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 2개-90화 (90/240)

<내 상태창 2개 - 90화>

90 영혼약탈자 헤라클레스 (1)

에슈타르.

난이도 최하 행성.

에슈타르의 최종보스인 헤라클레스가 고함 한 번 지르면 모두 죽고 다시 초기화한다는 동네.

거기 가 봤자 레벨 업이 안 될 텐데?

“고함 한 번에 모두 죽고 초기화 되는 거 아닌가요?”

[C급 헌터 중 고레벨은 혼돈의 군주의 공격에 큰 타격을 입으나 죽지는 않습니다.]

예전에는 수준이 낮아서 다 쓸려 나갔다면, 요즘은 지구인들도 C등급 중 고레벨이 많아 한 번에 죽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럼 초기화가 안 되겠네요?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죠?”

[남은 생존자를 향해 몬스터들이 총 출동하며 대공격이 시작됩니다. 다들 여기서 버티지 못하죠. 그래서 결국 바로 초기화가 됩니다만…… 김지호님은 페널티도 없으니 대규모 공격을 방어하며 경험치를 올릴 수 있을 겁니다.]

최근 며칠간 레벨 업이 정체되어 있었는데 잘 되었군.

빨리 A급을 가기 위해 도전해 볼만 하다.

난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그리로 가죠.”

* * *

[프레이야가 축복을 내립니다.]

[중립 진영에 소속된 생명체가 당신을 신의 사도로 대합니다.]

[이 세계의 주요 언어를 자동으로 번역하고 이해하며, 각성자의 말도 자동으로 번역됩니다.]

에슈타르의 마법도시 에룬달.

그림으로 그린 듯한 중세 판타지 도시의 풍경이다.

케브리안 때는 주로 요새에 있어 몰랐는데, 여기는 인간이 사는 도시 느낌이 팍 났다.

멀리서도 보이는 거대한 탑이 동서남북에 하나씩 있는 거만 제외하면, 평범한 도시.

“던전 파티 모집합니다.”

“마나석 사요. 마나석 삽니다!”

사람들은 활기차게 돌아다니고, 사람이 끌지 않는 수레가 여러 대 저절로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은 아직 평화로운 풍경.

아직 멸망하지 않았나보다.

헤라클레스가 고함지르기 전까지는 평화로울 테니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마치 관광하듯이 여기저기 둘러보면 걷다 보니 익숙한 글씨가 눈에 보였다.

[지구인 길드 지구]

한글을 비롯해 여러 언어로 써진 팻말.

가장 활성화되어 있는 동네다 보니 이런 것도 있나?

그 방향을 향해 들어가니 새로 지은 듯한 깔끔한 벽돌 건물들이 보였다.

그리고 각 건물마다 붙어 있는 명패.

영어 위주지만 한글도 간혹 보인다.

이 건물 길드 아지트 같은 건가?

근데 이상하게 인기척이 없다.

길 따라 쭉 걷다 보니 대현 길드 아지트도 볼 수 있었다.

여기는 사람이 있는 거 같네.

그래 봤자 이 길드에 아는 사람도 별로 없으니 지나치려고 했는데…….

벌컥.

“이진성?”

“어? 이 목소리는 지혼데. 너 왜 여기 있냐?”

중무장한 이진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냥 마을 구경 중이었는데.”

“미친. 지금 그럴 때가 아니야 빨리 던전으로 가야 해.”

“왜?”

“초기화 시기가 오늘이래. 아 심기일전해서 레벨 업 좀 하려고 했더니 망했어. 야. 뛰자.”

그러며 뛰기 시작하는 이진성.

그를 뒤따라가며 물어보았다.

“근데 왜 던전 가는 거야?”

“던전 들어가서 에슈타르 망할 때까지 기다려야지. 거기서 시간 끌고 있으면 금방 초기화 될 거야. 근데 지금 근처에 들어갈 던전이 있을지 모르겠다.”

“C급은 버틴다던데? 멸망 공격.”

“그 괴물 같은 고함 소리는 버티지. 하지만 그거 듣고 죽은 애들이 죄다 좀비가 돼서 쳐들어오는데 어차피 사망이야. 본성 함락할 때까지 던전에서 대기타야 해.”

아하.

그래서 이렇게 뛰는 거구만.

거리에 왠지 지구인 같은 사람은 안 보이더라.

다 이세계인만 보이더니…….

쿠르르르.

땅이 울린다.

그러자 뛰는 걸 멈추는 이진성.

“아 씨 망했네.”

그러더니 주위를 살피다가 주변 길드건물로 갔다.

“아 문은 왜 잠가놨어.”

쾅!

문이 안 열 리자 그대로 발로 차서 부숴 버리는 이진성.

그러더니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이제 곧 포효 들려온다. 건물 안쪽에 있자. 귀환 때까지 버텨봐야지.”

길드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깔끔함이 지나쳐 아무것도 없는 내부.

책상 의자 정도가 전부다.

“초기화 전엔 짐 싹 다 빼긴 하는데, 여긴 심하게 아무것도 없네.”

숨을 곳도 없잖아 하면서 툴툴거리더니 안쪽 방으로 들어서는 이진성.

나도 이를 따라갔다.

“여긴 침대 하나 있네. 이거로 입구 막자.”

매트리스가 없는 나무침대를 번쩍 들어 들어왔던 문을 틀어막는 이진성.

문을 막자 휴우 한숨을 쉰다.

“초기화 때까지 안 들키기만 기대하는 수밖에…….”

“초기화 조건이 확실히 뭔데?”

“그런 것도 잊어버렸냐? 몬스터들이 에룬달 본성의 마나핵을 부수면 초기화야. 고함 소리 듣고 본성 사람들도 좀비가 돼서 금방 끝난다더라.”

이진성은 방 주위를 둘러보더니 안도했다.

“다행히 창문도 없는 방이다. 좀비들이 본성 위주로 달릴 테니 살 수도 있겠어.”

“우리 둘이면 좀비 좀 막을 수 있지 않나?”

“강화 좀비라 C~D급 수준이야. 거기에 떼거리로 몰려와서 절대 못 막아. 초기화까지 기다려야 해.”

그러더니 갑자기 손으로 귀를 틀어막는다.

“야. 뭐해. 너도 투구 벗고 귀 막아. 조금이라도 데미지 덜 입어야지.”

녀석을 따라 귀를 막자, 다시 한번 땅이 진동하기 시작한다.

이번 진동은 아까보다 훨씬 강해서, 건물 전체가 크게 흔들릴 지경.

아니 고함 소리라더니 지진을 일으키고 있네.

입구에 세워 둔 침대가 쿵하고 주저앉는다.

건물 벽은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다.

지진 때문에 끝나겠는데?

“어?”

땅의 울림이 갑자기 뚝 멎는다.

“아 씨발…… 온다…….”

귀를 틀어막고 몸을 웅크리는 이진성.

벌써부터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다.

지금까지 살면서 저렇게까지 겁먹은 녀석의 모습은 처음 본다.

대체 고함 소리가 뭐라고…….

헤--!!

단 한 글자.

한 글자가 그대로 귀를 강타한다.

소리, 크지는 않다.

굳이 귀를 막지 않아도 될 정도로.

하나 소리는 부가적일 뿐.

대기가 이미 달라져 있다.

전신의 털을 바짝 곤두세우게 하는 살기.

이 고립된 방도 살기로 가득하다.

“으으…….”

갑자기 귀를 틀어막은 손을 풀고 신음 소리를 흘리는 이진성.

녀석에게 다가가려고 하는 순간.

베--!!

다음 고함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내 몸을 감싸는 아이기스의 방패.

[원형 유지가 모두 발동합니다.]

[치명적인 공격입니다. 아이기스의 방패 스킬이 발동합니다.]

방어 스킬이 모두 발동한다.

그와 동시에 무수하게 뜨기 시작하는 메시지창.

[혼돈의 군주 ‘홀로 서는 거신’이 포효합니다.]

[홀로 서는 거신이 특수한 공격, ??을 시도합니다.]

[사용자가 영혼 약탈자입니다. 공격을 파악합니다.]

[홀로 서는 거신이 영혼약탈을 시도합니다.]

[영혼약탈을 완벽하게 막습니다.]

영혼약탈 공격?

헤라클레스 영혼약탈자였나……?

거대한 포효는 ‘베’로 끝난 이후 멈췄다.

헤베라고 한마디 외친거군.

뭔가 대파멸공격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나에겐 데미지는 전혀 없었다.

하나 방어스킬이 모두 자동으로 발동한 걸 보면, 그냥 맨 몸으로 맞았으면 꽤 위험했을지도…….

쿵.

갑자기 쓰러지는 소리에 놀라 이진성 쪽을 바라보니 녀석이 이미 쓰러져 있었다.

쓰러진 채 몸을 부들부들 떠는 이진성.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

“진성아!”

“으으…… 좀비놈들. 죽어. 죽어! 으으…… 물지 마!”

뒤집힌 녀석의 몸을 들어 보니 입에 거품을 문 채 눈이 돌아가 헛소리를 한다.

환각을 보는 건가?

“이런, 회복!”

용언으로 치유를 시도한다.

새하얀빛이 녀석의 몸을 감싸지만, 녀석에게서 검은 그림자가 흘러나오며 빛을 잡아먹는다.

그러더니 눈빛이 변하는 이진성.

“누구냐. 너는.”

“뭐야 너? 진성이는 아니지?”

“이 몸의 주인은 이미 나의 권속이 되었다.”

뭐?

권속?

헤라클레스의 좀비가 된 거냐?

아니…… C급은 버틴다며?

녀석 몇 번 버틴 것처럼 이야기하기에 딱히 방어마법을 치거나 하지 않았는데…….

이제 보니까 그게 아니네.

‘나는 살아남았는데 좀비에게 죽었다.’는 환각을 보는 거였네.

사망하는 건 똑같고…….

그럼 지구인들이 C급이라서 고함버티더라 하는 것도 다 착각이잖아.

하아. 죽어도 다시 지구에서 부활하겠지만 친구가 눈앞에서 너무 어이없게 사망하자 기분이 더러웠다.

아스가르드에서 정체 들키지 말라고 해서 대놓고 대비를 안 했는데…… 젠장!

“너 헤라클레스 맞지?”

“호오.”

어느덧 일어나 눈에 이채를 띄는 이진성.

“영혼약탈을 막고, 나의 정체도 알다니 신기한 자군.”

나를 잠시 살피던 이진성. 그러더니 놀라고, 반가워한다.

“그대, 영혼계열 각성자군! 나 말고도 있을 줄이야! 반갑다 후배.”

내게 다가와서 어깨를 툭툭 치는 헤라클레스.

이 자식 왜 갑자기 친한 척이야?

그 손을 뿌리치자 이진성이 악의는 없다는 듯 양손을 들며 뒤로 물러난다.

“이런 적이 없어서 흥분했군. 다음에는 멸망 전에 에슈타르에 한 번 오거라.”

“뭘 믿고?”

“후후…… 나 말고는 아무도 할 수 없었던 영혼계열의 각성자다. 그대의 자질, 나처럼 신을 위협할 정도겠지.”

그러더니 흥분한 듯 말이 빨라지는 이진성.

“그래! 그런 자질, 지구의 인간 수준으론 불가능하지. 내 핏줄을 제외하고는……! 그대는 모르겠지만 나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뭔 소리를 하는 거야?

헤라클레스는 그리스인 아냐?

“내가 네 후손이라고? 나 동양인인데?”

“피가 섞이고 섞여 동방으로 갔을 수도 있겠지. 인종은 상관없다. 나의 자질이 발현된 게 중요할 뿐.”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헤라클레스.

그는 영혼 약탈자가 되려면 자질이 아주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럼 나는 확실히 헤라클레스의 후손은 아닌 거 같은데…….

자질이 똥이잖아.

“이 자, 내 후손의 친구인 거 같으니 권속에서 풀어 주지.”

당신 후손 아닌데요? 라고 부정할까 했는데 이진성 풀어 준다기에 그냥 가만히 있었다.

녀석을 감싸던 검은 그림자가 스르르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럼, 멸망할 때까지 안전하게 여기 있어라. 이쪽 방면으로는 접근하지 않게 하지.”

“아니 레벨 업 하러 나가야지. 네 권속과 싸울 거다.”

내 말을 듣자 더욱 기뻐하는 이진성.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만족스러워한다.

“호오! 투쟁을 즐기는 것도 나와 꼭 닮았구나! 좋아. 좋아…… 정말 나의 핏줄일지도 모르겠구나. 그럼 네 성장을 지켜보겠다…….”

흡족스러워하던 이진성.

녀석의 얼굴 표정이 갑자기 굳어지더니 축 쳐지며 쓰러진다.

그래도 아까보다 표정이 풀린 채 숨을 쉬고 있는 게 건강해 보이는군.

이진성을 똑바로 눕힌 후, 영체화를 해서 건물 밖을 나선다.

건물 밖을 나서니 길드 지구 거리는 텅텅 비어 있었다.

잠깐 온 지진으로 인해 건물 벽돌이 금이 좀 가 있을 뿐,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음…….

헤라클레스 이 양반 진짜 날 후손으로 생각하는 거 아냐?

진짜 이쪽 방면으로는 접근 안하나보네.

“화염전차 소환.”

다시 투구를 소환해서 얼굴을 가리고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하늘 위에서 바라보니 정말 길드 지구 빼고는 난장판이었다.

도시 중심의 본성쪽을 향해 사람들이 좀비처럼 우르르 달려가고 있다.

“불사조. 좀비들 좀 불태워 줘.”

[도시가 불바다가 될텐데 괜찮나?]

“어차피 초기화래. 괜찮아.”

[알겠다.]

내 이마에서 튀어나오는 불사조.

드래곤 하트의 마력 때문인지 크기가 이제 엄청나게 커졌다.

이제 조류 중에서는 비교할 상대가 없을 정도.

[그럼 다 태워 버리지.]

천천히 날갯짓을 하자 불의 파도가 마을을 폭격하기 시작한다.

불사조의 불꽃에 금방 불바다가 되어 가는 도시.

좀비들이 하나둘씩 타오르기 시작한다.

밖은 불사조에게 맡기고 성으로 들어간다.

밖에서 좀비들을 죽인다고 해도 본성의 마나핵이 부서지면 얼마 못 가 끝나는 거지.

내가 빨리 차지해야 한다.

그게 내 손에 있어야 나의 주도 하에 멸망의 시기를 조절할 수 있다.

“크아아아!”

본성 안을 불의전차를 타고 주파한다.

병사 옷을 입은 좀비들이 전차를 향해 부나방처럼 뛰어들었으나, 불길을 이기지 못하고 모두 불타올랐다.

그러며 뜨는 메시지.

[불완전한 영혼입니다. 영혼약탈의 효율이 크게 감소합니다.]

이런.

헤라클레스가 영혼약탈자라 그런가?

한 번 먹고 또 먹을 순 없나보네.

SP는 거의 안찼지만, 경험치는 그래도 나름 쏠쏠하게 들어왔다.

그렇게 본성 안을 빠르게 달리다 보니 곧 거대한 마력의 흐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화염전차를 이끌고 그리로 가자, 처음으로 제정신인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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