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38화>
37. 최초의 C등급(2)
드디어 C.
거기에 내가 지구인 최초라니.
나보다 1년 먼저 각성자가 된 사람들도 있었는데…….
사도 지휘자를 택한 건 정말 잘한 일이었어.
나는 당연히 승급을 진행했다.
[각성자 등급 C로 승급하셨습니다.]
[클래스 스킬이 강화됩니다.]
[영혼 중개 스킬이 LV2가 됩니다.]
[영혼 약탈 스킬이 LV2가 됩니다.]
[특성 흡수 스킬이 LV2가 됩니다.]
[영격 강화 스킬이 LV2가 됩니다.]
[영격 강화 스킬이 올라, 능력치의 한계가 늘어납니다.]
오, 좋아.
이 스킬들 어떻게 올리나 궁금했는데 등급이 오르니까 가능한 거였구나.
스킬 설명을 차근차근 보고 싶었지만, 우르크 놈들이 지치지도 않고 달려들고 있었다.
“아오, 이 지겨운 놈들.”
높이 뛰어올라 우르크의 머리를 하나하나 박살 낸다. 그러며 잠시 여유가 생길 때 중립 진영 상태창을 열어 보니 SP가 3,710이었다.
이제 모든 능력치가 B로 가능할 테니 일단 마력, 기예, 행운을 B까지 올렸다.
그리고 34레벨에서 50이 되면서 받은 능력치 포인트 8을 마력에 몽땅 투자했다.
하얀 B 글자의 아랫부분 4분의 1 정도가 파란색으로 물들었다.
[이름 - 김지호
클래스 - 영혼 약탈자
수호신 - 화산의 신 아우렐리아
칭호 - 오크 정복자
레벨 - 50
신체 - B
마력 - B
기예 - B
행운 - B
SP ? 3,110]
캬! 깔끔하게 올 B군.
칭호도 박쥐 각성자는 질서에 다시 넣고 중립 진영의 칭호는 새로 받은 ‘지구의 선구자(영웅)’으로 교체했다.
[지구의 선구자(영웅)]
[등급 B.]
[지구인 중 최초로 C등급, 영웅 등급에 도달한 이에게 주어지는 칭호. 모든 능력치가 10% 상승합니다. 자신의 등급이 C등급일 때만 효과가 있습니다.]
오! 능력치 10% 상승이라니.
이런 쏠쏠한 효과가 있나.
C등급일 때만 가능한 게 단점이지만, 내가 B로 오르면 또 지구의 선구자 B를 주지 않겠어?
원래 쓰던 오크 정복자 이 칭호는 오크들이 겁먹는다더니, 드래곤에 애들이 홀려서 그런 건지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는데…….
“사도가 약해졌다!”
“지금이 기회다!”
효과가 없는 건 아니었나?
칭호를 바꾸자 우르크들이 내가 약해졌다고 생각하며 더욱 맹렬히 공격해 왔다.
지금까지 덤벼 온 게 나름 졸아 있었던 거였어?
질긴 놈들…….
“화염 전차 소환.”
한층 강화된 마력 덕에 화염 전차를 다시 소환하자 말이 4필에 전차가 더 크게 업그레이드되어 있었다.
라이아나가 처음 나에게 시연했을 때보다는 아직 약간 작았지만, 말 숫자는 똑같아졌다.
“달려!”
마력이 강화된 화염 전차가 지나가자 그 궤적을 따라 땅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원래도 가는 길에 발맞추어 불길이 올랐으나, 그 크기가 2배 이상 커진 상황.
거기에 불도 금방 멎지 않고 꽤 오랫동안 지속하며 활활 타올랐다.
“크아아아아!”
“불길이…… 더 강해졌다!”
“샤먼. 샤먼은 뭐 하나!”
불의 전차가 신나게 달리며 전방을 불바다로 만든다.
우르크들이 괴로워하며 타오르자 지금까지와는 다른 감정이 느껴졌다.
기분이 좋았다.
불에 타오르는 우르크를 보는 게 기분이 좋았고, 그들이 비명을 지르는 게 기분이 좋았고, 자신의 동료를 구하려다 같이 불길에 휘말리는 게 기분이 좋았다.
그만 귀찮게 하고 다 뒈져라.
불길을 어떻게든 피해서 나에게 다가오는 우르크의 머리를 주먹으로 박살 낸다.
콰직.
투구가 찌그러지고 두개골이 박살 났다. 내 건틀릿이 피로 물들며, 주먹에서 물컹한 것이 느껴졌다.
아아.
뇌인가?
물컹한 것을 잡아 쥐자 푹 하고 눌린다. 우르크의 어깨에 올라타 머리 안을 헤집고 헤집는다.
재밌다.
박살 나는 머리가 재밌고, 더 이상 서지 못하고 쓰러지는 몸도 재밌다. 등골이 찌릿하며 신경을 일깨우는 쾌감이 오싹해서 기분이 좋았다.
쿵.
우르크의 몸이 완전히 떨어지자 옆의 놈에게 이동해 똑같이 머리를 박살 낸다.
또다시 기분이 짜릿해진다.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지금까지 적을 죽여도 이런 기분까지 느낀 적은 없었다.
아…….
뭐지? 쳐 죽이는 게 이렇게 강렬한 자극이었나?
적을 정복하고 짓밟고 학살하는 게 이렇게 재미있었나?
강화된 화염 전차로 인해 불지옥이 펼쳐지자 입가에 미소가 절로 났다.
왜 지금까지 이런 재미를 몰랐을까.
기분이 아주 좋아.
[폴룩스가 벌써 정신이 물드냐고 한심하게 바라봅니다.]
[아우렐리아가 자신을 잃기 전에 빨리 원형 유지 스킬을 업그레이드하라고 합니다.]
갑자기 메시지가 떴다.
등에 찬물을 끼얹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 등급이 올라서 원형 유지 스킬이 완전히 작동을 안 한 건가?
그게 있고 없고의 차이가 이렇게도 컸어?
내가 느낀 감정, 살육을 즐기던 쾌감이 우르크의 성질이었나?
녀석들의 영혼을 약탈하면서 같이 딸려 온 것인가?
소름이 돋았다. 나는 서둘러 프리미엄 상점창을 열었다.
우르크의 공격은 대강 피하면서 원형 유지 스킬을 빨리 검색했다.
구매 가능 목록은 3개.
[기본 원형 유지 LV1]
[고급 원형 유지 LV1]
[완벽한 원형 유지 LV2]
완벽한 원형 유지 LV2를 구매하려고 누르니 SP가 3천이 들었다.
아…….
다행이다.
난 바로 SP를 쏟아부었다.
중립 진영 SP는 이제 110밖에 남지 않았지만, 전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게 SP가 4천이나 5천이 들었다면, 적들을 죽이다가 정신이 우르크화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살육이 주는 쾌락이 굉장했다.
“인간이 피한다!”
“지금…… 지금 어떻게든 잡아야 한다!”
“샤먼이 왔다. 총력을 다해라!”
땅에서 흙의 손이 올라오고 나를 둘러싼 대기가 갑자기 속박해 온다.
지금껏 샤먼들은 불의 전차나 피닉스를 막는 데 힘을 쏟았는데, 내가 자꾸 공격을 피하니 지금이 날 죽일 기회라고 본 것 같았다. 그래서 나에게 직접적으로 마법을 건 건가.
하지만 이 정도의 수준, 우습다.
마법 방어막을 굳이 칠 필요도 없어.
“마력 방출.”
펑!
예전에 처음 각성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폭발음과 함께 사방으로 충격이 퍼져 나간다.
우르크도 한 발, 두 발 물러설 정도의 강한 압력.
그와 함께 날 속박하려고 했던 대기와 대지의 마법이 모두 부서진다.
그리고 다시 우르크에게 뛰어들었다.
콰드득.
“으아아아!”
아까와 똑같이 머리를 박살 냈지만, 아까처럼 기분이 약 먹은 것처럼 좋진 않았다. 그냥 예전과 같은 기분이다.
아, 적을 죽였구나. 다음엔 어떻게 행동할까? 이런 느낌.
휴. 다행이다.
그렇게 내 자신을 잃을 거면 애초에 용족이나 천사를 했어야지.
기껏 영혼 계열 택해서 우르크화되면 너무 억울하잖아.
[주인. 영웅 등급이 된 것인가. 내 힘이 강해졌다.]
하늘에서 불사조가 내려왔다.
비둘기보다도 작던 녀석이 어느새 독수리만큼 커져 있었다.
커다란 날갯짓만으로 주변 우르크를 태워 버리며 나에게 날아온 불사조.
병아리 때가 귀엽긴 했는데, 지금은 아주 위엄이 넘쳤다.
“그래. C등급부터는 다들 영웅 등급이라고 하나 보지?”
[애초에 C등급도 지구의 가장 보편적인 언어에 맞춘 것일 뿐. 영웅, 전설, 반신의 순으로 부르는 게 나에겐 더 익숙하다.]
“갓 태어난 녀석이 아는 것도 많아요.”
[불사조라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지식일 뿐.]
자랑하듯이 고개를 바짝 든 불사조 녀석은 위엄이 넘쳤다.
자식. 병아리 때랑은 천지 차이네.
녀석은 다시 음성을 보냈다.
[주인에게 허락을 구할 일이 있어 왔다.]
“뭔데?”
[불사조의 날갯짓을 해도 되겠는가? 와이번 녀석들 하나하나 처리하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날갯짓은 지금도 하고 있잖아?”
[아니, 내 본연의 힘을 잠시 구현하려 한다. 영웅 등급에 오른 주인의 마력이라면 잠시나마 가능하다. 다만 날갯짓을 하면 주인의 마력이 단숨에 고갈되겠지. 하지만 하늘의 위협은 크게 감소할 거다.]
하늘을 바라보니 와이번이 계속 몰려오고 있었다.
성벽에서 화살이 날아들고는 있었지만, 아까보다는 화살의 수가 많이 줄었다.
와이번이 어느덧 성벽에 착지해서 궁병들을 공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은 성벽에서 매섭게 반격하고 있지만…… 하늘을 새까맣게 매운 와이번 떼거리가 계속 습격하면 금방 점령당하겠지.
하늘이냐 땅이냐를 선택하는 건가.
화염 전차가 한바탕 휩쓴 덕분에 잠시 소강상태가 된 대지.
전사했던 헌터들도 부활해서 속속 이리로 달려오고 있었다.
여기는 어떻게든 될 거 같아.
와이번들이 문제일 것 같으니…… 좋아. 하늘부터 막자.
“그래. 날갯짓 해 봐.”
[알겠다.]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아가는 불사조. 눈 깜짝할 사이에 점처럼 작아졌다.
크으윽.
갑자기 마력이 주르륵 빠지면서, 가슴이 쥐어짜듯이 아팠다.
이런 고통은 처음이라 주저앉을 뻔했다.
아…… 이 녀석…….
아악!
“아아악…… 씨발!”
와. 뭐 이렇게 아파. 너무 아프다. 눈물이 찔끔 나며 쌍욕이 절로 나온다.
정말 한 톨도 남김없이 마나가 다 빠져나가자 그제야 가슴의 통증이 멈췄다.
헉…… 헉…… 죽는 줄 알았네.
너무 아파서 잠시 떨군 고개를 힘겹게 쳐들자 비현실적인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불사조도 와이번도 작게만 보이던 먼 하늘.
거기에 자기 혼자만 원근법을 무시한 듯, 위풍당당하게 이글거리는 거대한 불의 날개가 있었다.
저거 너무 스케일이 큰데?
아니, 내 마력으로 저런 게 가능했어……?
전장의 병장기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잠시 사그라졌다.
다들 비현실적인 광경에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한 것이다.
“뭐…… 뭐지?”
“적의 마법인가?”
“아니, 뭐야 저게. 저걸 어떻게 대처해?”
아군도 당황했고.
“크르르르…….”
“잠시 후퇴, 후퇴하라.”
“염천사(炎天使)가 강림했는가?”
적군은 주춤주춤 물러섰다.
전장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불의 날개가 천천히 날갯짓을 했다.
전방을 향해 단 한 번 날개를 펼치자, 날아오던 와이번이 단숨에 소멸한다.
몸에 불이 붙거나 그러지도 않는다. 불의 날개에 닿자마자 그냥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날갯짓한 방향으로 홍염이 파도처럼 몰아친다.
하늘을 완전히 장악한 불의 파도.
와이번이 그대로 휩쓸린다.
불의 날개에 비해 화력이 약한 것인가. 단숨에 소멸하진 않고 몸에 불이 붙어 추락한다.
시뻘건 화염에 휩싸여 땅으로 추락하는 와이번들의 모습은 마치 유성우가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대로 적 진영으로 추락하는 와이번 무리.
적 진영은 아비규환이었다.
추락한 와이번의 몸에 붙은 불은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저 대화재를 통제할 방법은 없어 보였다.
매서운 열기가 피어오르는 전장.
시체 탄 냄새가 진동하고, 지옥도가 눈앞에 펼쳐진다.
“후…… 후퇴하라. 염천사가 강림했다!”
“도망가! 아카르디안 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천사는 대적할 수 없어! 아카르디안 님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죽이고 죽여도 용맹하게 돌진하던 우르크들이 겁에 질렸다.
돌진을 멈추고 꽁지 빠지게 도망치는 적 부대.
진형은 이미 와해되었고 무기마저 버리는 병사들도 있었다.
허. 그렇게 죽여도 덤벼들더니…….
불사조의 날갯짓 한 번에 전장이 뒤바뀌다니.
아군도 영문을 모르는 기색이었지만, 적이 후퇴하자 용기백배하여 성에 남은 적의 잔당을 물리치고 있었다.
[A등급 신수의 신위를 구현했습니다. 현재 등급에서 불가능한 대이적(大異跡)입니다.]
[질서 진영의 마력 능력치가 영구적으로 3 감소합니다.]
[중립 진영의 마력 능력치가 영구적으로 감소합니다.]
[마력 회복력이 일주일간 50% 감소합니다.]
억. 마력이 영구적으로 줄다니!
그것도 3이나?
중립 진영 것까지 떨어졌어?
으으…… SP 많이 얻었을 거야. 다시 올리면 돼.
마력이 너무너무 아까웠지만, 불사조의 날갯짓이 아니었으면 결국은 졌을 전투다.
아까워하지 말자…… 아까워하지 말자고 자기 최면을 걸었지만, 아무래도 미련이 남았다.
으. SP 얻은 거나 확인해 보자.
분명 많이 얻었을 거야.
그러며 상태창을 열려고 했을 때, 갑자기 메시지가 또 떴다.
지금까지 본 메시지와는 너무나도 상이한 내용이었다.
[케브리안 행성을 멸망시켰던 혼돈의 군주, 사령대제(死靈大帝)가 대이적을 감지합니다.]
[사령대제가 신들이 언약을 지키지 않았는지 조사할 것입니다.]
[사령대제가 당신을 주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