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101화>
101 디아나와의 재회
[A급 하이 엘프 디아나를 소환합니다. 하루에 SP가 2,000 소모됩니다. 소환하시겠습니까?]
2,000?
드라키나는 500이더니 4배네?
하지만 이미 하루에 60만씩 버는 몸. 그깟 2,000이야 바로 소환해 주지.
예를 누르자 빛이 번쩍이며 디아나가 나타났다.
“성공하셨군요!”
소환하자마자 내 품 안에 뛰어 들어오는 디아나.
오랜만에 보니 미모가 여전했다.
그녀를 가볍게 품에 안아 주었다.
나를 올려다보는 디아나. 호수같이 커다란 푸른 눈이 반가움을 가득 담고 있었다.
“안은 괜찮았어요?”
“지호 님, 말 편하게 하세요. 전 지호 님의 사도잖아요.”
“아, 그랬지.”
“안은 좋았어요. 제 고향이 생각나는 숲이었죠. 그곳에서 지호 님이 성공하시기만을 기다렸어요. 하지만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아서 A급에 도달하실 줄이야…….”
존경의 눈초리로 날 바라보는 디아나.
나는 그녀가 사도의 정원에 들어오고 나서 하도 많은 일이 있어서 시간이 꽤 지난 거 같았는데, 막상 따져 보면 그리 많이 지나질 않았다.
그녀가 들어온 건 케브리안 클리어 때였고, 그 이후엔 인류 멸망 위기를 겪고 회귀했으니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얼굴이 많이 어두워지셨습니다.”
“흠, 그게…….”
쌓인 이야기가 많았지만 공개적인 장소에서 하기가 좀 그렇군.
나는 던전 포탈을 바라보았다.
저긴 이제 비밀 이야기하러 가는 곳이 되었구만.
“공개적인 장소에서 이야기하기는 좀 그러니, 던전에 들어가서 이야기하죠.”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들어온 던전 안.
이번에는 평범한 흙빛 대지에 언덕이 사방에 늘어서 있는 분지 형태의 지형이었다.
적은 당장 보이지 않으니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야겠다.
그 전에…….
능력치 창이나 한번 볼까.
[이름 - 디아나
클래스 ? 반신半神, 하이 엘프
수호신 - 김지호
칭호 -
레벨 - 200
힘 - 170
민첩 - 443
마력 - 321
회수 가능 SP ? 11,122]
드라키나와는 다르게 질서 진영 능력치로 나오네.
내가 힘 빼고는 능력치가 다 딸리네.
아, 물론 상태창 중첩이니까 합치면 비슷할지도.
“뭐 보세요?”
“디아나 상태창 보고 있었어.”
“아, 정말요? 제 상태창도 보여요?”
“응, 내 사도잖아. 나보다 능력치가 좋은데?”
그러자 웃음 짓는 디아나.
“태양신 아폴론이 절 아르테미스의 새 신체로 낙점해서 이것저것 권능을 부여했거든요. 좋은 것도 가져다 먹이고.”
“하…… 그래, 그놈. 처녀신의 육체를 선점했다 그랬지?”
그땐 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시간 회귀에 대해 안 지금은 뭔가 짐작이 간다.
매번 회귀하니까 처녀신도 처녀 때려치우고 놀다가 다시 돌아갈 때쯤에 처녀 육신으로 갈아타는 거 아닐까?
그래야지 ‘처녀신’으로 통칭되는 개념에 SP를 수거할 수 있는 거 아냐?
그러려면 처녀여야 하고.
중간에 처녀 때려치워도 SP 수거가 가능한지는 궁금하긴 하지만 되니까 저런 짓을 했겠지?
내가 대충 나의 추측을 이야기해 주자 디아나가 화들짝 놀란다.
“시간을 되돌린다고요?”
“아, 이거부터 설명해야겠구나. 근데 디아나. 이제 나왔으니 엘프리안에게 다시 갈 거야?”
디아나에게 내 상황에 대해 설명을 쭉 해 줄까 하다가 엘프리안과의 관계 때문에 좀 꺼려졌다.
엘프리안이 디아나를 다시 돌려 달라고 할 수도 있잖아. 사실 디아나를 잠시 맡아 달라고 했으니 명분도 있는 거고.
그래서 만약 내가 돌려보낸다면 내 정보가 모두 그녀한테 가지 않겠어?
그건 좀 꺼림칙하단 말이지.
“왜요? 보내고 싶으세요?”
서운하다는 표정을 짓는 디아나.
“나야 보내기 싫지.”
“그럼 안 갈게요. 어차피 제 수호신은 지호 님이에요. 수호신의 허락 없이는 갈 수 없답니다.”
“어…… 되던데? A급은 가능해.”
내가 헤르메스와 로키를 배제했듯이.
그러자 아차하는 디아나.
“아참, 반신은 수호신 배제가 가능하군요. 생각도 못했던 일이라……. 그럼 엘프의 맹세를 하겠습니다.”
“뭐 그렇게까지야.”
“아니에요, 이런 건 확실히 해야 해요. 김지호 님이 절 버리기 전까지는 결코 김지호 님의 사도직을 포기하지 않고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만약에 그럴 경우 스스로 소멸하겠습니다.”
아니 뭐, 소멸까지 거론하니?
거기에 내용이 뭔가…… 사족이 붙은 느낌인데.
디아나의 눈이 아주 열의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디아나, 오랜만에 봤는데 왜 이렇게 열정적으로 변했어?”
“당연하죠. 제 님이 저를 의심할 꼬투리조차 만들고 싶지 않아요.”
“어…… 님?”
“네, 제 반려시잖아요.”
눈을 반짝반짝하며 날 쳐다보는 디아나.
그 하룻밤 때문에 그런 건가?
나도 그녀가 싫은 건 아니지만 지금 뭐 반려라고 하기에는 좀 그런데……. 그때의 하룻밤도 사실 어쩔 수 없는 상황 탓이 컸잖아.
물론 그녀 같은 엘프 만나긴 힘들겠지.
얼굴 이쁘고 몸매 좋고 성격도 착한 편이고 실력도 좋고.
솔직히 감지덕지긴 하지만…… 지금 내 상황도 있고 하니 연애하고 놀 때는 아닌 거 같아.
내 이런 기색을 읽은 것일까.
디아나는 황급히 양손을 흔들었다.
“물론 지호 님에게 그날의 일 때문에 제 반려가 되어 달라고 강요하진 않을 거예요. 제가 저 혼자 지호 님을 제 반려라고 생각할 뿐이니까요. 하지만…… 곁에 있는 것은 허락해 주세요.”
참 이렇게까지 말하니까 내가 나쁜 놈이 되는 거 같군.
하지만 지금은 시기가 안 좋아.
올림푸스-아스가르드에 혼돈, 거기에 새로 나온 지구의 봉인된 신까지.
상황이 워낙 꼬여 있는데 이걸 푸는 게 먼저지.
“알았어, 사실 지금 상황이 별로 좋지가 않거든. 엘프의 맹세까지 했으니 지금 상황에 대해 말해 줄게.”
그렇게 던전 안에서 그녀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쭉 이야기했다.
내 말을 다 듣고 난 그녀.
결연한 기색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쩐지 지호 님 얼굴에서 근심이 느껴졌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군요. 제가 이제부터 몸과 마음을 바쳐 서포트 하겠습니다.”
갑자기 군기가 팍 든 디아나.
예전에 처음 만났을 때 같은 느낌이다.
좀 든든하군.
확실히 믿을 만한 ‘아군’이 참 없다고 느꼈는데, 이제야 생긴 기분이다.
“지호 님, 일단 용신 드라키아와 엘프리안 님이 영혼 중개를 통해 회복하고 있다고 했죠?”
“응.”
“그럼 그 두 신에게 스킬 스톤을 달라고 하는 건 어떨까요? 둘 중 한 분은 분명 있을 거예요.”
스킬 스톤을?
좋은 생각인데 그들의 처지를 생각해 보면 있을까 싶은데.
“흠…… 엘프리안은 사지 잘린 채 도망다니고, 드라키아는 지금 막내딸 피 빨아 먹고 있는 신센데 과연 있을까?”
“밑져 봐야 본전입니다. 영혼 중개 업그레이드 비용이 감소되어야 두 신도 더 빨리 재생할 수 있다고 설득하세요. 두 분은 한 행성을 주름잡았던 이들이니 분명 둘 중 하나는 있을 거예요.”
“그러네, 물어봐야겠다. 근데 디아나, 엘프리안에게 달라고 해도 괜찮아?”
“괜찮아요. 지호 님 스킬 레벨이 빨리 올라야 엘프리안 님도 빨리 회복하죠. 거기에 조상님보다는 지아비가 더 중요해요.”
조상님이라니…… 엘프리안을 말한 건가?
거참, 이래서 자식은 키워 봤자 소용없다더니……
어쨌든 나한테는 아주 든든한 아군이 생겼어.
“좋아, 던전 나가면 바로 물어봐야지.”
“그리고 제 생각인데, 사도를 더 확충해야 할 거 같아요.”
“사도를?”
“네, 지구 멸망 때 강력한 헌터가 부족하다고 그러셨죠? 저들이 시간을 돌려도 제 레벨과 등급은 유지가 되었어요. 수호신인 지호 님이 같이 시간 회귀를 한다면 사도도 저절로 따라오는 거 같아요. 지구인 중에 능력 있는 이들을 사도로 받으시는 게 어떨까요? 그들에게 지구 방위를 도우라고 하는 거예요.”
“디아나는 과거 회귀를 또 할 거라고 보는 거야?”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미리 준비는 해둬야죠.”
흐으음……
지구인 중에 쓸만한 이들을 사도로 받아들이라고…….
지구인들은 근데 다 수호신이 붙어 있는데.
“지구인들은 다 수호신이 있어서, 힘들지 않을까?”
“지호 님, 저들은 그 정도는 신경도 쓰지 않을 거예요. 영혼 중개자의 가치가 얼마나 큰데 더 막 나가셔도 될 거 같아요.”
“헐, 막 나가라고?”
“네, 아스가르드에서 뭐라고 하면 올림푸스에 붙는다고 큰소리 뻥뻥치세요. 솔직히 아무 말 못할 걸요?”
그러면서 디아나는 자신만만하게 말을 이었다.
“저들의 목표가 결국 제우스나 오딘이 창조주가 되는 거라고 하셨잖아요. 그럼 둘은 결국 최종적으론 경쟁 상대예요. 그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김지호 님을 그깟 사도 몇 명 빼앗아 갔다고 배척한다? 전 그렇지 않을 거라고 확신해요.”
디아나.
케브리안 때는 좀 얼빵한 거 같았는데…… 이렇게 머리가 돌아가는 여자였니?
“디아나, 좋은 생각이야. 지구인 사도라…….”
멸망의 때를 생각해 봤다.
그때 당시에는 나 같은 사람 하나만 더 있어도 A급 던전이 제압 가능하긴 했지.
하지만 그 이후에도 던전이 증식했다면?
둘로도 부족할지 몰라.
“일단 후보 생각을 좀 해 봐야겠어.”
“네, 알겠어요. 그럼 던전 정리를 할까요?”
디아나가 손으로 언덕을 가리켰다. 오랜만에 세상에 와서 몸이 근질근질한가?
내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쉭 사라지는 디아나.
곧 언덕 너머에서 단발마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엄청 빠르게 학살 중이네.
[그대여, 날 엘프리안에게 데려다줄 수 있겠는가?]
누구를 사도로 또 임명할까 골똘히 생각하는 사이 갑자기 들려오는 드라키아의 음성.
벌써 20%가 되었나 싶어 퀘스트 창을 보니 각성도가 20%를 달성한 상태였다.
“좋아요. 저도 마침 용무가 있었습니다.”
[그래, 그럼 드라키나와 함께 던전 밖에서 기다리겠다.]
좋아, 스킬 스톤 이야기를 해야지.
한 10분 정도 기다렸을까.
바람이 휙 불더니 디아나가 하늘 위에서 사뿐히 착지했다.
“휴우, 이런 게 반신의 힘이군요. 예전과는 다르게 너무 강해요.”
“금방 끝냈네.”
“정령왕까지 소환이 가능하니까요. 오히려 이것저것 실험한다고 좀 늦었어요. 던전핵은 직접 부수실래요?”
던전핵을 손수 들고 온 디아나.
난 고개를 저으며 그녀보고 직접 처리하라고 했다.
“아니, 디아나가 다 처리해.”
“네. 실라임, 부탁해.”
디아나가 정령에게 명하자 금방 부서지는 던전핵.
그리고 다시 산 정상으로 복귀했다.
“왔어? 어, 옆에 귀쟁이는 뭐야? 어, 좀 쎄네……?”
대기하고 있던 드라키나가 손을 흔들었다.
디아나를 보고 말끝을 흐리는 드라키나.
“귀쟁이라니, 역시 용족은 예의가 없군요.”
“아니, 뭐 귀 큰 건 사실이잖아? 근데 저 여자 뭔데 저렇게 세? 하이 엘프도 그 정도는 아닐 텐데.”
[반신이다. 이 정도의 힘이면 엘프리안의 직계인가? 그 정도로 강한 혈통의 느낌이 들지는 않는군.]
“직계는 아닙니다, 용신이시여.”
[날 아는가?]
“잠시만요. 일단 제가 역소환하고 엘프리안에게 가겠습니다.”
이러다가 이야기가 끊이지 않을 거 같아 커트했다.
일단 엘프리안에게 가기 위해서 둘을 역소환 한 후 그녀가 준 아이템을 사용했다.
빛이 번쩍하더니 도착한 장소는 숲 속이었다.
이번엔 지하가 아니네?
“누구냐!”
숲 한켠에 일단의 무리가 서 있었다.
얼굴을 가리는 붉은색 갑주를 입고, 창과 방패를 든 전사들.
느낌이 예전에 레오니다스의 병사들과 비슷하다.
[아니, 왜 이 상황에 오셨어요……? 도망치세요. 올림푸스의 추격대입니다!]
엘프리안의 다급한 음성이 귓가에 들렸다.
올림푸스의 추격대?
숫자는 약 100.
하나하나가 강력한 기세를 지니고 있었다.
B급이었으면 상대하기 힘들었겠지만, 지금은 충분히 상대해 볼 만해.
다만 걸리는 건 저들을 죽이면 올림푸스에게 나와 엘프리안의 연수가 알려지지 않을까 하는 점.
“저들을 죽이면 정보 인멸 가능합니까?”
[네? 네, 가능합니다. 저들은 제 공간에 무단 침입한 정찰대니까요.]
“알겠습니다. 디아나 소환, 드라키나 소환.”
둘을 소환하고 검을 뽑는다.
적은 어느새 투창준비를 끝마치고 있었다.
“투창!”
빛이 되어서 쏜살같이 날아오는 투창.
A급 던전에서 만났던 레오니다스 패거리보다 확실히 그 기세가 강하다.
하지만 나도 그때보다 강해졌지.
아이기스의 방패를 쓸 필요도 없이, 여의에 마나를 담아 휘두르자 투창이 수수깡처럼 부러진다.
그리고 동시에 소환된 디아나와 드라키나가 개입하기 시작했다.
“적인가?”
“제압하겠습니다.”
서로를 잠시 쳐다보더니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적에게 달려가는 두 여인.
드라키나는 입에서 불을 뿜고 디아나는 사대 정령을 소환해서 적을 제압한다.
나도 같이 진입하려고 했지만, 순식간에 학살하는 두 여인 때문에 각도 나오지 않았다.
허, 디아나는 반신급이니 센 게 이해가 가는데 드라키나 쟤는 등급도 B인데 브레스빨로 다 태워 죽이네.
적을 금방 학살하고 나자 숲의 나무 중 한 그루가 변형하기 시작했다.
크기가 급속히 쪼그라들더니 엘프리안의 형상을 한 나무 인형이 서 있었다.
이번엔 흙이 아니라 나무로 만들어진 엘프리안.
사지 잘린 것도 두 다리는 복원된 상태라 키는 디아나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팔은 없었지만.
“디아나! 거기에 용신의 힘까지 느껴지는군요.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팔 없는 나무인형 엘프리안이 다가오며 반갑게 말했다.
그러나 곧 들려오는 목소리에 표정이 잔뜩 찌푸려졌다.
[엘프리안, 오랜만이군. 몰골이 비참하구나.]
“이 목소리…… 드라키아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