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 2개-43화 (43/240)

<내 상태창 2개 - 43화>

42. 메인 퀘스트(3)

“뭐? 죽이라고?”

“아니, 죽어라.”

암펠리안의 대검 끝에서 하얀 몽우리가 피어오른다.

그러다 하얀 연기가 흘러나와 한데 뭉쳤다.

흰 배경이 꾸물꾸물하더니 절규하는 얼굴이 드러났는데 귀신인가 싶어 섬뜩했다.

“제압하라.”

그렇게 만들어진 유령은 3개.

모두 나에게 기묘한 궤적을 그리며 천천히 날아왔다.

머리와 가슴, 다리를 목표로 날아오는 유령.

느낌이 그다지 위협적이진 않았지만, 실드를 치고 녀석들을 베었다.

[으아아아아.]

[해방…… 해방되었다.]

[드디어…….]

각자 벨 때마다 환희에 찬 채 사라지는 유령.

신성력이 담긴 검에 베일 때마다 서서히 색이 옅어지며 사라졌다.

뭐지?

허무한데.

하나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영혼을 흡수하다니…….”

푹 파진 해골 눈에서 갑자기 빛이 터져 나오며 그의 기세가 일변했다.

붉은 눈의 해골 기사왕.

그가 다시 검을 들자 머리가 뜨끔한 느낌이 들었다.

위험 감지!

당장 몸을 옆으로 피했다.

해골 기사의 검이 허공을 세로로 베자, 세상이 그대로 갈라졌다.

갈라진 대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고, 내가 서 있던 땅이 움푹 갈라지며 땅이 일자로 그였다.

뭐 이런 미친 검격이…….

지금은 제대로 싸워야겠군.

“화염 전차 소환!”

화염 전차를 소환해서 그대로 돌진시킨다.

전력을 다했기에 말의 속도는 최고속.

조금이라도 타격을 줄 수 있겠지.

“태양신의 힘이라…….”

하나 암펠리안의 검이 이번엔 가로를 베자, 화염 전차가 그대로 반 토막 나더니 스르르 사라졌다.

화염 전차가 한 방에 날아가다니……!

아니, 어떻게?

마력도 담긴 공격인가.

A급 스킬이 허무하게 제압당하니 충격적이었다.

동작은 느릿느릿한데 뭐 저리 세?

힘이 센 대신 움직임이 굼뜬 것 같았지만 섣불리 다가가긴 힘들었다.

상식적으로 저렇게 강한데 움직임만 느리다고?

그럴 것 같지는 않아.

자존심은 상하지만 느릿느릿해도 나를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는 거 같다.

원군이 올 때까지는 일단 거리를 벌리고 멀리서 견제하자.

나는 뒤로 물러서며 아르테미스의 활을 소환했다.

암펠리안은 딱히 추격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날 지켜보고 있었다.

어디 재롱을 피워 보라는 듯,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달의 여신의 힘이 느껴지는군.”

마력 화살을 생성하여 쏘자 검을 천천히 움직여서 모두 쳐 내고는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전쟁의 여신의 축복이 이렇게 강하다니.”

저 녀석. 날 분석하고 있다.

혼돈의 주목의 일환인가?

화살을 쏘고 공격 마법도 사용했다.

분석을 당해도 공격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가만히 있다가 죽을 수도 있고.

“플레임 스트라이크.”

아테나의 마법 총서의 힘 덕에 마법 스킬 레벨이 올라서 배울 수 있었던 4서클 화염 마법.

암펠리안이 디딘 땅에 불의 원이 그려지더니 화염이 치솟는 강력한 공격 마법이다.

오우거도 단번에 태워 버리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는데, 암펠리안은 땅에 생긴 불의 원을 힐끗 보더니 그저 발로 짓밟고 뭉개 버렸다.

아니 시발…… 뭐야 저놈.

“4서클 마법. 클래스는 마법사도 아닌데 사용하다니…… 이런 경우는 지혜의 여신이 관여했을 때겠군. 맞아. 이번 대는 전쟁의 여신과 지혜의 여신이 같다고 했지.”

아테나 말하는 건가?

혼자 분석하면서 공격을 하나하나 평가하는 데스나이트.

그 어떤 공격을 해도 하나도 통하지 않았다.

이거 원군을 불러도 그냥 다 쓸리는 거 아닌지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래도 올 때까지는 버텨야 해.

관성적으로 시위에 화살을 놓고 쏜다.

당연히 대검으로 이 공격을 막겠거니 생각하며 견제용으로 쏜 화살.

하나 이번엔 검이 움직이지 않았다.

푹!

그대로 몸에 화살을 맞고 꿰뚫리는 암펠리안.

그의 가슴 부위가 신성한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타오르는 자신의 가슴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신성력이 막대하다. 엄청난 신의 총애…… 그리고 자연스럽게 상대의 영력을 흡수하는군. 격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나 암펠리안의 영력을 흡수하다니.”

딸각딸각.

해골의 이빨이 서로 맞부딪친다.

얼굴이 왠지 묘하게 웃는 거 같은데 느낌이 섬뜩하다.

“사령대제님의 말씀이 맞았어. 일부라지만 죽을 가치가 있군.”

가슴이 불타는 해골 기사가 검을 다시 움직인다.

검 끝을 땅으로 향하더니, 그대로 푹 꽂아 버리는 암펠리안.

그러자 지반이 통째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아직 서 있기엔 무리가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땅이 더 흔들릴 것 같다.

일단 대응한다.

“플라이.”

4서클의 비행 마법.

몸이 가벼워지며 서서히 땅에서 멀어진다.

너무 대지와 멀리 떨어지면 비행 마법의 컨트롤이 힘들어지기에, 적당히 5미터 정도만 떠 있었다.

“화염 전차 소환.”

검을 땅에 꽂고 있는 암펠리안에게 다시 한번 화염 전차를 보내고 허공에서 활을 쏘았다.

마력 화살과 함께 날아가는 화염 전차.

암펠리안은 그저 그 공격을 바라만 보다가, 그대로 몸에 맞았다.

화르르륵.

온몸이 신성한 불꽃으로 불타오르는 암펠리안.

그럼에도 그의 본신에는 전혀 타격이 가지 않은 것 같았다.

화염 전차가 계속 그를 불태우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젠장. 뭐 어쩌라는 거지?

양심적으로 조금이라도 타격을 입어야 하는 거 아니냐?

“열려라. 망자의 문이여.”

지반이 무너진다.

땅이 통째로 사라지고 백회색의 음산한 안개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리고 거기서 아까 봤던 유령들이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움직임은 느릿느릿한데, 유도 미사일처럼 나를 향해 돌진해 오는 유령들.

마치 내가 먹잇감이 된 느낌이다.

으. 전력을 다하자.

“전신의 가호.”

이들이 투사체는 아니지만 그래도 능력치 상승만으로도 쓸 만하다.

내 스킬을 보고 흥미로워 하는 암펠리안.

“전쟁신의 축복까지…… 소질은 형편없는데 신의 축복을 받고 있군.”

아오. 저 시키가.

내 소질을 지가 어떻게 알고 저 지랄이야.

[인간이다……!]

[구원…… 구원해 줘!]

[같이 나락으로 떨어지자…… 흐히히히…….]

절규하는 유령.

광기에 젖은 미소를 짓는 유령.

표정이 각기 다양한 유령이 바닥에서 용솟음치며 쏟아져 나온다.

다행히 속도가 느려서 대응을 할 수 있다.

나는 최근 터득한 4서클 마법을 시전했다.

“체인 라이트닝.”

손끝에서 벼락이 친다.

아테나 여신 덕에 신성력이 포함된 노란빛의 뇌전.

[구원받았다……!]

유령이 환호를 내지르며 소멸하고, 뇌전은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나에게 몰려오던 귀신들이 오히려 번개를 맞기 위해 몰려든다.

죽고 싶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

이 미친놈들은 대체 뭔지…….

일단 하늘 위로 좀 더 날아가며 공격 마법을 총동원했다.

신성력의 축복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등골이 섬뜩한 상황.

무기가 아니라 마법에도 신성의 힘이 깃들여 유령들은 그저 초토화되고 있었다.

그렇게 적을 죽이면서도 시선은 암펠리안에게서 떼지 않는다.

그는 땅에 검을 꽂은 채 가만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온몸이 불타오르지만, 전혀 불을 끄려는 모양새가 아니다.

오히려 이를 즐기듯이 딸각딸각하며 웃음을 짓는 데스나이트.

갑자기 조금 전, ‘죽여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죽을 가치가 있다는 것도.

지금 이렇게 유령에게 포위당하고 있을 때 저 녀석이 아까의 검격을 몇 번 더 휘두르면 분명 힘든 상황이 왔을 텐데…….

그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나를 봐주듯이 내가 감당 가능한 공격만 한다.

혹시 일부러 나한테 죽으려고 그러는 건가?

그래서 화염 전차도 그냥 돌아다니게 놔두고 신성의 불꽃도 끄지 않는 건가.

“화염 전차 소환.”

일단 화염 전차를 내 주변으로 다시 불렀다.

마치 일부러 피해를 누적시키는 이상한 행동에 일단 주변의 유령부터 제압하기로 한 것이다.

히히히힝!

화염 전차가 허공을 뛰어다니며 유령 무리를 불태운다.

어느 정도 공간이 생기자 화염 전차에 올라타 일단 후퇴해 보기로 했다.

계속 싸워 봤자 분석만 당하는 것 같단 말이야.

쿵!

어느 정도 달리자 갑자기 화염 전차가 벽에 가로막힌 듯 전진하지를 못했다.

허공에서 이리저리 뛰어 봐도 더 이상 나아가질 못하는 화염 전차.

“혼돈의 장벽을 영웅 등급이 넘을 수는 없지. 이미 성화는 붙었다.”

저 멀리서 말하는데도 귓가에 쏙쏙 꽂히는 암펠리안의 음성.

“네가 더 이상 공격하지 않는다면, 내 힘을 더 쓰면 그만.”

갑자기 유령이 튀어나오는 속도가 미친 듯이 빨라졌다.

속도도 느릿느릿하던 게 두세 배는 더 빨라지고, 그 양도 늘어난 상황.

이제는 화염 전차를 보호용으로 써야지 안 그러면 잡아먹히게 생겼다.

[구원을!]

[어서 죽여 줘……!]

[으히히히…… 인간…… 인간이다…….]

어느덧 사방은 유령에게 포위되었고 해일처럼 밀려오는 녀석들을 막기 위해 온갖 마법을 갈기기에도 힘이 들었다.

화염 전차가 없었으면 벌써 잡아먹혔겠지.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유령을 막는다.

다행히 그가 말했던 혼돈의 장벽은 유령도 뚫지 못해, 허공에서 등을 기대자 뒤는 공격당하지 않았다.

[이리로 오면 죽을 수 있다!]

[다들 이리로 와!]

[인간을…… 잡아먹자…….]

암펠리안 쪽은 보이지 않은 지 오래.

이럴 때 녀석이 공격하면 정말 바로 죽었겠지.

그는 그저 유령만 보내고 있었다.

몇 분간을 유령과 사투를 벌였을까.

약간 적의 공세가 뜸하다 싶었다.

유령을 더 없애고 좀 더 날아오르니 암펠리안이 땅에서 검을 뽑아 들고 있었다.

그가 서 있는 땅만 그대로 형태를 유지하고, 나머지는 움푹 꺼진 채 있는 모습.

사방이 깎인 절벽에 혼자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 유령에게 쫓기는데 이 자식은 폼 잡고 있군.

“이 정도 불탔으면…… 괜찮겠군.”

암펠리안의 붉은 눈빛이 서서히 줄어든다.

그는 검을 땅에서 완전히 뽑아 들더니, 자신의 가슴을 푹 하고 찔렀다.

가슴뼈가 모두 으스러지며 그의 몸 가운데가 텅 빈다.

그리고 그대로 쳐올리는 검.

휙.

해골 머리가 날아간다.

신성한 불에 타오르는 해골 머리가. 그 목은 나를 향해 날아오다, 내 눈앞에서 멈췄다.

“영혼을 다루는 자. 주군의 방문을 기다려라. 나중에 또 보지…….”

딸깍. 딸깍.

날 보고 묘한 미소를 지으며 불타 사라지는 암펠리안.

그가 사라지자 지반이 서서히 올라오며 유령들도 어느새 모습을 감추었다.

짙은 어둠이 사라지고 달빛이 다시 세상을 비춘다.

모든 것이 원래대로였다.

땅도 다시 올라와 있었고, 사투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멀리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플라이 마법을 해제하고 땅에 다시 착지하자, 사람들이 내게로 뛰어왔다.

“지호 씨. 괜찮아요?”

“사도님! 무사하셨습니까?”

강시아와 디아나가 다가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습니다만……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제가 빠져나오자 커다란 암흑의 기둥이 생겼어요. 그리고 밖에서 무슨 수를 써도 부서지지가 않았어요.”

“정령 요새의 힘을 모두 동원해서 두들겨도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강시아의 설명은 이랬다.

원군을 데리고 오기 위해 암흑 공간을 빠져나왔는데, 그녀가 빠져나오자마자 짙은 어둠이 커다란 기둥처럼 우뚝 솟았다고 했다.

빛조차 한 점 들어가지 않는 기묘한 암흑 공간.

들어가려고 해도 튕겨 나와서 외부에서 공격을 해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요새의 헌터들을 모두 모아 화력을 집중해도 꿈쩍도 안 해서 그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암흑 공간이 저절로 사라지더니 내가 하늘 위에 있었다고 했다.

그게 혼돈의 장벽인가.

하아. 스케일이 다르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그 데스나이트는 어떻게 됐나요?”

강시아의 질문에 답하려는 순간, 시스템 창에 갑자기 장문의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데스나이트 킹 암펠리안이 격퇴당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업적입니다. 피해 수치에 대한 분석에 들어갑니다.]

[보스 몬스터 데스나이트 킹에게 가장 많은 타격을 입힌 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1위 : 김지호 - 51.1%

2위 : 데스나이트 킹 암펠리안 - 48.9%]

[데스나이트 킹 암펠리안 제압이 성립됩니다.]

이 자식…….

그렇게 시간을 끌면서 화염 전차의 불꽃에 불타던 이유가 이거였나?

나 1등 먹으라고?

대체 왜?

[데스나이트 킹 암펠리안을 격퇴하였습니다.]

[이룰 수 없는 업적입니다. 상대 진영에서 이의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혼돈 진영에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질서 진영에서 보상을 보류합니다.]

왜 보상을 보류해요, 라는 말은 나오지가 않았다.

적의 의도가 대체 뭔지 아직 완전히 파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속 시스템 창을 읽었다.

[데스나이트 킹 암펠리안의 영혼을 일부 흡수합니다.]

[격이 맞지 않습니다. 완전한 원형 유지 스킬의 등급이 부족하여 여과가 불가능합니다. 극소량만 흡수합니다.]

[능력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혼돈의 반신격을 일부 흡수했습니다. 혼돈의 소질을 개화 가능합니다.]

[혼돈의 소질을 개방하시겠습니까?]

이놈…… 이것 때문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