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 2개-68화 (68/240)

<내 상태창 2개 - 68화>

68 디아나, 사도가 되다.

“아니. 저기, 디아나. 제정신 맞으시죠?”

“마, 맞아요! 아프로디테의 지배는 이미 풀렸습니다.”

“근데 왜 갑자기……?”

“인장을 봐보세요.”

인장 어디 있지?

드래곤 하트에 찍혀 있는데 보는 법은 모르겠는데…….

애매해서 인벤토리를 열어 보니 인벤토리 한 쪽에 드래곤 하트가 있었다.

그걸 누르니 다시 하나의 창이 또 열렸다. 인벤토리 안의 인벤토리랄까.

엘프리안의 인장, 드라키아의 인장, 크로노스의 파편, 우르드의 파편 이렇게 네 아이템이 존재했다.

그중 엘프리안의 인장을 누르니 설명이 떴다.

[엘프리안의 인장 : 사도화]

[자신의 등급과 동급이거나 그 이하의 각성자를 임시로 사도 임명할 수 있습니다. 엘프의 경우는 등급 상관없이 사도화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 수는 총 7명으로 제한됩니다.]

[사도로 할 상대를 지정해 주십시오.]

“사도화?”

“네. 엘프리안께서는 제가 당신의 사도가 되길 원하셨어요. 그래야 이 난관을 이겨 낼 수 있다고 하시면서.”

딱히 난관이랄 것이 있나?

이미 클리어 했는데…….

“근데 음 그거랑 이거랑은 무슨 관계인지…….”

“지금 제 몸은 아르테미스의 새로운 신체로 점지되어 있습니다. A급 사도 중 처녀라는 이유로…….”

처녀신 아르테미스?

그녀가 갑자기 왜 나오지?

“아니 처녀신이 왜 처녀가 필요하답니까?”

“저도 자세한 연유는 모르겠지만…… 이제 슬슬 새로운 육신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예비 처녀신의 신체로 점지되었어요. 태양신께 신앙심이 있을 때는 영광으로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소름이 끼칩니다.”

양손으로 자신의 어깨를 감싸 안는 디아나.

바뀐 신앙으로 거짓된 신을 섬겼을 뿐만 아니라 신체마저 완전히 뺏길 뻔했다.

소름이 돋을 만도 하지.

근데 그럼 아까 아프로디테의 지배가 있을 때 했으면 처녀신의 육신이 안 되는 거 아닌가?

“아까 아프로디테의 빙의 때 했으면 처녀신 풀리는 거 아니었나요?”

“그때 김지호님이 넘어갔으면, 아프로디테의 신전으로 강제 이동되었을 거예요.”

아프로디테의 신전에?

아까 그녀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였구만.

어쩐지 이쁘더라.

“강제 이동이라니…….”

“아프로디테의 신전에 수천의 요정들을 이미 준비해 두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을 통해 김지호님 같은 능력을 지닌 아이를 꼭 손에 넣겠다고 벼르더군요.”

헐. 수천의 요정들이라니.

아까 넘어갔으면 큰일 날 뻔했구나.

등골이 오싹하다.

“자…… 그러니까 처녀신의 신체로 낙점 받은 걸 풀려면 처녀가 아니어야 한다는 거죠?”

“네. 엘프리안께서는 지호님 사도가 돼서 S급 되는 걸 도우라고 하셨어요. 그래야 자신도 결국 구원을 받는다고 하시면서…….”

엘프리안은 이미 헤르메스에게 완전히 제압당해 사라졌는데, 어떻게 구원을 받는다는 건가.

잠시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내 손을 잡아 오는 디아나에 생각을 멈추었다.

“꼭…… 해야 해요. 아이는 이런 상황에서 가지면 안 되니, 제가 조절할게요…….”

꿀꺽.

침이 절로 삼켜진다.

이성을 간신히 붙잡으면서 한 번 더 물어본다.

“괜찮으시겠어요?”

“네. 지호님께는 신세도 많이 졌고, 저희 세계도 구해 주셨는데…… 전 정말로 괜찮습니다. 오히려 사도로 절 꼭 받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뺄 수는 없지.

갑옷을 해제한다.

옷도 황급히 다 벗고, 명경지수 스킬창을 띄운다.

헤르메스에게 받은 남근 조절로 정관을 닫고 모든 준비를 마친다.

내가 맨 몸으로 나오자 몸을 움츠리는 디아나.

갑자기 이불을 들더니 침대에 다시 가서 웅크린다.

“저…… 살살 해 주세요.”

하.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네.

나는 명경지수를 해제했다.

“아 그리고, 저기…… 한번만 하시면 됩니다…… 어차피 아르테미스의 신체가 되지만 않으면 되니…….”

“제가 안 됩니다.”

이미 늦었어요. 아가씨.

“아……이제 정말 안 됩니다. 시간이 없어요……!”

찰싹찰싹.

아.

디아나의 손이 뺨을 치자 정신이 들었다.

하나 그것도 잠시, 다 찢어진 이불로 자신의 몸을 겨우 가리고 있는 디아나를 보니 정신이 다시 날아갈 것 같았다.

명경지수를 황급히 켰다.

[명경지수가 발동합니다.]

와. 아예 의식이 날아가 버렸네.

이거 명경지수는 그냥 무조건 킨 채로 둬야겠구나.

“아. 다행입니다. 정신 차리셨군요.”

얼굴이 잔뜩 상기된 채 날 보는 디아나. 대체 뭔 일이 있었던 건지 이불과 침대 시트가 사방으로 찢어져 있고 난리도 아니다.

자세히 보니 원래는 없던 초록색 빛의 옷가지도 사방으로 찢겨 있었다.

내가 이를 물끄러미 보자 디아나가 약간 화난 듯이 말을 시작했다.

“시간이 촉박해져서 제가 몸을 가리려고 하니까 다 찢어 버리셨습니다. 정말. 조금만 더 늦었어도 세계 격변에 휘말려 저희 둘 다 사라질 뻔했어요. 무슨 광폭화 스킬이라도 시전하신 거였어요? 힘은 또 어찌나 세신지…….”

말문을 열더니 지금까지의 고충을 토로하는 디아나.

얼굴은 화난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그녀의 입가엔 작은 미소가 담겨 있었다.

흠. 웃다니.

정신 차리니 그래도 안심한 건가?

여하튼 위험했구나.

아 몸이 엄청나게 후련하고 기분이 좋은데, 막상 뭘 했는지는 기억이 애매하다.

아주 드문드문 나.

그 기억 속에서 내가 한 마리의 발정난 개였다는 것만은 알겠다.

그렇게 발정이 났는데도 공략집의 내용을 기억해 내서 이를 써먹어 보기도 했네.

아…….

기억을 더듬으니 갑자기 또…….

충동이 팍팍 든다.

아 정신 차리자.

“저도 이럴 줄 몰랐네요. 이거 원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죠?”

“40시간 중 38시간이 넘게 지났으니…… 정말 이제 시간이 없어요. 지호님. 절 사도로 받아 주세요.”

인벤토리 안 엘프리안의 인장을 통해 사도화를 진행했다.

[하이 엘프 디아나를 사도로 지정합니다.]

[하이 엘프 디아나의 등급이 사용자보다 높습니다. 엘프 종족이기에 사도 지정이 가능합니다. 사도로 지정하시겠습니까?]

헐. A급이었어?

지구의 라이아나는 B급이더니.

태양신의 온전한 사도라서 그런가.

엄청 강했구나…….

근데 왜 시간이 없다면서 날 제압하진 못했지?

A급이면 충분히 제압 가능했을 텐데…….

흠흠…….

기억을 더듬어 봐야겠구만.

사도화에서 예를 누르자 나와 그녀의 몸에서 초록색의 빛이 번쩍였다.

그러더니 은은하게 빛나는 하나의 초록색 선이 그녀와 나의 몸 사이를 연결했다.

어느새 옷을 소환해서 입은 디아나가 그 선을 보고 기뻐했다.

“성공했습니다!”

“예. 다행이네요.”

“지호님. 말 편하게 하셔도 돼요. 이제 저는 지호님의 사도니까요.”

“하하. 그럴까요?”

“네. 애초에 좀 전엔 명령조로 지시하셨지 않습니까. ‘누워.’ ‘엎드려.’ ‘당장 그 이불 치워 버려!’라는 둥…….”

입을 삐쭉이는 디아나.

뭔가 감정표현이 다양해졌네.

쳇…… 30시간 넘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하나하나 자세히 기억을 되살려 봐야겠다.

어쨌든 말 편히 하라니까 편하게 해야지.

“이제 저에게 크로노스의 파편을 잠시 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래.”

인벤토리에서 크로노스의 파편을 꺼냈다.

엘프리안에게 받기만 하고 실제로 보지도 못했던 크로노스의 파편.

그 모양은 검붉은색의 별 형태의 보석처럼 생겼다.

그녀는 그 보석을 나에게 받더니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녀의 마력에 이 공간이 공명한다.

그래. 여기는 세계수 안이었지.

세계수의 마력도 같이 흘러나오며 어마어마한 힘이 크로노스의 파편을 향해 몰려든다.

파편의 색이 녹색 빛으로 바뀌자 디아나가 주문을 외웠다.

“타임 슬립Time Slip.”

타임 슬립?

시간 역전의 주문인가?

파편에서 녹색의 빛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더니 다시 검붉은색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파편을 손에 쥔 채 자리에 주저앉는 디아나.

“하아…… 하아…… 다행히 성공했네요.”

“이게 무슨……?”

“엘프리안님의 유지에 따라 잠시 과거로 돌아왔습니다. 시간이 없으니 일단 절 믿고 따라와 주세요.”

그녀가 주문을 외우자 땅에서 세계수의 뿌리가 올라왔다.

그러더니 나와 그녀의 몸을 감싸며 어디론가 끌고가기 시작했다.

몇 분이 흘렀을까.

뿌리는 땅속에 나와 디아나를 툭 놓고 갔다.

어. 여기는 엘프리안을 만났던 곳과 비슷한데…….

그 생각에 주위를 둘러보니 진짜 엘프리안이 있었다.

사지가 다 잘린 채 흙으로 이루어진 몸통과 얼굴.

그녀는 우리를 보더니 탄성을 내질렀다.

[아아…… 성공했군요! 역시 저들은……]

“엘프리안님……! 모습이 어찌하여……!”

디아나가 엘프리안의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믿고 따르던 신이 만신창이가 되니 그럴 법 했다.

[김지호 각성자님. 디아나를 사도로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근데 어떻게 다시 살아나셨는지…… 저희가 시간을 되돌린 건가요?”

[그렇습니다. 크로노스의 파편을 통해 잠시 시간을 되돌렸습니다. 자세히 설명해 드리고 싶지만, 디아나의 타임 슬립은 불안전해 시간이 없습니다. 제가 죽기 전에 인장을 완성하겠습니다.]

인장을 완성한다고?

그녀의 흙눈이 초록색으로 번뜩이자 갑자기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엘프리안의 인장이 업그레이드 됩니다.]

[사도의 정원이 추가됩니다.]

[사도의 정원]

[임시 사도가 된 이가 머무르는 공간입니다. 세계와 완전히 분리되어 존재하는 아공간입니다. SP를 투자하여 더 확장할 수 있습니다. 현재 남은 공간은 5자리입니다.]

사도의 정원?

내가 사도로 임명하는 이가 머무를 수 있는 장소인가 보다.

[디아나는 당신에 비해 등급이 높아, 계속 소환 상태에 있으면 SP가 엄청나게 소모될 겁니다. 태양신의 분노를 피할 겸, 그녀를 일단 그리로 대피시키세요.]

엘프리안의 말에 난 디아나를 바라보았다.

“디아나. 들어갈 수 있어?”

“네. 지호님. A급이 되시면 절 다시 불러 주세요.”

아…… 이렇게 사도의 정원에 보내려니까 좀 아쉽다.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정도 나눴는데 말이지…….

내가 물끄러미 디아나를 바라보자 그녀는 내 손을 잡더니 입을 쪽 맞췄다.

뭔가 익숙한 입술의 느낌.

“다음에는 시간에 쫓기지 말고 느긋하게 보내요.”

느긋하게?

그래. 그때는 느긋하게.

스킬도 켜둔 채로 시간을 보내자.

“그래…… 금방 A급이 돼서 소환할게.”

“그때만을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러더니 모습이 점점 사라지는 디아나.

그녀는 한 줄기 빛이 되어 내 가슴속으로 빨려들어왔다.

[A급 각성자 ‘하이엘프 디아나’가 사도의 정원에 들어옵니다.]

[사도의 정원에 남은 공간은 4자리입니다.]

하아.

아쉽다…….

그래도 일단 피신시키는 게 맞는 선택이야.

태양신이 미쳐 날뛸 수도 있잖아.

나한테야 영혼 중개 때문에 뭐라고 강하게 못하겠지만, 디아나한테 깽판칠수도 있으니…….

[디아나를 잘 돌봐 주십시오. 김지호 각성자.]

“알겠습니다.”

[어차피 곧 저는 죽을 테니, 힘을 아끼지 않고 김지호 각성자의 잠재력을 확장시켜드리겠습니다.]

나무뿌리가 내 몸을 감싸더니 기분 좋은 상쾌함이 몸을 훑고 지나간다.

[사용자 김지호의 모든 잠재력이 영구적으로 상승합니다.]

[질서진영의 모든 능력치 상한선이 대폭 오릅니다.]

[중립진영의 모든 능력치 상한선이 대폭 오릅니다.]

모든 능력치가 올랐구나!

와. 좋다 좋아.

나는 기뻐하고 있는데, 엘프리안이 당혹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꽤 많은 힘을 쏟았는데…… 아직도 잠재력이 완전히 다 열리지 않았군요……]

“제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건가요?”

[아니요. 원래 잠재력이 형편없어서 한계선까지 다다르기가 힘든 겁니다.]

꼭 그렇게 말씀하실 필요는 없는데…… 나의 잠재력 대체 얼마나 똥인 거냐…….

좀 시무룩해 있자니 엘프리안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 정수를 드래곤 하트에 같이 보관해 주십시오.]

엘프리안의 눈 하나가 바닥에 데굴데굴 굴러떨어진다.

그러더니 초록빛을 발하는 보석으로 변했다.

[그것은 제 기억이 담긴 정수. 그것이 있으면 김지호 각성자가 어디에 있건 단 한 번 이 공간으로 오실 수 있습니다.]

“오호. 이건 탈출에 쓰면 되나요?”

위험에 처하면 이 세계수 안으로 워프하는 건가?

좋네.

[그것보다는…… 세계가 격변하고 나면 이쪽으로 돌아와서 써 주십시오.]

“세계가 격변하다니요?”

[크로노스의 파편, 우르드의 파편…… 시간을 돌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올림푸스와 발할라는 분명 시간을 이용해 무슨 수를 꾸미고 있습니다.]

엘프리안의 한쪽밖에 없는 흙눈이 빛났다.

[그 정수, 분명히 사용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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