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 2개-27화 (27/240)

<내 상태창 2개 - 27화>

26. 잠시간 귀환(3)

후원 계약서라고 적혀 있는 종이.

계약금에 매달 후원금까지 해서 1년에 50억에 달하는 액수가 적혀 있고, 대현 가문의 헌터 사업부에서 헌터 김지호를 물심양면 후원한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거기에 강시아가 줄을 그은 내용에는 ‘혹시 대현가에 불가항력의 상황이 생겼을 시 김지호 헌터는 도움을 고려한다.’는 식의 문구가 있었다.

딱 봐도 강제성은 없어 보인다.

정말 나에게 퍼 줄려고 안달 난 후원 계약서.

“액수를 더 쓰고 싶은데 아쉽네요. 이번에 헌터 사업을 런칭하려는 데 워낙 반대가 심하셔서…… 제게 허용된 돈이 너무 적네요. 다른 사업도 해야 하니…… 이런 주제에 감히 도움을 바라서는 안 되겠죠. 그냥 저희는 신경 쓰지 마시고 돈만 받아 주세요.”

“아니, 그냥 돈만요?”

“네. 아무런 강제성도 없어요. 그냥 매달 돈만 보낼게요. 세금도 저희가 부담하고요.”

“음…… 몰래카메라 찍나요? 오늘 화장도 연예계 화장이신데.”

주위를 둘러보았다.

렌즈 같은 건 없는데. 인기척도 없고. 뭐로 찍는 거야?

내가 두리번두리번하자 강시아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풉. 무슨 몰래카메라예요. 방송국에서 김지호 헌터한테 밉보였다가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요?”

“저 그런 사람 아닌데…….”

“음. 지호 씨는 자신의 위치에 대해 자각을 좀 할 필요가 있어요. 일 년 후 어떤 세상이 올 것 같아요?”

“엘프, 드워프 도우미들은 빠지고 지구의 힘만으로 혼돈 세력을 이겨 내야 하는 세상이 오겠죠.”

강시아가 손뼉을 짝 쳤다.

“네. 바로 그거예요. 저희가 버려진 세계를 복원한다 쳐도 B에서 C등급 던전 포탈은 나온다잖아요? B급이면 하이 엘프 라이아나와 같은 등급인데, 지금 지구상에서 그녀를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사실 도우미들이 조금만 더 폭력적이었으면 엘프 강점기가 왔을지도 모르죠.”

그 말에 갑자기 다른 세계의 김지호가 생각났다. 그쪽 세계 지구의 중립 진영 도우미는 고블린에 오크려나?

그놈들은 왠지 폭력적으로 나왔을 거 같은데. 그렇다고 가정하면 그 시대의 김지호는 폭력적인 지구에서 각성자가 된 것일까?

만약 그러면 분위기도 어쩌면 지금의 평화로운 지구랑은 좀 상반되었겠지.

지금처럼 엘프들이 광고 찍고 사람들이 환호하고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을 테니까…….

“B급 던전이면 라이아나 급의 몬스터들이 튀어나온다는 건데…… 총이 먹히면 다행이지만 영체화하는 몬스터면 결국 고위 등급 헌터가 처리할 수밖에 없겠죠. 그럼 그들은 엄청난 가치를 지니게 될 거예요.”

“그리고 그중 한 명이 나다?”

“네. 사실 그럴 거라고 예상한 정도였죠. 하지만 오늘 레벨을 듣고 보니 확신이 생기네요.”

“그럼 정말 흑심은 요만큼도 없이 돈을 주는 겁니까?”

내가 그렇게 묻자 강시아가 입가에 장난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히…… 요만큼은 있죠. 그래도 분위기를 보니 제가 처음으로 지원하는 것 같은데, 지호 씨가 나중에 부탁하면 조금이라도 사정 봐주지 않겠어요? 네?”

“하, 참. 저야 주는 돈 마다 않는 성격입니다. 근데 이러다가 별일 없으면 어쩌려고 그래요?”

“그럼 더 좋죠. 생명 보험 들었다고 내가 안 죽으면 어떻게 하지? 이렇게 걱정하진 않잖아요. 보험 든 상황이 안 오는 게 제일 좋은 거죠.”

흠. 그러니까 나한테 보험 든다 이거지?

나도 이렇게 거액을 지원해 주는데 당연히 사양 않는다.

후원 계약금 20억에 매달 2억 5천씩 지원하여 총 50억 원을 지원해 준다는 계약서.

나에게 요구하는 건 단 하나도 없는, 그저 이름과 계좌 번호만 적어 주면 되는 미친 계약이었다.

정말 나에게 이 정도 액수를 무조건으로 후원할 가치가 있는 건가?

의문이 들 정도다.

그래도 준다니까 받아야지.

“제가 무슨 일 생기면 최대한 도와드리도록 노력하죠.”

“그 말씀만 들어도 이번 계약은 성공적이네요.”

“하…… 근데 집안에서도 이런 계약 오케이해요?”

“알면 반대하시겠죠? 하지만 이 정도 액수는 신경 쓰실 금액이 아니니까 뭐…… 괜찮아요!”

그까짓 것 신경 쓰지 말라는 듯이 손사래 치면서 와인을 마시는 강시아.

오. 뭔가 멋있는데.

어째 요즘 이쁘다기보단 간지가 철철 넘쳐흐르셔.

[폴룩스가 멋지긴 뭐가 멋있냐고 사용자를 질타합니다.]

[폴룩스가 명경지수를 끄고 다시 바라보라고 조언합니다.]

그거 끄면 진짜 큰일 나요, 아재.

고자냐는 폴룩스의 외침을 무시하고 그녀와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특히 케브리안 행성에 관심을 보였는데, 나중에 에슈타르가 망하면 그리로 가도 되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죽는 게 손해가 아니냐고 하니까, 혼돈의 군주의 대마법으로 에슈타르 행성이 초기화되면 다시 행성을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와 봤자 고생만 할 거라고 반대했지만, 상당히 흥미를 보였다.

그렇게 에슈타르가 레벨 업이 안 되나?

일단 케브리안에서 50렙 찍고 갈까.

그렇게 식사가 끝나서 계산을 하려고 할 때 ‘후원 계약 기념으로 제가 계산했어요.’라고 말했을 때는 강시아의 멋짐이 폭발했다.

맛있는 것도 얻어먹고 그녀가 태워 주는 차를 타고 집에 오자 마침 이진성에게 연락이 왔다.

-지호야. 뭐 하냐.

“나 집에 가는 중인데.”

-니 새집에서 집들이 콜?

“그래 술 사 와라. 내가 주소 찍어 주마.”

애도 에슈타르에 가 있으려나.

좋아. 녀석 의견도 한번 들어 보자.

집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자니, 술과 주전부리를 사 온 녀석은 집을 보며 집 좋다를 연발했다.

“야. 그러니까 특수 클래스 영혼 중개자가 되어서 신들한테 선물 받았다고? 니 머리 위에 있는 게 불사조고?”

“어.”

“거기에 최고 난이도 행성에 도전했는데 한 번밖에 안 죽고 하루 만에 레벨 34를 찍고?”

“어.”

“강시아는 너에게 제발 돈 받아만 주세요 하면서 오십억 주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거지?”

“그치.”

진성은 나를 보고 푹 한숨을 쉬더니 소주와 맥주를 1:1로 말아 단번에 들이켰다.

“뭐 이런 망할 게임이 있냐. 밸런스가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잖아! 요즘 소문이 도는 게 너였다니…… 하긴 특수 직업 이야기 나오기에 노비스에서 전직한 넌가 싶었다.”

“뭐라고 소문이 도는데?”

“하이 엘프가 직접 찾아왔다, 엘프, 드워프가 꼼짝 못한다, 신들이 총애한다. 뭐 이런 소문? 근데 다들 헛소문이라고 여겼지.”

아무래도 엘프, 드워프들이 나만 보면 영혼 중개자님 하면서 존중하니까 그런 소문이 도나 보다.

뭐, 이젠 능력도 갖추고 있으니 딱히 숨길 생각은 없고.

“그나저나 케브리안이라…… 이야기만 들으면 완전 전쟁터네. 아, 가고 싶다. 적토마만 마련하면 간다. 내가.”

“적토마 있긴 있냐?”

“정령석 중에 정령마 소환할 수 있는 아이템이 있대. 개들 입장에선 그저 탈것인 말만 소환하는 거라 정령석 중엔 꽝이라고 싸게 팔십억에 판다더라.”

80억이 잘도 싸다. 허이구.

이놈의 업계 인플레이션이 너무 심한 거 아냐?

장비도 비싸더니…….

“야, 팔십억? 뉘 집 애 이름이냐 팔십억이. 그냥 장비를 맞추지그래.”

“에슈타르에 있으면 생각보다 돈 벌기가 어렵진 않아. D급 던전만 발견하면 되니까. 우리는 거기에 섬상 각성자 길드라 세력도 센 편이어서 던전 들어가기도 수월하지.”

“아니 뭐, 마나석이나 던전핵이 그렇게 비싸대?”

“던전핵 같은 경우는 엘프들이 만드는 젊음의 비약 주재료라더라. D급 마나석도 무기뿐만 아니라 청정 에너지원으로도 연구 중이라고 하고. 뭐 여하튼 부르는 게 값이야. 지금은 수요가 공급보다 훨씬 많아.”

그래서 이 녀석은 강시아가 50억 후원한다는 이야기에 그렇게 크게 놀라지 않았던 건가?

내가 특수 클래스 전직하고 신들에게 불사조와 스킬 받았단 이야기했을 땐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는데.

“그게 그렇게 돈이 되다니. 에슈타르가 낫나. 그래도 지금은 레벨 업이 중요한 것 같은데.”

“내 생각도 레벨 업이 최우선인 것 같아. 야. 일 년 후에 세계가 멸망할 수도 있다잖아. 그때 되면 돈이 뭔 소용이야. 최대한 레벨 업해서 강해지는 게 우선이지.”

그래. 평소에는 만져 보지도 못하던 거액이 왔다 갔다 하니까 거기에 눈이 잠시 돌아갔을지도 몰랐다.

부서진 세계를 수복하지 못하면 혼돈의 군주가 지구에 강림해서 세계가 끝이 날 수도 있는데 그때 되면 돈이 무슨 소용일까.

“내 생각엔 그 최고 난이도 행성에서 아예 C급으로 전직을 하는 게 나을 거 같아. 돈은 어차피 후원 받는 것도 있으니까 레벨 업에 집중해. 에슈타르가 요즘 점점 포화 상태라 레벨 업하기 힘들기도 하고, C급 헌터만 되면 나중에 강시아 같은 후원이 물밀 듯이 들어올 거다. 혹시 세계 최초라도 찍으면 더 대박인 거고.”

“맞아. 돈보다는 일단 등급 올리는 게 중요한 것 같아.”

“당연하지. 이제 도우미 빠질 시간도 얼마 안 남았는데 지구인들은 아직도 D등급이니 각국에서 얼마나 똥줄이 타겠어. C급 나왔담 봐라. 전 세계에서 돈 싸 들고 덤빌 텐데.”

에슈타르에 있는 강시아나 이진성 모두 나에게 레벨 업이 먼저라고 권유하는군.

역시 경험치가 나은가.

다음 날 다시 한번 협회 최상층에 정보 수집 차 갔지만 다들 기억이 제각각이라 별로 도움이 안 됐다.

완전히 틀린 건 아닌데 미묘한 데서 많이 어긋나 있었고, 한국 지부에 있는 이들은 케브리안 행성에서 말단이 많았다. 좀 잘나갔던 이들은 미국 같은 강대국 지부에 있다고 했다.

“정보 수집은 포기해야겠네.”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케브리안을 갈 것인가.

죽고 나서 에슈타르로 이동할 것인가.

케브리안은 경험치를 많이 받을 수 있고, 나 혼자 신의 가호도 다 받을 수 있다.

공략집은 이제 애매하지만 그래도 나름 정보가 담겨 있긴 했다.

대신 난이도가 불가능하다고 하고 돈이 안 벌리지.

결국 최종 목표가 부서진 세계의 복원이라고 하면 여기에서 계속 있는 건 안 좋아.

이에 반해 에슈타르는 난이도가 쉽고 돈도 잘 벌렸다.

평화로우니 그렇게 급하게 쫓기듯이 안 살아도 되겠지.

한 달마다 초기화되는 세계도 단점인지 장점인지 애매하고…….

대신 경쟁자가 많고 경험치 획득이 어려운 게 문제다.

흠…….

케브리안에서 나올 때만 해도 고민이었으나 이제는 하루라도 빨리 C급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은 케브리안에 가 있었다.

돈보다는 레벨 업이 우선이란 생각이 들었다.

“정말 케브리안으로 가시는 거죠?”

다음 날.

엘프 알레나는 완전 무장한 채 온 나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네.”

“에슈타르가 나으실 텐데…….”

하지만 맨 처음 반대했을 때보다는 반대가 심하지 않았다.

“일단 레벨 업을 우선으로 하려고요.”

“하긴 에슈타르는 너무 경쟁이 심하죠. 다른 행성도 레벨 업은 그리 빠르지 않고…… 알겠어요. 이 정도 속도라면 고위 등급 헌터가 금방 되실 거예요.”

“예. 빨리 C등급 가야죠.”

공략집이 무용지물이 된 이후, 케브리안을 계속 도전해야 하나 고민했었다.

하지만 막상 에슈타르 쪽도 등급을 올리기 전까지는 딱히 부서진 행성을 깰 실마리도 없어 보이고, 레벨 업은 케브리안 행성이 훨씬 낫다.

협회에서 받은 돈과 강시아한테서 입금된 계약금으로 3서클 마법 10개를 개당 5억에 배우니 돈은 또 마이너스 5억.

들어갔다 나가는 걸 실시간으로 보니 가슴이 아려 왔지만 투자라고 생각하고 참았다.

예전처럼 전투 준비를 완벽하게 끝마친 후 부서진 세계 케브리안 행성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C등급이 되기 전까지는 나오지 말고 레벨 업에 집중해 보자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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