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 2개-42화 (42/240)

<내 상태창 2개 - 42화>

41. 메인 퀘스트(2)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케브리안.

2천 명의 헌터들은 결사의 각오를 품은 채 전장에 왔으나, 막상 적은 5일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성문이 붕괴된 걸 땅의 정령으로 복구했다고는 하지만, 예전처럼 완전한 모습은 아니었기에 지금 들이치면 상당히 고전했을 텐데.

나가겠다는 49명의 헌터는 전장 자체가 싫은지 자살하고 퇴장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사망의 충격을 서서히 잊어 갔다.

“적이 옵니다!”

이제 적이 계속 안 오고 놀다가 메인 퀘스트 깨나 싶더니 적 군단이 또 진군해 오고 있었다.

한데 그들의 모습은 드래곤 브레스를 쓰며 결전을 벌일 때와는 달랐다.

군악대의 북소리에 따라 눈이 풀린 채 돌진해 오는 오우거들.

원정대를 꾸리고 첫날 치른 전투와 비슷한 부대 구성이었다.

“오우거뿐이라면 제압하기 쉽죠.”

성의 정령력도 5일간의 휴식으로 거의 가득 차 있었다.

성벽을 복구하느라 100%는 아니었지만 80%는 될 정도.

정령의 도움으로 방어전을 시작하니, 무작정 돌진해 오는 오우거는 요새의 상대가 아니었다.

처음으로 전투에 돌입한 헌터들은 마지막 날의 전투 이야기를 듣고 잔뜩 긴장했지만, 너무 쉽게 적을 제압하자 다들 희희낙락했다.

“야. 경험치 너무 좋네요.”

“진작 같이 들어올 걸 그랬어요.”

“와이번 부대가 없으니 대응하기가 너무 쉽네요.”

“레벨이 드디어 마의 40을 돌파했습니다.”

든든한 요새와 정령, 그 뒤에서 활과 마법을 쏘는 원거리 직업군은 완전히 꿀을 빨았다.

근접 직업군은 그들처럼 꿀 빨지는 못했지만, 경험치를 못 얻지는 않았다. 오우거가 우르크 석상을 투석기에 싣고 쏴서 그걸 제압하고 경험치를 얻었던 것이다.

헌터들은 다들 행복했다.

“지호 너 믿고 오길 잘했다. 크. 또 레벨 업했어.”

백마인 정령마를 부득불 적토마라 우기면서 성벽을 달리는 이진성. 녀석은 헌터들에게 나름 컬트적인 인기를 누렸다.

“저 이제 조금 있으면 레벨 40이 될 거 같아요. 지호 씨만큼은 아니지만 이 정도 성장 속도면 세계에 유례없을 것 같아요.”

어느새 얼굴이 펴서 내게 손으로 V자를 하며 자랑하는 강시아.

“김지호 님 덕에 정보부 소속이던 제가 레벨이 공무원 중 가장 높아질 지경이군요. 레벨 44라고 정부에 보고하면 연금이 늘 것 같습니다. 미리 감사드립니다.”

특수 요원 간지를 철철 풍기는 스미스 요원도 연금같이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나에게 감사를 표했다.

원정대 다른 일원들도 모두 만족한다며 사도 지휘자 부대에 못 들어간 사람은 어떻게든 들어가고 싶어서 혈안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대로면 성공적으로 성을 수비할 것 같습니다. 모두 사도님 덕분입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음. 괜찮습니다. 아, 혹시 세계수의 나뭇잎 혹시 더 없나요?”

“아니, 아직도 나뭇잎에 잠재력이 오르시나요? 제가 지은 죄가 너무나도 깊군요…… 수소문해 보겠습니다.”

얼굴이 진지해진 채 나를 떠나는 디아나.

굳이 333클럽이란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너무나도 슬프니깐.

어쨌든 4명의 신의 보상 중 굳이 세계수의 첫 번째 열매는 먹을 필요가 없어졌어.

워낙 똥이니까…….

나뭇잎이나 먹자고 흑흑.

성의 분위기는 최고였다.

나 빼고는.

“흠…….”

이런 게 혼돈의 주시인가?

뭔가 컨디션이 안 좋았다.

자꾸 뭔 시선이 느껴지고, 해가 지면 등골이 오싹했다.

능력치를 확 더 올릴까 충동이 들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수호신들이 나를 결사적으로 말렸다.

[아우렐리아가 SP를 더 투자하면 혼돈의 주목이 집중될 거라고 합니다.]

[폴룩스가 이제 며칠 안 남았으니 조금만 더 참으라고 합니다.]

오랜만에 수호신 둘이서 집중적으로 케어해서 굳이 스탯을 찍지는 않았지만, 뭔가 기분 더러운 느낌이 매일 가시질 않았다.

괜히 주시를 받았다고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가?

근데 그렇다기엔 이 껄끄러운 느낌이 너무 지속되었다.

그래서 전투에 돌입했을 때 그냥 적당히 활만 쐈다.

화염 전차도 웬만하면 소환하지 않고, 거의 활로만 오우거를 제압했다.

마법도 이제 슬슬 4서클의 일부를 배우고 있었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동쪽 성벽에 오우거 무리가 돌진해 옵니다!”

갑자기 적이 확 돌진했을 때만 출동해서 드워프가 수리해 준 검을 휘두르고 활을 쐈다.

사실 그렇게 위기 상황이 없는 게, 놀고 있는 전사 각성자가 하도 많아 어디에 적이 많이 투입되었다고 하면 다들 그리로 몰려갔다.

“내 청룡언월도의 맛을 보아랏! 청룡파천!”

“아, 미친 새끼 저거…… 청룡파천은 또 뭐야. 안 쪽팔리나.”

말 타면서 마나로 감싸인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는 이진성.

지 혼자 기술명을 씨부리면서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는데 그냥 마나 블레이드 써서 공격한 거잖아…….

“역시 관우의 화신.”

“나도 질 수 없지. 엑스칼리버!”

“항우 파산검!”

근데 녀석에게 동조하는 몇십 명의 전사들이 있었으니, 같이 말을 타면서 엑스칼리버 이 지랄 하는데 눈과 귀가 썩는 줄 알았다.

다들 기술명 중복은 안 하고 다 신나게 소리치면서 적을 베는데, 삼엄한 전장에서 무슨 짓거린지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나중에는 하도 진지하게 스킬 명을 외치기에 신에게 물어봤을 정도였다.

“진짜 저런 스킬 있어요?”

[아우렐리아가 있겠냐고 냉소합니다.]

[폴룩스가 남자는 저런 낭만으로 전장에서 버티는 거니 너무 뭐라고 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 씨바…….

그래. PTSD로 전장에서 탈주하느니 저렇게 기분 내는 게 낫긴 하다만.

보고 있는데 눈이 썩을 거 같잖아.

“청룡파천? 엑스칼리버? 그게 뭐죠?”

“천상의 나라에서 쓰이는 고함입니다. 적을 제압하기 위한 호통.”

디아나가 옆에서 기술 명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다행히 이 녀석들이 한국어와 영어로 말하는 바람에 쪽팔림을 조금이나마 면했다.

청룡이여 하늘을 부숴라, 하면서 청룡언월도 한번 휘두르면 미친놈 같잖아…….

근데 이 녀석들 기분 내다 보면 분명히 번역되는 여기 언어로 말할 거 같은데.

이진성에게 제발 좀 자제하라고 이야기하자 녀석은 손가락을 까닥까닥하였다.

“자식이 남자의 낭만을 모르는구먼. 내가 C급 되면 진정한 청룡파천을 얻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아오, 그놈의 청룡파천 소리 좀 그만하라고.”

“야. 날 동경해서 사람들이 다 정령마도 구입해서 우리가 이렇게 기마병을 지니게 되었는데 오히려 밀어 줘야 하는 거 아니냐? 저 색히들 요즘 쳐들어오는 기세가 약해졌는데 추격전 해야지.”

“추격전?”

“그래. 기마병이 추격전 해서 싹 쓸어 줘야 할 거 아니냐. 너도 빨리 말을 사든가 그 화염 전차 타고 간지 나게 쓸어 버리라고. 남자의 호연지기를 자극해야 해요. 그래야 전사 직업군이 이 간지를 따라 하기 위해 다 자기 돈 내고 기마병이 되는 거야.”

뒤에 간지 소리는 전혀 귀담을 필요가 없었지만 기마병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도망치는 적을 추격할 때 제일 재미를 많이 본다잖아.

강시아에게 2,000명의 인원 중 혹시 말 소환 가능한 사람이 얼마나 있냐고 물어봤더니 예상외로 220명 정도나 되었다.

“그렇게 많아요?”

“헌터들 중에 워낙 돈 많이 번 사람들이 많아서요. 그래도 쓸모없다는 정령마에 이렇게 투자할 줄은 몰랐네요.”

“근데 막상 말 타고 싸우는 사람은 별로 안 되던데.”

“공성전이라 딱히 말이 필요 없기도 하고. 또…….”

그녀는 말끝을 흐리며 청룡언월도를 신나게 휘두르는 이진성 쪽을 바라보았다.

아, 저놈들이랑 비슷한 취급을 받기 싫다는 건가?

이해된다.

“여차하면 기마병으로 쓸 수 있게 편제를 갖추는 게 낫겠네요.”

“반격까지 생각하고 계신 건가요?”

“제 메인 퀘스트가 성 백 일 동안 지키기인데 이제 거의 다 될 거 같거든요. 그럼 뭔가 변화가 있을 거 같아서요.”

“메인 퀘스트? 그런 거도 있어요? 역시 지호 씨는 일반 헌터들이랑은 다르네요.”

강시아는 신기하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다른 헌터들은 퀘스트 없어요?”

“네. 부서진 세계에서 퀘스트 받았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 봤는데…… 맨 처음 온 사람에게 주어지는 건가. 신기하네요.”

그래? 신기하네.

그렇게 기병을 편제했다. 마법사나 궁수 중에서도 그냥 이동용으로 산 사람이 많았기에 실질적인 전사 기병은 150명 정도였다.

적당히 편제를 끝내고 다시 공성전을 치렀다.

4일이 지나 하루만 있으면 다시 지구로 귀환할 수 있는 시간대가 왔다.

“이번에 가면 정령마를 더 구입하라고 할까요?”

“좋은 생각인 것 같아요. 이 성에서 주면 좋겠는데 그런 건 없다고 하니깐 지구 가서 갖춰요. 아. 아예 원정대 조건에 말을 포함시키는 게 어때요? 다들 그 정도는 감수 가능할 거예요.”

“팔십억인데…… 가능할까요?”

“네. 얼마 안 하잖아요. 모두들 D급 헌터인데.”

80억이 얼마 안 하다니…… 참 강시아랑 이야기하다 보면 돈 관념이 사라진다. 진성이 녀석도 빚지고 사던데.

강시아가 D급쯤 되면 괜찮다고 무조건 갖추자고 주장했다. 돈이 달려도 각 나라에서 원정대를 백업하기 위해 준비할 거라는 논리였다.

그 말에 따라 다음 원정 때는 정령마를 넣기로 했다. 그럼 내일 가서 정령마 사면 2천 명의 기병대를 이끄는 건가?

아니, 사도 지휘자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굳이 강요할 필요는 없겠지. 그럼 최소 천 명이려나.

“지휘 부대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강제로 사라고 하긴 좀 그렇죠. 그건 선택에 맡겨요.”

그래도 다들 살걸요? 하면서 강시아는 씩 웃었다.

아니 80억이 그렇게 가벼운 수치였어?

C급이 되고 나서 뭔가 돈에 초연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럴 때마다 불쑥불쑥 내가 원래 가졌던 금전 감각이 튀어나왔다.

이해하려면 시간이 더 걸리겠어.

그렇게 그녀와 성에 마련된 각성자 전용 숙소로 가고 있을 때, 갑자기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시아 씨. 잠깐만요.”

그대로 멈춘 채 검을 뽑아 들었다.

그녀를 뒤로 보내고, 전방을 주시했다.

어둠이 일그러지더니, 갑자기 검 한 자루가 튀어나왔다.

뼈를 깎아 만든 듯한 본 소드.

검의 크기는 나만 했다.

그리고 해골이 달린 손잡이를 뼈 손이 쥐자, 사방으로 어둠이 퍼져 나갔다.

달빛이 완전히 차단되고, 빛이라고는 내가 쥔 검의 신성력밖에는 없는 상황.

어둠 속에서 커다란 해골 기사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검은색 갑주를 착용한 그를 보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강하다.

C급이 되고 충만했던 자신감이 흔들렸다.

[폴룩…….]

[아우…….]

메시지가 끊겨서 나온다.

시스템 메시지까지 차단하다니,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상황.

나 혼자서는 힘들겠어.

“시아 씨. 디아나 님을 데려오세요. 혼자서 상대하기 힘들 것 같아요.”

“아…… 네!”

강시아가 잠시 멈칫하다가 뒤돌아서 뛰어갔다. 나를 도우려는 듯 활을 들었지만, 그거보다 구원 요청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 거겠지.

강시아가 사라지는 걸 그저 가만히 지켜보는 해골 기사. 딱히 방해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는 강시아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뼈를 딸각거리며 입을 열었다.

“네가 김지호인가.”

“그래. 누구냐.”

“데스나이트 킹 암펠리안.”

암펠리안?

사령대제의 멸망의 4기사 중 하나.

분명 D급 전장의 최종 적이라고 들었는데.

왜 여기서 튀어나와?

근데 그렇다고 하기엔 그다지 강해 보이지 않았다.

지구에서 그렇게 겁 준 거에 비해서는.

물론 나랑 1:1하면 내가 힘들겠지만, 여기는 우리의 본거지.

원군이 오기만 하면 녀석이 쓸릴 텐데.

디아나만 와도 상대가 가능할 거다.

무슨 생각이지?

그는 주위를 잠시 둘러보더니, 느릿느릿 검 끝을 나에게로 향했다.

“자. 죽여…… 아니 죽어라. 김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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