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88화>
88 용언으로 맹세하다.
“태워 준다고?”
자연스럽게 시선이 드라키나에게 향했다.
자신만만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드라키나.
“어. 드래곤 라이더로 인정하고 날 태워 줄게.”
“드래곤 라이더? 근데 너 지금 용 안 되잖아. 용인에서 끝 아냐?”
이게 어디서 사기를 치려고 그래?
그렇게 말하니까 살짝 고개를 돌려 시선을 외면하는 드라키나.
“윽. 그러니까 드래곤 하트가 필요하지. 드래곤 하트 조각이 있으면 금방 해츨링이 될 수 있을 거야.”
“지금 레벨 한참 멀었구만 뭐.”
레벨 67 주제에 어디서 사기를 치려고.
“드래곤 하트가 있으면 금방이야!”
“그거 먹어도 능력만 오르지 레벨 업은 안 되던데.”
“우리 용족은 마력을 통해서 진화할 수 있어. 인간이랑은 다르다고.”
“그래? 레벨 업도 사냥 안 해도 가능한 거야?”
“어! 마력을 순환시키면서 쌓으면 저절로 오른다고. 그러니까 드래곤 하트가 필요하다니깐! 우리 용족에게 필요한 건 세월과 마력이야. 인간처럼 몬스터 잡아도 경험치가 쌓이긴 하지만, 그래도 제일 중요한 건 마력이야.”
흠. 신기하네.
용족이 특수 클래스긴 하니까 그런 기능이 있어도 이상하진 않아 보인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니 화색이 되는 드라키나.
“그럼 주는 거야?”
“아니. 그냥 알겠다고. 주는 건 또 다른 문제지.”
“으…… 또 뭐가 필요한데?”
“드래곤 라이더 인정하고 태워 준다고 해도 말이야. 그게 좋은 건가? 솔직히 불사조를 타도되고 그냥 화염전차 타도되는데…….”
용을 타면 신나기야 하겠지만, 사실 하늘을 나는 탈 것은 화염전차도 있고 불사조도 있는데 굳이 용에 탈 필요가 있나?
“역시 이 드래곤 하트 조각은 다른 사도에게 줘야…….”
“아니야! 드래곤 라이더로 인정하면 용에게 인정받는 자가 돼서 드래곤의 힘을 일부 끌어 쓸 수 있다고! 서로가 서로를 강화해 줘!”
“그래? 나 드래곤 하트 있어서 용의 힘 쓸 수 있는데.”
“그럼 더 좋지! 드래곤 하트가 있으면 더욱 강화가 많이 될 거야. 파트너로서 교감을 나누며 서로의 능력을 증폭시켜 주는 거니깐!”
드래곤 라이더라는 거.
그냥 등 위에 올라타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나보다.
“그럼 굳이 안 타도 능력 증폭이 되나?”
“어. 나한테 인정받은 거니까!”
“흐으으음…….”
디아나한테 그냥 줄까 했는데 이러니 또 고민이 되는군.
드래곤 라이더라.
드라키아. 당신 뭐 아는 거 없어요?
하지만 물어봐도 용신은 회복에 전념하는지 대답이 없었다.
그냥 내가 선택을 해야겠군.
“드래곤 라이더 설명만 들으면 좋아보이는 데 말이지. 근데 드래곤 하트 주고 니가 입 싹 씻으면 어떻게 해?”
“드래곤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겠다. 드래곤 라이더로 인정하겠다고.”
“흠…… 근데 기한은?”
“기한? 드래곤 라이더는 용족이 아닌 이를 파트너로 인정하는 의식이다. 기한은 정해져 있지 않아.”
“그럼 수틀려도 취소가 안 되는 영원한 관계인거야? 인간의 경우 부부도 이혼하고 절친한 친구도 절교하는 경우가 적잖은데 말이지.”
그러자 또 눈동자를 돌려 시선을 슬쩍 피하는 드라키나.
아까와는 달리 말을 살짝 더듬었다.
“그건…… 아니다. 드래곤 라이더 결정을 철회할 수는 있지. 다만 거의 그럴 일이 없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같이 만난 지 얼마 안됐으면 그럴 일이 생길 확률도 높겠지?”
“으…… 좀 믿어라.”
“내가 하도 신들에게 뒤통수를 맞아서 이제 함부로 안 믿기로 했어.”
그리 말하며 나는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레벨 67 C급 용인이지만 능력치는 드래곤답게 상당한 드라키나.
여기에 드래곤 하트를 주고 마력 쌓게 해서 B급을 만들면, 일반 인간 B급 능력자랑은 차원이 다른 강함을 자랑하겠지.
그런 그녀라면 B급 던전도 손쉽게 깨지 않을까?
예전 멸망의 때처럼, 던전 포탈이 너무 많이 생겨서 나로서는 도저히 커버가 안 될 때.
이 녀석을 잘 이용하면 B급 던전 은 녀석에게 맡겨도 되겠지.
“너, 용인으로만 있을 수 있는 거냐? 폴리모프는 못 써?”
“지금 수준으로는 불가능하다…… 용인 수준에서는 용언도 사용 못하고. 해츨링은 되어야 가능해.”
“B급이 되면 가능한 거네?”
“그렇다. 그 땐 해츨링이 되니까.”
“그럼 드래곤 라이더도 무조건 100년 유지하고, 그동안은 내 부하로 일해라.”
“뭐? 100년?”
“어. 내가 사실…….”
드라키나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적당히 이야기해 주었다.
그중에서도 B급, A급 던전을 막다가 던전이 너무 많이 생겨서 지구 방위를 실패한 일.
그런데 신들이 시간을 과거로 돌려서 지금 다시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중점으로 말했다.
그러자 흥미롭다는 듯이 눈을 반짝이는 드라키나.
“그럼 모두 과거로 돌아온 건가?”
“어. 근데 나 혼자 아무리 막으려고 해도 안 되더라고. 너 드래곤 하트 조각 줄 테니 라이더 계약에 100년간 던전 철거 일좀 해라.”
“흠…… 그러지. 뭐.”
내 말에 별로 딜을 걸지 않고 승낙하는 드라키나.
100년은 너무 길다고 반박할 줄 알았더니 시원시원하게 받아들인다.
“그냥 수락하네?”
“100년이면 뭐 짧은 시간이니까. 다른 차원의 인간 세상에 놀러 왔다 생각하겠다. 거기에 네놈 행성의 신들 때문에 용신께서도 변고를 당하신 거 아닌가? 내 나름대로 조사하겠다.”
“그래. 그럼 용언으로 맹세 해.”
“지금의 난 용언 못 쓴다…….”
고개를 푹 숙이며 입술을 깨무는 드라키나.
아 지금은 C급이라 능력이 딸리지.
“나도 용언 가능한데. 내가 할까?”
“그래. 용언으로서 명하니, 나 김지호는 레드 드래곤 드라키나와 맹세를 공유한다. 로 시작해라.”
“용언으로서 명하니, 나 김지호는 레드 드래곤 드라키나와 맹세를 공유한다.”
그러자 용언 창이 활성화되면서 ‘용언의 맹세’ 마법이 발현된다.
드라키나와 나 사이에 붉은색의 마력이 실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나 드라키나는 김지호에게서 드래곤 하트 조각을 받는 대가로, 김지호를 나의 드래곤 라이더로 인정하며 100년간 그의 부하로 헌신하겠다. 이를 위반할 시 영원한 마나의 저주를 받으리라.”
[레드 드래곤 드라키나가 말한 조항에 동의하시겠습니까?]
예를 누르자 나와 그녀를 잇는 붉은 마력선이 짙어지더니 서로의 몸에 서서히 흡수되었다.
연결된 상태로 끝부터 흡수되어 사라지는 붉은 실.
[용언의 맹세가 실현되었습니다. 맹세를 지키지 않을 시 마나의 저주를 받습니다.]
메시지가 뜨기가 무섭게 나에게 손을 내미는 드라키나.
“이제 됐지? 제발 주라.”
“옛다.”
“아싸!”
인벤토리에서 드래곤 하트를 건네자 황급히 이를 낚아채는 드라키나.
빛나는 드래곤 하트 조각을 본 드라키나의 얼굴은 황홀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드래곤 하트를 이리저리 만져 보던 드라키나는 등 뒤를 돌아보았다.
포탈을 찾으려고 한 건가?
하지만 이미 사라지고 없는 포탈.
그녀는 날 바라보며 부탁했다.
“나 다시 사도의 정원으로 보내 주면 안 돼?”
뭐 있어 봤자 지금은 쓸모도 없지.
거기에 아스가르드에서 쟤는 뭐냐 하고 이상하게 볼 테고.
빨리 B급으로 회복시키고 폴리모프시켜서 부하로 써먹어야겠어.
그럼 되돌려야 하니…….
“사도의 정원.”
사도의 정원 스킬을 사용하니 [소환]탭이 [귀환]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를 누르니 그녀의 등 뒤에 다시 생겨나는 포탈 게이트.
“땡큐. 금방 해츨링 상태로 회복할게. B급 되면 불러~ 드래곤 라이더 계약 하자.”
그녀는 나에게 손을 흔들더니 바로 차원문으로 뛰어갔다.
그녀가 사라지고 나자 급 긴장이 풀렸다.
칼바인에서 용들과 엮이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뭐 드래곤 하트도 얻고 나야 소득이 많았지만.
용신이 엮이고 토르가 개입하는 바람에 뭔가 부서진 세계-칼바인은 난장판이 된 느낌이군.
“근데 용신각성 퀘스트는 어떻게 되는 거지?”
칼바인 행성의 유일한 도전자인 내가 나왔으니 용신각성 퍼센트가 안 오르려나?
아니면 헌터협회에서 조사단이 파견되고 했으니…… 그들 덕에 시간이 흐를 수도 있다.
확인해 봐야겠어.
“퀘스트 창.”
퀘스트 창을 열어 용신각성 페이지를 보니 퀘스트 진행률에는 변화가 없었다.
아직 바로 복귀는 안 해도 되겠네.
오늘 하루는 좀 쉬자고 생각하고 TV를 틀었다.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대현 길드 소속의 상위 헌터들이 속속 길드를 떠나고 있습니다. 특히 외국 출신의 헌터들의 이탈이 두드러지는데요. 이로 인해 대현 길드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강시아가 속해 있던 대현 길드.
나라는 존재가 잊힌 세계에서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나간 길드라고 했는데…….
막상 지금 운영은 쉽지 않나 보다.
저 뉴스 이외에도 대현 길드에 안 좋은 뉴스가 몇몇 더 나왔다.
자금 회전이 잘 안 되고 있다던가 길드장 자리를 두고 대현 가문 출신들이 싸우고 있다거나 하는 뉴스로.
그래도 대한민국 탑 길드였는데 며칠 지났다고 이렇게 연일 뉴스에서 때리는 중이지?
흠. 원래 역사에서는 나랑 친했기 때문에 국내에서 탑 먹을 수 있었지.
지금은 사실 이유 없이 1등한 셈이라 그만큼 지지기반도 부실한 건가.
헌터넷을 둘러보니 헌터 전력을 확보하려고 혈안이 된 강대국이 쌈짓돈을 들고 대현 길드 헌터들을 스카웃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미국 정부에서 부르는 돈 단위가 차원이 달라. 진짜 지원이 미쳤어.]
[애초에 대현 길드 거품이 좀 끼어 있지 않나? 길드 마스터는 허수아비나 다름없고 강시아가 주도하는데, 그녀도 높은 수준의 C급 헌터이긴 하지만 최상위 클래스는 아니잖아.]
[┕222. 멸망의 시기에 어떻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길드가 되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신기해.]
[주식시장 다시 개장하면 대현 주식 사려고 했는데 다시 생각해 봐야겠네.]
헌터넷에서도 이런 류의 리플이 달리고 있었다.
사실 이게 맞지.
대현 길드가 미국처럼 돈이 많길 해 아니면 길드 수뇌부가 초 고렙이길 해.
솔직히 내 덕 아니었으면 이 정도 위치는 못 왔지.
지금 제 위치를 찾아가는 거지 뭐.
그렇게 핸드폰으로 헌터넷을 둘러보고 있자니 메시지가 떴다.
[대현 길드 인사과입니다. 김지호 헌터님의……]
이렇게 시작한 장문 문자는 결국 나보고 대현 길드로 다시 복귀하라는 설득 문자였다.
요즘 전력이 많이 빠져나가긴 한가 보네. 나한테까지 이런 문자가 오고 말이야.
굳이 대현 길드에 갈 생각은 없으니 답장하지 않았다.
그렇게 인터넷도 보고 밥도 시켜먹으며 쉬다 보니 어느덧 해가 지고 밤이 찾아왔다.
오늘 하루는 집에서 자면서 쉬어야겠네.
침대에 누워 습관적으로 퀘스트 창을 띄워 용신각성 퍼센트를 확인했다.
14%.
보고 놀라 몸을 화들짝 일으켰다.
응? 1%가 줄었네?
아깐 15%였는데 1%가 줄다니…….
이러면 시간이 흐른다는 건데.
오늘 하루 정도는 자고 다시 칼바인에 복귀하려고 했는데 마음이 달라졌다.
10대 1 시간 배율 때문에 칼바인의 환경이 어떻게 바뀔지 몰라.
다시 복귀해야겠는데?
“집에서 오래 쉴 수도 없겠네…….”
옷을 한 번 갈아입고 다시 협회로 나섰다.
그리고 가서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칼바인이 임시 출입 금지라구요?”
“네…… 칼바인 행성을 맡고 있는 토르께서 명하셨습니다. 칼바인 행성에 예측외의 문제가 생겨 ‘수정’중이라고 하십니다. 불편을 끼쳐드려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그러며 고개 숙여 사죄하는 아리아.
“그러면 칼바인 내에서 시간도 흐르는 건가요? 하던 퀘스트가 있어서 그런데.”
“네…… 정지된 상태는 아닙니다.”
조사단이 들어가서 시간이 흐른 게 아니라, 토르가 작정하고 용신을 잡으려고 총력을 다하는 중인가.
“흠…… 그럼 얼마나 걸릴까요?”
“3일 정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3일이라…….
용신 드라키아 와 용신각성 퀘스트가 좀 걱정되긴 하네.
이대로 퀘스트 엎어지면 아까운데.
그때 갑자기 드라키아에게서 음성이 들려왔다.
[흠. 입장하지 말라고 하려 했는데 차라리 잘 되었다.]
입장하지 말라고?
[그래. 어차피 멸망한 세계라지? 내 손으로도 그리 만들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