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93화>
93 헤라클레스의 후원을 받다.
“멘토링이라니……?”
“멘토링 스킬 모르나? 하긴, 그놈들이 해 줄 리가 없지.”
헤라클레스는 나를 손으로 가리켰다.
“너도 나도 영혼 약탈자 아니냐? 내가 선배 영혼 약탈자로서 너의 성장을 도와 주겠다.”
“도와준다고?”
“그래. 멘토링 스킬을 통해 너에게 경험치와 스킬 숙련도를 키워 줄 수 있지. 영혼 약탈자의 경우에는 스킬 레벨 업에 드는 SP가 감소할 거다. 특히 내 영혼 약탈자 스킬들은 모두 레벨 100이니, 꽤 큰 도움이 될 걸?”
스킬 레벨 100?
와. 미쳤는데?
아니, SSS급 혼돈의 군주니 그럴 법 한 건가?
“뭐 그리 놀라나? 이 정도면 스킬 레벨이 낮은 편이다. 다른 대신들은 기본적으로 천이거든.”
“천……?”
“그래. 내가 중간에 영혼 약탈자 클래스로 승급하질 않아서 이렇게 된 거다.”
하. 스케일이 다르구나.
헤르메스나 로키 같은 대신도 이 정도 급이란 이야기잖아.
막상 그들이랑 붙으면 한 방에 소멸하겠네 진짜.
“그럼 너는 영혼 약탈자 스킬에 대해선 큰 신경 쓰지 않고, 중개자에만 집중할 수 있지. 어때? 나와 영혼 중개 계약을 체결하고, 손을 잡는 게.”
“거 참 고마운 제안인데. 한 가지 물어봐도 되나?”
“궁금한 것도 많은 놈이네. 그래 물어봐라.”
“왜 B급밖에 안 된 나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거지?”
그러자 피식 웃는 헤라클레스.
“영혼 계열 각성자니까. 그리고 제우스나 오딘이 널 포기할 리가 없으니까.”
“그거 때문에?”
“그래. 너, 알고 있나? 저들이 시간을 되돌리는 것을.”
“어? 그걸 알고 있었어 혼돈에서?”
헤라클레스도 이걸 알고 있었나?
어 그럼 혼돈 진영도 죄다 아는 거네?
“역시 알고 있군. 지구인도 갑자기 강해지고…… 너도 회귀했나? 어쩐지 날짜가 이상하더라. 평소보다 너 나갔어.”
“그게 무슨 소리지? 흠. 하데스는 이런 이야기 안 했는데…….”
“호오. 미래에선 하데스님과도 접촉했었나? 뭐, 그 아저씨는 마누라 잃고 미쳐서 무슨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으니까.”
그러더니 목소리를 낮게 까는 헤라클레스.
“근데, 그 시간장난…… 영원히 가능할 거라 생각하나?”
“시간을 되돌리는데 무한정 가능한 거 아니야?”
“아니다. 최초 스타트 시점은 계속 변하고 있다. 맨 처음이 너희 시간으로는 2020년 1월 1일이었지.”
그는 책상에 선을 긋기 시작했다.
“그다음 회귀할 때는 2020년 1월 2일이었다. 그리고 그다음은 3일. 이렇게 시간회귀를 해도 하루씩은 시간이 지나고 있어.”
“오…… 이건 어떻게 알았지?”
“저 놈들은 시간 회귀를 하면서 진영을 바꾸지. 하루마다 진영이 바뀌는 지구가 보인다. 정신 사나워.”
아하.
혼돈의 군주 입장에서는 하루마다 지구를 지배하는 신들이 바뀌는 거구나.
이게 최초의 1월 1일로 돌아갔으면 모를 텐데, 하루씩 지나니까 확 표가 나는군.
“근데 왜 안 막았지?”
“작정하고 시간을 돌리는 데 어떻게 막냐? 하지만, 날짜는 지나고 있지.”
하루씩 지나긴 한다만, 그게 뭐 어쨌다고?
그래도 계속 돌리면 되는 거 아냐?
“2030년이 되면, 완전히 끝난다.”
“끝난다니……?”
“그때는 지구에 혼돈의 군주 다섯이 강림한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완전한 파멸이지.”
하데스가 갑자기 손으로 산 옆쪽을 가리킨다.
그 손을 따라 보니 산 정상에서 보이는 바다에서 무언가 거대한 물체가 올라오고 있었다.
우르르르르.
물체가 점점 윤곽을 드러내자, 바다가 요동친다.
땅을 집어 삼킬 듯이 용솟음치는 커다란 파도.
대지가 순식간에 물에 적실 즈음, 드러난 물체는 거인이었다.
자세한 외양은 너무나도 거대해서 파악할 수가 없다.
팔과 다리가 있는 시커먼 금속의 몸체만 드러날 뿐.
머리는 순식간에 하늘로 솟아올라 여기서도 보이지 않았다.
발은 바다에 닿고, 머리는 하늘을 뚫은 비현실적인 규모의 거인.
이렇게 멀리 떨어진 산 정상에서도 공포스러운 마력이 느껴진다.
저걸 보자 혼돈의 군주 ‘홀로 서는 거신’의 이름이 떠올랐다.
“저거 설마……?”
“내 본체다.”
저게 2030년에 지구에 강림한다고?
질린 느낌이 들었다.
저걸 뭐 어쩌라는 거야?
저런 급이 한 개도 아니고 다섯이 모두 지구에 뜬다는 거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혼돈의 차원문이 2030년에 지구에 열린다. 올림푸스도 아스가르드도 대신 급은 많지만, 우리의 강림을 막진 못해.”
“그래도 신들이니 싸울 수는 있지 않겠어?”
“그래. 싸울 수는 있겠지. 하지만 지구는 부서질 거다. 그들의 신앙의 근원, 본거지가.”
“부서진 세계를 막는다면, 지구 강림을 저지한다고 들었는데…….”
“2030년까진 저지하겠지. 하지만 2030년에는 안 돼. 우리가 무조건 강림하지.”
그가 손가락을 툭 치자 사라지는 홀로 서는 거신.
몸을 압박하는 공포스러운 마력도 눈 깜짝할 새에 사라져 있었다.
석유처럼 시커멓게 변한 바다색이 아니었으면, 헛것을 보았나 착각했을 정도였다.
“올림푸스 출신인 나와 하데스 아저씨를 빼면, 나머지 혼돈의 군주들은 헛짓거리에 별 관심도 없어. 어차피 이제 8~9년 후면 끝나니까. 불멸자에게 그 시간쯤이야.”
영생을 사는 신들의 입장에선 8년쯤이야 별 게 아니겠지.
저 놈들이 헛짓거리 해도 그냥 지구에 소환돼서 지구 부수면 끝인 건가?
올림푸스와 아스가르드의 본진이 지구니까?
“근데 나와 하데스 아저씨는 생각이 달라. 그렇게 시간 끌다가 진짜 SP 끌어모아서 승급할 수도 있다고 보거든. 음흉한 제우스나 오딘이 승부수를 던진 데는 이유가 있을 거야.”
“그럼 어떻게 되는데?”
“승급하면 태양계 한정 창조주가 되지. 그럼 우리도 건들 수가 없어. 나머지 혼돈의 군주들은 그러면 뭐 어쩔 수 없지 이러던데…….”
게을러터진 놈들 하면서 바드득 이를 가는 헤라클레스.
“나와 하데스 아저씨는 아니란 말이지. 올림푸스 놈들을 씹어 먹어야 분이 풀린다.”
“으음…….”
“영혼 중개자가 된 너는 상당히 중요한 존재다. 그들이 포기할 리가 없지. 나와 손을 잡고, 네가 그들의 동태를 알려다오.”
이거 지금 보니까 2030년까지 제우스 오딘네가 창조주로 승급하느냐, 마느냐의 싸움이네.
근데 제우스나 오딘이 창조주가 되면 결국 지구 지키는 거 아닌가?
“근데 네 말 들어 보면 그냥 물심양면 제우스와 오딘 도와 주면 결국 지구를 지킬 수 있는 거 아냐?”
“창조를 하기 위해서는 일단 지구 위를 싹 정리하고 시작하겠지. 특히 너는 지금이야 시스템의 보호라도 받지, 그들이 창조주 되면 그런 거 없어.”
지구를 태초의 그대로 깨끗하게 한 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창조할 거라는 헤라클레스.
“제우스가 창조주가 되면 남자라는 생물은 사라질 거다. 온통 암컷만 남겠지.”
그 말이 가슴에 팍 와닿았다.
정말 그럴 거 같아.
하아아.
지구인은 뭘 해도 쓸리는 운명인가…….
내가 복잡한 심정으로 생각을 하고 있자니 헤라클레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적이었던 내 말을 쉽게 믿을 수는 없겠지. 그럼 손을 잡는 건 잠시 보류하고, 거래한다고 생각해라. 나는 네게 멘토링을 해 주겠다.”
“흐음…….”
“그러면 넌 영혼 약탈자 클래스를 손쉽게 육성할 수 있지. 너는 대신 내게 영혼 중개를 해 주고. 나와 통신을 연결하자. 이 정도면 괜찮은 제안 아닌가?”
그래.
간단히 생각하자.
멘토링으로 영혼 약탈자 능력을 쉽게 올릴 기회가 왔으니까 영혼 중개 자리 하나 주고 그렇게 가야지.
일단 대신들의 분쟁에 낄 깜냥도 안 되니까, 얌전히 성장이나 하자.
“알겠다.”
“좋아. 그럼…….”
[영혼 약탈자 헤라클레스가 사용자에게 ‘멘토링’ 스킬을 사용하려 합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예를 누르자 곧바로 메시지가 뜬다.
[영혼 약탈자 헤라클레스가 김지호의 멘토가 됩니다.]
[멘토의 영혼 약탈자 스킬 숙련도가 MAX입니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스킬 승급 비용이 크게 감소합니다. 5일이 지나면, 비용이 1%까지 감소합니다. 멘토와 같은 세계에 있어야 멘토링 효과가 지속됩니다.]
1…… 1%?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1%가 감소한다는 게 아니라, 1%가 된다는 거지?
와.
아무리 스킬 레벨 100이라고 해도 뭐 이런 미친 효율이 다 있어……?
“놀란 표정 보니 효과가 좋나 보군.”
“1%……1% 든다는데?”
1%라는 말에 헤라클레스도 눈을 동그랗게 뜬다.
“SP가 1% 든다고? 허어. 최대 해 봤자 반값일 줄 알았는데…… 클래스가 특수해서 그런가. 이거 영혼 중개 한 자리로는 부족한데. 나중에 중복 되면 한 자리 더 줘라.”
“그러지 뭐.”
헤라클레스의 말에 선선히 동의했다.
멘토링 효과가 너무 뛰어났기에 전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거보다는 영혼 약탈 끝날 때까지 무조건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혼 중개 계약을 체결하고 나자 헤라클레스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이런 효과였군. 레벨이 낮은데도 나쁘지 않은데? 나중엔 아주 쓸 만하겠어.”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흠. 이런 우호적인 분위기에 뭐 또 써먹을 거 없을까……?
그러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났다.
이 행성은 지구처럼 던전 포탈이 소환돼서 클리어하는 구조잖아?
이걸 혼돈의 군주인 헤라클레스가 관리하는 거라면, 어떻게 사냥하기 쉽게 몰아줄 수 있지 않을까?
“근데 그럼 네가 던전 포탈 소환 이런 거도 다 하나?”
“그런 건 그냥 자동으로 맡기지. 언제 그런 걸 조절하고 있겠나.”
“할 수는 있는 거네?”
“뭐 그렇긴 한데…… 왜?”
떨떠름한 표정으로 반문하는 헤라클레스.
“이왕 멘토가 된 김에, 나 던전 좀 밀어 줘.”
그러자 어이없어하는 헤라클레스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하…… 나 헤라클레스 앞에서 이렇게 뻔뻔하게 요구하는 인간은 오랜만이네. 옛날 12시련 때 헤라 믿고 깝죽대던 왕이 생각나는군.”
말하다가 깝죽대던 왕이 기억나는지 주먹을 불끈 쥐는 헤라클레스.
온몸의 근육이 수축하며 핏줄이 솟아나온다.
거 참, 주먹이 내 머리통보다도 큰 거 같네.
그래도 요즘 레벨 업이 답보 상탠데 포기할 수 없어.
“하하 이왕 멘토 되신 김에 좀 도와 주시죠. 레벨 업해서 A등급 반신에 오르면 영혼 중개 스킬도 더 업그레이드되는데,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영혼 중개 스킬이 오르면 아까 말씀하신대로 한자리 더 드릴 수도 있구요. 네?”
“하. 징그러운 새끼…… 이제 와서 무슨 존칭이냐. 소름 돋으니까 존대하지 마라.”
날 질린 눈으로 쳐다보더니, 곧 생각에 잠기는 헤라클레스.
오호. 거절할 거였으면 단칼에 했을 텐데…… 좀 생각이 있나 봐?
여기까지 왔는데 더 부탁해 보자.
어차피 이판사판이야.
게다가 이놈 나한테 이러니저러니 해도 호의적인 편이니…….
“아. 헤라클레스 멘토님!”
“존대하지 마라.”
“아. 그래. 그냥 A급 던전 포탈만 딱 소환해 줘. 지금 부서진 세계 폐쇄된 데가 많아서 레벨 업을 못해. 케브리안도 안 열리고 레벨 업 잘 하던 칼바인도 지금 출입불가라고.”
“호오. 두 개가 다?”
“그래. 멘토링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라도 여기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다른 행성에 있어도 되나?”
“흐음. 너무 멀리 떨어지면 쉽지 않지. 내가 소환하는 던전 포탈은 나와 연결되니 괜찮을 테지만…….”
두 눈을 감고팔짱을 낀 채 자신의 팔꿈치에 손가락을 툭툭 치던 헤라클레스가 곧 후우 한숨을 쉰다.
“그래. 밀어 줄 때 밀어 줘야지.”
“캬! 멋있습니다.”
“아 조용히 해 봐.”
그가 손을 들자 주변 대기가 일렁인다.
“소울 배리어 해제.”
산 정상을 감싸던 보호막이 싹 걷히며 사라진다.
그러더니 손가락으로 땅바닥을 가리키는 헤라클레스.
“소환.”
그 간단한 동작에 커다란 남색 포탈이 산 정상에 생겨난다.
내가 지구 멸망 전 보았던 A급 던전 포탈보다도 훨씬 그 크기가 컸다.
“던전 포탈은 A급이 끝이다. 대신 규모의 차이는 존재하지. 저번에 싸우는 걸 보니 이 정도는 충분히 깰 거 같군.”
“물론이지!”
“징그러운 놈. 난 이제 본체로 돌아가겠다. 던전은 이 자리에 계속 소환하지.”
크. 친절도 하셔라.
내게 등을 돌리더니 곧 스르르 사라지는 헤라클레스.
생각 외로 얻은 게 너무 많아 마음이 훈훈해졌다.
지금 나…… 괜찮은 후원자를 잡은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