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82화>
82 드래곤 레어 방어전 (3)
“나는 신의 사도. 토르의 축복을 받고 있고…… 아카르디안에게 드래곤 하트를 물려받았다.”
멀뚱멀뚱 쳐다보는 아릭에게 먼저 선빵을 친다.
사실 입이 근질근질했다.
50번 재도전할 동안 뭔가 상황 달라질까 봐 똑같이 말했거든.
오죽하면 연극하는 느낌이었으니.
내 말에 아릭이 화들짝 놀랐다.
“드래곤 하트를?”
“그래. 그러니까 네 정체를 밝혀라. 너 드라키나지?”
그냥 던져 봤다.
50번 재도전하면서 봐 본 결과 일반 오크는 절대 아닌 거 같고.
다른 존재는 딱히 안 떠오르니깐.
그러자 사색이 돼서 두 손을 흔드는 오크.
“아. 아니다!”
“용신 드라키아랑 뭔 관계냐? 이름도 비슷하던데.”
“아니…… 아버님을 아시나! 그래. 드라키아가 용신 맞아!”
드라키아가 잊혔기 때문일까.
흥분하면서 침을 튀기는 아릭.
얘가 드라키나 맞네.
용이 좀 멍청하구만. 해츨링이라 그런가?
“너 용신의 딸이야?”
“앗…… 치사하다! 그래. 내가 용신의 딸 드라키나다!”
오히려 고개를 빳빳이 올리는 아릭.
근데 이놈이 드라키나면 왜 미네르바의 심판 때 죽은 거지?
“너 성룡으로 진화 중 아니었어?”
“어떻게 그걸 알지? 아니, 그것보다 위대한 존재에게 존대해라!”
“드래곤 하트로 다 알 수 있다. 임마. 그리고 존대? 이 자식이 나 없으면 그냥 죽을 텐데 니가 나한테 존대해야지.”
“으으…….”
“어쨌든 성룡 진화중인데 오크로 활동하는 건 어떻게 된 거냐?”
아릭은 이를 악물고 잠시 침묵했다.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는 게 말해도 되는 건지 생각하는 거 같았다.
하여간 생각만 많아 이놈은.
압박을 해 줘야 해.
“아 빨리 말해! 안 그럼 나 간다? 나 없어도 막을 수 있겠어?”
“으, 알았다! 이건 내 아바타다. 아바타 하나 정도는 성룡 진화 중에도 운용할 수 있지.”
“야 근데 지금 아바타로 막느니 그냥 해츨링 상태에서 튀는 게 낫지 않아? 쟤네 장난 아닌데.”
“해츨링 상태에서는 도망가지 못한다…… 적의 포위가 너무 심해. 그리고 다른 용들도 구원오지 않고…… 용신 드라키아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어…… 뭔가 이상하다.”
의문스런 얼굴로 말문을 이어 가는 드라키나.
“결국 성룡이 되어야 공간이동으로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어. 그 전에는 이 산맥에 넓게 쳐진 차단막을 뚫지 못한다.”
그래.
결국 ‘성룡까지 지켜라’라는 이야기구만.
“드라키아의 권능으로 사용하는 ‘용의 힘’. 나한테도 줄 수 있냐?”
“네가 너무 강해서 불가능하다. 성룡으로 진화하면 모를까…….”
아이고 고놈의 성룡.
“알겠다. 일단 너 몬스터 아끼고 있어 봐. 용사 나올 때 쓰자.”
“어떻게 그런 사실을 아는 거냐?”
“내가 미래를 보는 재주가 있거든.”
“그럼 미래를 가르쳐달라.”
징글맞은 오크 얼굴을 들이대니 표정이 절로 찡그려진다.
내가 몸을 휙 피하자 눈을 크게 뜨는 드라키나.
“왜 피하지?”
“아 아바타 오크밖에 없어? 인간 엘프 이런 거로 좀 변해 봐. 아 중립 진영이면 발키리라도. 오크 보면 그냥 화가 나.”
“이렇게 아름다운데 이상한 놈이군…… 날카롭게 뻗은 송곳니, 든든한 사각턱. 적당히 지방이 깔린 근육…… 오크들이 보면 환장하건만.”
“아 인간의 미적 기준이랑은 안 맞아. 제발 좀 바꿔줘라.”
“성룡 진화중이라 안 된다.”
아 저 얼굴을 계속 봐야 해?
다른 몬스터들은 안 그러는데 드라키나는 계속 들이댄단 말이야 징그럽게.
“그럼 멀리서 이야기해라 다가오지 말고.”
“으으…… 너무하군.”
“오크 얼굴로 너무하군 이러지 마라 짜증 나니깐.”
“쳇! 안 도와줄 거다!”
자기 졸개들과 함께 뒤로 빠지는 드라키나.
애냐?
해츨링이라고 해도 나보다는 오래 살았을 텐데.
뭐 뒤로 빠져 주면 감사지.
“용사 나올 때까지 거기 가만히 있어라. 알겠지?”
“그래! 어디 얼마나 잘 싸우는 지 보겠다.”
“강하군…….”
10일간 적의 침공을 막아서자 묘한 표정을 짓는 드라키나.
웃었다 찡그렸다 표정이 묘하다.
자기 전력을 하나도 안 썼으니 좋아해야 하는데, 잘 싸우는 거 보니 마냥 좋아하긴 그래서 그런가.
하여간 애야.
“이제 용사가 나올 건데 내가 무작정 달려서 싸울 거거든? 네 목숨은 알아서 챙겨. 오케이?”
“알았다. 문만 지키라 이거지?”
“어.”
재깍재깍 알아듣네.
열흘 간 용사가 올 거니까 문만 지키라고 반복교육을 실시한 보람이 있군.
몬스터가 넓게 퍼져서 철문 앞에 하나씩 섰다.
쿵. 쿵. 쿵. 쿵.
북소리와 함께 저 동굴 너머로 퍼지는 신성력.
이 신성력에 닿자 오크 몸의 드라키나와 몬스터들이 몸을 벌벌 떨었다.
“용사…… 너무 강하다…….”
“문만 지켜라.”
화염전차에 올라타 헤르메스의 가속을 사용했다.
점점 존재감이 강력해지자, 일단 달렸다.
필살기를 쓰기 전에 싸움을 걸어야지!
“겨우 해츨링을 제압하는 데 이렇게 시간이 걸리다니……?”
목소리 깔면서 잔뜩 폼 잡던 용사의 목소리 톤이 높아진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날 발견한 거다.
“집중강화. 뇌신!”
적에게 닿기 전에 강화된 번개를 날린다.
가속 와중에도 무섭게 뻗어가는 뇌신.
검을 머리 위에 올리며 신성력을 끌어모으던 용사가 황급히 자세를 푼다.
“이놈!”
용사의 몸을 감싸는 금빛 보호막.
강화 뇌신이 보호막을 종잇장처럼 찢었지만, 용사의 검은 뚫지 못했다.
빛으로 이루어진 검이 뇌신을 그대로 막으며 흡수하고 있었다.
크으. 이게 A와 B의 차이인가?
“토르의 사도구나! 네 목을 유피테르께 바치겠다!”
용사의 몸이 잠시 앞으로 기우는가 싶더니, 어느새 내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빛의 검이 한 번 움직이자 화염전차가 그대로 반으로 갈라졌다.
이런. 강하네?
전력을 다해야겠다.
SP 소모 때문에 영기발출을 써야겠어!
“영기발출!”
두 손으로 쥔 여의가 새하얗게 불타오른다.
용사는 코웃음을 치며 나에게 접근했다.
“하찮은 수를!”
대번에 나를 제압하려는 듯, 눈앞에서 검을 휘두르는 용사.
그 속도가 워낙 빨라, 겨우 눈으로 따라갈 지경이다.
캉!
아이기스의 방패가 일격을 막아 내지만 곧바로 검이 기묘하게 꺾이며 내 목을 노린다.
그 검격, 검으로 겨우 받아 낸다.
빛의 검과 영혼의 검이 동시에 격돌한다.
쾅!
새하얀빛의 폭발이 터져 나오며 몸이 튕겨져 나간다.
“크윽!”
양 팔이 떨어져나갈 듯이 아프다.
영기발출로 새하얗게 불타는 여의도 검신이 살짝 휘어 있었다.
빛의 폭발로 인한 여파는 다행히 헤파이스토스의 갑옷이 흡수한 상황.
한 번의 격돌로 확실히 알겠다.
용사는 나보다 강하다.
A와 B의 차이가 확연하군.
곧 올 이격에 대비하며 용사를 눈으로 좇는다.
휙!
또다시 머리를 노리는 검.
근데 빛의 검의 기세가 아까에 비해 현저히 약해 있었다.
빛무더기가 축소된 게 눈에 확연한 상황.
캉!
아이기스의 방패에 부딪치자 잠시 멈칫하는 용사.
아까처럼 바로 검을 움직이지 못하고 경직되어 있다.
그 틈을 타, 그대로 검을 찌른다.
빛의 검이 여의의 궤적을 다시 틀어막는다.
화르르르…….
이번에는 검을 튕기지 못하고 그대로 꿰뚫리는 빛의 검.
반으로 갈라진 채, 새하얀 불에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더니 검 끝부터 빛이 사그라지며, 서서히 소멸하는 성검.
단 두 번의 격돌 끝에 용사의 검이 사라졌다.
“아니…… 이럴수가……? 성검이……?”
투구로 얼굴이 가려졌지만 망연자실한 기색은 가려지지 않았다.
영기발출로 인해서인가?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이 기회다.
“가속.”
헤르메스의 가속을 사용, 곧바로 용사에게 파고든다.
내 움직임에 정신을 차린 듯 뒤로 물러서려는 용사.
녀석이 작정하고 도망치면 잡기 힘들 거다.
지금이 기회……!
“커져라. 여의!”
영기발출을 유지한 채 여의를 확장시킨다.
검신이 쭉 늘어나며 뒤로 물러서던 용사의 팔뚝을 스친다.
빛의 갑옷이 그대로 베이며 용사의 팔이 새하얀 불꽃으로 물든다.
“크아아아악!”
엄청난 비명 소리를 내지르는 용사.
저번에 영기발출에 당해 쓰러졌던 데스나이트 암펠리안과 비슷한 반응이다.
다른 점이라면 암펠리안은 하데스가 구해 줬고, 용사는 구해 줄 사람이 없는 거겠지.
SP가 아까워서 영기발출을 해제하고 그의 목을 치려 하자 검이 빛의 갑옷도 뚫지 못하고 멈춘다.
쳇…….
“영기발출.”
다시 영기발출을 사용하고 그의 목을 꿰뚫는다.
이번에는 스무스하게 들어가는 검신.
“크으으윽……!! 이 고통은 대체…… 으아아아아!”
새하얗게 불타오르는 용사.
목에서부터 시작한 백염白炎은 사그라질 줄 모른다.
무려 A급, 반신 등급까지 오른 용사다.
수없이 많은 전장을 주파하고, 수많은 상처를 입어 고통에 담대할 터.
하지만 이 하얀 불꽃을 이기지 못하고 레어가 울려 퍼지라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렇게 아픈가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다.
하지만 적이 아픈 건 결국 나의 기회.
이번엔 영기발출을 해제하고, 용사의 목을 다시 베었다.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나오며 목이 툭 떨어지는 용사.
새하얀 불꽃은 빛의 갑옷도 삼키고, 용사의 목도 집어삼키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남은 건 용사의 목 없는 육신 뿐.
여의로 그의 신체를 확인사살했다.
목이 날아갔으니 죽은 거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용사의 몸을 난자하고 불태우자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휴…….”
영기발출…….
이거 진짜 신박하네.
뭐 이리 강해?
그래…… 이거 너무 강했는데.
SP 소모 혹시 어떤지 볼까……?
메시지 창도 몇몇 개가 떠 있었다.
[영기발출 - 성검 라이트세이버와 격돌했습니다.]
[성검 라이트세이버의 SP 가치가 상당합니다. 이를 소멸시키겠습니까?]
[사용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공격입니다. 자동 승인됩니다.]
[성검 라이트세이버와 충돌합니다. 스킬 레벨이 낮아 최대 2만까지 SP가 소모됩니다.]
[라이트세이버를 반파합니다. SP가 2만 소모됩니다.]
[라이트세이버를 소멸시킵니다. SP가 2만 소모됩니다.]
4만!
검 지우는데 4만?
메시지 창은 가관이었다.
영혼중개 하루치가 그냥 날아갔네?
[미네르바의 갑옷을 소멸시킵니다. SP가 2만 소모됩니다.]
[7번째 용사 ‘프레데릭’과 충돌합니다.]
[SP가 2만 소모됩니다.]
[SP가 2만 소모됩니다.]
[SP가 2만 소모됩니다.]
[사용자가 영기발출을 멈춥니다. 프레데릭의 영혼이 반파됩니다.]
10만…….
10만이 날아갔어.
미친 거 아니야?
암펠리안 잡을 땐 3200썼는데…….
미친…….
뭐야 이게??!!
[과다한 SP를 사용했습니다. 영기발출의 한계 SP를 조절해 주십시오.]
으아아아! 한계 SP 조절!?
그런 기능이 있으면 재깍재깍 보여 줬어야지!
[용사의 영혼이 불안전합니다. 영혼 약탈 효율이 극히 떨어집니다.]
[용사의 영혼이 불완전합니다. 능력 흡수 효율이 극히 떨어집니다.]
용사를 잡았지만 영기발출이 일을 다 해서 그럴까?
SP는 1000, 능력 흡수는 힘 1 민첩 1 마력 2가 전부였다.
A급, 반신을 잡았는데 겨우 이거라니…….
다행인 것은 레벨이 162로 올랐다는 점일까…….
레벨이라도 안 올랐으면 너무 충격이 클 뻔했다.
“와…… 너 뭐야 그거? 최강의 검기네. 그런 거 처음 봤어!”
내게 뛰어와서 흥분한 얼굴로 말을 쏟아 내는 드라키나.
용사를 단번에 제압한 검기에 관심이 쏠렸겠지만, 응답해 줄 시간이 없었다.
영기발출 한계 SP를 일단 1만으로 줄여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용사를 제압했으니 시간을 벌었어! 진짜 장하다! 카하하!”
내 등을 두들기며 신나게 웃어재끼는 아릭, 아니 드라키나.
지금까지 본 거 중에 가장 기뻐하는 모습이다.
“용사까지 잡았는데 성룡화 가능하겠지?”
여기서 이렇게 쓴 이상 무조건 드라키나 성룡까지 진행해야지.
“그래. 로만 제국의 7용사 중 하나가 죽었으니 적들도 일단 후퇴할 거야.좋았어 성룡이 되기만 해 봐!”
기세등등하게 소리치는 드라키나.
확실히 그녀 말 대로였다.
용사가 죽자 3일간 적이 쳐들어오질 않은 것이다.
그리고…….
[‘신성제국의 1차 침공을 저지하라.’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 했습니다.]
[SP 3만을 획득합니다.]
[용의 수호자 칭호를 획득합니다.]
[용의 힘이 개화합니다.]
메인 퀘스트 완료 메시지를 볼 수 있었다.
SP 3만은 누구 코에 붙이나 싶다만, 나머지 두 보상은 나름 특색이 있어 보였다.
좋아. 칭호도 바꾸고, 용의 힘도 한번 써 볼까?
스킬창을 불러 용의 힘을 확인해 보려고 할 때, 갑자기 귓가에 근엄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나는 죽었을 터인데. 그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