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51화>
50. 흑룡의 숲(2)
숲 전체에서 심상치 않은 마력이 흉흉하게 뿜어져 나오며, 나무가 전체적으로 핏빛이라 섬뜩한 느낌을 준다.
“붉은 나무라…….”
“아는 게 있습니까?”
“붉은빛을 띠는 나무는 여럿 있지만, 저렇게 불길한 핏빛 색은 처음 봅니다. 나무 괴수인 트렌트라고 해도 저런 색은 아니었는데…….”
나무 전문가인 엘프도 모르겠단다.
그럼 실험해 보면 되지.
“화염 전차 소환.”
화염 전차를 소환해서 바로 돌진시킨다.
전차가 돌진하자 숲 전체가 흔들리더니 나뭇가지가 채찍처럼 날아온다.
나뭇가지엔 시커먼 마력이 깃들어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전차를 잠시 저지할 수 있었다.
물리력만 있는 게 아니니깐.
화르르륵.
하지만 불에 금방 타오르는 나뭇가지들.
애초에 불에 약한 나무에 신성력에 약한 암흑 마력인데 오래 버틸 리가 없다.
근데 불타오르는 나뭇가지가 스스로 뚝 끊어지면서 땅바닥에 떨궈지고, 또 새로운 가지가 튀어나와서 전차를 저지했다.
나뭇가지는 계속 타오르는데 화염 전차는 그다지 앞으로 못 나가고 있었다.
“저 자식들 꼼수 쓰네. 불사조 너도 출격이다.”
[알았다.]
불사조가 위풍당당하게 출전했다.
이젠 진짜 신수 티가 좀 나는 불사조.
사람이 가려질 정도로 커다란 날개를 펼치며 숲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나뭇가지가 불사조도 막기 위해 튀어나오지만, 워낙 화력이 강해 몸에 닿기도 전에 불타오른다.
마력도 쫙쫙 빠지는구먼.
[마여. 타올라라.]
불사조가 위엄 있게 외치며 숲 안쪽으로 비행한다.
녀석의 날갯짓에 화염이 퍼지며 불타오르는 숲.
흉흉한 핏빛의 나무도 속절없이 타오른다.
이거 완전 쉬운데?
부대의 긴장이 좀 풀릴 무렵…….
[으으으으…….]
[우리의 안식을 방해하는가…….]
나무가 불에 사라지자 그 안에서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더니 유령들이 튀어나온다.
저번에 암펠리안이 소환했던 유령과 비슷해 보이는 녀석들.
[살아 있는 것들을 죽여라.]
[동지로 삼자.]
각양각색의 표정을 지닌 유령.
묘하게 얼굴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오크 등 몬스터를 닮았다.
유령은 순식간에 불어나더니 우리 부대 쪽을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몇몇 유령은 나무에 붙은 불에 휘말려 들어 사라졌지만, 대부분이 하늘 위까지 올라간 다음에 우리 부대를 향해 쏟아졌다.
“유령입니다. 물리력은 통하지 않습니다. 마법이나 스킬 위주로 제압해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여의로 한번 휘두르면 싹 쓸릴 것 같았지만, 불사조 녀석이 마력을 워낙 많이 쓰니 그냥 부대를 믿기로 했다.
우리 부대 5천 명은 모두 마력을 쓸 수 있으니깐, 충분히 제압 가능하겠지.
“쏴라!”
헌터들의 화살에 마력이 담기고.
각양각색의 공격 마법이 폭우처럼 몰려오는 유령에게 쏟아졌다.
유령의 속도가 빨랐다면 위험한 상황도 생길 법했지만, 다행히 녀석들은 느렸다.
“뇌신.”
지지지직.
[으아아악!]
[사라…… 진다…….]
제압을 다 하지 못해서 너무 내려오면 한 번씩 번개도 쏴 주었다.
그래도 너무 위험한 지역 빼고는 그냥 지켜만 봤다. 전사들도 할 일이 있어야 하니깐.
“하늘 위의 적이라니…… 말이 하늘을 날면 좋겠군.”
청룡언월도를 휭휭 돌리며 유령을 제압하던 이진성.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신다.
“정령마면 속성에 따라 하늘을 날 수도 있습니다만…… 모르셨습니까?”
“네? 정말요?”
“네. 주인의 정령 친화도에 따라 정령마의 속성도 결정됩니다. 바람의 친화력이 강하면 하늘도 날 수 있죠. 다른 속성과 친화력이 강하면 하늘은 못 날아도 또 다른 특수한 움직임이 가능합니다. 물론 주인의 정령 친화력과 마력에 달린 거긴 하지만요.”
레인저 단장 레블로가 그리 말하자 눈이 돌아가는 이진성.
아니 전사가 정령 친화력을 올릴 수가 있나?
괜히 헛바람만 넣는 거 아닌가 싶은데…….
“나는 이제부터 바람이다!”
“그런다고 친화력이 늘지는 않습니다만…….”
레블로가 어이없다는 눈초리로 이진성을 쳐다본다.
그래도 이에 굴하지 않고 ‘나는 바람이다’를 외치며 유령을 베는 이진성.
이진성의 해괴한 짓거리를 똑같이 따라 하는 멤버들이 불, 물, 바람, 땅을 각기 외치며 설치고 있었다.
“나는 불!”
“나는 물!”
“여러분. 그런다고 친화력이 늘지 않는다고요…….”
일그러지는 레블로의 얼굴.
손발이 오그라들다 못해 끊어질 심정이다.
그 광경을 차마 볼 수 없어서 눈을 돌려 버렸다.
목불인견이 무슨 말인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저 새끼랑 모르는 척하자.
그쪽에서 시선을 돌리고 위험한 곳에 번개를 쏴 댔다.
사방에서 유령의 신음이 들리고, 하늘을 가득 메우던 하얀 몽우리가 사라질 즈음.
불사조의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주인! 큰일이다!]
“응? 뭔데?”
나에게 커다란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온 불사조.
녀석은 다급하게 외쳤다.
[드레이크다!]
“드레이크? 드레이크가 뭔데?”
[드래곤의 자식이되 날개를 받지 못한 몬스터다. 날개 없는 용이지.]
“용의 자식이면 세겠네?”
[강하다. 일단 불이 통하질 않아. 이성보단 본능이 우선시되는 놈이라 마법은 사용하지 못하지만, 육체는 용족. 매우 강력하다.]
“녀석이 지금 널 추격해 오진 않았고?”
[그 녀석도 날 잡을 순 없지. 거기에 녀석의 배 밑에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는데, 혼돈의 기운이 느껴졌다. 마법진을 지키는 게 우선인 것 같았다.]
“흠. 유령들을 제압하고 가 보자. 넌 위험한 지역만 개입해 줘.”
[알겠다.]
그렇게 유령을 두어 시간 정도 상대하다 보니 어느덧 상황이 정리되었다.
전략 없이 으어어어 하면서 밀고 오는 유령들 덕에 피해는 거의 없는 상황.
“드레이크라…….”
“전설적인 존재입니다. 애초에 드래곤도 보기 힘든데, 드레이크는 드래곤이 종족의 수치라고 숨겨 둬서 더 보기 힘들거든요.”
“날개도 없고, 마법도 사용하지 못하면 육체적으로만 강할 텐데. 각종 약화 마법으로 견제를 하면 통하지 않을까요?”
“바람의 정령으로 움직임을 묶고, 땅의 정령으로 발목을 잡으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다들 강하긴 하겠지만 마법을 못 쓰니 상대해 볼 만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래. 생각해 보면 드래곤 방해하러 가는데, 드레이크 정도도 상대 못하면 말이 안 되지.
“그럼 제가 먼저 가서 상대해 보겠습니다. 저와 드레이크가 격돌하면 약화 마법을 사용해 주십시오. 드레이크의 움직임이 제대로 봉쇄된다면 전사들도 투입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전사들은 일단 마법사들을 보호했다가, 드레이크가 약화되면 같이 제압하죠.”
“예.”
많이 소모되었던 마력을 모두 채우고 먼저 전진했다.
얼마 가지 않아 진한 마력이 느껴졌다.
불사조 덕에 숲은 다 시커멓게 타올랐는데 유독 멀쩡한 중앙.
좀 더 다가가니 시커먼 흙 위에 핏빛의 기묘한 선이 그려져 있었다.
이게 혼돈의 마법진인가?
보기만 해도 등이 오싹해지는 섬뜩한 마력이다.
“뇌신.”
일단 다가가지 않고 번개를 쏴 보았다.
그러자 번개가 마법진에 흡수되며 선의 크기가 약간 줄어들었다.
오. 효과 있는데?
그때 갑자기 거대한 짐승의 포효가 들렸다.
“카아아아!”
시야가 붉어지며 온몸이 따갑다.
엇, 온몸이라니?
섬뜩한 느낌에 온 힘을 다해 점프했다.
그러자 내가 서 있던 곳을 황소처럼 지나가는 거대한 실루엣.
저게 드레이크인가?
5미터나 되었던 용인과는 비교도 안 되는 크기.
검은색의 탄탄해 보이는 비늘,
용의 머리 양쪽에는 내 몸보다도 큰 뿔이 하나씩 자리했다.
네발짐승처럼 기어 다녔지만, 그 크기가 너무 압도적이다.
“크르르르!”
하늘 위에 있는 나를 잡으려고 몸을 일으키는 드레이크.
이거 무슨 괴수 영화에서나 볼 법한 스케일이잖아.
드레이크가 이 정도 크기면 드래곤은 대체 얼마나 크다는 거야?
“화염 전차 소환.”
하늘 위에서 전차를 타고 일단 튄다.
내 몸이 있는 곳을 스치고 지나가는 드레이크의 거대한 손.
음…… 불은 안 통한다고?
그럼 얼음 마법?
“아이스 스톰.”
하늘 위에서 가볍게 견제의 의미로 4서클 아이스 스톰을 사용한다.
드레이크의 머리 위에 냉기가 퍼지더니 얼음으로 이루어진 창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 거대한 덩치에 비하면 솔직히 통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대응하나 봐 본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얼음창을 잠시 바라보던 드레이크는 이를 신경도 쓰지 않고 나를 향해 입을 벌렸다.
그와 동시에 따가워지는 몸.
브레스냐?
“카아악!”
화염 전차를 움직이자마자 내 자리를 쓸고 지나간 새빨간 불줄기.
“너 저거 흡수 가능하냐?”
[가능은 하다. 근데 한 번에 다 흡수는 못해. 도망가길 잘했다.]
“원래 드래곤이 저렇게 틈도 없이 브레스를 내뿜냐?”
[음? 드래곤 브레스는 저거랑 차원이 다르다. 저건 그냥 침 뱉은 거라고 보면 된다.]
하. 시바. 침이라고?
뭐 어쨌든 싸워 봐야겠네.
“아이스 스톰은 나가리고…….”
얼음의 창은 드래곤의 비늘을 뚫지 못하고 그대로 튕겨져 나갔다.
일부는 몸에 닿기도 전에 녹아 사라졌는데, 녀석이 숨 쉴 때마다 비늘 사이에서 불길이 확 하고 퍼져 나왔기 때문이다.
쉽지 않아 보이는데.
“흠. 불 공격은 안 통한댔지? 그럼 불사조 너는 그냥 쟤가 내뿜는 불꽃만 먹어 줘.”
[그것도 좋다만 주인이 상대할 동안 마법진을 파괴하는 건 어떻겠는가? 녀석의 시선이 분산될 거다.]
“오! 좋네. 그렇게 하자. 그럼 일단…… 뇌신.”
하늘에서 일단 번개를 쏜다.
꽤 마력을 쏟았는데 비늘을 뚫질 못한다.
마법 방어력도 갖춘 건가.
방어력 대단하고 입에서 불길을 내뿜고 덩치는 산만 하고.
원래 이런 게 보스 몹인데 말이야.
불사조가 빙 돌아 후방으로 날아가고, 나는 검을 들었다.
“커져라. 여의.”
크기는 적당히 벨 만큼 조절한다.
10미터 정도?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강도와 절삭력이지.
최대한 이를 강화한 채 속성을 부여한다.
“아이스 웨폰.”
화염 속성은 쓸모가 없으니 얼음으로 가자.
뇌신을 부여할까 했는데 전격도 뭔가 불과 느낌이 겹친단 말이지.
커다랗게 불어난 검이 금방 얼음으로 뒤덮인다.
그러자 검날의 예리함까지 무뎌질까 걱정되었지만, 다행히 검은 더 날카로워졌다.
드레이크가 몸을 들어 팔을 휘두르고 불길을 뿜어냈지만, 이리저리 피하며 검을 내리찍었다.
쾅!
비늘과 충돌하는 검.
얼음의 마력까지 담은 여의였는데도 비늘을 단번에 뚫지는 못했다.
하지만 효과가 없었던 것은 아닌지 검을 내리찍은 부위에 검은 피가 추르륵 하고 터져 나왔다.
“카아아아!”
“나도 아프다 자식아.”
워낙 단단한 비늘과 부딪쳐서 그런가, 양손이 찢어질 듯 아프다.
신체 능력 강화 안 했으면 내 공격으로 인한 충격에 내 팔까지 날아갈 뻔했다.
능력치 찍길 잘했어.
휭!
드레이크의 커다란 팔을 다시 한번 피한다. 내가 피하자 그 위치를 예측했다는 듯이 날아오는 불길.
드래곤 브레스 급은 아니라니까 실험 삼아 검으로 막아 본다.
방패처럼 검의 형태를 변형, 확대하고 아이스 웨폰을 부여하자, 불꽃을 맹렬하게 버티는 검.
캬. 역시 A급 무기다.
“커져라.”
불꽃이 멎자마자 녀석의 벌린 입을 향해 검을 확대한다.
급하게 고개를 숙여 피하는 드레이크.
그대로 옆으로 휘두른다.
쾅!
으으. 뭔 무게야!
녀석의 머리와 목과 강하게 충돌하는 여의.
검에 녀석의 검은 피가 묻고, 드레이크의 커다란 몸이 휘청인다.
하지만 녀석은 휘청이지만 나는 몸이 날아간다.
굳이 버티면 몸에 무리가 가니, 그냥 날아가며 다시 전차를 소환했다.
“맷집 뭐냐.”
얼굴과 목, 몸까지 베였던 녀석의 몸이 빠르게 재생하고 있었다.
이거 집중 강화를 써야겠는데?
그때 아군의 목소리가 들렸다.
“슬로우!”
“위크니스!”
“바람의 정령이여, 용을 구속하라.”
“땅의 정령이여, 지반을…… 아니, 땅의 정령이 거부한다. 마법진을 뚫을 수 없다고!”
“드레이크의 방어력이 생각 이상입니다. 궁수 분들은 드레이크보다 마법진 위주로 노려 주십시오.”
엄청난 숫자의 마법사가 약화 마법을 펼치고 엘프들이 바람의 정령으로 움직임을 봉쇄하자 효과가 있었다.
녀석의 움직임이 느려진다.
게다가 시선은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불사조와 궁수들로 인해 파괴되는 마법진을 바라보다가, 여의에 베인다.
마치 어디를 먼저 지켜야 할지 모르는 모습.
이성보다는 본능 위주라 그런지, 양동 작전에 턱없이 취약했다.
몇 번 베어 보니 약화 마법이 확실히 효과 있었다.
검이 푹하고 잘 들어갔다.
흠. 좋아. 여기선 최대 화력이다!
“집중 강화. 여의 증폭. 화염 전차. 내려가자!”
여의의 예리함과 강도를 최대한으로 집중시키고 아이스 웨폰을 다시 부여한다.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던 드레이크가 강한 마력을 느낀 듯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지만, 이미 몸을 피하기는 늦었다.
하늘 위에서 그대로 땅으로 화염 전차를 달린다.
그리고 그 속도에 몸을 맡기고 크게 증폭한 여의를 그대로 내리꽂는다.
촤아아악!
검은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간다.
그리고 지금까지 들었던 비명 중 가장 큰 소리가 숲을 뒤흔든다.
“카아아아아아!!”
땅에 처박히기 전 몸을 영체화한다.
그대로 땅에 처박히는 몸.
낙하로 인한 충격은 없다.
여의는 내 손에서 빠져나가, 급격히 작아지더니 다시 단검이 되어 땅바닥에 떨어진다.
툭.
재빨리 줍고 전방을 바라보았다.
머리부터 시작해서 상반신이 그대로 일자로 베인 드레이크.
몸이 이미 둘로 쪼개졌다.
아무리 용의 재생력이라도 살 수는 없겠지.
[레벨 업하셨습니다.]
드레이크 정도 되니까 레벨 업하네.
SP도 많이 벌었겠고, 스탯도 증가했겠다.
온몸은 쑤시지만 기쁜 마음에 상태창을 열어 보려고 할 때, 반으로 갈라진 드레이크 쪽에서 웬 소리가 들렸다.
[이게 무슨 일인가. 스테리오스가 죽다니…… 단 한 번도 없던 일이었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