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 2개-77화 (77/240)

<내 상태창 2개 - 77화>

77 나만 뒤바뀐 과거

헬기에서 로키의 모습이 잠시 보였다 싶은 순간 장소가 변했다.

노량진 원룸.

아버지가 실종된 이후 집을 나와 잡았던 원룸.

그곳에 지금 내가 서 있었다.

“뭐지?”

당황스럽다.

난 분명히 헬기 안에 있었는데.

갑자기 옛날에 처분한 자취방이라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래.

내가 예전에 쓰던 자취방.

책상 위에 충전중인 핸드폰도 예전에 쓰던 모델이다.

난 급히 가서 핸드폰을 켜보았다.

2020년 6월 24일.

년과 월, 기억에 남는 날짜다.

2020년 6월 1일이 처음으로 몬스터가 나온 때였으니까.

내가 2021년 6월에 각성했으니 거의 이년 전이다.

시간의 신, 과거의 신 어쩌구 하더니 설마 과거로 돌아온 건가?

“통신 헤르메스.”

[상대방이 통신을 받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통신 로키.”

[상대방이 통신을 받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분명히 시간을 되돌렸을 때 로키도 봤는데 통신이 안 된다.

으음…… 무슨 상황이지?

상태창 능력 초기화 된 건 아니겠지?

“상태창.”

상태창을 보니 레벨은 그대로 144.

이것저것 스킬을 둘러보니 다 그대로였다.

상태창에 수호신으로 있던 전령의 신 헤르메스, 사기의 신 로키 칸 옆에 (통신불가) 라고 괄호 쳐진 것만 빼면.

SP도 400만 그대로였다.

헤임달의 귀환을 레벨 4까지 올리고, 영혼 중개를 6레벨까지 올렸음에도 막대하게 쌓여 있는 SP.

다만 영혼 중개창에 중립 진영 신들과 올림푸스 신들은 그대로 있었는데, 혼돈계열 신들이 사라져 있었다.

그리하여 중개가능자리는 6자리.

“영혼 중개 스킬 레벨업 하려면 SP가 1250만이 필요하군. 헤임달의 귀환은 120만…….”

헤임달의 귀환을 하나 더 올리면 행성간에도 귀환이 가능해진다.

그러자 케브리안 행성의 대신 엘프리안이 생각났다.

[그것은 제 기억이 담긴 정수. 그것이 있으면 김지호 각성자가 어디에 있건 단 한 번 이 공간으로 오실 수 있습니다.]

그녀는 혹시 이 상황을 예측한 걸까?

헤임달의 귀환을 올리면 그녀에게 갔다올 수 있다.

하지만 일단 상황 파악을 좀 더 해 보자 싶어 스마트 폰으로 인터넷을 보았다.

인터넷은 난리도 아니었다.

[꿈을 꾼 것은 아닐까? 그러기엔 능력이 유지된 각성자들.]

[민원 폭주…… 정부, 공식 입장을 발표하기 전까지 침착을 당부해.]

[죽은 사람도 돌아왔다? 죽은 기억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

[주식 시장 서킷 브레이커 발동. 정부, 일주일 간 주식 거래 중지 검토 중.]

나만 과거로 온 게 아닌가?

헤드라인이 다 이 모양이다.

어떻게 보면 기사가 올라오는 게 더 대단한데……?

지금 나와 같은 시간에 귀환했으면 영문을 몰라 할 텐데.

어쩌면…… 나보다 더 일찍 회귀한 걸까?

신들과 통신이 안 되니 의문만 늘어나는군.

기사들에는 리플은 수만 개가 달려 있었다.

[미래에서 왔습니다. 세상은 멸망합니다.]

[┕222222]

[┕333333]

[아냐, 망하진 않았어. 그나마 한국은 안전했음. 왜였지?]

[나 분명히 죽었는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살았어살았어살았어.]

[나만 미래에서 돌아온 게 아닌가?]

[능력이 유지되어 있어!]

[아싸 코인 들어가기 전으로 돌아왔다! 돈 굳었다!]

[┕ 아 망했네. 코인 대폭락 중…… 코인 시장은 왜 계속 거래하냐!! ㅅㅂ!!]

[오딘님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딘?

갑자기 왜 오딘이야?

오딘은 아스가르드의 신일 텐데?

갑자기 등줄기가 서늘했다.

짚히는 바가 있어 신앙과 진영을 검색해 보았다.

절대신의 자리를 차지하던 제우스.

그 자리에 오딘이 있었다.

이 외에도 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올림푸스의 신들은 다 신화가 되고 아스가르드의 신들이 전면을 차지했다.

“하. 이제 교회에선 오딘 신을 믿는 건가. 그럼 진영도…….”

계속 검색을 해 보았다.

인터넷이 트래픽이 넘치는지 속도가 느렸지만 그래도 끈질기게 기다리니 검색이 가능했다.

지구인 진영은 중립 진영이었다.

좀 더 검색하니 도우미도 바뀌어 있었다.

[든든한 근육의 우르크]

[용인, 기자들에게 한 번만 더 사진을 찍으면 불태우겠다고 협박.]

[발키리, 파격적인 노출을 시도하다]

이런 며칠 전 기사가 있었다.

공략집이 갑자기 떠올랐다.

중립 진영에서 서술된 케브리안 공략집.

왜 ‘그’ 김지호는 중립 진영에 있나 의아해 했는데…….

내가 지금 그런 세계에 와 있었다.

과거로 돌아오니 신들도 달라지는 건가?

인터넷을 둘러보니 사람들은 일단 살아난 것에 대해 기뻐하고 있었다.

뉴스 기사들을 보면 여기저기서 폭동이 일어나기도 하고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일단 대부분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기쁨이었다.

“하아아…….”

갑자기 힘이 쭉 빠진다.

요 반년간 너무 힘을 뺐다.

내가 아무리 혼자서 발버둥 쳐도 결국 세계는 멸망해 가고 있다는 사실이 절망적이었지.

인류가 무너진 게 겨우 반 년.

혼자서 지탱하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짐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평범하게 인터넷이 되고 아직 평화로운 세계인 게 참 반가웠다.

이런 평화도 2년이면 끝이 나는 건가 싶지만…….

일단 지금은 아무 생각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서 기사를 둘러보고 있었다.

근데 보다 보니 뭔가 허전했다.

“내 기사는 없네?”

A급 던전이 나오고 한참 바쁠 시기에 모든 언론에서는 내 행보가 1순위로 다루어졌다.

포탈 사이트 중앙에 턱하니 김지호 헌터의 위치와 상황판이 전면배너광고를 대신해 나와있었지.

그거 누르면 응원 메시지 보내기도 있었고.

비행기 안에서 그거 보는 낙에 버텼는데 지금은 없네.

그래도 기사 하나는 있을 법 한데 말이야.

좁아터진 싱글 베드에서 뒹굴면서 기사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전화가 왔다.

[이진성]

[야!]

“어. 진성아.”

[왜 어제 헌터 협회에 오지 않았어?]

“잉? 어제?”

[어. C급 헌터들 다 모이라고 했잖아.]

“C급 헌터?”

[너 설마…… 기억 안 나냐? C급 헌터였던 게?]

이 놈 뭔 소리를 하는 거야?

C급이라니.

“C급 헌터라니 무슨 소리야.”

[이런 경우는 없었는데? 너 빨리 상태창 열어 봐!]

“상태창.”

다급하게 소리치는 이진성.

녀석의 박력에 전화기 잡은 상태에서 상태창을 외쳤다.

그러자 중립-질서 순으로 뜨는 상태창.

레벨은 144다.

[떠?]

“어. 레벨 144다.”

[……야이 씨발 새끼야 이런 중요한 시기에 쌩구라를 치고 있어! 아오 돌았나 이시키가. 니 레벨 61이라고 해 놓고는 어디서 말도 안 되는 뻥을 치고 있어!]

그러면서 이런 중요한 시기에 그딴 뻥은 치지 말라고 쌍욕을 곁들이며 말하는 이진성.

진실을 말했음에도 욕먹으니 어이가 없었다.

나도 같이 쌍욕을 할까 하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포탈 사이트의 장면.

내 기사가 하나도 없었지.

“야 헌터 중 B급 없었냐?”

[B급 같은 소리 하네. 1절만 해라 재미없다.]

“하이고. 시발. 그래. 협회가선 뭐했냐?”

[그냥 다시 등록 신고했지. 원래 협회 건물이 아니라 그 옆에 빌딩 1층에서 등록하고 있어. 우리나라 협회 건물이 원래 2020년 11월에 완공된 거라네?]

그러면서 발키리를 다시 보니 이뻤다고 말하는 이진성.

아 나 이거 또 뭔 일이래?

일단 알았다고 전화를 끊으며 정보를 더 수집해 보았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 묘하게 바뀌어 있었다.

인류는 부서진 세계를 단 하나도 클리어 하지 못했다.

A,B급 던전이 나와 도저히 이를 커버하지 못하여 멸망의 위기에 몰렸으나, 절대신 오딘의 자비로 모든 능력을 유지한 채 시간을 되돌릴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진짜 없잖아?

그 개고생 한 게 사라졌네?

6개월 동안 비행기 타고 쉴 시간도 없이 몬스터랑 싸우던 그 세월이 그냥 싹 다 사라졌다.

사람들의 기대와 열망, 자기 나라를 살려 달라는 애원. 늦게 오셨다는 원망 나란 존재에 대한 두려움.

복합적인 감정이 가득한 사람들의 시선이 생각났다.

그런 게 모두 없던 일이 되는 거야?

집을 둘러보았다.

좁아터진 원룸.

허름한 침대.

최신 게임도 잘 안돌아가는 구린 컴퓨터.

내 원래 저택보다 백만 배는 안 좋은 집이다.

근데 마음이 편했다.

홀가분했다.

두 어깨에 무겁게 누르고 있던 짐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인류 최고의 헌터라 하면서 사람들이 떠받들 때.

처음에는 좋았지만 점점 그 짐이 버거워졌다.

전 세계가 B급 던전도 클리어하지 못하는데…… A급까지 나왔으니.

다행히 이번에는…….

모두가 그대로 능력을 유지한 채 돌아왔으면 지구인 중 B급은 나오겠지?

저번보다는 훨씬 희망이 있을 거다.

좀 쉴까.

던전 포탈이 열린 초창기는 F급 던전 위주로 나왔다고 알고 있다.

F급이면 솔직히 군인, 아니 일반인도 커버할 수 있는 상황.

좀 쉬어도 괜찮은 때다.

어차피 신들과는 통신도 안 되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뭐…… 엘프리안 밖에 없군…….

눈을 감았다.

오랜만에 잠을 청했다.

수많은 시체가 눈에 선했다.

좀비가 된 호주인이 기억났다.

날 가로막으니 싹 다 베어 버리고 불태웠던 것도.

좀비일 때 기억도 있으면, 나한테 죽은 것도 기억나겠군…….

그럼 나란 존재가 없어진 게 낫나?

자꾸 딴생각이 난다.

피곤한데 잠이 안 온다.

무한정력을 끄자.

끄자마자 온몸이 축 늘어진다.

피로가 몰려오는 게 잘 잘 수 있을 거 같다.

하지만 잠이 들려 하자 용인에게 갈기갈기 찢겨 먹이가 된 사람들이 기억났다.

인터넷 기사에선 PTSD로 도저히 못 싸우겠다고 정신과 약을 달고 사는 사람이 급증했다고 했지.

그리고 D-8일 때.

A급 던전이 부산과 뉴욕에 생겼을 때 부산을 택했던 것도 기억났다.

뉴욕시민들은 날 원망했겠지.

젠장.

졸린데 잠이 안 온다.

계속 뒤척였지만 마지막 한순간이 오지 않았다.

“하아아…… 쉬고 싶은데…….”

6개월간 하도 일만 하다 보니까 쉬는 방법을 잊었나.

그래.

일단 엘프리안에게 갔다와 보자.

할 일이 있으니 잠을 못자는 걸 거야.

이 일을 끝내면 잘 수 있겠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일단 스킬 업그레이드.”

헤임달의 귀환 스킬에 120만을 투자했다.

레벨 5가 되며 행성 간도 점프해서 귀환이 가능해졌다.

귀환 장소가 다 리셋되어 일단 여기로 지정했다.

“인벤토리.”

인벤토리 안의 드래곤 하트에서 엘프리안이 준 보석을 꺼냈다.

만지자마자 메시지창이 뜬다.

[엘프리안의 정수를 사용하겠습니까?]

네를 누르자 보석에서 빛이 나더니 내 몸을 감쌌다.

잠시 시야가 어두워지나 싶더니 다시 눈에 나타난 장소는 흙벽으로 사방이 막혀 있는 공간.

거의 내 원룸만큼 좁고, 아무것도 없다.

[당신은……누구죠? 왜 저의 기운이 느껴지죠……?]

“엘프리안님. 당신이 저에게 정수를 줬습니다.”

[전 당신을 처음 봅니다.]

“음…… 기억이 담긴 정수라고 하던데. 다시 흡수 못하세요?”

내가 엘프리안의 정수를 보여 주자 땅에서 나무뿌리가 올라왔다.

나무뿌리에 올려놓으니 스르르 사라지는 정수.

잠시 침묵이 감돌더니 바닥에서 사지가 잘린 흙인형이 올라왔다.

엘프리안이었다.

[정말 과거로 돌아오셨군요…… 안타깝게도 시점이 제가 패배한 이후로군요……]

“이렇게 될 줄 예상하셨습니까?”

[시간을 다루는 신들의 파편이 이곳에 묻혀 있는 걸 보고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미래세계의 제가 당신에게 정수를 준 것 같군요.]

“음…….”

[당신의 세계는 변한 게 없나요?]

신이 바뀌고 사람들이 나를 잊었다고 이야기해 주니 흙으로 이루어진 엘프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올림푸스와 아스가르드가 손을 잡았군요. 한 번씩 번갈아 가면서 지구의 신앙의 대상이 되고, 이를 통해 SP를 얻고 있네요. 당신이 잊힌 건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신앙의 대상이 되면 SP를 많이 얻습니까?”

[예. 특히 지구처럼 인구가 많으면 그렇죠.]

“이들이 과거로 돌아온 건 한 번이 아닌 거 같죠?”

[계속 서로 돌아가면서 SP를 얻었을 겁니다.]

헤르메스가 대수롭지 않게 말하던 게 생각났다.

그냥 시간을 돌릴 수 있으니까 그렇게 나온 건가?

뭐 지구 망해갈 거 같으면 과거로 돌아가지.

자 아스가르드 이번엔 니네 차례야.

오케이 이번엔 우리가 신 할게.

이런 느낌이다.

어쩐지 별로 걱정을 안 하더라.

너무 여유로웠어.

이런 망할……!

“이놈들은 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SP 때문이죠. 혼돈을 못 이길 거라 판단하고 계속 과거로 돌리는 거 같아요. 이길 때까지 SP를 확보하려고요.]

세이브 로드가 계속 가능하다 이거지?

거기에 그동안 올린 SP는 들고 갈 수 있을 테니 이런 짓거리를 하는 거고.

그럼 계속 이 지랄이 반복된다는 거야……?

급 짜증이 올라왔다.

그러는 한편 의문도 들었다.

그럴 거면 굳이 지구인 전체를 깡그리 회귀시킬 필요가 있나?

“그럼 지구인 모두의 시간을 왜 되돌렸을까요? 측은지심이 있을 놈들이 아닌데.”

[제 생각에 변수는 당신밖에 없습니다. 신들이 시간을 되돌리며 무슨 말을 하지는 않았나요?]

아. 그러고 보니 헤르메스가 영혼 중개자의 효율이 좋다고, 지구인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겠다고 했지.

이를 말하자 엘프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혼 중개자를 더 얻고 싶어 하는 거 같습니다.]

“영혼 중개자를요?”

[네. 수십억이 넘는 지구인 전체를 회귀시키다니, 아무리 인간이 보잘것없다지만 엄청난 낭비입니다. 그럼에도 그리했다는 건 영혼 중개자의 효율이 그만큼 뛰어나단 뜻이죠.]

“흠…….”

[지구인을 더 육성해서 영혼 중개자를 찾는 건지 의도는 정확히 모르겠군요. 일단 뭐가 됐건 당신에겐 지금이 기회겠죠. 일단은 성장에 매진하십시오. 당신이 처했던 상황, A급이었다면 디아나를 소환해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말에 복잡했던 머릿 속을 추슬렀다.

그래.

A급이었다면 디아나를 소환할 수 있었겠고, 두 명이 뛰어다녔다면 던전 포탈을 막기 수월했겠지.

일단 레벨 200 찍는 게 먼저다.

헤르메스와 로키가 통신이 안 되는 게 수상하고, 사람들이 나를 잊은 것도 이상하다.

하지만 일단은 먼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그리고 한 가지 제가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만.]

“제안요?”

[네. 저한테도 혹시 영혼중개가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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