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85화>
85 두 번째 사도 (1)
“드래곤 하트를 만들어요? 그게 가능합니까?”
[나는 용신이다.]
그 한마디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야 사념체 수준이지만 원래는 SSS급의 대신.
제우스, 오딘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신 아닌가.
뭐 수가 있겠지.
“알겠습니다. 그럼 가서 수락하죠. 근데 흠…… 만들어진 걸 그냥 터뜨린다고 퀘스트가 깨질까요?”
[아니. 그렇게 속이기에는 아스가르드의 감시의 시선이 적지 않겠지. 드라키나의 드래곤 하트를 그대가 직접 부수어라. 그리고 그 자리에 내가 만든 드래곤 하트를 바로 교체하지.]
“그게 가능합니까?”
[가능하다. 드라키나는 내가 설득하지.]
용신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뭐 이쯤되면 믿고 가자.
어차피 딱히 손해 볼 거 없으니깐.
“그렇게 하죠.”
[그럼 하루만 기다려라. 드라키나의 드래곤 하트를 만들지.]
“SP는 더 필요 없습니까?”
[지금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것보다 그대, 사도를 두고 있는가?]
“사도요?”
[엘프리안의 기운이 느껴져서 그렇다. 그녀를 상대할 때 아주 까다로웠던 스킬이 느껴지는구나.]
아하.
사도의 정원을 말하는 건가?
이 양반은 이건 또 어떻게 안대?
[그녀와 케브리안의 패권을 다투던 날. 완벽한 포위를 이뤘었지. 은폐해 두었던 드래곤을 일제히 출격시키고 그녀와 자웅을 겨루려 했을 때 갑자기 그녀의 품에서 천사와 하이 엘프 전사들이 튀어나왔다. 그때의 충격이란……]
갑자기 과거 회상을 하는지 말이 길어지는 드라키아.
이대로 듣다간 엘프 vs 드래곤의 판타지 대서사시를 듣게 될 판이라 그의 말을 끊었다.
“사도의 정원이라고 임시 사도가 된 이들이 머무르는 아공간 스킬이 있습니다. 이걸 말씀하시는 것 같군요.”
[그래. 그런 종류의 스킬이었지. 드라키나의 심장을 터뜨리고 교체하고 나면, 그녀를 거기에 넣어 줄 수 있겠는가?]
자리는 지금 디아나만 차지하고 있으니 가능은 한데…….
“그럼 드라키나가 제 사도가 되어야 하는데요. 과연 할까요?”
[후후…… 영혼 중개자의 사도가 되면 영광이지. 내가 설득하겠다.]
“그럼 그렇게 하시지요. 그런데 제가 등급이 B등급으로 낮아서 사도를 임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사도화가 가능한 엘프리안의 인장 기능을 떠올려 보았다.
[엘프리안의 인장 : 사도화]
[자신의 등급과 동급이거나 그 이하의 각성자를 임시로 사도 임명할 수 있습니다. 엘프의 경우는 등급 상관없이 사도화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 수는 총 7명으로 제한됩니다.]
엘프의 경우는 등급 상관없이 사도화를 진행할 수 있었지만, 드래곤의 경우는 나보다 등급이 높아 진행이 안 될 거다.
드라키나는 무조건 B급은 아닐 거란 말이지.
[B급이면 되나?]
“네. B급이면 사도 가능해요.”
[그럼 문제없다.]
단언하는 용신.
드래곤 하트랑 용 관련해서는 아주 자신만만했다.
하긴 뭐 용신인데…… 알아서 하겠지.
그리고 2일 후, 칼바인에 다시 진입했다.
칼바인으로 돌아오니 내 몸은 드라키나의 목 위에 서 있었다.
거대한 레드 드래곤을 다시 타니 호연지기가 물씬 올라오는구만.
하지만 지금은 감상에 빠질 때가 아니지.
퀘스트 창을 불러 두 퀘스트를 동시에 수락했다.
양손으로 동시에 클릭해도 한 개만 되는 건지 긴가민가했는데, 다행히 둘 다 수락되는 퀘스트.
드라키나를 용신으로 각성시키라는 퀘스트는 추가 내용도 있었다.
[드라키나에게 내재된 용신의 힘을 각성시키십시오. 용신의 힘은 용의 대지에 있을 때 서서히 각성하며, 다른 드래곤의 드래곤 하트를 얻을 경우 각성 속도가 급격히 빨라집니다.]
[이 퀘스트는 다시 받을 수 없습니다.]
용의 대지에서 죽치고 있거나 다른 드래곤을 잡으라 이거였냐.
난이도 불가능 이유가 있네.
그냥 아무 준비 없이 도전했으면 고생할 뻔했군.
거기에 한 번만 할 수 있는 퀘스트.
수락 안 했으면 두고두고 아쉬울 뻔했다.
난 드라키아의 목을 탁탁 쳤다.
“너. 내 사도가 되라.”
[뭐? 사도? 이게 미쳤어?]
드라키나가 앙칼지게 소리치며 몸을 흔들려고 한다.
그녀가 움직이기 전에 빠르게 인벤토리에서 보석을 꺼냈다.
붉은빛이 나는 내 주먹만한 보석.
안에는 불꽃이 맴돌고 있다.
집에 나서기 전 드라키아가 준비되었다며 준 물건이었다.
[용신 각성을 위해 만들던 용핵을 개조했다. 이걸 드라키나의 몸에 주입하면, 내가 그녀와 접촉이 가능하지.]
개조된 용핵을 드라키나의 목비늘 쪽에 가져다 대니 붉은빛이 터져 나왔다.
빛은 곧 불꽃으로 변하여 나와 그녀의 몸을 순식간에 감쌌다.
겉으로 보기에는 맹렬하게 타오르는 화염.
하지만 내 몸이나 드라키나의 몸이나, 불로 인한 피해는 없었다.
[퀘스트를 수락한다고 한들, 토르의 시선은 여전히 그대를 주시할 것이다. 나의 불꽃으로 그의 시야를 잠시 가리겠다. 그리고 드라키나와 이야기를 시작하지.]
단지 시야를 가리기 위한 화염.
나와 드라키나를 집어삼킨 불꽃이 용의 대지까지 집어삼키고 있었다.
[이 마력은……!? 아……아니…… 위대하신 아버지 용신…… 용신님 맞으십니까?]
대화 중인가?
다행히 연결은 되었나보다.
흥분한 기색이더니 갑자기 몸을 움츠리며 고개를 푹 숙이는 드라키나.
[아. 네. 죄송합니다. 조용히 하겠습니다……]
굳이 입 밖으로 떠들지 말라고 주의를 받았나?
실체도 없는 용신이지만 확실히 드라키나는 용신을 극도로 예우하는 느낌이었다.
계속 불꽃이 타오르며 시간이 흐른다.
뭐라고 말하는지 궁금한데, 둘만 이야기하니까 알 수가 없군.
그냥 드라키나가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거만 느껴졌다.
그러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려고 하는 드라키나의 목.
내 몸도 같이 딸려 올라간다.
[네에?! 드래곤 하트를? 거기에 등급까지…… 아…… 알겠습니다…… 따르겠습니다……]
시무룩한 목소리와 함께 다시 축 쳐지는 목.
용머리는 아주 땅을 파고들 것처럼 용의 대지와 가까이 있다.
자기 심장을 바치라고 하니까 이렇게 축 쳐지는 건 이해가 간다만…….
드래곤을 불쌍하게 쳐다보고 있자니, 내 눈앞에 무언가가 두둥실 떠올랐다.
내 몸보다도 커다란 별모양의 보석.
붉은색으로 이루어진 보석은 황금빛 광채를 내고 있었다.
엄청난 양의 마력이 휘몰아치는 게 느껴진다.
내 마력도 이에 휩쓸릴 것만 같았다.
이거 설마…….
드래곤 하트?
[부숴라.]
드라키나가 우울한 어투로 말했다.
정말 하기 싫다는 티가 팍팍 난다.
“그냥 부숴?”
[그래. 용신께서 다 처리를 해 놓으셨으니 그냥 부숴라…… 아. 그 이상한 검기로 부수진 말고. 마나 소드를 일으켜서 부숴라.]
그녀의 말에 여의를 꺼냈다.
마나를 불어넣고, 적당한 대검 크기로 확장한다.
“이거 드래곤 하트 맞지? 부순다?”
[그래! 빨랑 부숴!]
성질은.
검을 그대로 드래곤 하트에 푹 찔렀다.
엄청 단단해 보였는데, 생각보다 쉽게 들어가는 여의.
검신은 그대로 드래곤 하트의 중앙까지 파고든다.
그러자 사방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드래곤 하트.
“카아아아아아아!!”
귀가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
드라키나가 머리를 바싹 들며 고통에 몸부림친다.
그녀의 목에 서 있던 나도 그녀의 움직임에 나가떨어질 뻔했다.
검에 꽂힌 드래곤 하트와 함께 몸이 들썩들썩했다.
[이제 드래곤 하트를 파괴하면서 그 마력을 이용해 새로이 만들겠다. 드래곤 하트를 반으로 갈라 주게.]
갑자기 들려오는 드라키아의 음성.
딸이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음에도 냉정하기 그지없다.
그의 지시에 따라 여의를 확장하며 검기를 불어넣었다.
완전히 드래곤 하트를 관통한 검.
그 상태에서 위아래로 움직이자, 금이 가던 드래곤 하트가 완전히 반으로 갈라진다.
“카……아아…….”
그러자 고통에 몸부림치던 드라키나의 움직임이 멎기 시작한다.
그녀의 몸에서 나던 황금빛 광채도 서서히 빛을 잃어 간다.
몸이 축 늘어지며 생기가 사라지는 드라키나.
[‘드라키나의 드래곤 하트를 파괴하라’ 퀘스트를 클리어 하였습니다.]
갑자기 뜨는 메시지 창.
이제 보상이 들어오나 싶더니, 갑자기 생뚱맞은 메시지가 떴다.
[너무 빠르게 클리어한 퀘스트에 토르가 의문을 가집니다. 중립 진영에서 조사단을 파견하려 합니다.]
조사단? 별 게 다 있어.
사기 치기 쉽지 않네.
“조사단이 온다는데요?”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이것도 예측 범위 내. 빠르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겠다. 드래곤 하트 생성.]
반으로 갈라진 드래곤 하트.
그 안에 담긴 거대한 마력이 대기 중으로 흩어질 때.
용신의 말 한마디에 마력이 다시 한 군데로 응집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한데 뭉친 마력이 만들어 낸 것은 아까와 비슷한 모양의 드래곤 하트.
다만 그 크기가 주먹만 했고, 색은 붉은색이 아니라 황금빛이었다.
[부활하라.]
용신의 명에 축 늘어진 드라키나의 몸에서 황금색의 영롱한 빛이 뿜어져 나온다.
그 빛은 새로 만들어 낸 드래곤 하트로 빨려 들어가더니, 곧 하나의 형태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와 비슷한 크기의 인간형 테두리를 형성하던 금색 빛.
사지 말단부터 빛이 멎기 시작한다.
그러며 나타난 것은…….
“사람……?”
붉은 머리칼의 알몸 미녀.
두 눈을 감고 있는 그녀는 앳된 느낌이지만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붉은색 머리카락이 워낙 길어 몸과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보이는 미모는 초월적.
엘프를 넘어설 느낌이군.
[내 딸이 인간을 섬기게 되었으니 특별히 인간 취향에 맞춰 주었다.]
얘 드라키나야?
오크 모습으로 크르르 하던 거에 비하면 거의 천지개벽수준인데……?
[이제 시간이 정말 없군. 빨리 사도화를 진행하라!]
의식을 잃은 모습으로 축 늘어져 있는 드라키나.
이 상태에서도 되나?
일단 사도 지정을 해 보았다.
[레드 드래곤 드라키나를 사도로 지정합니다.]
[레드 드래곤 드라키나가 용인 상태입니다. 등급이 C로 일시적으로 낮아진 상태입니다. 드라키나가 다시 완전히 회복할 시 사도화는 자동으로 해제됩니다. 사도로 지정하시겠습니까?]
이게 용인 상태라고?
내가 알고 있는 용인이랑은 외모 차이가 심한데…….
뭐 용머리 5M 괴물보다는 낫지.
이렇게 드래곤을 사람 형태로 바꾸다니…… 용신은 용신이구나.
내가 예를 누르자 그녀와 내 몸에서 잠시 빛이 번쩍였다.
[레드 드래곤 드라키나가 사도가 되었습니다.]
[드라키나의 등급이 사용자보다 높아질 경우, 사도화는 자동으로 취소됩니다.]
흠. 성공이군.
자신의 운명을 모른 채 원래 자기 몸 위에서 축 처져 있는 드라키나.
[이제 드라키나를 숨겨다오.]
“알겠습니다.”
[C급 각성자 ‘레드 드래곤 드라키나’가 사도의 정원에 들어옵니다.]
[사도의 정원에 남은 공간은 3자리입니다.]
그녀의 몸이 빛이 되어서 나한테 빨려 들어왔다.
[원래 그녀의 몸은 내가 흡수하지.]
드라키나의 인간 몸체가 사라지자 용신의 불꽃이 움직임을 바꾼다.
지금까지는 위장막의 용도였다면, 이제는 드라키나의 용체龍體를 본격적으로 태우기 시작한다.
[무식한 토르의 기운이 느껴지는구나.]
쿠르르릉.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천둥소리.
시선을 하늘로 돌리니, 구름 속에서 뇌전이 일렁이는 게 확연히 보인다.
얼마나 큰 번개를 떨어뜨리려고 여기서도 보이지?
[저 정도 기운이면 토르 직속의 발키리들일 터. 그대가 말했던 조사단이 그들인가 보군. 내가 유인하겠다.]
어떻게 유인하려고?
[지상으로 그대를 날리겠다. 적인 척하도록.]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불타오르던 드라키나의 신체에서 거대한 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버티려면 버틸 수도 있었겠지만, 드라키아의 말대로 튕겨져 나갔다.
쿵!
붉은 흙의 용의 대지에 쓰러지자 흙먼지가 입안을 메운다.
“퉤.”
침을 뱉고 드라키나의 신체 쪽을 바라보니, 불타오르던 그녀의 몸은 황금색 용으로 변해 있었다.
응? 골드 드래곤인가?
드라키나의 몸보다 반도 넘게 줄어든 몸이었지만, 풍기는 기세가 위엄이 넘쳐흐르는 모습.
골드 드래곤은 하늘 위로 머리를 치들더니 크게 포효했다.
[토르여! 이번에는 물러나마. 하나 나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러더니 한 줄기 빛으로 변해서 사라지는 골드 드래곤.
그가 사라진 땅에 번개가 네 번 내리치더니 네 명의 발키리가 우뚝 섰다.
워. 간발의 차였네.
“용신 드라키아가 부활하려 한다!”
“아직 힘이 약하다. 추격해야 해!”
“잡아!”
조사단으로 온 거 같은데 이미 나는 안중에도 없는 상황.
발키리들이 일제히 빛이 사라진 방향으로 움직인다.
뭐 조사는 흐지부지 될 거 같은데 용신은 괜찮으려나?
[역시 아스가르드 것들은 무식하군. 그래도 조사는 해야지.]
갑자기 들리는 용신의 목소리.
잉.
저 육체에 있는 거 아니었어요?
[사념체를 두 개로 나누었다. 간단한 일이지.]
이런 게 SSS 클라스인가?
그는 멀어져 가는 발키리를 보며 끌끌 웃더니 나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나는 다시 재생하러 가겠다. 드라키나를 부탁한다.]
네. 잘 재생하고 퀘스트 깨주세요.
[레드 드래곤 드라키나의 육체가 파괴되었습니다.]
갑자기 뜨는 퀘스트 창.
두 번째 용신 만들라는 퀘스트가 혹시 실패했다고 뜨는 건 아닌지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뜨는 메시지에 안심할 수 있었다.
[용신의 후예 드라키나의 육체가 파괴, 재구성됩니다. 퀘스트가 계속 진행됩니다.]
[용신이 육체의 극히 일부분을 재생합니다.]
[퀘스트 진행률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