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69화>
69 지구로 귀환, 사라진 도우미
엘프리안에게 정수를 받자마자 나무뿌리가 나를 다시 감싸더니 원래 있던 장소로 되돌려보내 주었다.
디아나와 있던 침실.
과거로 돌아와서 그런지 찢어졌던 침대보와 이불도 상태가 멀쩡하다.
원래는 이렇게 깨끗했군.
주위를 잠시 둘러보고 있자니, 작은 먼지가 눈앞에서 떠다닌다.
그러다가 잠시 멈추는 먼지.
먼지뿐만이 아니라 이 공간 전체가 멈춘 상태다.
내 몸도 손도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멈춘 지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먼지가 빠르게 땅으로 떨어진다.
갑자기 비디오를 100배속 넘게 돌린 듯 휘리리릭 지나가는 풍경.
디아나도 나왔다가 나도 나왔다가 한다.
침대가 찢어지고 이불도 찢어지는 게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둘은 내 존재를 모른 채 그냥 할 짓을 하고 있다.
아니, 디아나도 아주 적극적인데?
마치 동떨어진 관찰자가 돼서 비디오 보는 느낌인데, 너무 빨리 재생되니까 짜증 난다.
그러더니 나와 디아나가 나무뿌리에 엉켜 사라지는 광경을 마지막으로 재생이 끝을 맺었다.
아. 이렇게 과거에서 현재로 다시 돌아온 건가?
[시간이 되돌아오면 귀환하세요.]
엘프리안이 말하길, 디아나의 타임슬립은 불완전해 다시 원래의 시간대로 돌아온다고 했다.
그게 이런 말이었군.
나는 받은 아이템이 드래곤 하트에 제대로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한 후, 바로 지구 귀환을 했다.
“오. 왔어?”
귀환하자마자 나에게 다가오는 이진성.
얼굴이 벌게진 채 드워프 맥주잔을 들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협회 최상층은 드워프 맥주잔을 든 사람들로 가득했다.
대부분, 아니 100% 다 각성자네.
근데 다들 표정이 기뻐하기보다는 좀 이상했다.
대부분이 놀라고 당황스러운 얼굴.
“잉. 뭔일 있었냐?”
“어…… 갑자기 엘프 드워프들이 사라지대?”
“엥?”
“원래는 있었거든? 드워프 아재들이 가져온 맥주 맛있게 먹고 있었는데. 내가 내 영웅담을 이야기하고 있자니 갑자기 하나둘 씩 빛으로 사라졌어.”
“사라졌다고? 아니, 왜?”
“몰라. 그래서 다들 당황스러워하는 중이야. 연락 돌려보니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래.”
흠. 왜 갑자기 사라졌지?
케브리안을 깨서 사라진 거면 우리가 귀환할 때 사라졌어야 할 텐데.
설마 디아나 때문인가?
아니, 그럼 라이아나 정도는 사라져도 나머지 엘프 드워프는 남아 있을 텐데.
“뭔 영문인지를 모르겠네.”
“그래서 다들 승전에 기뻐하고 있다가 좀 뒤숭숭해졌어.”
“세계가 완전히 복구되면서 사라지는 건가? 그럼 앞으로 고위급 던전 생기는 건 어떻게 하지?”
“그러게. 뭐 그래도 지구도 C등급도 많아졌고 너도 B등급이니 우리끼리 막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거는 그렇지.
그래도 도우미들이 한 일이 던전 철거만 있는 게 아니었는데.
마나석도 사주고 마법 아이템을 제작, 판매도 해 왔단 말이지.
일반 마법사들은 사실 공격마법 사용하기 바쁠 뿐, 마법의 원리나 이런 건 모른다.
나도 솔직히 모르긴…….
아. 마법총서가 이해시켜 준 게 있었지?
“야. 잠깐만.”
마법총서 스킬을 통해 마법 아이템 제작에 관한 내용을 검색해 봤다.
아쉽게도 제작은 없네.
“어쨌든 분위기가 좀 묘한 상태야.”
“그래. 나 한 모금 마시자.”
녀석의 맥주를 뺏어들고 벌컥벌컥 삼켰다.
하. 살 거 같다.
뭔가 개운한 상태에서 한 번 더 시원해지니 기분이 좋군.
엘프 도우미는 좀 신경 쓰이지만…….
“아. 드워프 사라지면 이게 마지막 드워프제 맥준데. 내놔 임마.”
“어 그러네? 아쉽다.”
한 모금 더 마시고 녀석에게 잔을 돌려주었다. 툴툴거리더니 단번에 맥주를 원샷하는 이진성.
“야. 니네 집 가서 한잔 더 하자. 어차피 하루 이틀 만에 해결될 문제도 아닌 거 같고, 협회에서 알아서 하겠지.”
“그러자. 고고.”
이진성과 귀가길에 오르기 위해 사람들을 헤치고 지나가려 하니, ‘김지호님이 왔다.’ ‘대장님이 오셨다.’ 하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김지호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C등급이 될 수 있었습니다.”
사도 지휘자 때문에 C등급이 된 사람들은 앞 다투어 감사인사를 했고.
“저희 길드에서 저번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것,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저희 부 길드 마스터가 뭘 모르고…… 아이고 제발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나한테 죽었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털썩 주저앉으며 무릎 꿇고 사과하고 있었다.
막상 싸우는 거 보니 괜히 주도권 싸움 했다 싶었겠지.
케브리안 전투도 다 끝났는데 그냥 봐주기로 했다.
올림푸스에서 하도 뒤통수를 맞아서 그런지 얘들 한 짓은 그냥 귀여워 보인다.
“아니, 뭐 다 끝났는데 목숨을 뺏어요. 괜찮습니다. 신경 안 씁니다. 일어나세요.”
쭈뼛쭈뼛 일어나는 사람들.
일어나자마자 나에게 90도로 폴더 인사를 한다.
“살려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뭐 죽일 줄 알았나.
그냥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 사람들을 지나친다.
내가 지나가자 모세가 강을 가르듯 갈라지는 사람들.
다들 고맙다 대단하다 덕분에 살았다는 둥 덕담을 하며 과하게 인사를 했다.
“친구야. 내가 같이 가도 되는 거냐? 슈퍼스타 납셨는데?”
“그래. 오늘 슈퍼스타 술 셔틀이나 해라.”
“킬킬. 그래 내가 오늘 사마.”
킬킬거리니까 갑자기 하데스가 떠올라서 표정이 찌푸려졌다.
“야. 킬킬이라고 웃지 마.”
“엥? 왜.”
“사령대제 새끼가 그렇게 웃었거든.”
“킬킬이라고? 뭔 최종보스가 그렇게 무게감이 없냐? 야 근데 너 뭐했는데 걔가 그렇게 도망갔어?”
“나도 모르겠어. 신스킬을 쓰니까 갑자기 튀네.”
“뭐 초필살기라도 되냐?”
“흠…… 나름 초필살기긴 한데.”
영기발출 보자마자 튀었지.
헤라클레스를 언급하면서.
그럼 헤라클레스도 이걸 쓴다는 거고, 그도 영혼 약탈자인가?
에이. 뭐 영혼 약탈자면 어때.
헤라클레스를 내가 앞으로 볼일 있겠어?
“뭔가 의문이 안 풀리긴 한다. 이럴 땐 술이지.”
“그래. 오늘은 일단 마시자. 승전 축하는 해야지 흐흐흐.”
“이런 날 집에서 마시는 게 좀 아쉽긴 하네.”
“오 그럼 좋은 데로 갈까?”
별생각이 없는 나와는 달리, 음흉하게 웃으면서 핸드폰을 꺼내 인터넷을 여는 이진성.
뭘 열심히 찾다가 얼굴이 굳어지며 고개를 흔들었다.
“야. 안 되겠다. 너 너무 유명해져서 그런 술집 갔다간 언론에 나오겠다. 일반 술집은 사람 짱 몰릴 테고.”
“유명해졌다고?”
녀석의 핸드폰을 보니 케브리안 클리어 뉴스가 대서특필 되어 있었다.
거기에 내가 싸우는 장면과 영상도 풀려 있는 상태.
헤파이스토스 갑옷이 사라져서 얼굴이 다 팔렸다.
영상이 마구 지워지고 있었지만, 지워지는 만큼 또 올라온다.
하이고.
협회에서는 관리한다고 어떻게든 영상을 지우는 거 같은데 역부족인 거 같다.
[이거 주작 아니에요?]
[┕22222]
[┕33333]
[아니 뭔 사람이 이렇게 쎔? 지 혼자 다하네?]
[이거 게임 티저 아니냐? 혼자 원맨쇼하네.]
[다른 각성자들은 구경하냐? ㅋㅋㅋㅋㅋ 쟤 혼자만 보냈어도 됐을 듯.]
[저 분은 제우스의 사도이시다. 존칭을 붙이고 신성모독 하지 말라!]
자주 가던 인터넷 게시판이 아주 들끓고 있었다.
영상 보니 번개 쏴대고 검 늘려서 해골 쓸어버리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영상찍는 보석에는 클로즈업 모드도 있는지 내 모습이 아주 적나라하게 찍혔다.
신나게 나를 찍다가 영상을 찍던 사람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나뒹군다. 화면이 흔들리며 하늘을 향한다.
그리고 거기서 갑자기 나타나는 검은 해골이 머리를 들이밀고 씩 웃는다.
주먹을 들고, 쾅 소리가 나자 단발마의 비명성이 울려 퍼진다.
그러며 끝나는 영상.
“햐. 이거 잘 찍었네. 최후엔 카메라맨 사망까지.”
“이거 원 원정대 숫자가 워낙 많으니 협회의 언론통제가 안 먹히는데?”
이거 말고도 수많은 영상이 퍼진 상황.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며 보니 아주 가관도 아니었다.
너튜브도 난리가 나서 내 영상으로 도배중…….
이건 뭐 통제가 안 되겠네.
“이젠 대중적으로도 완전히 알려진 슈퍼스타네. 좀 귀찮아지겠다.”
“에휴…… 마법 쓰지 뭐.”
B급이 되자 마법 배울 수 있는 종류도 6서클로 늘어났다.
평소에 마법 날리느니 그냥 불사조가 불지르거나 번개 쏘는 게 더 빨라서 그다지 쓰지는 않았는데, 뒤져 보면 쓸 만한 게 많았다.
“폴리모프 셀프.”
모습을 변형하는 폴리모프도 그중 하나.
주름 잡힌 중년 남성을 이미지하자 얼굴뼈와 근육이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모습이 바뀌었다.
“헐. 그런 마법도 있냐?”
“어. 지속시간은 1시간이네. 빨리 가자.”
“햐 진짜 골 때리네…….”
헌터협회에 나서자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얼굴 변형을 했으니 못 알아보겠거니 해서 나가고 있는데 기자들이 이진성을 잡았다.
“이진성 헌터 맞으시죠?”
“김지호 헌터와 절친한 친구 사이라고 들었습니다. 인터뷰 가능하십니까?”
벌떼같이 몰려드는 기자들.
이진성이 당황해서 날 바라본다.
나도 당황했지만, 여기서 내 정체를 들켰다간 피곤할 거란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흠흠. 진성이. 그럼 좀 있다가 보세. 인터뷰 잘하게.”
“어……어…….”
“이진성 헌터. 대답해 주십시오!”
이진성은 나에게 손을 뻗었지만 나는 그냥 손을 흔들고 줄행랑쳤다.
인터뷰는 귀찮아.
헌터협회에서 준 집 건물 앞에도 기자들이 진을 쳐 있었지만 중년 남성 모습의 나에겐 아무도 귀찮게 하지 않았다.
“하아…….”
집에 도착하자마자 맥주를 까고 하잔 마셨다.
드워프제에 비하면 확실히 딸려.
할 게 없어서 티비를 트니 케브리안 원정 성공 뉴스로 도배되어 있었다.
트람프 대통령이 마침 자신만만하게 ‘우리는 완전히 승리했습니다.’ 하면서 인터뷰 중이었다.
내가 다했는데 생색은 왜 저놈이 내냐.
피식 웃으며 술을 마시니 갑자기 나에게 메시지가 떴다.
[헤르메스가 ‘태양신 아폴론이 엄청 화내네요. 뭐하신 거예요?’라고 통신을 보냅니다.]
아폴론.
처음에 화염전차랑 피닉스 알 줘서 내게 큰 도움이 되긴 했지.
그래도 어쩔 수 없었어.
디아나를 아르테미스 신체로 줄 순 없잖아?
“통신 헤르메스.”
[지호님. 아폴론께서 엄청 화를 내고 계신다는데요?]
“왜 그렇게 화를 낸답니까? 전 그냥 하이엘프와 좋은 시간 보냈을 뿐인데. 아. 그러고 보니 처녀신의 육체를 교체한다느니 이런 소리 들었는데 그거 때문인가요?”
내가 그리 말하자 헤르메스가 뭔가 알았다는 듯이 말한다.
[아아…… 처녀신을 유지하려고 예비한 육체가 하이엘프였구나. 에휴. 제가 아르테미스한테 연락해 볼게요.]
그러더니 잠시 침묵이 감돈다.
각 나라 대빵들이 다들 신난 채 인터뷰하는 걸 듣고 있자니 다시 통신이 왔다.
[아르테미스는 막상 괜찮다네요. 신체야 또 찾으면 된다고. 자긴 이번엔 검은 피부가 땡겨서 다크 엘프로 할 거라고. 영혼 중개 때 잘 부탁드린다고 오히려 청탁하네요. 으으. 아르테미스도 괜찮다는데 오빠가 더 극성이야.]
“근데 아르테미스님은 처녀신인데 처녀가 아닌 건가요?”
[아 그건…… 아 B급한테 이야기해도 되나? SP 좀 깎일 수도 있는데 말씀드릴까요?]
아니 뭐 처녀 아닌 게 그렇게 비밀이야? SP가 깎여?
저번에도 폴룩스가 세계의 질서를 이야기한다고, 나 등급 딸린다고 하면서 SP가 1감소했었지.
뭐 저번처럼 1,2 깎이는 거면 들어나 보자.
“예. 궁금해요.”
[아르테미스는 원래 처녀성을 대표하는 신이라 순결의 대명사였죠. 근데 우리 올림푸스가……]
[헤르메스가 세계의 왜곡된 질서를 이야기 합니다. 이를 받아들이기에는 사용자의 등급이 부족합니다. SP가 100 감소합니다.]
엑?
뭐 100이나 감소해??
거기에 예전엔 그냥 질서를 이야기했다고 했는데 이번엔 왜곡된이네?
“스탑. 스탑.”
[어, SP 깎여요?]
“네. 100이나.”
[에구. 제가 나중에 보상해 드릴게요. 근데 B급한테도 제한되다니. 이거 큰일인데……]
혼잣말을 하는 헤르메스.
그런 헤르메스에게 난 다음 궁금점을 물어봤다.
“근데 도우미들 다 사라졌는데 어디로 간 거죠?”
[지구 도우미요? 그들은 케브리안 출신들인데 케브리안이 복구되었으니 다 고향으로 갔죠. 그래서 천사 도우미로 바꿔서 보낼까 했어요. 근데 제가 또 좋은 생각이 났죠.]
“좋은 생각? 무슨 생각이죠?”
[선택의 기회를 드리려구요. 천사 도우미 1년 더 쓰느냐? 아니면 3년간 지구인이 버프 받고 스스로 자립하느냐?]
지구인 버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