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 2개-36화 (36/240)

<내 상태창 2개 - 36화>

35. 사도 지휘자(3)

인기 폭발.

케브리안의 상황이 보고되고 난 후 내가 처한 상황이었다.

생각보다 에슈타르는 포화되어 있었고, 각국은 똥줄이 타 있었다.

맨 처음 나에게 접근한 건 미국이었다.

“이렇게 김지호 헌터님을 만나게 되어서 정말 영광입니다.”

자기가 CIA 소속의 비밀 요원이라고 주장하는 스미스 요원이 접근해 왔다.

근육 빵빵한 몸매. 금발에 선글라스. 영화에서 보던 비밀 요원 느낌.

그는 내 집 근처의 독실이 있는 레스토랑으로 날 모셔 갔다.

모셔 갔다는 말이 과언이 아닌 게, 무슨 미국인이 허리를 그렇게 굽실굽실하면서 한국말로 ‘제가 감히’ 이러면서 존댓말을 꼬박꼬박 써 대니 그럴 법했다.

식사를 하며 내가 들어도 낯부끄러울 정도로 칭찬을 연발하던 스미스는 디저트 타임이 되자 본론을 꺼냈다.

“저희 미합중국은 김지호 헌터님을 최고 예우로 모시고 싶습니다. 상부에서는 이미 백지 수표를 전달했습니다.”

“백지 수표요?”

“한국에서 김지호 헌터님을 제대로 예우하지 않더군요. 세계에 유례없는 특수한 클래스. 불가능한 난이도를 매우 어려움으로 낮춘 업적을 쟁취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빚이 있는지 의아할 정도입니다. 미합중국에 굳이 오시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카드는 받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며 나에게 황금빛 봉투를 건네는 스미스 요원.

봉투를 여니 J.P.모건이 필기체로 적혀 있는 황금색 카드가 있었다.

“이건 미국에서 헌터님에게 드리는 약소한 선물입니다. 얼마든지 결제하십시오.”

나 김지호, 주는 건 절대 사양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열심히 챙겼다.

“저를 비롯한 저희 미국 헌터들을 이번 원정에 끼워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스미스 요원님도 헌터셨어요?”

“예. 그러니 부서진 세계에 대해 이야기도 할 수 있는 거지요.”

생각보다 거물이네.

D급 헌터에 첩보 요원이라니.

그는 내가 알겠다고 하자 미국 출신 헌터 100명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했고, 그 대가라며 1,000만 불을 보냈다.

하. 돈 안 줘도 오시면 감사인데…… 참. 흠흠.

그 이외에도 많은 나라의 D급 헌터 요원을 만날 수 있었다.

중국의 왕 요원.

일본의 나카무라 요원.

러시아의 이바노프 요원.

중국 100명, 일본, 러시아는 70명씩 데리고 오면서 두둑한 돈을 안겨 줬다. 그러며 나보고 귀화하면 어떻겠냐는 제의를 했고, 난 일단 대답을 보류했다.

그렇게 돈을 두둑하게 받고 집에 가자, 왠지 지금까지 돈 한 푼, 두 푼에 발버둥 치던 게 뭐 했나 싶었다.

-너 활로는 와이번 다 떨어뜨리고 불의 전차 소환하면서 오우거들 다 불태워 버렸다며? 업계에 소문 쫙 퍼졌더라.

“사람들이 나도 녹화했나?”

-어. 헌터들 중 일부가 너 위주로 녹화했나 보더라. 다들 쟤 누구냐고 알아보느라 혈안이던데.

이진성과 통화하자 왜 이렇게 돈을 많이 주는지 알 수 있었다.

그거 봤을 때도 이 정돈데, 혼자 군단을 궤멸시킨 걸 봤으면 10배는 더 줬겠군.

이진성은 하겠다는 사람이 많다며 금방 모일 것 같다고 나에게 말해 주었다.

강시아는 색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지호 씨. 그러고 보면, 케브리안 원정대에 추가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는 건 어때요?

“돈이요?”

-천만 원씩만 받아도 다들 싸다면서 무리 없이 낼 것 같은데.

하루 동안, 단 한 번의 전투를 통해 수많은 헌터들이 레벨 업을 경험했으니 천만 원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지불할 거라는 게 강시아의 논리였다. 나도 그에는 동감이 가긴 했다.

하지만 각 나라에서 참가비 명목으로 받은 뇌물이 있는데 굳이 일반 헌터들한테 돈을 받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사실 내일부턴 난이도가 급상승할 텐데, 괜히 돈 받으면 원성을 더 살 수 있단 말이지.

그런 생각을 전달하니 그녀는 나의 말에 동의했다.

-그럴 수 있겠네요. 케브리안 첫날 전투는 쉬웠지만,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푼돈이라도 돈을 받으면 나중에 잡음이 더 심할 수 있으니 그냥 안 받고 진행하는 게 나을 것 같네요.

“네. 돈보다 잡음 없이 천 명 모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럼 저도 가져온 영상을 바탕으로 열심히 사람들을 끌어모을게요.

“벌써 340석은 마감되었습니다.”

-와. 벌써요? 금방 차겠네요.

그녀의 말대로였다.

오히려 경쟁이 붙어서 포지션별로 내가 선택해서 받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원거리가 중요하기에, 전사와 암살자 같은 근접 직군은 300명만 받고 궁수와 마법사를 700명으로 채웠다.

원거리 직군을 더 받아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있었지만, 앞으로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므로 각 성벽당 100명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케브리안의 인기가 너무 많아서 사람들이 굳이 군단에 속하지 않고도 들어가려고 해요. 어쩌죠?”

3일간 1,000명이 모였고 뽑히지 못하고 남은 인원 중 일부는 페널티를 감수하고서라도 그냥 일반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의사를 타진했다.

그 사람 숫자만 해도 400명.

근접 직군이 많았다.

이제 거의 내 비서처럼 일을 도와주는 강시아가 곤란한 표정으로 이를 보고했지만, 나는 만세를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요? 그럼 좋죠. 요새 방어는 점점 힘들어질 겁니다. 병력은 한 명이라도 더 있는 게 나아요.”

“그런가요? 첫날 전투가 너무 쉬워서…….”

“이건 장담합니다. 더 어려워지니 무조건 많이 데려가는 게 나아요. 아, 대신 저희 부대랑 케브리안 입장 시간은 맞춰야 한다고 전해 주세요. 괜히 먼저 입장했다가 그쪽 세계 시간 흐르면 큰일이잖아요.”

“네. 제가 엘프들에게 부탁하니 저희가 들어가기 전에는 입장을 막아 주겠다고 하네요.”

일 잘하는데?

엘프들이 김지호 부대가 들어가기 전에는 입장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통제 중이라고 했다.

헌터들도 머리는 있어서 다들 통제에 잘 따르는 중이라고.

다들 정비를 끝내고 준비를 마치자 일주일이 걸렸다.

1,000명의 케브리안 부대.

근접 계열 300명, 궁수 400명, 마법사 300명의 정예 D급 부대였다.

레벨 수준은 엄청 높지는 않았는데, 고레벨들은 이미 기득권을 쥐고 있는 에슈타르에서 활동을 다시 개시했기 때문이다.

괜히 고레벨이랍시고 와서 내가 지휘하겠다고 설치면 짜증 나니 잘됐지.

“이제 출발하겠습니다.”

그렇게 다들 완전 무장을 한 채 케브리안으로 떠났다.

성 지휘부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우리를 배정해 주었고, 다들 레벨 업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우리 부대가 도착하자 각성자 1,000명이 추가되었고, 그 이후에 개인적으로 온 각성자들이 합쳐서 1,400여 명.

그래서 총 숫자는 근접 500명, 궁수 500명, 마법사 400명이었다.

그리고 진행된 전투는 걱정보다 수월했다.

적의 샤먼이 개입하기 시작했지만 적절한 정령의 방어, 각성자의 막강한 화력으로 다들 신나게 레벨 업하며 부대의 분위기는 최강이었다.

“대장님. 뽑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30레벨을 돌파했어요! 새로운 스킬을 터득했습니다!”

어느새 호칭은 대장이 되었다.

외국의 백인, 흑인들도 나만 보면 엄지 척 올리며 땡큐, 땡큐, 굿 하는데 어깨가 으쓱할 지경이었다.

8일째까지는 그랬다.

공성전 9일째.

레벨은 어느덧 47.

1,000명이 경험치를 5%씩 바쳐 주니 레벨 업 속도가 엄청났다.

3레벨만 오르면 C급.

제발 난이도가 어제만 같아라 했는데, 오늘은 뭔가 분위기가 달랐다.

오우거를 무작정 전진시키던 그런 진형이 아니었다.

“용인이다!”

시력이 좋은 엘프가 다급히 외쳤다.

그 말에 눈을 부릅떠 전장을 바라보니 100명에 달하는 용인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5미터가 넘는 커다란 키, 인간형의 몸에 용의 머리를 한 용인.

가운데의 용인은 일반적인 용인보다 키가 2배나 더 커서 탑처럼 우뚝 솟아 있었다.

그들은 일렬로 쭉 늘어서서 오와 열을 맞춰 걸어오다가 곧 발걸음을 멈췄다.

바람의 정령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화살이 닿지 않을 아주 먼 거리.

저기서 대체 뭘 하려는 거지?

“브레스를 뿜습니다!”

가운데의 용인이 먼저 브레스를 내뿜었다.

그가 뿜는 브레스는 워낙 커서 이 먼 거리에서도 똑똑히 보였는데, 샛노란 불길이 뿜어 나오다가 하나의 구슬로 뭉치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99인의 용인이 그 구슬을 향해 입김을 토했다.

불의 숨결이 모이면 모일수록 구슬은 커져서, 어느덧 그 크기는 큰 용인까지 덮을 만큼 부풀어 오른 상황.

그 정도로 커지자 구슬 모양의 불이 형태를 변환하기 시작했다. 흐물흐물하며 형태가 변하던 구슬은 어느덧 용의 머리 형상을 이루었다.

그리고 불의 용이 입을 벌리자 불사조가 다급히 외쳤다.

[드래곤 브레스다! 성문을 직격할 거야!]

“알피드 님! 빨리 성문을 막아야 합니다. 남문 위주로 방어 태세를!”

“네!”

성문 앞으로 흙이 치솟고 얼음벽이 사이사이를 메운다.

성문에 한정된 성벽이 수십 개가 올라온 상황.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불의 용이 입을 완전히 벌리자, 이 성안까지 타오를 듯한 열기가 느껴졌으니까.

“카아아아아아아.”

전장에 울려 퍼지는 용의 포효.

가슴속에서부터 차오르는 공포감에 온몸이 딱딱하게 굳는다.

등골이 싸늘해지며 의식이 희미해진다.

눈앞이 깜깜해지고 손발이 떨리고 몸이 내 말을 듣지 않는다.

아무리 움직이려고, 저항하려고 해도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다.

뭐냐 이게.

이 거리에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드래곤 피어에 노출됩니다.]

[완벽한 원형 유지 스킬이 발동되었습니다. 드래곤 피어를 봉쇄합니다.]

하. 하아…….

이게 드래곤 피언가?

압도적이네.

완벽한 원형 유지 이 스킬이 아니었으면 그냥 넋을 놓았겠군.

몸이 움직여서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얼어 있다.

[주인. 정신 차렸나? 빨리 성문 위로 가야 한다. 하이 엘프도 드래곤 피어에 노출되어 움직이질 못하고 있다.]

불사조는 나름 신수라고 드래곤 피어에 저항했구나.

성문 위쪽을 보니 디아나가 눈을 크게 뜬 채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뜨거워지는 열기.

땅에서 아지랑이마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금방이라도 브레스가 뿜어 나올 것 같다.

“화염 전차 소환!”

나는 화염 전차를 소환해 바로 풀가속해서 그녀를 낚아챘다.

그리고 계속 달리는데, 세상이 갑자기 샛노랗게 변했다.

온몸이 타오를 듯이 뜨겁다.

콰과광!

세상이 노랗게 변하며 연속된 폭발음이 들려온다.

전차를 달리며 뒤를 돌아보니 노란빛 화염이 응축되어 대지를 쓸어 버리고 있었다.

얼음벽이고 흙벽이고 죄다 녹아내리며 성문도 그대로 사라졌다.

불타오르는 게 아니라 그냥 가로막는 모든 걸 소멸시키는 드래곤 브레스.

디아나를 피신 안 시켰으면 그냥 바로 죽었겠군…….

성문과 그 옆 성벽 일부가 완전히 박살이 났다.

그러고도 모자라 뒤쪽 공간까지 일직선으로 뚫어 버린 드래곤 브레스.

끝도 없이 나아갈 것 같던 브레스는 어느 거리 이상 가니 스스로 사그라지며 사라졌다.

“크, 아, 아, 아!!”

전장에 울려 퍼지는 비명.

가장 큰 용인의 몸이 불타오르며 사라지고 있었다.

브레스를 쓴 반작용인가.

나머지 용인들도 모두 쓰러져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으읏…… 감사합니다. 여신의 사도님.”

“정신이 드셨습니까?”

“예. 드래곤의 존재감…… 어마어마하군요. 어서 뚫린 성문을 막아야 합니다.”

“예. 가죠.”

성문이었던 장소에 가니 땅이 깊게 파인 채 불길이 남아 있었다.

디아나는 물의 정령과 땅의 정령을 이용해서 불을 끄고 땅을 다시 올려 방어하기 편한 지형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우리 쪽 지면은 높게, 성문 너머 지면은 그대로 낮게 유지하면서.

정신을 차린 엘프들도 와서 이를 도왔다.

지형이 단숨에 바뀌며 성문이 있던 곳은 언덕이 되어 수비하기 적합하게 바뀌었다.

나도 성벽을 돌며 근접 직군의 각성자들을 모집했다.

저런 강력한 브레스를 갈긴 데는 이유가 있을 거다.

성문을 부수면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겠지.

어떻게든 성문을 막아야 한다.

지금까지 싸울 기회가 없었던 전사들이 내 지시에 모두 남문으로 달려갔다.

C급이 얼마 안 남았는데…….

왠지 오늘 전투는 며칠 동안의 전투처럼 싱겁게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도 대혈전이 되면 경험치 얻을 일은 많겠지.

어쩌면 3레벨이 올라 C급으로 등급 업을 할 수도 있겠어.

이번만 죽지 말고 어떻게든 막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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