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 2개-39화 (39/240)

<내 상태창 2개 - 39화>

38. 만신전의 초청(1)

사령대제.

혼돈의 군주 중 하나로 케브리안을 마지막에 끝장낸, 게임으로 치면 최종 보스.

근데 왜 벌써 나와?

데스나이트 킹이면 모를까, 왜 벌써 최종 보스가…….

언약은 또 뭐지.

괜히 피닉스에게 전력을 다하라고 했나?

[아우렐리아가 C급에 오른 이상 드러나게 될 일이었다고 합니다.]

당신들은 뭔가 알고 있죠?

[폴룩스가 지구에 귀환하게 되면 금방 알려 주겠다고 합니다.]

지구 귀환이라.

오늘 전투에서 저 겁 없는 놈들이 겁에 질려 퇴각했으니, 며칠 동안은 소강상태일 거다.

전력을 좀 가다듬다가 지구로 돌아가야지.

사령대제가 주시한다고 해서 뭐가 튀어나올까 긴장했지만, 딱히 그 메시지 이후로는 별 변화가 없었다. 아직은 단지 주시 중인 건가.

“하…… 시바 진짜 죽는 줄 알았네.”

내가 생각을 하고 있자니 피와 먼지로 가득 물든 백마를 타고 진성이 다가왔다.

녀석의 갑옷은 거의 넝마나 다름없었으며 손에는 자랑하던 청룡언월도 대신 우르크의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살아 있네?”

“우리 적토마가 아니었으면 세 번 다 죽었을 거야. 싸우다가 튀고 싸우다가 튀고를 반복했지. 그래도 한 번은 죽었다.”

“자식. 레벨 업은 좀 했냐?”

“와! 레벨 업 개 미쳤어. 너 마지막에 뭐 한 거냐? 군단 경험치가 갑자기 팍 뛰었네. 레벨이 무려 36이야. 죽어서 페널티 받았는데도 36이라니…… 완전 꿀이다, 꿀. 이러다 우리 길드 에이스도 꿈이 아닐 거 같아.”

레벨 업 이야기가 나오자 눈을 빛내는 이진성.

근육질 빡빡머리가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는 걸 바라지는 않았는데.

“짜식. 오늘 나 아니었으면 끝난 거였어.”

“하긴 니가 그 말도 안 되는 기술을 쓸 줄 누가 알았겠냐? 죽은 사람 중에 전쟁에서 지는 줄 알고 재부활 안 한 사람들도 많더라.”

“아…… 어차피 요새 함락되면 세계 리셋되는 걸 노리고?”

생각해 보니 그런 방법이 있었네.

케브리안에 혼자 있을 때는 내가 들어가야 세계가 재생되었지만, 사람 여럿이 있으면 굳이 안 들어가도 세계는 돌아가니깐.

싱글 플레이 게임이 온라인 게임된 격이네.

“어. 나는 와이번한테 석상 맞고 죽었거든. 그래도 다시 부활해서 왔는데, 원래 세계로 돌아왔을 때 보니깐 사람들이 그냥 눈치만 보고 있더라. 뭐 죽음이 고통스러워서 충격에 빠져 있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어떻게 보면 죽고 나서 바로 달려오는 게 이상한 거지. 처음 느껴 보는 고통이잖아.”

“아냐. D급까지 올라온 헌터가 그러면 안 되지. 정신력이 그리 약해서야…….”

쯧쯧 하며 괜히 턱을 쓰다듬는 이진성. 이젠 수염도 기르는지 턱수염도 듬성듬성 나 있었다.

“근데 넌 대체 뭐냐. 그 미친 기술은. C급이라도 된 거냐?”

“어. 형 C급이다.”

“헐. 미친……! 지구상 최초네?!”

“김지호 헌터님. 정말 C급이십니까?”

나와 진성이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끼어들었다.

얼굴을 보니 저번에 끼워 준 CIA 소속 스미스 헌터.

그의 표정은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드디어 세계 최초의 C급이 나왔군요! 사실 저희 미국의 데이비드가 레벨 49여서 그가 먼저 될 줄 알았는데…… 각성한 지 얼마 되지도 않으셨는데 그저 놀랍습니다.”

“49렙이면…… 그분도 지금쯤이면 C급이 되었을 수 있겠네요.”

“49렙에 머물러 정체 중인 지 벌써 삼 주째라고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나저나 C급이 되면 아까 같은 어메이징한 스킬을 쓸 수 있는 겁니까?”

스미스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물었다. 불사조 이야기인가 보군.

“C급이라 가능했지만, 저로서도 아주 무리해서 사용한 스킬이었습니다. 마력 능력치가 영구적으로 3 떨어졌으니까요.”

“아니, 스탯이 떨어지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정말 희생이 크셨군요.”

“마력이 떨어졌어? 스탯 포인트 모으기도 힘든데 어떻게 하냐…….”

둘 다 어두운 표정이 되어 날 걱정해 주었다.

뭐 이렇게 걱정을 다 하고…… 아.

일반적으로는 2레벨당 1포인트 받는 게 끝이니, 3이면 6레벨이 떨어진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겠구나.

사실 나로서는 SP로 능력치를 올릴 수 있으니, 타격이 크기는 했지만 그래도 버틸 만한데.

SP도 어마어마하게 얻었을 텐데 그거나 확인해 봐야겠다.

“승리한 건 기쁘지만 제 능력치를 한번 돌아봐야겠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죠.”

“예. 알겠습니다. 마력을 잃으신 점, 정말 유감입니다.”

“쩝…… 힘내라.”

둘이 물러나자 난 상태창을 둘러보았다.

먼저 질서 진영을 보자 레벨은 54가 되어 있었다.

불사조의 날갯짓으로 와이번을 싹 다 쓸어 버리고 땅까지 지옥도로 만든 게 주효한 건가.

어떻게 보면 한 전장을 완전히 불바다로 만들어 버렸는데, 겨우 4레벨밖에 안 오른 건가 싶기도 했다.

이제 레벨 업은 점점 힘들어지겠지.

예전에 힘과 민첩은 35, 35였는데 성에 들어와서 미친 듯이 싸우다 보니 두 능력이 모두 40대가 넘어 있었다.

특성 흡수가 대규모 전투에서 빛을 발한 것 같았다.

거기에 마력이 3 떨어졌다지만 그간 흡수한 게 있어서 막상 떨어진 건 1 정도.

능력치를 대강 둘러보니 아무리 봐도 마력을 흡수할 수 있는 몬스터가 적은 것 같다.

흠…… 포인트 10 있는 걸 마력에 몽땅 투자하자.

대규모 전투에선 마력이 확실히 쓸 만하단 말이야.

[이름 - 김지호

클래스 - 영혼 중개자

수호신 - 쌍둥이자리의 신 폴룩스

칭호 - 박쥐 각성자

레벨 - 54

힘 ? 42, 민첩 ? 41, 마력 - 63SP ? 152.2]

영혼 중개자는 확실히 부서진 세계에 있어서 그런지 SP가 잘 안 모이는군. 그럼 중립 진영을 봐 볼까. 아까 대규모 학살 후 얼마나 SP가 찼을까 두근두근하다.

[이름 - 김지호

클래스 - 영혼 약탈자

수호신 - 화산의 신 아우렐리아칭호 - 지구의 선구자(영웅)

레벨 - 54

신체 - B

마력 - B

기예 - B

행운 - B

SP ? 5,112

능력치 포인트 + 2]

SP 5,112!

아까 3천 써서 110밖에 안 남았는데 5천이 올랐다.

허. 이거 너무 많은데?

영혼 약탈자 스킬의 레벨이 올라서 더 효율이 좋아졌나.

자세히 보니 전반적으로 B 글자들도 조금씩 차 있었다.

특성 흡수로 능력치도 올랐나 보군. 행운만 안 올라서 능력치 포인트 2개를 행운에 투척했는데 게이지가 조금 차고 그쳤다.

이제 이 5천으로 어디에 투자할까.

능력치 게이지를 채울까 하다가 문득 상점이 생각났다. 지금은 C급이니 다른 물건도 살 수 있지 않을까?

프리미엄 상점창을 열어 보니 저번보단 아이템이 몇 개 더 있었다.

근데 랜덤 박스가 아니면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쌌다.

예를 들어…….

[재생하는 검, 그람] - SP 40,000.

뭔 검이 SP 4만이야.

그람. 어디서 들어 본 거 같긴 하다만…… 설명이라도 볼까 했는데 SP가 부족하다는 메시지만 떴다.

그저 살 만한 건 랜덤 박스뿐이다.

[C~E등급 랜덤 박스 - 아이템, 스킬] - SP 500

[C~E등급 랜덤 박스 - 아이템] - SP 1,000

[C~E등급 랜덤 박스 - 스킬] - SP 1,000예전에 D~F 랜덤 박스에 비해 가격이 10배씩 올랐다.

그래도 이건 뽑을 만한 것 같은데…… 일단 지구 가서 뽑아 볼까. SP가 또 필요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

대강 능력치 보강을 끝마치고 반파된 요새 안으로 들어가자 디아나가 다가왔다.

적의 피와 흙, 그을음으로 지저분해졌지만 미모는 어디 가지 않았다.

“아, 사도님. 무사하셨군요!”

“디아나 님도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예. 자이언트 웜까지는 어떻게든 막았지만, 와이번들이 몰려올 때는 최후의 수단을 써야 하나 싶었는데…… 불사조의 신위에 모두 무사했습니다. 정말 김지호 사도님께는 신세만 지는군요…….”

그녀가 정중히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하나 내 귀엔 최후의 수단이란 말만 들려왔다.

으으. 또 분노의 정령 소환하려고 그랬나. 하긴 그 와이번 떼거리 못 막았으면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으니…….

그때 내 선택이 잘한 선택이었군.

“그런데 불사조는 왜 모습이 보이지 않나요? 혹시 이상이라도…….”

디아나의 질문에 마치 대답하듯이 하늘에서 불사조가 흐느적흐느적하며 내려왔다.

아까 독수리처럼 위풍당당한 기세는 어디 가고 참새처럼 작아진 불사조.

녀석은 내 머리 위에 떨어지듯이 내려섰다.

[후…… 너무 무리했다. 원래의 몸으로 회복하려면 이 주일은 걸리겠어.]

“나 마력 많이 늘렸는데도?”

[그래서 이 주 걸려.]

“그래 한 건 했으니 좀 쉬어라.”

[그럼 잠시 주인의 몸에서 쉬도록 하지.]

화르르륵.

불 지피는 소리가 머리 위에서 잠시 들리더니 사라지고 이마가 화끈했다.

헤파이스토스의 갑주를 해제해서 이마를 만져 보니 뭔가 화끈한 게 만져졌다.

“이걸로 보세요.”

디아나가 양손을 펼치자 물의 거울이 나타났다.

머리카락을 들어 보니 이마 가운데는 불사조 모습의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

자식. 별 걸 다 하네. D급 때는 못하더니.

“와. 그건 그렇고 나 진짜 못생겼네.”

거울 속 비친 내 모습은 피와 땀, 먼지로 젖어 참 못 봐 줄 꼴이었다. 이런 미녀한테 추한 모습을 보일 줄이야. 하긴 한낱 인간 종족이 어찌하리오.

“아니에요. 정말 멋있으세요.”

“네? 혹시 더러운 게 좋으신지?”

디아나가 너무 단호하게 부정하자 반문이 저절로 나왔다.

내 눈엔 내가 너무 못생겨 보이는데.

특이 취향이셨나?

“아니에요! 저도 깔끔한 거 좋아해요! 그게…… 으. 말로 설명을 못 하겠는데…….”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이던 디아나가 갑자기 물의 거울을 내 쪽으로 던졌다.

물의 거울이 퍼져 나가며 내 몸을 감쌌다.

“제…… 제가 물의 정령으로 씻겨 드릴게요.”

갑자기 몸이 물속에 잠기는 느낌이 들더니 온몸이 구석구석 박박 닦이기 시작했다.

얼굴도 물로 박박 닦여서 눈도 못 뜰 지경.

그래도 너무 시원했다.

몸의 때까지 다 벗겨 주는 느낌?

하…… 이대로 자고 싶을 정도다.

몇 분간의 정령 샤워가 끝나자 온몸이 말끔해졌다. 그리고 디아나도 나 씻겨 주는 김에 자기도 씻었는지 어느새 깔끔해진 상태였다. 그녀의 얼굴은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전 엘프들과 땅의 정령으로 성을 수리하러 가 보겠습니다.”

“아…… 네. 그러시죠.”

나에게 꾸벅 인사를 하더니 쏜살같이 사라지는 디아나.

음…… 화났나?

그래 아무리 그래도 더러운 취향이라고 하는 건 실례인가.

히히. 그래도 하이 엘프한테 잘생겼단 이야기를 듣다니. 내 얼굴이면 엘프들에게 먹히는 거 아냐?

크. 알았으면 진작…….

“김지호 헌터님이 엘프들에게 잘생겨 보이는 얼굴이냐고요?”

“네.”

“저희도 외모 봅니다.”

“그러니까 그 취향이 말이죠.”

“오히려 다들 잘생겨서 눈이 더 높아요. 더욱 황금 비율을 따지죠. 김지호 헌터는…… 훗…… 능력은 뛰어나세요.”

“네…….”

라이아나가 날 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린다.

아아아. 젠장. 뭐야?

니가 케브리안에서 나보고 잘생겼다고 했다고!

엘프한테 먹히는 외몬가 싶어 어깨 뽕이 들어갔었는데, 그대로 빠진 채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요새에서 하루 더 머문 우리 부대는 10일째가 되자 모두 귀환했고, 지구로 돌아오자마자 하이 엘프 라이아나를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내가 C급이 된 걸 이미 알고 있었는지 나에게 황급한 용무가 있다고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그래서 가는 길에 디아나가 생각나 물어본 건데…….

개쪽 당했어…….

“근데 어디 가는 거예요?”

“저희는 판테온, 만신전에 갑니다.”

“만신전요?”

“예. 영혼 중개, 더 하셔야 하지 않겠어요? 이제 영웅 등급이 되셨으니 만신전에 초청받을 자격이 되셨습니다.”

그녀의 말에 영혼 중개 스킬을 살펴보았다.

[영혼 중개 LV2]

[수호신들의 영혼 흡수를 중개합니다. 40%의 효율을 창출하며, 사용자는 개중 최대 15%를 수수료로 받을 수 있습니다. 최대 6명의 수호신과 중개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3명 더 가능하구나.

거기에 효율은 20%에서 40%로 증가하고 수수료도 5% 더 챙기네.

“영혼 중개자님의 성장에 신들께서도 기대가 큰 상황입니다. 이번엔 만신전에 가시는 만큼, 더 많은 신께서 좋은 제의를 해 주실 겁니다.”

그녀의 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외모로 팩트 폭행 당한 것도 금방 잊을 수 있었다.

더 많은 신이라니. 뭘 받을 수 있을까. 즐거운 선택 시간이로구나.

뭘 받을지 생각해 보며, 그녀를 따라 빛의 포탈 게이트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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