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 2개-89화 (89/240)

<내 상태창 2개 - 89화>

89 과거의 인연을 돕다

잠시 귀를 의심했다.

이거 칼바인을 멸망시킨다는 이야기지?

그게 가능해요?

[비록 드래곤들이 나를 잊었다 해도, 나는 그들의 대신. 용에게 단 한 번 절대명령을 내리는 것이 가능하다. 신앙을 빼앗겼기에 그리 길지는 않겠지만……]

용신이니 그럴 법도 하다만.

용에게 명령을 한 번 내린다고 멸망이 되나?

[드래곤들에게 모든 마력을 퍼부어서 9서클 궁극 마법 미티어 스웜Meteor Swarm을 쓰라고 할 것이다. 칼바인에 유성을 대거 소환해 행성을 멸망시키겠다.]

과격하기 짝이 없는 발언에 깜짝 놀랐다.

그거 유성낙하 마법 아닌가?

멸망시키겠다고 호언장담하더니 진짜 될 거 같은데 이 정도면.

칼바인의 드래곤이 일제히 그 마법을 쓰면…….

근데 굳이 멸망시킬 이유가 있습니까?

[어차피 토르가 기를 쓰고 추격하고 있어서 이 사념체는 곧 잡히게 되어 있다. 내 분신이 산채로 잡히면 기억 추출을 당할 수도 있고, 그럼 그대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어. 힘을 다 쓰고 소멸하는 게 낫지.]

아하. 잡히면 안 되죠.

근데 그럼 그냥 힘만 다 쓰셔도 될 텐데요.

[어차피 멸망한 세계라던데, 궁금하지 않나? 내가 멸망시켜도 그대로 시간을 돌려서 타격이 없을지. 아니면 다른 결과가 나올지.]

용신 드라키아가 그렇게 말하니 궁금해지긴 했다.

그렇지만 행성 파괴라니 좀 극단적인데.

[어쨌든 나는 결심했고, 통보를 하러 온 것이다. 그대는 안전한 지구에서 결과를 지켜보면 된다.]

드라키아의 음성이 그 말 이후로 끊겼다.

이 아저씨 과격하구만…….

뭐 나도 결과가 궁금하기는 하네.

“김지호님?”

아리아가 멍하니 있는 날 불렀다.

나는 그녀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3일 후에도 못 들어가면 레벨 업은 어디서 하죠? 저 여기에 묶여 있는 거 아닌가요?”

“3일 후에도 안 되면 저희가 다른 부서진 세계를 선택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 3일이면 레벨 업 기회가 날아가는데. 아쉽네요.”

“정말로 죄송합니다.”

내 대답에 다시 죄송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는 아리아.

“제가 부서진 세계가 다시 열리면 바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집에 돌아와 결과를 기다린다.

3일간의 휴식인가…….

근처 편의점에서 맥주 몇 캔을 사서 집으로 들어왔다.

맥주를 한캔 따고 사도의 정원을 열어 보았다.

드래곤 하트 흡수했으려나? 효율이 궁금하네.

얼굴이 활짝 핀 드라키나.

원래는 불만족스러운 표정이었는데, 드래곤 하트 먹었다고 얼굴 핀 거니?

무슨 육성 게임 같네 이거.

그녀의 상태창을 보았다.

[이름 - 드라키나

클래스 - 레드 드래곤 (용인화)

수호신 - 김지호

칭호 -

레벨 - 87

신체 - A

마력 - S

기예 - C

행운 - E

회수가능 SP - 281]

드래곤 하트 조각 하나 먹었다고 단번에 20레벨이 뛴 드라키나.

거기에 마력이 S네?

난 다섯 개 먹어도 A인데…….

동족의 심장을 먹었다고 효율이 이렇게 좋다니, 잔인한 놈들!

얼굴 핀 이유를 알 것만 같다.

부러운 상태창을 꺼버리고 티비를 켰다.

재미있는 게 없어서 채널을 돌려보니 헌터 채널이라는 곳에서 C급 각성자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헌터전문 기자들이 모여 가볍게 수다를 떠는 프로그램.

남자 둘 여자 둘이 앉아서 서로 대화중이었다.

[특수한 클래스로 전직하신 분들이 그렇게 강하다죠?]

[예. 헌터 전문가들은 이들이 레벨 10 차이도 뛰어넘을 정도로 기존 일반 클래스에 비해 강하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C등급 되신 분들이 그렇게 박탈감이 심하다고 해요. 하지만! 며칠 전 발키리 대장 아리아님이 발표하신 게 있었죠.]

[전 지구의 발키리를 통솔하는 아리아님 맞으시죠? 벌써 그 미모로 장안의 화제인데요.]

그러면서 나오는 화면 자료의 얼굴은 나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던 아리아였다.

얘가 전 지구 통솔하는 급이었나?

예전 세계로 따지면 라이아나 정도의 위치군.

[예. B급이 되면 또 클래스를 선택할 수 있다고 해요!]

[어머머 진짜요?]

[네. 그러면서 그때를 대비해서 능력치를 꼭 균등하게 배분하라고 하셨어요. 그럼 히든 클래스가 나올 수도 있다고 하네요~]

[히든 클래스라니. 지금 한참 강력함을 자랑하는 거인 같은 직업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거인보다도 훨씬 더 대단한 클래스가 있다고 해요. 과연 누가 첫 B클래스가 될지 정말 기대되네요!]

능력치 균등으로 배분하라는 거 보니까 영혼계열 각성자로 만들 셈인가?

근데 생각해 보면, 중립 진영은 영혼 약탈자밖에 못 고르잖아.

영혼 중개자는 질서 진영이 아니니까 못 만들 텐데.

뭐 다 수가 있으려나?

띠리리링.

전화에 이름이 뜨는 상대는 이진성.

세상이 바뀌고 내가 잊힌 이후 진짜 이놈한테만 줄창 연락이 오고 있었다.

[야. 뭐하냐.]

“나 티비.”

[내일 쉬냐? 저녁에 한잔 콜?]

“오케이.”

[내일은 내가 살게.]

“응? 집에서 안 먹고?”

[너 성수동 G아파트로 이사갔다매. 어떻게 넌 B급 던전 나온 데로 이사 갈 생각을 하냐? 빨리 딴 데로 이사나 가라니까.]

내가 던전 노가다를 할 때 한 번 연락이 와서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엄청 뭐라고 했지.

그리고 집 구경하러 한 번 오고 밖에서 보자고 했다.

자식…… 겁도 많아.

“형이 다 생각이 있다. 너도 아파트에 투자해 둬.”

[됐다. 그 아파트는 1/10로 떨어지고도 안 팔리더라. 그냥 고기나 구워 먹자. 강남역으로 와.]

“오케이.”

강남역.

언제나 사람이 미어터지는 동네였지만, 헌터협회가 역삼역에 자리 잡고 난 이후에는 그게 더 심해졌다.

협회에서 일을 끝마친 사람들이 이리로 회식을 많이 오다 보니 헌터들도 많았고, 그런 헌터들을 보러 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거기에 그냥 오는 사람도 많으니까.

11번 출구에 오니 빡빡머리 이진성이 출구 앞에서 우뚝 서 있었다.

남들보다 덩치가 커서 그런지 한 눈에 보인다.

“오랜만이다.”

“그래. 고깃집 예약했다. 글로 가자.”

가볍게 손을 흔들고 다가가니 등을 훽 돌리며 걸어가는 이진성.

녀석을 따라 언덕길을 오른 지 오 분 정도 되었을까.

딱 봐도 고급스러운 한우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룸에 갈래?”

“너랑 단 둘이? 미쳤냐.”

“낄낄. 남자랑 단 둘이 먹어 본 지가 너무 오랜만이라 저절로 입에서 튀어나왔네.”

“뭐야. 여친 생겼냐?”

“아니, 여친은 무슨. 일단 앉아서 이야기하자고.”

한우 세트 2마리를 시키고 소주까지 세팅한 이진성.

직원이 고기를 구워 준다는 걸 굳이 마다하고 자기가 직접 굽는다.

“한잔하자.”

오랜만에 나와서 고기 먹으니 좋군.

술을 한잔 두잔 나누었다.

언제나처럼 녀석과 잡담을 나누며 소주를 퍼마셨다.

평소보다 빠른 페이스로 술을 마시는 이진성.

그 페이스를 같이 따라가니 고기 한 점 먹을 때보다 소주잔 마시는 게 더 빠를 지경이었다.

한 시간도 안 돼서 소주병은 6병이 넘어가고 이진성의 얼굴도 시뻘게졌다.

헌터가 아니었으면 벌써 인사불성이었겠지.

“흐흐. C급 되고 나서 잘 안 취했는데, 이제야 조금 취한 느낌이 나네. 너 요즘 연락해도 잘 안 받더라. 맨날 부서진 세계에 있는 거야?”

“어. B급을 노리고 있지.”

“자식. 형처럼 인생을 즐기지…… 야 언제 또 멸망할지 모르는데 놀아야 하지 않겠냐?”

그러며 술을 들이켜는 이진성.

“요즘 강남역 유흥가가 초호황이래. 헌터들이 이제 미래 생각 안하고 그냥 버는 대로 팡팡 쓴다더라. 나도 저번 세계 때는 저축 졸라 했는데 후회중이다.”

“너도 돈 팍팍 쓰고 있냐?”

“어. 여자도 한 여자한테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다가 가려고. 요즘은 여자들도 멸망 한 번 겪더니 프리스타일들이 엄청 늘어났다니까.”

그러면서 핸드폰 톡창을 보여 주는 이진성.

한 화면 전체가 이쁜 프로필 사진의 여자들로 가득했다.

허.

이 인상 더러운 빡빡이 근육남이 이렇게 인기라니…….

C급 헌터빨로 꼬드긴 게 틀림없다.

“야. 그 눈은 뭐냐. 형 몸을 봐. 이제 와꾸 필요 없어 몸이 짱이야. 짐승의 시대라고.”

“하아아. 소돔과 고모라냐.”

“응? 그게 뭐냐.”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보는 이진성.

아 맞아 종교가 오딘으로 바뀌었지.

“섹스 앤 더 시티라고.”

“잉? 아깐 잘못 들었나. 맞어. 요즘 진짜 장난 아니야 목요일, 아니 화수만 돼도 방이 없다니까.”

그러더니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이진성이 나에게 얼굴을 가까이했다.

“너도 C급에 전사잖아? 요즘 애들이 헌터 전사 엄청 좋아해. 내일 모델 애들이랑 미팅하기로 했는데 너도 나올래?”

하아아아.

이 새끼…….

누구는 인류멸망 면하겠다고 뼈빠지게 레벨 업 하는데.

이렇게 놀고 있어?

“사진 봐 봐.”

“그럴 줄 알고 준비했지.”

녀석은 벌써 핸드폰으로 사진을 띄워 놓고 있었다.

수영복을 입은 처자 셋이 보였다.

예전이었으면 오 이쁜데 싶었겠지만…….

디아나랑 드라키나를 봐서 그런가?

그냥 성형티가 너무 나고 별로 끌리지가 않았다.

눈이 강제로 높아졌네.

“됐다.”

“헐. 김지호 여자 생겼어? 아니면 기억이 돌아왔다거나?”

그러며 씩 웃는 이진성.

뭐야.

나도 모르는 날조된 과거에 뭐 있었나?

“기억? 왜 과거에 뭐 있었냐?”

“아. 왜 있잖아. 그…….”

“이진성 팀장님.”

“윽.”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이진성이 뜨끔한 표정이 되었다.

녀석이 바라보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단발머리의 정장을 입고 있는 미인이 이진성을 엄격한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어 얼굴이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이번 달 팀 실적이 저조하신데…… 어 김지호 씨?”

“저 아세요?”

나를 보고 깜짝 놀라는 단발 미녀.

누군데 날 보고 놀라는 거지.

내가 영문을 몰라 하자, 그녀의 뒤에서 일행이 등장했다.

“……정말 기억을 잃으셨군요. 저도 못 알아보시나요?”

일행의 정체는 강시아.

여전한 미모다.

그녀가 등장하자 주변이 시끌시끌해졌다.

원래도 연예인에 대현 길드 관련해서도 뉴스에 간혹 나오니 알아보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으음…… 일단 모르는 척하자.

“네. 진성이 녀석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수행비서였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기억을 잃어버려서, 레벨 업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나를 빤히 바라보는 강시아.

그녀의 시선을 물끄러미 마주한 지 몇 초가 흘렀을까.

강시아가 푹 한숨을 쉬었다.

“정말 눈빛부터 다르네요. 그때의 김지호 수행비서님이 아니군요.”

“아가씨 눈도 잘 못 마주쳤는데…….”

뒤에서 놀라는 단발 미녀.

아 이 여자 기억났다.

강시아 친구였지? 그 내기했던.

근데 눈도 못 마주치다니.

이 사람들 기억 속의 나는 대체 뭔 짓을 한 거야.

강시아는 어두웠던 표정을 풀고 나에게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저희 팀에서 김지호님은 일을 참 잘하셨어요. 기억을 잃으셨다고 해도 그 능력이 어디가진 않겠죠. 혹시 지금 소속된 곳이 없으면 다시 같이 일을 하고 싶은데 어떠세요? 국내 최고 대우를 약속드릴게요.”

수행비서 일을 하라는 건가.

아이고 이 여자야 당신이 내 비서였다고.

아 이거 기억 조작한 놈 누구야. 그냥 지우면 됐지 이런 장난을 쳐서.

좋게 좋게 거절하자.

“좋은 제안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혹시 길드에 든다면 꼭 대현 길드에 지원하겠습니다.”

“……그렇군요. 알겠어요. 그때를 기대할게요.”

그러자 아쉬운 표정으로 물러나는 강시아.

뒤에서 강시아 친구가 입으로 ‘야. 왜? 미쳤어?’ 이러면서 자꾸 눈치를 줬다.

쟤는 왜 반말하면서 친한 척이래.

내가 어깨를 으쓱하자 다시 축 처진 느낌으로 술집에서 나가는 강시아 와 그 친구.

“아…… 지호야. 잠깐 고기 좀 먹고 있어라. 나 잠시 일어날게.”

그러더니 이진성도 그녀들을 따라나섰다.

직장 상사니까 그런 건가.

역시 조직의 톱니바퀴는 어쩔 수 없어.

그렇게 나갔다 십분 정도 뒤에 온 이진성은 오자마자 술을 한잔 마셨다.

“크. 어쩐지 전반적으로 기분 다운되어 있더니…… 계약이 잘 안 되나 보더라.”

“뭔 계약?”

“B급 무기임대 계약 있잖아.”

B급 무기임대?

괜히 몸이 움찔했다.

무기임대를 관리하던 강시아가 신세가 요상하게 됐네.

흠…….

“넌 부서진 세계 죽돌이라 모르려나? 한 달간 유지되는 B급 무기를 발키리들이 임대해 주거든. 근데 이게 임대하기 까다로운가 보더라. 우리 길드 위상이 좀 떨어지기도 했고…….”

그러며 고레벨들이 꽤 길드를 탈퇴해 분위기가 안 좋다는 이야기를 하는 이진성.

무기임대까지 나가리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신세를 한탄했다.

“크…… 한잔 더 하자니까.”

“닥치고 가서 자라.”

2차에 3차까지 강남역에서 달리며 완전히 취한 녀석을 겨우 택시 태워 보냈다.

무기 임대라…….

뭐 조금 도와줘 볼까?

예전에 대검도 거의 공짜로 줬는데, 그 거 갚을 겸.

[김지호님. 정말 죄송합니다. 칼바인 행성의 출입제한 기간이 좀 더 늘어날 예정입니다.]

3일이 되는 날 아리아에게서 전화가 왔다.

용신의 깽판이 현재 진행형인 건가?

근데 여기서 3일이면 행성 시간으론 한 달이 지났을 텐데, 아직 결론이 안 났나 보네.

용신각성의 진행률은 7%.

어제부터 7%에서 계속 멈춰 있었다.

“그럼 다른 세계를 선택할 기회를 얻는 건가요?”

[네. 정말 죄송합니다……]

“흠……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무기 임대 있잖습니까?”

[무기 임대요?]

“네. 그거 중 적당량을 대현 길드에 지원했으면 하는데요. 너무 퍼 주지는 말구요.”

너무 퍼 줬다간 눈에 띄니까.

적당히 어려움을 해소할 정도가 가장 좋다.

[대현 길드요? 알겠습니다. 김지호님의 의중에 따라 적당량을 더 얹혀 주겠습니다.]

뭐 이 정도 무기 밀어 줬으면 강시아의 비서 일 퇴직금은 되겠지.

[그건 그렇게 처리하도록 하고, 김지호님 레벨업이 급선무라고 하셨지요?]

“예.”

[그럼 지금 에슈타르에 가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에슈타르요?”

그 난이도 최하 행성?

[네. 지금 그쪽은 초기화되기 직전입니다. 지금이 레벨 업의 적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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