우스는 하늘에서 번개를 쾅쾅 쏴대지 않을까?
용신은 화염 브레스를 쏠 거 같고.
헤라클레스가 검 한번 휘둘러서 세상을 반으로 가른 것처럼 대신급이면 그 정도 위력을 보이며 싸울 것 같다.
“그거야 필멸자들 겁 먹으라고 신들이 힘자랑 하는 거구요.”
“그럼요?”
“신들끼리는 영체로 싸워요. 영체화는 아시죠?”
영체화? 당연히 알지.
영체화에 대해 의식하자 바로 몸이 투명해진다.
예전에는 마나를 움직여야 했는데 이제는 생각만으로도 변하는군.
“영체로 전환이 빠르시군요. 대신끼리 싸울 땐 그 상태로 싸우죠.”
“왜 그러죠?”
“영체 상태여야지 SP를 쓰면서 공격할 수가 있어요.”
SP를 쓰면서 공격을 한다라…….
감이 안 잡힌다.
“대신이 각자의 권능에 SP를 담는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제우스 같은 경우는 SP를 깎는 번개를 쏘죠. 드라키아는 브레스에 영력이 담기구요.”
“흠. 그럼 영기발출이랑 다를 바가 없겠네요?”
“헤라클레스의 영기발출 말인가요? 아, 그 검기를 어디서 봤나 싶었더니 올림푸스의 사형수, 헤라클레스의 영기발출과 닮았군요.”
엘프리안은 어쩐지,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
“영기발출이랑 같은 점은 적의 SP를 타격한다는 점 밖에 없어요. 저희가 영체화해서 공격에 SP를 담아봤자 신 같은 존재는 봉인하는 데 그치죠. 영기발출처럼 존재를 말살할 수는 없어요.”
“그렇군요.”
“그리고 제가 듣기론 영기발출은 SP소모 대비 위력이 상당하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헤라클레스가 SS의 중급신임에도 대신들에게 견제의 대상이 되었죠.”
“그는 지금 혼돈에 붙었습니다만.”
“정말요?”
오히려 안도하는 표정의 엘프리안.
“올림푸스의 전력이 전반적으로 강해졌는데 헤라클레스까지 강해졌으면 너무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다행이네요.”
영기발출을 쓸 수 있는 헤라클레스는 정말 유니크한 케이스였나보군.
어쨌든 신들끼리의 싸움이 영체화 상태에서 진행된다는 거구나.
“그럼 결국 SP가 많은 쪽이 무조건 유리하네요?”
“네, 당연하죠.”
결국은 SP가 제일 중요하다고 하더니…… 영혼 계열 각성자가 좋은 이유가 있구나.
영혼 중개자로는 평화로운 시기에 SP를 벌어들이고, 영혼 약탈자의 스킬로 전투에서 활약하면……
이거 완전 사기인데?
뭐, 일단 비슷한 급까지 올라가는 게 중요하겠지만 말이야.
“전방에 적이 있다고 합니다.”
바람의 정령이 되돌아오더니 디아나가 주의를 주었다.
“방향을 틀어 봤자 사방이 적일 겁니다. 그냥 뚫고 가요. 그 검이 있으니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엘프리안의 의견에 동의하며 검을 다시 꺼냈다.
좀 달리다 보니 느껴지는 거대한 마나의 흐름.
나무 위에서 한 인영이 떨어져 내린다.
“하필 이쪽으로 오다니…… 재수도 없군. 여기까지다, 여신.”
커다란 방패가 인상적인 중년의 전사.
원형 방패가 아니라 자신의 몸을 완전히 가리는 직사각형의 철제 방패를 들고 있다.
다른 손에는 창을 쥐고 있는데, 길이가 2미터는 넘어 보이는 장창이었다.
다른 적들에 비해서도 한층 더 강해 보이는 남자.
그는 우리를 둘러보더니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반신급의 전사 둘, 다른 대원들에겐 강한 상대였겠군. 하지만…….”
휙.
갑자기 하늘 위로 치솟는 다섯 개의 투창. 그의 등 뒤에서 저절로 움직여 창끝이 이쪽으로 향한다.
“여기까지다. 죽어라.”
포탄처럼 쏘아지는 다섯 창.
지금까지 만난 전사들의 투창과는 비교도 안 되는 속도다.
“멈춰라.”
용언을 발하며 동시에 영검을 발동시킨다.
다섯 창이 잠시 멈칫하더니 그대로 용언의 속박을 찢고 날아온다.
번 시간이라고는 1, 2초가 전부.
하지만 그 시간이면 영검을 발동시키기에 충분했다.
화르르르.
금방 새하얀 불꽃이 일렁이는 영검.
드래곤 하트의 마나로 신체 능력을 강화하며 발걸음을 앞으로 옮긴다.
창의 궤적을 눈에 담으며 그대로 쳐 내자 바로 불타오르는 창.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대로 적에게 도약한다.
나머지 창은 디아나가 막아 주겠지!
“흠……? 한가닥 하는 놈이구나!”
적의 방패가 시뻘겋게 변한다.
강력하게 응축된 불의 마나.
드래곤 하트에 상태창 2개까지 겸한 내 마력 수준에 그다지 밀리지 않아 보인다.
이 정도면 반신의 경지는 확실하고, 개중에서도 최상위의 힘이다.
하지만 이 영검은 막지 못하겠지!
치지지직!
“아닛…… 헤파이스토스 님의 방패가……!”
하나 놀랍게도 영검의 진로를 막은 방패.
영검이 닿자 엄청난 불꽃이 튀며 서서히 녹아내렸지만, 적의 마나가 녹아내린 부분에 스며들어 스스로 복구했다.
이게 헤파이스토스의 것이라고?
그 자식은 무기를 아주 뿌리고 다니는 구만!
휙!
머리에 인 위험감지에 고개를 숙인다.
그 위를 바로 스쳐 지나가는 거대한 창.
피했다 싶은데, 창이 궤적을 뱀처럼 비틀어 내 머리를 향해 다시 날아든다.
뭐 이런 동작이……!
캉!
영검으로 쳐 내자 이번에도 불타오르지 않고 튕겨 나가는 창.
예전 적들은 영검에 닿기만 하면 무기가 불타 사라졌는데, 이번 적은 까다롭네.
순식간에 공수가 오간다.
창은 기묘하게 궤적을 바꾸며 사방을 찔러 오고, 방패에서도 불길이 넘실거린다.
불길은 무시하고 창을 막는다.
계속해서 영검과 부딪치는 적의 창.
푸른 마나로 가득 둘러 쌓여 있던 창이 서서히 약해지는 게 눈에 보인다.
“골치 아프군!”
그걸 본 전사가 전투 방식을 바꾼다.
영검과 완전히 부딪치지 않게 무기를 흘리고, 마나로 이루어진 투창을 소환해서 쏜다.
근거리에서 쏘는 투창.
멀리서도 위협적이었는데, 거리가 좁으니 치명적이다.
위험감지를 통해 하나둘 겨우 피하며 적에게 접근한다.
하지만 거리를 애매하게 벌리며 계속해서 투창을 발출하는 전사.
아이기스의 방패를 쓸 수만 있으면 투창 걱정 안 해도 되는데, 이거 귀찮네……!
화르르르!
영검을 휘둘러 투창을 막자 하얗게 불타오르는 투창.
그 불꽃이 눈에 들어왔다.
SP 5만을 소모한 영기.
하지만 15분 지속이라 위력이 엄청 강하진 않은 느낌이다.
흠, 여기에 영기발출을 덧붙일 수 있을까?
“영기발출.”
그러자 영검에서 불타오르는 백염이 갑자기 전방으로 확 튀어 올랐다.
방패를 들고 있던 전사의 몸에도 순식간에 붙기 시작하는 하얀 불꽃.
지금까지 고생하면서 치열하게 무기를 주고받았던 것과는 다르게 순식간에 타오르는 적.
헤파이스토스의 방패도, 나를 성가시게 했던 창도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사라진다.
그걸 믿기지 않는 눈으로 바라보던 전사.
곧 고통에 찬 비명 소리를 지른다.
“이 힘은…… 설마…… 헤라클레스의…… 으아아아악!!”
불타 사라지는 전사.
나와 같은 급에 해당하는 전사도 영기발출이 끼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자는 특히 예전에 상대했던 A급 용사보다 강했던 거 같은데, 그도 영기발출은 막아 낼 수 없었다.
진짜 이게 최강의 공격기구나.
하아…….
하지만 SP는 엄청 썼겠지?
용사 때만 해도 엄청나게 날렸는데, 얘는 더 세잖아.
떨리는 마음으로 시스템 창을 보니 메시지가 여럿 떠 있었다.
[영검으로 인해 영기발출의 출력이 강화합니다. 효율이 증가합니다.]
[반신 아이아스를 소멸시켰습니다. SP가 4만 소모됩니다.]
[영검이 소모된 SP를 환혼(還魂)합니다. SP가 50% 회복합니다.]
[헤파이스토스의 방패를 소멸시킵니다. SP가 5천 소모됩니다.]
[영검이 소모된 SP를 환혼합니다. SP가 50% 회복합니다.]
[헤파이스토스의 창을 소멸시킵니다. SP가 5천 소모됩니다.]
[영검이 소모된 SP를 환혼합니다. SP가 50% 회복합니다.]
[영기발출로 소멸된 혼의 일부를 흡수합니다. 영혼 흡수가 발동합니다.]
영기발출의 효율 증폭, 소모된 SP의 환혼.
거기에 영혼 흡수가 불가능하던 게 일부 가능하기까지 했다.
와, 이 검 쓸 만한데?
흐뭇하게 시스템 창을 보고 있는데 마지막 메시지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비슷한 격의 상대를 소멸시켰습니다. 영검이 소폭 강화됩니다.]
[현재 영검은 A등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