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 2개-92화 (92/240)

<내 상태창 2개 - 92화>

92 영혼약탈자 헤라클레스 (3)

에슈타르에 다시 진입하자, 도시는 어느새 복구되어 있었다.

들어서자마자 헤라클레스의 음성이 들린다.

[빨리 왔군. 영혼 약탈자여.]

“어디로 가면 되지?”

[이리로 와라.]

도시 한가운데에서 붉은색의 포탈이 열린다.

“저게 뭐지?”

“흉흉한데…….”

사람들이 갑자기 열린 포탈을 보고 수군수군거린다.

꽤 불길한 느낌의 핏빛 포탈.

그래도 들어가야지 하면서 발걸음을 옮긴 순간.

[프레이야가 사용자에게 귀환의 축복을 내립니다.]

[사용자의 영체가 억류되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하얀빛.

나를 지켜보고 있었나?

딱히 막지는 않고 오히려 잘 돌아오라고 귀환의 축복을 내려 준다.

고맙군.

그 축복을 받고 포탈에 들어서자, 도착한 곳은 산의 정상.

산 아래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는데, 저 너머에는 마법도시 에룬달 같아 보이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왔군.”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니 2미터는 되어 보일 법한 거대한 사내가 서 있었다.

구릿빛 피부의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상체를 까고 있는 남자.

왼쪽 눈에는 턱까지 내려오는 거대한 검상이 있고, 드러낸 가슴에는 흰색의 검이 가슴 정면을 향한 채 박혀 있었다.

갈색 가죽 바지는 고간 부분에 사자 머리가 새겨져 있었는데, 헤라클레스가 잡았다던 사자인가 싶었다.

얼굴은 전설적인 영웅답게 강인한 인상.

미남이라기보다는 호남에 어울리는 남자다.

“앉자.”

그가 손을 휙 들자 땅에서 의자와 둥근 테이블이 올라온다.

그와 마주하며 앉아섰다.

“이렇게 인간 시절 육신을 구현하는 것도 오랜만이군.”

“그 검은?”

“가슴에 박힌 검? 망할 헤라의 딸년이 칼침 놓은 거지. 넌 결혼하지 마라. 나는 이 칼을 보고 언제나 그 진리를 새긴다.”

아아.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기간토마키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헤라클레스와 헤라는 화해하고, 헤라의 딸을 부인으로 줬다고 했나?

근데 그 부인이 배신했나보군.

“그럼 일단.”

헤라클레스가 손을 올리자 산 정상 전체에 노란빛의 배리어가 형성된다.

“대화 감청은 사양이거든.”

그러더니 다리를 꼬고 앉는 헤라클레스.

나를 유심히 바라본다.

그러더니 고개를 갸웃하는 그.

“으음. 내 후손은 아닌 거 같군. 자질이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심한데.”

뭐, 자질 이야기야 귀에 못 박히도록 들었던 이야기.

나는 역으로 물었다.

“네 자질은 어떻게 되나?”

그러자 바로 고개를 턱 드는 헤라클레스.

자부심 가득한 얼굴이다.

“나는 30/30/30이었지.”

30??

나 3/3/3이었는데 내 10배네.

미친…… 30이 가능한 수치야?

“30?? 10이 최고일 텐데?”

“그때 나는 신의 아들이었으니까. 망할 제우스가 뿌린 씨 중 하나였지.”

얼굴을 찌푸리며 말하는 헤라클레스.

그는 아무래도 의문이 가시지 않는 듯, 물어본다.

“근데 자질이 어떻게 되나? 한 번 만져 봐도 되나?”

“눈으로 파악한 거 아니었어?”

“만져야 정확하거든.”

“공짜로는 좀 그런데.”

“뭐? 공짜? 하하하하!”

쿵!

헤라클레스가 크게 웃음 지으며 책상을 쿵 친다.

그러자 책상은 멀쩡한데 산 전체가 부르르르 흔들린다.

미친 힘이군.

근데 뭐?

죽으면 죽는 거지.

힘자랑 한다고 쫄 거 같냐?

내가 가만히 쳐다보자 피식 웃던 헤라클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질에 비해 눈빛은 괜찮군. 죽자마자 다시 오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좋아. 그럼 네가 먼저 궁금한 걸 물어봐라. 대답해 주고 자질을 알아보도록 하지.”

“알겠다. 그럼 일단, 영혼 약탈자가 너와 나밖에 없나?”

“내가 알기론 그렇다. 그 오랜 세월 꽤 많은 시도를 했지만 영혼계열 각성자는 나타나지 않았지.”

그래서 네 자질이 더 궁금한 거다. 라고 중얼거리는 헤라클레스.

“영혼 약탈자 스킬은 어떤 게 있나? 영기발출 이외에도 추가되는 게 있나?”

“호. 벌써 거기까지 올랐나? 하지만 나도 거기에 소울 배리어 스킬 정도만 추가되었을 뿐이다.”

손으로 산을 감싸는 노란 배리어를 가리킨 헤라클레스.

저게 소울 배리어인가?

“SSS등급인데 겨우 스킬 하나 추가인가?”

“나는 영혼 약탈자가 주 클래스가 아니니까. 너는 아예 영혼 계열인가 보구나. B등급인데 영기발출이 있는 거 보니.”

“그런 당신은?”

“나는 혼돈의 군주가 주 클래스지. 너는 타 클래스를 택하지 마라. 그러는 순간 영혼계열 클래스의 승급은 멈추게 되니까. 나야 어쩔 수 없었을 뿐…….”

선배의 조언인가?

어차피 타 클래스를 택할 생각도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불쑥 다가와 내 어깨를 만지는 헤라클레스.

“그럼 자질을 알아보도록 할까.”

헤라클레스가 손을 대자 바로 헤파이스토스의 갑옷이 역소환된다.

하얀 티셔츠와 반바지만 입은 상태에서 그가 팔뚝과 몸 이곳저곳을 만진다.

남자가 자꾸 주물럭 주물럭 대니까 기분이 좀 별론데?

다행히 오래 걸리지는 않아, 금방 끝났다.

“흐음…… 완전히 나랑 반대의 케이스군?”

“뭐 내 자질이 다들 최악이라고는 해.”

“그래. 나는 최고. 너는 최악이지. 근데 같은 점도 있어.”

“같은 점?”

“능력치가 완전히 똑같다. 원래 자질은 미세하지만 다들 차이가 있지. 예를 들어 같은 3/3/3이라도 힘이 3.0000001, 민첩이 3.000211 이렇게 말이야. 근데 넌 완전히 똑같은 3.0이군. 나도 완전히 똑같은 30.0이었지.”

원래 자질이 소수점까지 내려가서 미세한 차이를 보였던 건가?

근데 나는 최저 중 최저라 3.0 3.0 3.0으로 동일하고, 헤라클레스는 최고 중 최고라 30.0 30.0 30.0 인거고.

“영혼계열 각성자의 비밀이 이거였나? 3가지 능력치 자질이 완전히 동등해야 한다는 것…….”

헤라클레스가 흥미롭다는 듯이 나를 지켜보았다.

“어쨌든 덕분에 궁금증은 풀렸다. 근데 네 몸을 살펴보니 질서 영역의 힘, 올림푸스의 힘도 상존하는군. 이건 뭐지? 이거 익숙한 힘인데…….”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헤라클레스.

영혼 중개자를 말하는 건가?

그에게 말해도 되나 잠시 고민되었지만, 적의가 없어 보이기에 말해 보기로 했다.

“영혼 중개자의 힘도 가지고 있는데. 질서 진영의 축복도 받아서 말이지.”

그러자 화들짝 놀라는 헤라클레스.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영혼 중개자?! 그거 내가 주관하던 프로젝트였는데? 진짜 성공했나?”

“그쪽 프로젝트였다고?”

“그래! 내가 SS급 신일 때 올림푸스에서 주관하던 거다. 영혼계열 클래스라 내가 프로젝트 총괄이었지. 하…… 그게 성공했다고?”

헤라클레스가 자신의 턱을 짚고 주위를 서성인다.

땅바닥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갸웃하는 게 세상 심각한 표정이었다.

괜히 말했나?

“흐으음…… 내가 여러 신들과 심혈을 기울여 진행했던 프로젝트의 결실을 보다니. 신기하군. 혹시 영혼 중개 가능한가?”

“당신에게?”

“그래. 나 ‘홀로 서는 거신’에게 말이다.”

“공짜론 안 돼. 난 영혼 중개 할 때마다 커다란 대가를 받았지.”

그러자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는 헤라클레스.

잠시 주먹을 쥐며 몸을 부르르 떤던 그가 깊게 심호흡을 한다.

“하아…… 참자. 그래. 그래. 세상에 공짜는 없지. 내가 영혼 중개 스킬의 비밀을 알려 주마.”

비밀?

귀가 솔깃했다.

“뭔데?”

“영혼 중개창을 띄워봐라. 그 정돈 할 수 있지?”

“어.”

영혼 중개창을 띄웠다.

맨 위에 제우스, 헤르메스, 아테나가 있었고 그 아래에는 아스가르드의 6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엘프리안과 드라키아까지.

총 11명의 신이 나와 중개 중이었다.

남은 자리는 4자리.

4칸 다 빈칸이었다.

“아, 그래. 이게 우선이지. 혹시 빈 자리 있나?”

“어. 4개 있지.”

“잘됐군. 그럼 빈자리의 이름 칸을 클릭해 봐라.”

“이름을?”

“어. 한 번 말고 최대한 빠르게 여러 번 눌러.”

헤라클레스의 말에 따라 빈칸 이름 부분을 다다다닥 터치했다.

하지만 딱히 뭐 변함이 없는 모습.

“안 되는데?”

“지금 그게 최선의 속도냐? 나랑 신체능력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군. 1시간은 두들겨라.”

그러면서 예시를 보여 주는 헤라클레스.

자기가 생성한 책상에 검지를 올렸는데, 눈에 보이는 모습은 그냥 그대로였지만 책상에서 두두두두두두 소리가 나며 그대로 푹 파인다.

하. 초고속 터치냐?

참나. 폰게임 잘하겠네.

좋아. 마력 모두 쏟아부어 보자.

“집중강화. 헤르메스의 가속.”

그와 함께 드래곤 하트의 능력으로 마나를 대폭 소모하여 민첩을 펌핑시킨다.

간다!

두두두두두두두.

“호오. 짜증 나는 헤르메스에, 용의 힘까지…… 하찮은 자질로 여기까지 오다니, 대단하구나. 시간 좀 줄겠다.”

지 딴에는 칭찬이라고 한 거 같은데, 왠지 놀리는 거 같군.

녀석을 무시하며 열심히 두들기기 시작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헤라클레스가 지루한지 하품을 하고 있을 때쯤, 갑자기 새 메시지 창이 떴다.

[영혼 중개창 - 관리자 모드가 열렸습니다. 중개 대상을 작성해 주십시오.]

“오? 이게 뭐지?”

“하아암. 드디어 끝났나? 내가 몰래 만들어 본 관리자 모드지. 역시 내가 만든 틀이 그대로 사용되는가 보군. 음…… 중개 대상? 그거 쓰라고 나오지?”

“어 그렇게 나와.”

“거기에 행성 입력 가능하다.”

행성을 중개한다고?

헐. 대박인데?

“물론 B등급에 영혼 중개 레벨이 낮으니 한계가 있겠지만, 다른 신들 중개하는 거 보다 훨씬 나을 거다. ‘지구’ 써봐.”

나는 떨리는 손으로 작성칸을 열었다.

손가락으로 지구를 작성하니 [지구가 중개 대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하면서 닫히는 영혼 중개창.

이렇게 지구 중개를 하는 건가?

“와 대박…….”

“이 정도면 어떠냐. 대가로 충분하냐?”

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햐. 이거 뭐냐.

게임 보면 제작자가 숨겨 둔 모드…… 이스터 에그였나?

완전 그런 거네.

여기에 그럼 케브리안 에슈타르 이런 거도 추가 가능한 건가?

순식간에 빈 자리 걱정을 덜었네. 햐. 헤라클레스 만나러 오길 잘했는데?

“뭐 B급이면 행성 두 개 정도만 가능할 거다. 그 이상은 불가능하다고 메시지가 뜨겠지.”

“오오…… 대박인데.”

“어떠냐? 이 정도면 대가로 충분하지? 그럼 나와 영혼 중개 계약을 하자.”

그의 말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이런 걸 가르쳐 줬으니 당연히 해 줘야겠다 싶다가도, 뭔가 꺼림칙했다.

그는 결국 혼돈의 군주.

지구를 파괴할 적 아닌가?

하데스 때도 중개하긴 했지만, 그때는 케브리안 제압하고 나니까 안심해서 한 경향도 있었지.

근데 케브리안 제압했다고 지구 멸망 안 한 것도 아니었는데…….

지금 지구의 적인 혼돈의 수괴에게 영혼 중개하면 파멸이 더 빨라지는 거 아닌가?

“뭐 그건 그런데…… 당신은 결국 지구의 적 아닌가? 적을 도와 주는 행위가 될 거 같은데.”

그러자 화난 표정으로 책상을 쾅쾅 치는 헤라클레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무시무시한 얼굴이다.

“이 자식이 미리 알려 줬더니! 감히 나를 기만해?”

쿠구구구구.

그의 분노의 주먹질에 산과 대지가 흔들린다.

새들이 놀라 날아가고 땅이 갈라지는 무서운 완력.

더 무서운 건 그렇게 쳤는데도 이 산 정상과 테이블은 멀쩡하다는 거다.

산사태가 일어나고 대지가 요동치는데 이곳은 그저 공중에 뜬 듯 멀쩡하다.

아. 지금까진 신사적이었는데 성깔 나오나?

세긴 세네.

그래도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다.

“나도 자리도 남았으니 하면 좋지. 하지만, 널 도와 주면 결국 혼돈이 빨리 강림하는 거 아니냐? 그럼 내가 지구 멸망을 돕는 거잖아. 그럴 수는 없거든.”

“크하하하하! 지구 멸망을 막고 싶으냐? 그럼 저들의 헛짓거리를 막아야지!”

테이블을 치는 것을 멈추고 광소하는 헤라클레스.

그는 크게 웃더니 하늘로 손을 가리켰다.

“그럼 네 손으로 제우스를 죽여라. 오딘을 죽여라. 완전히 소멸시켜 그들의 미친 짓을 멈추어라. 그럼 혼돈이 물러갈 것이니!”

“대신을 나보고 죽이라고? 그게 가능하긴 하냐?!”

그런 내 반박에 눈에 이채를 띄는 헤라클레스.

“호오.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가능하냐고 묻는군?”

“신성모독은 무슨. 뒤통수를 몇 번이고 후려 갈기는 놈들인데 내 신으론 안 모신다.”

광포한 헤라클레스의 눈빛이 금세 풀려 간다.

얼굴도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변했다.

이 자식은 뭐이리 왔다 갔다야?

떨떠름하게 지켜보고 있자니, 그가 말문을 열었다.

“너, 나랑 손잡지 않겠느냐? 내게 멘토링을 받아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