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86화>
86 두 번째 사도 (2)
퀘스트 진행률 10%?
용신 각성이 10% 진행되었다는 뜻인가.
지금 탈출한 골드 드래곤이 그 정도 수치인 건가.
뭐, 잘 도망쳐서 100% 달성하길 기대해야겠군.
들어오자마자 정신없이 퀘스트 수행했는데, 이젠 뭘 하지?
드라키나의 드래곤 하트를 부수는 퀘스트는 깼는데 다음 단계 없어?
그렇게 의문을 가지고 있을 때, 다시 천둥소리가 들렸다.
콰르르르.
그러더니 내 근처에서 번개가 내리쳤다.
번개가 멎자 그 자리에 서 있는 발키리.
순백의 갑옷에 번개가 일렁이고 있는 은발의 발키리다.
“김지호님. 저는 토르를 모시는 발키리 클레어입니다.”
“네. 토르가 시켜서 퀘스트 클리어 조사하러 왔어요? 기분 나쁘네. 드라키나 잡아도 죄인 취급이야.”
조사받기 전에 선빵을 쳤다.
뭐 조사 어떻게 할 거야?
토르도 내 영혼 중개고객인데 중개계약 확 딴 놈으로 돌려 버릴까 보다.
내가 이렇게 나오니 클레어는 생각 외로 고분고분히 나왔다.
“아…… 아닙니다. 퀘스트가 너무 빨리 클리어돼서 형식적인 절차였을 뿐입니다. 용신이 그의 딸을 집어삼켜서 부활한 것이 확인된 지금, 드라키나의 이른 사망이 어떤 연유에서 비롯되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약속한 보상은 지금 바로 지급하겠습니다.”
그러더니 바로 메시지창이 뜨기 시작한다.
[SP 300000을 획득했습니다.]
[S급 랜덤 스킬 상자를 획득했습니다.]
“드래곤 하트도 있었는데…….”
“드래곤 하트는 제가 따로 준비했습니다.”
클레어가 손을 펼치자 그 위로 마력이 뭉치더니 나타나는 별 모양의 붉은 보석.
드라키나의 것보다는 작았지만, 가히 측정할 수 없는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지금 바로 부수면 흡수가 가능하십니다. 아니면 나중에 흡수하시겠습니까?”
이 자리에서 바로 부술까 했지만, 용신이나 드라키나는 드래곤 하트를 더 효율적으로 흡수하는 법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흠. 일단 가지고 있죠 뭐. 급한 것도 아니니.”
“알겠습니다.”
나에게 드래곤 하트를 넘겨주는 발키리 클레어.
드래곤 하트를 인벤토리에 넣자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일단 클레어 앞에서 굳은 표정을 풀지는 않고 물어보았다.
“근데 이 퀘스트 왜 이렇게 보상이 후하죠?”
“휴우. 이게 다 김지호님 덕분입니다.”
“저 때문예요?”
“네. 드라키나의 레어에 쳐진 공간이동차단막…… 원래 그건 신급 존재가 와도 쉽게 뚫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드라키나가 성룡이 되어서 좋아라하다가, 결국 탈출하고 있었을 때 말하는 건가?
“그거 뚫은 게 문제가 되나요?”
“네. 원래는 도저히 뚫을 수가 없는데…… 누군가가 특수한 스킬로 뚫어 버려서 문제가 되었지요.”
클레어가 한숨을 쉬며 말하는 원래 퀘스트는 이랬다.
드라키나는 성공적으로 성룡이 되나, 결국 용사 일행에게 붙잡힌다.
성룡이 된 드라키나는 신성제국에 끌려가서 산 채로 신성한 불꽃에 화형 당하는데…….
알고 보니 그건 혼돈에 물들어 있던 신성제국의 황제가 꾸민 짓.
용신의 후손이던 드라키나를 제물로 삼아 혼돈의 문을 열려 한 것이다.
드라키나가 성룡이 되어서 잡혀가면, 각성자가 혼돈의 문을 여는 의식을 막으러 가는 게 다음 퀘스트였다.
“그럼 그 상황에서 꼭 잡혀야지 되는 거였어요?”
“네. 정상적이라면 그랬겠죠…….”
“근데 드라키나 성룡 되기 전에 쳐들어온 용사는 그냥 쓸어버리던데요? 잡지 않고.”
“그는 황제의 의도를 어렴풋이 알고 있던 용사 중 하나였습니다. 그의 혼돈의 문 개방을 막기 위해, 제물이 될 드라키나를 없애려 했죠.”
아하.
그 용사는 황제가 뭔가 수상했다는 걸 알았구나.
그래서 제물을 없애기 위해 그냥 문답무용으로 필살기를 날린 거군.
“원래 역사에서는 어땠는데요? 그때도 저 용사가 왔으면 쓸렸을 테고 제물화도 안 되었을 텐데.”
“용사가 오는 건 랜덤입니다. 황제파 용사가 오면 잡혀가는 거구요. 원래는 황제파 용사에게 잡혀갔습니다.”
“그럼 이제는 어쩐대요?”
“역사가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습니다…… 원래 부서진 세계는 혼돈 측과 저희의 합의를 통해 생겨난 곳. 그들이 동의한다면 이런 이레귤러한 상황을 되돌려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만…….”
“서로 원수인 두 진영이 그런 합의도 하나요?”
“거의 없지만 서로 이해관계가 일치할 때는 합의가 있을 때도 있죠. 하지만 소환되어야 할 ‘웃는 얼굴의 악마’가 이레귤러를 지켜보겠다며 시간 역전에 동의를 하지 않았습니다.”
‘웃는 얼굴의 악마’?
어디서 들어 봤나 했더니 하데스한테 영혼 중개 3자리 줄 때 있었던 이름이다.
얘랑 홀로 서는 거신이 있었지.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저희가 용신을 잡는다면, 웃는 얼굴의 악마는 흥미를 잃고 다시 세상을 원래로 되돌리는 데 합의하겠죠.”
“용신이 도망가서 혼돈의 문 안 열리면 칼바인 행성 다시 회복하는 거 아닌가요?”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신성제국의 황제는 어떻게든 혼돈의 문을 열 겁니다. 거기에 용신은 저희가 꼭 잡아야 하구요.”
단호하게 말하는 클레어.
왜 그렇게 되지 않는지 질문할까 했지만, 그래 봤자 대답하지 않을 느낌이다.
일단 넘어가자.
하도 숨기는 게 많으니까, 그냥 주어지는 상황 상황에 대처해야겠네.
“그럼 드라키나의 레어에서부터 시작인가요?”
“아뇨. 그렇게 된다면 그다음 단계부터 시작입니다. 드라키나의 레어부터 시작하면 이런 부작용이 있을지 몰랐기에…… 똑같은 실수를 또 할 수는 없죠.”
그러며 나를 향해 웃는 클레어.
한쪽 입꼬리만 올라가 있었다.
최대한 웃으려고 하는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미소가 아니라는 게 대번에 느껴지는군.
아무리 봐도 저건 썩소다.
“용신이 계속 도망다니면요?”
“그럼 신성제국의 황제가 혼돈의 문을 열기 위해 드래곤을 사냥할 겁니다. 용의 대지에 있는 드래곤들은 이에 대항할 거구요. 이대로 신성 제국과 드래곤들이 충돌하는 걸 지켜봐야겠죠. 지구 각성자 분들은 드래곤 편에 서구요.”
“용사와 드래곤의 싸움에 지구 각성자가 낀다구요?”
“네…… 지구 각성자는 경험치를 올릴 수가 없을 거예요. 용사와 드래곤의 싸움에서 새우등 터질 일만 남았으니까.”
A급의 용사와 드래곤이 본격적으로 싸움을 시작하면 지구인 중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없을 텐데.
이거는 그냥 들어오지 말라는 난이도네. D,C급 각성자들은 여기 오면 안 되겠다.
“그럼 보상도 전해 드렸으니 이만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런데 이렇게 부서진 세계에 신이 개입해도 되나요? 케브리안에서는 안 이랬던 거 같은데.”
하데스도 개입했다가 페널티 엄청 먹었잖아.
95% 힘 감소로 싸울 만 했지.
“원칙적으로는 안 되지만, 용신 부활은 그만큼 큰 문제라…… 토르님은 완전한 페널티를 감수하셨습니다. 그럼 이만…….”
몸이 빛나더니 번개로 번쩍하며 사라지는 클레어.
나 혼자 용의 대지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메인 퀘스트는 용신 각성 하나만 남아 있는 상태.
드라키나의 드래곤 하트 제거 이후엔 퀘스트가 없었다.
나는 드라키나가 불타오르던 주위를 둘러보았다.
혹시 용의 뼈나 비늘이 남아 있을지 해서였다.
하지만 십여 분 간을 뒤져 보았는데 그런 건 흔적도 없었다.
“귀환도 못하고.”
들어온 지 열흘은 지나야 귀환이 가능한 상태.
와, 뭐하지?
퀘스트도 없고 몬스터도 없네.
그냥 붉은 땅만 끝도 모르고 펼쳐져 있을 뿐.
용의 대지라더니 흙만 붉은 거 빼곤 별로 특이사항도 없다.
진짜 사막 위에 덩그러니 떨어진 느낌이군.
“화염전차 소환.”
전차를 타고 그냥 한 방향으로 쭉 달렸다.
계속 똑같은 풍경만 스쳐 지나간다.
황량한 붉은 땅.
도저히 할 게 없어서 드래곤 하트나 흡수하려고 드라키아를 불러보았지만 그도 대답이 없는 상태.
회복 중인가?
드라키아가 안 되면 드라키나에게 물어볼까.
사도의 정원에 있는데 그게 되나 모르겠네.
“사도의 정원.”
사도의 정원 스킬을 사용해 보았다.
그러자 커다란 화면이 떴다.
화면 맨 위에는 사도의 정원이라고 쓰여 있었으며, 3자리가 남았다는 문구가 맨 먼저 나왔다.
그리고 그 아래는 디아나의 아공간, 드라키나의 아공간이 하나씩 나타나 있었다.
디아나의 아공간은 [사용자의 등급이 낮아 접근할 수 없습니다.] 나는 메시지와 함께 보지 못하도록 검은 칠이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드라키나 쪽은 달랐다.
어느새 예전 아릭으로 행세하던 시절의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있는 드라키나 인간형.
그녀가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서 있는 장면이 보였다.
그녀 주위의 배경은 검은색이었으나, 디아나와는 달리 드라키나의 모습은 선명하게 나타났다.
디아나는 등급이 A라 못 보지만, 드라키나는 등급이 C라 가능한 건가?
“야.”
한번 불러봤지만 소리는 듣지 못하는 듯 계속 불만스런 얼굴로 서 있는 드라키나.
이제보니 무슨 게임 캐릭터 선택창처럼, 불만스런 표정으로 서 있기만 한다.
실제로도 저렇게 계속 서 있는 건 아닐 거 같고, 그냥 내 상태가 이렇소 하고 보여 주는 느낌이다.
흠. 한번 눌러볼까.
드라키나를 터치하니 옆에 추가로 창이 떴다.
[메시지 전송]
[소환]
[능력치 확인]
[육성]
[SP 회수]
[사도화 해지]
응?
이런 기능도 있네.
디아나 때문에 보질 못해서 몰랐는데…….
메시지 전송과 소환이야 알겠고, 육성과 SP 회수라…….
메시지 보내기 전에 스탯창 확인을 눌러보니 드라키나의 스탯창이 떴다.
[이름 - 드라키나
클래스 - 레드 드래곤 (용인화)
수호신 - 김지호
칭호 -
레벨 - 67
신체 - A
마력 - A
기예 - C
행운 - E
회수가능 SP - 281]
헐 내가 수호신이네?
내 상태창과 비슷한데 회수가능 SP만 달랐다.
수호신으로서 봐서 그런가?
흠…….
확실히 용이라 그런지 능력치가 범상치 않았다.
레벨이 67밖에 안 되는 주제에 A스탯이라니.
행운이 낮은 건 좀 불쌍하지만 다른 게 잘나가니까 뭐.
육성을 누르니 상태창은 그대로 뜨는데 능력치 옆에 +표시만 생겨났다.
제일 구린 행운을 눌러보니 [SP를 소모해서 사도의 능력치를 올립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라고 나왔다.
내 SP를 통해 키워 주는 건가?
와 이런 기능 있는 줄 알았으면 지구인 육성도 가능했겠네…….
멸망의 때에 한 번 키워볼 걸 그랬나 아쉬워졌다.
“SP 회수는…….”
그건 그렇고 회수가능 SP라…….
SP 회수 기능을 이용하면 저 회수가능 SP를 가져오는 거 같네.
그럼 내 수호신들도 다 내 상태창과 SP 잔량을 이렇게 훤히 볼 수 있는 건가?
아니면 SP 잔량과 회수가능 SP는 다른 건가?
드라키나에게 물어봐야겠네.
소환은 지금 바로 하긴 그렇고, 메시지를 보내 보자.
[지낼 만 하냐? 너 SP 얼마 있어?]
[이 메시지는 김지호? SP는 왜? 여긴 어디지? 내가 있던 드래곤 레어와 똑같이 생겼군.]
심심했는지 바로 답신이 온다.
[확인할 게 있어서 그래. 281 맞냐?]
[281? 용신의 후예를 뭘로 보고. 28100이 있다. 하트가 깨지고 용인이 되면서 SP도 많이 사라졌군……]
28100이라.
그럼 1% 회수 가능인가.
많이 뜯기진 않는군.
[언제까지 여기에 날 가둘 셈이냐? 빨리 회복을 해야 하는데 이 공간에는 마나가 너무 더디다.]
[지금 나오면 좀 골치 아픈 상황이야. 지구 가서 한번 소환해 줄게. 아. 드래곤 하트 흡수 효율적으로 하는 법 좀 알려 줘 봐.]
[드래곤 하트? 어디서 구했지?! 아, 그것보다 나에게 줘! 그게 있으면 금방 회복할 수 있어!]
[일단 나 먼저 먹어야 해. 드래곤 하트 스킬이 불완전하거든? 스킬 완전해지고 나면 좀 줄 수도 있으니까 빨리 효율적인 흡수방법 좀 알려 줘.]
딱히 줄 생각은 없지만 이런 희망이라도 있어야 잘 가르쳐 주겠지.
[……드래곤 하트는 너도 보았다시피 육각형의 별모양이다. 이를 하나씩 여섯 등분해서 한 조각씩 먹어라.]
[케이크 먹듯이?]
[감히 드래곤 하트를 케이크에 비유하나!]
[어쨌든 부수지 말고 먹으면 된다는 거지?]
[그래. 꼭 먹어야 흡수가 잘 된다. 보석같아서 씹기 힘들어 보이지만 입에 들어가면 알아서 녹을 거야.]
[나 B급인데 이거 먹고 용 되는 거 아냐?]
[B급이면 괜찮다. 아 아니다. 용 될수도 있어. 걱정되면 나 줘. 그냥. 제발.]
[오케이 땡큐.]
좋아.
화염전차를 타고 의미없이 달리고 있었는데 할 일이 생겼군.
인벤토리에서 드래곤 하트를 꺼내 여의로 썰기 시작했다.
검에 마나를 두르니까 잘 썰리는 드래곤 하트.
기예 능력이 높아서 그런지 아주 깔끔하게 별모양 육각형을 한 조각씩 해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개 중 한 조각을 입에 가져갔다.
그러자 입에서 스르르 녹는 드래곤 하트.
드래곤 하트가 녹자마자 대기에 분포한 마나가 일제히 내 쪽으로 몰려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곧, 메시지가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