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63화>
62. 헤르메스, 로키, 하데스(1)
[헤르메스! 빨리 귀를 틀어막으시죠. 뱀 같은 혀를 지닌 자입니다.]
헤르메스.
그 전령 역할 하는 신?
양복만 아니면 딱 어울리네.
그는 허리를 굽히며 양손을 닳도록 비벼 댔다.
“아이고, 아이고. 뱀 같은 게 누군데요? 자자. 저 소리는 듣지 마시고. 김지호 각성자님. 영혼신의 씨앗이 된 분이여.”
굽실굽실하면서 미안하다는 듯이 손바닥을 비벼 댄다.
만면에 미소를 잃지 않으나 결코 비굴하지는 않은 모습.
음색이 너무 좋아서 그가 입을 열면 신경이 바로 집중이 된다.
“자자. 이제 저희 새로운 미래를 모색해 보죠. 폴룩스가 독. 단. 으로 벌인 일에 피해를 보시지 않으셔서 천만다행입니다.”
이 새끼 수 쓰네.
독단은 무슨.
이가 갈린다.
“어디서 약을 파냐.”
내가 쏘아붙이자 잠시 멈칫하던 헤르메스가 다시 웃었다.
“하하하. 원형 유지 언제 다 사셨나요? 이거야 원. 제 말이 하나도 안 먹히다니.”
[캬캬. 굳잡입니다.]
참 나. 아래선 하데스랑 죽자고 싸우고 있었는데 여기선 또 믿음직스럽네.
“아이고, 숙부님. 근엄하던 모습은 어디 가시고. 캬캬가 뭡니까?”
[니네들 때문에 내가 미쳐 버렸기 때문이죠. 캬캬.]
“페르세포네…….”
[닥치시죠.]
“하이고. 순정남이시라니깐. 대신답지 않게.”
[야.]
“알겠어요. 알겠어.”
하데스의 음성이 워낙 진지해서 등골이 오싹했다.
죽음의 신이 진지해지면 무섭구먼.
페르세포네면 하데스의 부인 아니었나?
올림포스가 또 뭔 짓을 했나 보네.
이 새끼들이라면 능히 그럴 만하지.
“자자. 그럼 숙부님은 이만 가시고요.”
[아니, 우리 김지호 각성자님을 두고 갈 수야 없죠.]
“그건 그래.”
혼돈신이든 뭐든 알 게 뭐냐.
일단 비빌 언덕이 이쪽인데.
마력을 열심히 부여했다.
그러자 선명해지면서 커지는 마법진.
헤르메스는 쯧 하더니 손가락을 툭 하고 튕겼다.
그러자 마법진이 그대로 확장을 멈추었다.
“그럼 김지호 님 각성자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대신 확장만 멈추죠. 아무래도 여긴 올림포스라서.”
[킬킬킬. 잘하셨습니다.]
“쳇. 좀 빨리 등급 다운을 해서 왔어야 했는데…… 숨어 있는 로키 씨도 이만 나와 주시죠.”
로키?
북구 신화에 나오는 로키?
영화에도 나오던?
[로키도? 김지호 씨 아주 여기저기 선이 많군요?]
“로키라니? 난 로키 모르는데.”
“에헤이. 제가 직접 지호 님 보지 못했으면 몰랐을 겁니다. 지금 수호신이구먼요 뭐.”
“뭐? 수호신? 수호신이래 봤자, 폴룩스랑 아우렐리아밖에…….”
“그래. 아우렐리아 있네요. 제 신안(神眼)이 아니었으면 몰라뵐 뻔했어요. 참 나.”
에이.
설마 아우렐리아가?
로키는 남신 아니냐?
“역시 헤르메스. 성가셔.”
갑자기 튀어나오는 아우렐리아.
청순했던 얼굴이 냉막하게 변해 있었다.
어…… 여신님……?
“여장도 잘하시네요. 이쁘네. 이뻐.”
“호홋. 암말로 말도 낳았는데 여성화쯤이야.”
“그 발 여덟 개 달린 슬레이프니르 말이죠? 참…… 대단하셔요.”
헤르메스가 질린 얼굴로 말했다.
……말도 낳았다고?
아.
충격이다.
상태창을 보니 수호신이 ‘사기의 신’ 로키로 바뀌어 있었다.
아니…… 시스템까지 속이다니.
이럴 수가 있나?
[헐. 대신이 무슨 수호신을 합니까? 인간이 감당을 못할 텐데?]
“하데스. 그래서 이렇게 제 아바타를 화산의 신으로 다운그레이드했죠. 자세한 건 영업 비밀입니다.”
[와. 진짜 김지호 씨 이런 무서운 놈들이랑 같이 있을 겁니까? 혼돈의 품으로 오시죠. 당신이라면 차기 혼돈의 군주 가능합니다.]
갑자기 나에게 영입 제의를 하는 하데스.
그러자 헤르메스가 만류한다.
“하데스한테 가면 S급으로 강제로 오른 후 영혼 해부 당해요. 그땐 보호를 못 받거든요.”
“왜 S급까지는 보호를 받지?”
“영혼신의 씨앗이니까요. 신의 씨앗에 다른 신이 개입하면 시스템의 보복이 따라오죠.”
[허허. 제가 그러겠어요? 제 말 들어서 손해 본 거 있어요? 아까 그 위급 상황에서도 제가 잘 지켜 드렸잖아요. 하하하.]
“하데스는 지구 무조건 멸망시킬 거야. 가면 안 돼.”
아우렐리아, 아니 로키도 만류한다. 그러자 더욱 목청을 높이는 하데스.
[지구가 무슨 소용입니까? 김지호 각성자. 넓게 보십시다. 당신은 신의 자질을 받았습니다. 거기에 영혼신! 영혼신은 최고위급 격을 지니고 있어요. 지구 따위에 얽매이지 말고 저희와 함께해서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십시오. 제가 성심성의껏 돕겠습니다.]
“무슨…… 창조라니…….”
[저 쌍것들을 쓸어 버리기 위해서는 지구 파괴가 필수적이에요. 하지만 그렇게 부수고 나면 그와 똑같은 세계를 다시 창조할 수 있습니다. 저와 함께하시죠!]
으으.
하도 뒤통수를 맞다 보니 얼얼해서 혼돈에 귀의할까 잠시 흔들렸다.
하지만 세계 창조라니 그렇게 거창한 짓은 하고 싶지 않은데.
거기에 말이야 저렇지, 끌려가면 해부당할 거 같아.
날 바라보던 헤르메스가 손뼉을 쳤다.
짝짝.
“자. 김지호 씨. 저쯤 되면 당신은 스스로를 유지할 수 없어요. 작은 세계라지만 창조를 할 정도면 신격이 SSS급, 아니 그 이상이 되어야 해요. 솔직히 생각해 보세요. 당신은 자기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원형 유지에 그렇게 투자하지 않았습니까? 근데 무슨 갑자기 창조주를 해요? 그냥 지구의 구성원으로 남으세요.”
“그래. 저 말은 맞지. 하지만 올림포스를 믿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뒤통수를 크게 맞았으니까. 우리 아스가르드로 와. 내가 로키 내 이름을 걸고 널 보호해 줄게.”
“아이고 사기꾼 로키 이름을 걸어 봤자 ‘너한테 사기 칠 거야.’라고 말하는 거밖에 더 됩니까?”
“그쪽은 이미 배신 때린 주제에?”
“하하하. 배신이라뇨. 폴룩스가 주제넘은 행동을 한 것일 뿐입니다.”
[아! 한번 믿어 보세요. 제가 지구랑 똑같은 행성 하나 만들어 줄게요. 저놈 새끼들만 없어진 세계로요.]
아아아아악.
각기 다른 진영의 세 신이 서로 말싸움하니까 머리가 어지럽다.
정리해 보자.
“일단 질서 쪽은 오늘 일을 보니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는데.”
“쩝…….”
“하데스도 도움은 고마웠지만 영 섬뜩하단 말이야.”
[에이…… 제가 얼마나 착한데. 여자로 저도 성전환할까요?]
“아, 됐고. 로키도 와! 뒤통수가 얼얼해서…….”
“쳇. 헤르메스만 아니었어도.”
진짜 복마전이구나.
사기 잘 치게 생긴 헤르메스에 사기의 신에 미친 죽음의 신.
셋 중에 누굴 고르라니 말이 되냐.
사실 중립에 아주 마음이 끌리고 있었는데 로키였다니…….
하아…….
신들은 죄다 사기꾼이야.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여기서 잘못했다간 진짜 코 꿰여서 끝장날 수가 있어.
마음으로는 올림포스에 불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지만, 아직은 분노를 참아야 할 때라는 게 뼈저리게 느껴진다.
지구에서야 제일 강한 각성자라지만 신계로 오니 아무것도 아닌 존재니.
영혼 계열 직업이라는 특이성이 없었으면 예전에 사라졌겠지.
그래도 이 영혼 계열이라는 특이성 때문에 잘나가는 대신들이 이렇게 저자세로 나오니, 이걸 잘 이용하자.
“자. 세 진영 어디에든 속하고 싶지 않거든? 그런 거 말고 머리 좋은 니들이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말해 봐.”
“네? 저희가요? 하하하. 이 양반도 참 웃기셔.”
사기 잘 치는 니들끼리 한번 이야기해 봐라.
한번 들어 보게.
“응. 니들 입으로 힌트 좀 줘 봐.”
[킬킬킬. 수 쓰네요.]
“하아아. 미인계로 꼬드길 수 있었는데!”
아오! 로키 너한테 넘어갔으면 자괴감에 모든 걸 포기했을 거다.
아우렐리아…….
나에게 친절하고 그렇게 잘 챙겨 주던 아우렐리아가…….
배신감이 쩐다.
“흠흠. 그렇다면 자. 제가 김지호 각성자 입장이었다면 첫 번째는 당연히 올림포스의 품으로 귀의하는 거겠지만…….”
“꺼져. 욕 나오기 전에.”
“헤헤. 두 번째로는 여기저기에 선을 대는 거겠죠. 솔직히 저와 올림포스 못 믿겠다는 거 인정합니다. 하지만! 저기 중립, 혼돈 다 보세요. 다 믿으면 배신 잘 때리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아이고! 로키가 화산의 여신이라니. 지나가던 개가 웃겠어 그려.”
“참 나. 성령 이렇게 모아 놓는 니들이 더 무섭다. 질서 진영 맞니? 악마 아냐? 올림포스 안 믿었다고 이렇게 제물로 바치다니. 쯧쯧. 얘들이 질서 진영에 얼마나 신앙심을 바치는데. 이 성령은 교황 급은 되어 보이는데…….”
아우렐리아 모습의 로키가 성령을 불쌍하다는 듯이 만진다.
헐. 교황 급이라니…….
“아이고, 아이고. 폴룩스 이놈! 혼자서 이렇게 독단적인 일을 벌이다니! 성령들 아깝게!”
헤르메스가 과장되게 손을 허우적대자 성령이 싹 사라진다.
와.
진짜 다 폴룩스 개인 탓이라고 밀어 넣네. 이 쓰레기 같은 놈들.
아오! 질서 놈들한테 크게 엿 먹이고 싶다.
하지만 일단 이야기는 들어 보자.
“선을 대다니?”
“그거야 뭐, 영혼 중개도 그렇고요. 혹시 또 쓸 만한 스킬 없어요?”
“그래. 말해 봐.”
[저도 궁금하군요. 킬킬.]
하.
이 새끼들 서로 싸우다가 또 이럴 땐 합심하네.
질서, 중립이랑 혼돈이랑 박 터지게 싸우는 게 맞나 싶다.
그래도 스킬이라면…….
영혼 거래, 영기 발출 스킬이 생겼지.
영기 발출은 아무래도 거래용 스킬은 아닌 거 같으니 숨기고.
영혼 거래 이건 영혼 중개처럼 쓸 만한 거래 스킬인가?
영혼 거래 스킬을 보았다.
[영혼 거래 LV1]
[모든 존재에게 격에 상관없이 SP 거래를 주관합니다. 거래창을 소환하고, 수수료로 거래량의 0.1%를 받습니다. 한 번에 1,000만 SP까지 거래 가능하며, 하루에 10회 가능합니다. 등급이 S급으로 오르고 영혼 거래 스킬 레벨이 오를 경우 SP 거래소를 설립할 수 있습니다.]
흠. 이거 뭐 완전 장사 스킬인데?
좋은 거 맞아?
이건 이쪽 애들에게 세일즈해야 할 스킬이긴 하네.
애초에 안 알리면 그냥 쓸모없이 썩을 스킬이라…….
말해도 되겠다.
“SP 거래를 주관하는 영혼 거래 스킬이라는 게 생겼는데.”
“SP 거래를 주관한다고요?”
“등급이 똑같은 신끼리도 거래가 가능한 건가?”
[허 참. 신기한 스킬 많아…… 이것도 올림포스 니들이 만든 건가요?]
“아니, 저희야 영혼 중개자만 기획했습죠. 이런 스킬은 생각도 못했는데…… 자세한 세부 조건이 궁금하군요.”
뭐 이들에게 세일즈를 해야 하니 말해 주자.
스킬 내용을 자세히 말해 주니 헤르메스와 여신 모습의 로키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천만에 수수료 0.1%라.”
“아주 괜찮네. 하루에 일억 SP까지 교환 가능하고 수수료가 SP 상점에 비해 훨씬 싸.”
[아. 안 돼요. 안 돼. 그거 구린 스킬이에요. 쟤네들한테 이용당해요.]
“허허. SP 상점의 매니저한테 듣고 싶지는 않군요.”
“그러니까 말이야. 우리가 수수료 3%씩 뜯겨서 이를 갈았는데.”
하데스가 SP 상점 매니저?
완전 의외네.
SP 상점이 혼돈 거였어?
“SP 거래가 원래 안 되는 건가?”
“네. 저희가 아랫것들에게 하사하거나 아랫것들이 우리에게 바치는 건 가능하지만, 같은 급끼리는 거래가 안 되죠.”
“사실 대신 급 말고는 거래할 경우가 별로 없긴 하지만. 그래서 대신 급끼리 거래할 땐 SP 상점에 물건을 놓고 사는 방식으로 거래했지. 수수료 3%를 바치면서.”
“너무 수수료가 높다니까요. 아랫것들에게 줬다가 믿는 신 바꾸게 하면 준 SP가 또 사라지고. 시스템 너무하다 싶었는데.”
[이런 이런. 상점 유지가 얼마나 힘든데요. 저희도 먹고살아야죠.]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같은 급끼리는 거래가 안 돼서 SP 상점에서 물건 올려 가지고 거래했다 이거구나.
“역시. 아주 좋아요. 저희가 비록 불미스러운 일은 있었지만, 그래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군요. 한 개인의 일탈 때문에 이대로 척을 지기에는 너무 아쉬워요.”
“그 스킬은 아무래도 질서 진영까지 포괄해야 더 효율적일 거 같네. 하지만 영혼 중개는 우리랑 하는 게 나을 거 같지 않니? 지금 저쪽이랑 거래하는 신만 해도 몇이야. 여기랑도 숫자를 맞춰야 평균이 맞지.”
“아니 뭐 저번엔 대가를 그만큼 못 준다며?”
“B급 됐으면 이제 달라. 그리고 뭐 곧 때가 되기도 하고…….”
씨익 웃는 아우렐리아.
그때의 청순가련한 여신님은 어디 가고 음험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고 보면 영혼 중개 스킬도 레벨 업을 했지.
[영혼 중개 LV3]
[신들의 영혼 흡수를 중개합니다. 60%의 효율을 창출하며, 사용자는 개중 최대 20%를 수수료로 받을 수 있습니다. 최대 12명의 수호신과 중개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영혼 중개창을 열 수 있습니다. 여기서 기존 영혼 중개신과 합당한 사유가 있을 시 계약을 해지할 수 있습니다.]
12명의 수호신과 중개 가능이라.
지금 6명 중개하고 있지.
폴룩스, 아우렐리아, 아폴론, 헤파이스토스, 제우스, 아테나.
확실히 질서만 5명이다.
여기서 더 질서 진영을 후원하다가는 이쪽에 종속될 거 같아.
[저놈들 둘 다 한통속이에요. 솔직히. 차라리 저희들을 중개해 주시죠! 혼돈의 군주들은 언제나 준비가 되어 있답니다.]
“하데스한테 밀어주면 지구는 끝이에요.”
“저건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서로 동맹 관계라 그런지 이럴 때는 의견이 일치하는군…….
그것보다 합당한 사유가 있으면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니.
영혼 중개창을 열자 6명의 신이 쭉 나열되었다.
옆에는 계약 해지 글자가 있었는데 모두 클릭 가능했다.
애초에 아우렐리아는 글자에 X 표시가 있었고…….
좋아.
“일단 질서랑은 모두 계약 해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