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80화>
80 드래곤 레어 방어전 (1)
“용의 힘!”
퀘스트 보상 중 하나의 이름을 외치며 달리는 오크.
아까 나한테 반항하던 아릭이란 놈인가 했는데 다른 오크였다.
달리기 시작하니 갑자기 피부가 붉은색으로 변하면서 온몸이 타오르기 시작한다.
저게 용의 힘인가?
“으으 저주받을 힘이다!”
“방패로 방어해라!”
내 공격을 막을 때랑은 다르게 동요하는 성기사들.
뭐야. 오크가 쓴 용의 힘이 내 공격보다 강하다고?
“크르르르!”
불타오르는 오크가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내며 신성방어막으로 돌진한다.
몸과 방어막이 부딪친다 싶었는데, 그대로 아무 막힘없이 통과하는 오크의 몸.
아니?
그냥 뚫네?
“크으으…….”
“선두가 막아야 해!”
방어막이 뚫리는 걸 보니 성기사들의 동요도 심해진다.
앞열이 일제히 방패를 들고 오크를 압박해 갔으나, 오크는 그를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 위로 점프했다.
그러더니 허공에서 손을 만세하듯이 쭉 뻗었다.
“드라키아님 만세!”
쾅!
오크의 몸이 완전히 타오르더니 커다랗게 폭발했다.
그와 동시에 시뻘건 화염이 성기사 부대를 강타했다.
“크아아악!”
“빨리 힐을…… 힐을……!”
“저주받을 힘이로다……!”
보호막 안에서 터진 폭발에 온몸이 불타올라 뒹구는 성기사들.
신성보호막도 눈에 띄게 약해졌다.
“불사조. 집중강화 해 줄 테니 쓸어버려!”
[좋아!]
불사조에게 집중강화를 하자 불구덩이 속에 화염의 파도가 그 위를 강타했다.
갑옷조차 타오르는 불지옥.
그 지옥 안에 번개를 쏘면서 나는 의문이 들었다.
여기 레어의 용 이름은 드라키난데.
저 오크는 왜 드라키아 만세를 한 거지?
드라키아는 케브리안의 용신인데 말이야.
실수해서 그런 거 같지는 않고…….
이름이 비슷한 데 뭔가 혈연 관계라도 있나?
[죽어라!]
아까 공격이 다 튕겨 나가서 짜증 났던 건지 불사조가 신나게 화염의 날갯짓을 계속 쏴댔다.
그러자 마력이 쭉쭉 빠져나가면서, 어느새 드래곤 하트가 열렸다.
불사조가 마력 소모는 제일 탑이네.
보조 배터리 아주 좋아.
“용의 마력이 느껴진다.”
“응? 오크가 별걸 다 아네.”
“누구의 힘인가?”
“내 아는 용한테 받은 거다.”
“누구냐고 물었다!”
아릭이 갑자기 나에게 화를 낸다.
미쳤나 이놈?
내 옆까지 달려와서 팔을 붙잡은 아릭.
뿌리칠까해서 옆을 보니 오크의 눈빛이 그리 간절할 수가 없었다.
이 녀석 오크 맞아?
“너 오크 아니지?”
“나…… 나 오크다!”
그러더니 갑자기 시선을 피하는 오크.
이 녀석 더 수상하네?
“근데 왜 알려고 그래?”
“꼭 알아야 한다. 주인을 위해서!”
“흠…… 일단 쟤네들 좀 조지고.”
보호막 깨지고 우왕좌왕할 때 빨리 없애놔야지.
내가 아릭의 팔을 뿌리치자 이번엔 날 제지하지 않았다.
“커져라 여의.”
여의를 확대한 후 뇌신까지 끼얹었다.
전격에 감싸인 여의가 그대로 적진을 꿰뚫었다.
콰과과광!
시커멓게 타오르고, 몸이 반으로 갈라지는 성기사들.
상반신만 남은 성기사가 애처롭게 기도를 올린다.
“미네르바……이시여…….”
그거 사실은 니네 신 아닐 텐데.
살아 있는 성기사들을 모조리 없애고 나니 경험치가 60% 정도 올라 있었다.
지금 성기사 천 명 없앤 건데 이거밖에 안 올랐어?
레벨 업하기 힘드네.
내가 성기사를 다 죽이자 또 쪼르르 달려오는 오크 아릭.
침 질질 흘리며 달려와서는 팔을 잡으려 하는데 징그러워죽겠다.
손을 휙 빼자 아릭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다 죽었으니 말해 줘라.”
“생각해 봤는데, 오크한텐 말해 줄 수 없어.”
“으으……왜냐!”
“너같이 수상한 오크한테 그걸 알려 주겠냐? 저 오크가 용의 힘 쓴 거도 이상하고 너도 오크답지 않은 것도 수상하고 이해 안 되는 거투성이다. 니 정체나 좋은 정보를 알려 주면 나도 이야기해 주지.”
그러자 크르르 거리면서 말이 없는 오크.
나머지 몬스터를 보니 죄다 아릭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뭐 꿀리는 쪽이 대답하겠지.
나야 뭐 사망 페널티도 없고, 답 안 나오면 세 번 죽고 처음부터 시작하면 그만이니깐.
성기사를 그렇게 학살해도 경험치를 별로 안주긴 했지만 시간으로만 따지면 나름 쏠쏠한 편이다.
하루도 안 돼서 경험치 60% 채운 거니까.
나는 경험치 보고 있고, 아릭은 날 가만히 쳐다보며 크르르 거리며 묘한 침묵이 흐르던 상황.
난 내 이마로 다시 들어와 있던 불사조에게 말을 걸었다.
“불사조. 쟤들 추격하러 앞에 갔을 때 뭐 특이한 거 없었냐?”
[그냥 커다란 동굴이 계속되더군. 근데 성기사 숫자가 좀 심하게 많았다. 거기에 동굴 밖에는 어마어마한 신성력이 느껴졌어. 저들의 신성력은 하찮게 보일 정도로.]
성기사 천 명의 신성력 보호막도 뚫지 못했는데 밖에는 더 심하다고?
“그 정도면 그냥 밀고 오면 끝 아닌가? 뭐 이렇게 찔끔찔끔 쳐들어온대?”
“드래곤을 깨우지 않으려고 하는 거다.”
침묵하고 있던 아릭이 말문을 열었다.
“드래곤을 깨우지 않으려고?”
“해츨링에서 성룡으로 진화중인 드래곤은 진화에만 집중한다. 그래서 웬만한 자극에는 깨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 강력한 적이 닥친다면 어쩔 수 없이 깨어나게 되지.”
“깨어나도 쟤들이 저렇게 전력을 끌고 오면 지는 거 아냐? 그냥 들이치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저들은 만에 하나 드래곤이 도망갈까 봐 염려되어 조심하는 것 같다. 그리고…… 적의 움직임을 보니 드라키나님을 생포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니 더욱 조심하는 거겠지.”
이제 오크 행세는 벗어던지는 건가.
유창하게 말을 하는 아릭.
생포한다는 말에 미션 내용이 떠올랐다.
‘신성제국의 용사에게 붙잡혀서 산채로 화형당했다.’고 했지.
“그럼 적은 그렇다 치고, 너는 뭐하냐? 가서 용 빨리 깨워봐. 튀어야 하는 상황 아니야?”
“드라키나님은 가장 중요한 순간에 돌입하셨다. 앞으로 2주간은 힘을 최대한 아끼셔야 한다…… 거기에 깨어나신다 한들 해츨링의 힘으로는 로만 제국의 신성기사단을 이길 수 없다. 빠져나가기도 힘들 것이다.”
“해츨링에서 용 되면 빠져나갈 수는 있고?”
“지금보다는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말끝을 흐리는 아릭.
뭐 딱 봐도 답이 없어 보이는 상황이군.
2주라는 시간이 주어지긴 했는데, 아마 그동안 성기사들이 엄청 쳐들어오겠지.
흠……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뒷문을 바라보았다.
굳게 닫혀 있는 거대한 철문.
용 얼굴은 한 번도 본 적 없고, 딱히 의리가 있는 사이도 아니지.
굳이 처음인데 SP 들여가며 능력치 올려서 지켜 줄 상대는 아니다.
이번에는 스탯 포인트 안 찍고 이 능력 그대로 간다.
그래서 어디까지 가나보고, 중간에 죽으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거다.
성기사 학살하고 나니까 힘과 민첩이 2씩 올랐는데, 이렇게 능력흡수로 받는 걸 잘 활용해야지.
영혼 밀수를 얻기 위해서라도 SP를 한 푼이라도 더 아껴야 해.
사망 페널티가 없는 게 상당히 큰 이점이네.
“알겠다. 일단 내가 막고는 있을 테니 넌 니네가 알아서 해.”
“크르르…… 알겠다.”
“용의 힘이 궁금하면 나한테 정보를 주고. 오케이?”
그러자 고개를 휙 돌리는 아릭.
아오 저 싸가지 봐라.
내가 먼저 말해 주나 봐라.
목마른 놈이 우물 파는 거긴 한데 막상 생각해 보니 나도 목마른 놈이긴 하다.
궁금한 점이 몇 개 있거든.
일단 왜 오크가 드라키아를 외치며 죽었을까가 의문이다.
드라키아는 케브리안에서 사라진 용신인데 말이지.
여기도 한 발 걸치고 있었나?
근데 성기사들이 다들 미네르바 거리는 거처럼, 이쪽 중립진영도 드라키아는 잊힌 신일 텐데.
요상해.
그냥 드라키아-드라키나 헷갈린 건가?
거기에 용의 힘은 뭔 수로 신성 방어막을 뚫은 거지?
내 뇌신도 못 뚫던 걸 말이지.
아무리 오크가 자살돌격을 했다지만…… 흠.
이 힘도 궁금하고.
그리고 이 오크의 정체.
아는 것도 많고 신성력도 파악하는 걸 보니 일반 오크는 아닌 거 같은데.
이 놈 혹시 드래곤이 변신한 거 아냐?
으음…… 하지만 그러기에는 녀석이 한 말이 걸린다.
드라키나가 해츨링에서 드래곤으로 진화중이라서 간섭을 못한다고 했지.
흠.
뭐 일단 버텨보자.
이런 건 먼저 물어보면 손해잖아.
진득하니 기다려 봐야지.
“미네르바께서…… 신의 징벌을 내릴 것이다.”
푹 쓰러져 죽는 성기사.
그 시체를 불태우자 마력이 다시 한번 빠져나갔다.
“징글맞구먼.”
10일 동안 열 번의 침공이 있었다.
천 명보다는 숫자가 적어졌지만, 훨씬 강한 성기사들과 사제.
사제가 뒤에서 축복을 내리고 빛나는 무기와 방패로 달려오는 성기사들은 상당히 강력했다.
SP를 최대한 아껴서 영혼 중개 레벨을 올리기로 마음먹은 만큼, 죽을 뻔한 상황에서도 영기발출은 쓰지 않았다.
그러니 몇 번이고 위험했는데, 그때마다 몬스터들이 한 번씩 자폭해 주는 바람에 살았다.
이번엔 고블린이 달려서 보호막을 부숴줬지.
“크르르르…….”
힘이 빠진 듯 자리에 철푸덕 주저앉는 아릭.
저 놈은 한 것도 없는데 전투가 끝나면 맨 먼저 뻗었다.
녀석을 힐긋 보다가 레벨을 확인했다.
146.
10일간의 전투로 레벨을 2 올렸다.
지구 시간으로 따지면 하루가 지난 건데 2 올렸으니 괜찮네.
지금 지구로 귀환이 가능하긴 했지만, 가도 딱히 할 일도 없고.
2주 지키자고 기한이 정해졌으니 그때까지는 있어 볼 생각이었다.
“신의 사도여.”
앉아서 영혼 중개창을 구경하고 있자니 아릭이 걸어왔다.
굳은 결심을 한 얼굴.
매일 흘리던 침도 흘리지 않고 있다.
“왜?”
“왜 용의 힘을 지니고 있는지 말해 달라.”
“너 못 믿는다니깐.”
“내가 네 목숨을 얼마나 구해 줬는데!”
“딱히 구해 달라고도 안 했는데…… 그리고 그건 자폭한 애들이 구해 준거지 니가 구해 준 게 아니잖니.”
“그게 다 내가 힘을 쓴 거다!”
“아 그래? 자세히 이야기해 봐.”
그렇게 반문하자 입을 꾹 닫는 오크.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고 있다.
“이제 4일만 있으면 드라키나는 깨어나겠지만, 그동안 드라키나를 지킬 남은 자폭 부대는 별로 없는 거 같은데. 이렇게 대답 안 해 주면 싸우기 그렇다고.”
드라키아 만세 하면서 터지던 몬스터들.
이제 숫자가 거의 없었다.
아릭을 제외하곤 오크 둘에 고블린 하나가 전부.
“크르르…….”
“지금까지 지킨 게 아깝지 않냐? 그냥 먼저 이야기해. 나도 말해 줄게. 전력을 다해 도와 주고.”
“뭐가 궁금하나?”
흠.
이 놈 정체도 궁금하긴 하지만, 드라키아랑 용의 힘이 먼저다.
“왜 자폭할 때 드라키아님 만세를 외치지?”
“아니……! 드라키아를 아는가?”
“어. 용신이잖아?”
“이럴 수가…… 그래. 그렇지?”
갑자기 내 어깨를 부여잡는 아릭.
헤파이스토스의 갑옷이 강하게 짓눌린다.
오크 놈이 힘도 세네.
“그래…… 드라키아께서 용신 맞으셨어! 왜 다들 드라키아님이 누구냐고 반문하는 거야!”
“누가 그랬는데?”
“다른 드래곤께서도 그랬고 몬스터들도 그랬다. 얼마나 답답하던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던 아릭은 앉은 상태로 말했다.
“자폭할 때 왜 드라키아님 만세를 외치냐고 했는가? ‘용의 힘’이 바로 용신의 권능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 행성에선 용신의 적자이신 드라키나님만이 부여할 수 있지.”
“오호. 그래. 근데 그게 보호막은 왜 잘 깨는 건데?”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이판사판으로 보내봤는데 잘 부수더군…… 아니 그냥 통과한다고 해야 하나…….”
그건 잘 모르겠다는 듯이 말을 흐리는 아릭.
에이 쓸모없는 놈.
어쨌든 궁금증은 조금 풀렸네.
드라키아는 다른 중립 진영 개체들은 다 잊고 있는데, 드라키나네는 자식이라서 기억하고 있는 거 같고.
용의 힘은 이놈들도 모른다 이거지.
“그럼 나도 이렇게 말해 줬으니, 네 마력도 설명해라!”
“흠. 그래…….”
한 번 더 뻗대볼까 했는데 이젠 눈물마저 그렁그렁한 오크의 눈이 불쌍해 보였다.
뭐 대답할 거라 해 봤자.
아카르디안의 드래곤 하트에서 나온 마력인 거잖아.
그래서 그냥 대답해 줄려는 찰나…….
쿵. 쿵. 쿵. 쿵.
북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와 함께 동굴 저편에서 거대한 신성력이 피부를 찔렀다.
와. 엄청난데?
이 엄청난 신성력을 느꼈는지 몸을 부르르 떠는 아릭.
그는 두려움에 빠진 얼굴로 동굴 앞을 응시했다.
“크르르. 용사다…….”
“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