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83화>
83 용신 드라키아 와의 계약
“누구십니까?”
[나는 드라키아다.]
“케브리안 행성의 용신 드라키아?”
블랙드래곤 아카르디안을 잡았을 때 처음 들었던 용신 드라키아.
케브리안의 중립 진영 대신이었지만, 아스가르드가 그걸 대신하고 있다고 했지.
엘프리안도 제압당한 걸 보면, 얘네들은 올림푸스와 아스가르드 연합에게 정복당한 게 아닐까?
[맞다. 칼바인에서 케브리안을 알다니…… 신기하군.]
“아스가르드에게 제압당한 게 맞습니까?”
[그것도 알고 있나?]
갑자기 몬스터 하나가 나에게 다가왔다.
내 키의 반 정도 되는 고블린.
평소엔 날 두려워해서 피해다닐 텐데, 지금은 두 눈이 시뻘개진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토르의 축복을 받고 있는 인간이구나. 그런데 그대에게선 기이하게도 질서 진영의 힘도 느껴지는군.”
“드라키아 당신입니까?”
“그래. 잠시 고블린의 몸을 빌렸다. 완벽하게 죽은 줄 알았는데 이 정도 힘은 쓸 수 있군.”
“어떻게 여기에 나오셨습니까?”
“나도 의문이다. 눈에 띄게 강해진 오딘과 토르의 합공을 받아 완전히 소멸했는데…….”
고블린이 고개를 갸웃한다.
원인이 뭘까?
드라키나를 지켜 내서 그런 건가?
“드라키나가 성룡화하고 있는데 그거 때문일까요?”
“드라키나가 벌써 성룡화를 한다고? 그렇게 세월이 흘렀단 말인가…… 그러면 일부 이해가 되는군. 그녀는 나의 막내딸. 용신의 신력을 꽤 이어받았지.”
고블린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픽 쓰러졌다.
가까이 가 보니 입에 거품을 물며 몸을 부들부들 떠는 고블린.
거의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토르의 기운이 느껴지는군. 혹시라도 그가 볼 수 있으니 다시 사념체로 돌아가겠다.]
“아…….”
[굳이 말하지 말고 생각으로 전달하라.]
생각을 읽나?
알겠다고 속으로 대답했는데 아무 반응이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다시 말을 꺼내는 드라키아.
[그대는 원형유지로 완벽하게 마음을 보호하고 있군. 이런 상태면, 나에게 강하게 의념을 담아 생각을 해야 들을 수 있다.]
그렇군.
드라키아. 엘프리안도 케브리안에서 완전히 제압당해 사지가 잘린 채 제우스의 아이를 낳고 있습니다. 그 애는 제우스의 입에 들어가죠.
[엘프리안이? 한 때 케브리안 행성을 두고 경쟁하던 그녀가 그리되다니…… 서글픈 운명이로구나.]
그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대략적으로 이야기해 주었다.
올림푸스와 아스가르드가 시간을 돌린다는 이야기에 그가 크게 성을 냈다.
[시간을 계속해서 과거로 되돌린다고? 이것들이 창조주가 되기 위해 별의별 수를 다 쓰는구나.]
창조주요?
[그래. SSS급 대신이 한 단계 더 높아지면 창조주의 자격을 얻게 되지. 그러기 위해서 시간을 돌려가며 SP를 모으는 거 같구나. 언제까지 저럴 수는 없을 텐데……?]
의아해 하는 드라키아에게 영혼 중개에 대해 말해 주니 잠시 침묵이 흘렀다.
[영혼 중개라고? 자비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놈들이 왜 지구인을 회귀시켰나 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군. 영혼 중개자를 백 명 확보하면 창조주의 길을 무리 없이 갈 수 있겠어.]
영혼 중개자가 그렇게 파급력이 강한가?
그 정도 가치일 줄은 몰랐는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영혼 약탈자야 자신이 강해지는 거지만 영혼 중개자는 신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니까. 그건 그렇고, 혹시 나와도 계약이 가능한가?]
급 호기심을 보이는 드라키아.
엘프리안과 영혼 중개를 체결했다는 이야기까지 하자 자기도 껴달라고 말했다.
음…… 엘프리안은 사지가 잘려도 형체라도 있었지만 지금 드라키아는 형체도 없는 유령 상태인 거 같은데.
계약이 되나?
[영혼 중개 자리가 남는다면 실험해 보는 게 어떠한가? 엘프리안 때처럼. 나도 조건을 달겠다. SP를 얻지 못하면 상호 해지 가능하도록.]
자리야 아직 좀 있으니까.
그래볼까?
유령이나 다름없는 드라키아 와 영혼 중개 계약이 체결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근데 공짜로는 안 해 주는데?
[드라키나가 성룡으로 각성하면 꼭 보상을 내리겠다. 제발 부탁이다.]
나에게 애처롭게 호소하기 시작하는 드라키아.
정말 자기도 주고 싶은데 이 상태에서 줄 게 없다면서 드라키나가 깨면 바로 대가를 내리겠다고 부탁한다.
그럼 그때 대가 안주면 계약 파기한다고 하자 바로 승낙하는 드라키아.
[용신 드라키아 와 영혼 중개 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용신 드라키아가 얻는 SP가 2.2배 증가합니다. 중개자 김지호는 이 중 35%를 수수료로 얻습니다.]
[스킬 레벨이 낮아 용신 드라키아가 여러 행성에서 얻는 모든 SP를 중개할 수 없습니다. 케브리안 행성의 SP만을 중개합니다.]
칼바인에서 계약했는데 케브리안이 되네?
드라키아는 오히려 이를 반겼다.
[케브리안만 된다고? 차라리 잘 되었다. 그곳이 나의 모행성이니까.]
칼바인은요?
[여긴 내가 침략한 곳이지. 식민지로 삼았던 행성이다. 일이 생겨 신경을 쓰지 않았더니 지금은 질서 진영이 장악했군. 원래는 용을 숭배하는 땅이었지.]
이 동네가 원래는 드라키아의 식민지 같은 곳이었나보군.
지금은 신성제국 판이지만…….
[그럼 나는 회복에 전념하겠다.]
영혼 중개 계약도 체결하자 드라키아가 사라진다.
흠…….
엘프리안은 SP를 확실히 상당히 주고 있는데, 드라키아는 어떠려나.
드라키아까지 SP 중개 가능하면 좋겠는데.
지금 상태라면 올림푸스-아스가르드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으니까.
“그건 그렇고 성룡화가 오래 걸리네.”
퀘스트를 완료하면 드라키나가 성룡이 돼서 다음 퀘스트로 진행할 줄 알았는데, 아직 철문은 굳게 닫힌 채였다.
안에서 거대한 마력이 휘몰아치는 게 느껴지기는 하는데, 이건 며칠 전에도 이랬거든.
그래도 곧 결판이 날 테니 지구엔 돌아가지 말고, 용의 힘 스킬이나 구경해 볼까.
[용의 힘]
[특수 스킬]
[용신의 직계만이 부여할 수 있는 용의 힘. 용신의 불꽃을 소환할 수 있으며, 신체의 힘을 극한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드래곤 하트가 없거나 불완전할 경우, 그 강대한 힘을 이기지 못하고 시전자의 몸이 터져 나간다.]
설명을 보자 죄다 자폭했던 몬스터들이 떠올랐다.
드래곤 하트가 없으니까, 용의 힘을 부여받았지만 그 힘을 견디지 못한 건가?
나는 드래곤 하트가 있으니 사용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사용자의 드래곤 하트가 불완전합니다. 스킬을 사용할 시 용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몸이 폭발합니다.]
이런 경고 메시지가 추가로 떠 있었다.
아카르디안이 준 드래곤 하트로는 부족했나보군.
하긴, 스킬 명이 드래곤 하트의 마나재생이니까, 완전한 드래곤 하트는 아니지.
결국 지금은 못 쓰겠네.
거기에 칭호는…….
[용의 수호자]
[등급 B]
[용을 보호한 이에게 주어지는 칭호. 용족과의 친화력이 크게 상승하며, 마나의 축복을 받습니다.
마력 능력치가 30% 상승합니다.
용족이 사용자를 우호적으로 대합니다.]
지금 쓰기는 애매하네.
난 지금 지구의 일인자 칭호, 지구의 선구자 칭호를 착용하고 있는데 그 두 개에 비해 성능이 떨어진다.
쓸 만한 점이라면 용족과의 친화도 정도?
근데 지금 당장은 뭐 쓸 일이 없지.
일단 킵해 두자.
막상 보상을 정리해 보니 용의 힘은 조건부, 용의 수호자는 애매한 칭호였다.
드라키아를 만난 게 그나마 수확이려나?
녀석에게 드래곤 하트 업그레이드 해 달라고 해야겠어.
그래야 이 용의 힘도 쓸모가 생기지…….
스킬을 이리저리 끼워맞춰보고 있을 때, 갑자기 레어 안쪽에서 커다란 마나의 흐름이 감지되었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마력.
쿠르르르르.
그러며 땅이 울리기 시작한다.
그와 함께 드래곤 레어 앞에 있는 철문이 자동문처럼 스르르 열렸다.
[들어와라. 신의 사도!]
위엄찬 목소리가 드래곤 레어에 울려 퍼진다.
드디어 성룡화가 된 건가?
열린 문을 통해 들어가니 그 안은 별천지였다.
사방이 금, 골드다.
바닥에 깔린 금괴들, 벽에도 천장에도 죄다 금빛이 넘실거린다.
밖은 그렇게 황량한 동굴이었는데, 안은 금괴를 잔뜩 모은 보물창고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금위에 몸을 깔고 앉아 있는 건 거대한 레드 드래곤이었다.
모습은 블랙 드래곤 아카르디안보다도 훨씬 거대했는데, 붉은 비늘 위에는 황금빛 광채가 은은하게 퍼져 있었다.
외양이야 뭐 용머리 차이까진 잘 모르겠다만…….
갓 성룡이 된 거치고는 엄청난 존재감이다.
용신의 후예라 그런 건가?
[지금까지 정말 고마웠다. 신의 사도. 네 덕에 무사히 성룡화를 끝마쳤다.]
“다행이네.”
[흠흠. 그놈의 반말…… 내 생명의 은인이니 내가 특별히 참도록 하지.]
“그거야 당연하지.”
그러자 고개를 잠시 들고 입김을 내뿜는 레드 드래곤.
화염이 천장까지 닿아 금색 천장이 녹아내렸다.
자식이 성질은.
[크흠. 그래. 내 특별히 참으마. 안 그래도 아직 위급한 상황은 끝나지 않았으니.]
“성룡이 되면 탈출 가능한 거 아니야?”
[공간도약이 가능한가 보았는데, 성공 가능성이 크지 않아 보인다. 적의 신성 차단막이 더욱 견고해졌어.]
말끝을 흐리는 드라키나.
그럼 어쩌자는 거지?
[일단 너와 내가 신성 차단막까지 공간도약을 한 후, 이를 힘으로 뚫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래? 그럼 그러자. 근데 너 좀 세 보이는데 그냥 싸워도 되는 거 아냐?”
[아니…… 지금 거대한 기운이 레어를 향해 접근하고 있어. 나로선 도저히 못 막는다. 용의 대지까지 일단 탈출해야 해.]
뭐야. 또 용사인가?
이 동네는 인간이 왜 이렇게 세.
용신의 딸내미가 성룡이 되었는데도 튈 정도라니.
지구로 스카웃하고 싶구만.
“쩝. 그래. 그럼 빨리 가자.”
그러자 내 몸이 저절로 둥둥 떠올랐다.
천천히 날아오른 내 몸은 레드 드래곤의 목 부근에서 안전하게 착지했다.
목이라고 해도 내 몸 몇 개가 뒹굴어도 될 정도로 커다란 공간.
[여기 잠시 있어라.]
“오오. 드래곤 라이더라니!”
[드래곤 라이더는 무슨! 공간도약 끝나면 바로 내려!]
앙칼지게 소리친 드라키나가 날개를 활짝 폈다.
그러자 그녀의 거대한 신체가 금빛으로 점멸하기 시작했다.
내가 있는 목 부위는 벌써 황금빛으로 가득했다.
[워프!]
몸이 빛으로 변해서 하늘 위로 승천한다.
이대로만 올라가면 성공적인 공간도약인가 싶었는데…….
쿵!
커다란 충돌음과 함께 승천이 막힌다.
우리가 있는 곳은 산맥이 까마득하게 보이는 상공.
부딪친 곳을 쳐다 보니 하늘 위는 구름이 뭉친 듯한 흰색의 벽으로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다.
[역시…… 바로 돌파한다!]
입을 크게 열어 불을 내뿜는 드라키나.
드래곤의 입김이 벽에 닿자 하늘의 벽이 점차 옅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금방 사라질 것 같았던 벽이 다시금 두터워지기 시작한다.
재생도 해?
[용사들이 오고 있어! 뭐해? 빨리 그 최강의 검기를 써!]
영기발출 말하는 건가.
이런…… SP 3만 받은 거도 금방 쓰게 생겼네.
하지만 피부를 에일 듯한 살기가 느껴지는 걸 보면 SP 아낄 때가 아니다.
점차 시야가 붉어지기 시작하며, 온몸이 따가워졌다.
엄청나게 위험한 상황이 곧 펼쳐진다는 뜻.
“집중강화! 영기발출!”
여의를 확장한 채 영기발출을 사용한다.
한번에 성공시켜야 하니 눈물을 머금고 집중강화까지 사용한다.
검이 크고, 길어지며 곧 새하얀 차단벽을 꿰뚫으려는 순간…….
[어?]
검에 닿기 전에 갑자기 벽이 휙 사라졌다.
응? 뭐야?
마치 영기발출과는 닿기 싫은 것처럼 휙 사라지는 새하얀 차단벽.
부딪쳤으면 SP가 더 많이 소모되었을 텐데 다행인가……?
드레키나는 벽이 갑자기 사라지자 잠시 당황했지만,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하늘 위를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멈춰라!”
다급한 음성이 하늘 저편에서 들린다.
새하얀 날개를 펄럭이며 쏜살처럼 날아오는 두 사람이 작게 보였다.
마치 천사 같은 모습.
그중 하나가 검을 휘두르자 예전에 용사가 쐈던 금빛 거대검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우리가 있던 장소를 그대로 가르는 황금검기.
차단벽을 부수고 드레키나가 날아오르지 않았으면 그대로 휘말릴 뻔했다.
하늘 위로 날아가면서, 다시 몸이 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하는 드레키나.
또 공간도약인가?
[워프!]
“여기는…….”
[다행이다. 용의 대지다.]
이번에는 다행히 성공적이었다.
그녀의 몸은 붉은 대지 위에 착지해 있었다.
흠.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이제 내려라.]
“알겠어. 잠깐만.”
여기 도착하니 퀘스트가 떴단 말이야.
이거만 확인하고 내려야지 싶어서 퀘스트를 보기 시작했는데…….
뭔가 이상했다.
“메인 퀘스트가 두 개? 근데 내용이 왜 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