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 2개-25화 (25/240)

<내 상태창 2개 - 25화>

24. 잠시간 귀환 (1)

커다란 호수 중앙에 물줄기가 하늘 끝까지 솟아올랐다.

분수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크고 강맹한 기세로 솟아오르는 물줄기.

정말 끝을 모르게 솟아오르던 물줄기는 곧 하늘 위에서 퍼져 숲에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그 빗물을 맞으며 엘프들이 기쁨의 함성을 내질렀다.

“아아!”

“돌아왔어. 돌아왔어!”

“물의 힘이 돌아옵니다.”

“운디네. 다행이야.”

레블로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눈물을 글썽였다.

“사도님.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물의 힘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잘됐군요. 하지만 아직 다 끝난 게 아닙니다. 성전에 따르면 하이 엘프 디아나께서 위험에 처해 있으며, 바람의 성소에 간 레니스터 단장의 부대는 이미 전멸했다고 합니다. 여러분께서 바람의 성소를 다시 가동할 수 있겠습니까?”

“아아. 레니스터 단장이! 바람의 성소는…… 특수한 재료가 필요합니다. 아마 트레인 요새에 있을 겁니다.”

흠. 이들 일행만으론 가지도 못하겠군.

트레인 요새 들렀다가 그리로 가라고 출동시켜도 되지만, 아까 용인들한테 밀린 거 보면 그다지 믿음직스럽진 않단 말이야.

“그럼 일단 트레인 요새로 가서 방어를 도와주세요. 제가 디아나 님을 구하고 불의 성소를 다시 가동시킨 후 바람의 성소로 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전쟁신의 사도, 최후의 전사이시여.”

“명을 받들겠습니다. 전쟁신의 사도, 최후의 전사이시여.”

뭔 전쟁신의 사도, 최후의 전사냐.

하나만 해라, 좀. 정신 사납게스리.

“알피드! 다시 길 안내 부탁합니다.”

“……예!”

이 자식, 대답이 늦었어.

알피드를 바라보니 다크서클이 진한 게 좀 피곤해 보이긴 했다.

어쩔 수 없지. 체력 회복시켜 줘야겠어.

“알피드가 한숨도 자지 않고 달려온 덕분에 여러분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이제 물의 정령 마법이 가능할 텐데, 그의 체력을 다시 회복할 수 없겠습니까?”

“아. 알피드. 네 덕에 살았군! 우리가 모두 너를 축복하겠다.”

“사도님을 충심으로 모셔 디아나 님을 꼭 구출해야 한다.”

“너만 믿겠다. 알피드!”

얘네가 뭐 레인저 선배라도 되나.

다 반말하면서 알피드의 어깨를 두들기며 축복을 넣어 주고 있었다. 73인의 축복을 받자 알피드의 얼굴이 거의 회복되었다.

“가죠, 알피드. 제가 알려 준 길 잘 알고 있죠?”

“예. 그리로 모시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다시 군기가 바짝 든 알피드가 숲을 향해 뛰었다.

어. 안 업고 가도 되나?

레인저에게 손을 흔들고 알피드를 따라가 숲 안쪽으로 들어서자 그가 가만히 서서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뭐야. 오줌 마려우면 싸라고.

“뭐 합니까?”

“차마 선배들 앞에서 사도님에게 업힐 수가 없어서…… 죄송합니다…….”

“……하아. 타십시오.”

전쟁신의 사도, 최후의 전사는 얼어 죽을…….

불의 성소가 있는 곳은 꽤 멀었다.

그리고 알피드가 아무리 체력을 회복했어도 이틀 더 뛰니까 도저히 버티질 못해서 하루 쉬고.

이다음부터는 그냥 이틀 뛰고 반나절 쉬고, 이런 패턴으로 가기로 했다.

그렇게 가고 가다 보니 갑자기 시스템 창에 메시지가 떴다.

[이제부터 원래의 세계로 귀환이 가능합니다.]

열흘이 지났구나?

[케브리안 행성의 각성자는 사용자 김지호가 유일합니다. 귀환할 경우 각성자가 아무도 남지 않아 현 행성의 시간이 이대로 멈춥니다.]

[귀환하시겠습니까?]

오?

그래?

나만 이 행성에 도전하니까 내가 돌아가면 세계가 멈춘다는 거지?

신기하네.

그럼 다른 세계, 그 난이도 낮은 행성은 각성자들이 모두 귀환 안 하면 계속 시간이 흐르는 건가.

사실 지구로 귀환하면, 거기서 하루 지내면 여기 열흘 지날까 봐 그냥 안정될 때까지는 열심히 뛰어다니려고 했는데.

이렇다면 좀 돌아가 봐도 되겠어.

케브리안 행성 출신 애들한테 정보도 좀 얻고.

거의 잠도 안 자고 미친 듯이 싸우고, 미친 듯이 뛰고 이러니까 뭔가 정신적으로 지친다.

가서 무한 정력 끄고 집에서 한숨 푹 자야겠어.

사람이 좀 쉬어야 살지.

“귀환한다.”

[각성자 김지호가 케브리안 행성에서 지구로 귀환합니다.]

[신의 가호가 해제됩니다.]

수락하자마자 바로 세계가 멈췄다.

그와 함께 하늘에서 빛이 내려오더니, 내 몸이 승천하듯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올라가는 속도는 하늘로 미사일이 발사되었다고 싶을 정도로 빠른 편.

주변 지형이나 좀 보려고 했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구름을 뚫었다.

그러다가 잠시 시야가 어두워지더니, 발이 어느새 땅에 닿아 있었다.

“어…….”

“영혼 중개자다.”

“하루 만에 왔어. 케브리안에서!”

“거기서 열흘을 버티다니!”

D급 던전, 부서진 세계 모형이 있던 협회 최상층.

자리를 지키던 드워프가 날 보고 깜짝 놀라며 어딘가로 달려갔다.

“아니, 김지호 헌터님. 케브리안에서 열흘 동안 있으셨어요?”

엘프 알레나가 놀란 눈을 하며 이쪽으로 뛰어왔다.

“그런데…… 엄청 강해지셨네요. 겨우 하루가 지났는데. 저희들도 상대가 안 되겠어요.”

보면 아나?

난 지금 아테네의 가호가 사라져서 그런지 엄청 약해진 거 같은데.

뭔가 몸 전체가 축 처진 느낌이다.

삐약이도 요즘 몸이 점점 불타오르고 있었는데, 불길이 확 사라졌다.

2.5배…… 짱이었는데…….

“뭐, 아주 질리도록 싸웠습니다. 혹시 케브리안 행성에 대해 나중에 물어봐도 되나요?”

정보 수집 차 물어보니 알레나가 어두운 낯빛으로 답했다.

“예. 저희가 아는 바에 대해선 모두 대답해 드릴게요…… 하지만 저희는 모두 멸망한 케브리안 행성에서 죽기 직전에 가까스로 구원받은 몸. 신에게 선택받은 종이 된 대신 본래 행성에서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기억도 불완전합니다.”

기억도 불완전하다니. 현지인 메리트로 정보 좀 캐내려고 했더니…….

“그럼 알레나라는 이름이 원래 본명이 아닌 건가요?”

“예. 신들께서 다시 하사하신 이름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원래는 비밀로 해야 할 조항이지만, 신들께서 영혼 중개자님께는 알려도 된다고 허락하신 사항입니다. 다만 외부에 발설만 하지 말아 주세요.”

본래 행성에서의 이름을 잊고 기억도 불완전한가…….

아니 안 그래도 어려운 미션인데 팁도 뭔 제약이 이리 많아.

고르지 말라는 이유가 있었어.

망할 공략집…….

다른 행성에 대해서도 정보 수집을 좀 해 보고 케브리안을 계속 진행할지 말지 좀 심각하게 고민해야겠다.

사실 막상 수행해 보니 생각보다 쉽긴 했는데, 아무리 봐도 내가 비정상적으로 강해서 그런 거지…….

상태창 2개에 SP로 능력치 다 올리고, 스킬도 A급에 신이 버프 빵빵하게 내려 주니 가능한 거였지. 무한 정력만 없었어도 지쳐 쓰러지고 요새 함락 미션 실패, 이런 루트였을 거야.

어휴. 모르겠다. 일단 오늘은 좀 쉬자. 피곤하진 않은데 너무 오랫동안 맨정신이니까 뭔가 이상해.

“일단 오늘은 집에 가야겠습니다. 내일이나 모레쯤 와서 다시 행성들에 대해 물어볼 수 있을까요?”

“예. 언제든지 편한 시간에 오셔서 문의 주세요. 협회 직원한테 연락해서 차를 대기시켜 놓으라고 하겠습니다.”

알레나가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엘프가 폰 쓰는 게 신기하군. 핸드폰에 댄 귀가 뒤로 접히네.

그렇게 1층에서 차를 타고 오피스텔로 들어선 나는 도착하자마자 무한 정력 스킬을 해제했다.

스킬을 해제하면 바로 피곤해 쓰러져 자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근데…… 갑자기 피로가 확 몰려올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멀쩡했다.

엄청 졸릴 줄 알았는데 멀뚱멀뚱. 몸은 별로 피곤하지 않았다.

흠. 근데 또 생각해 보면 이 새집에서 처음에 무한 정력에 명경지수 쓰면서 지냈을 때도 잠은 잤는데 말이야.

그때 뭐 했지?

아, 술 먹어서 졸렸나?

“삐약. 삐약…….”

삐약이가 신의 버프도 사라지고 무한 정력도 끄자 몸이 축 늘어져서 내 머리에 탁 달라붙어 있었다.

맞아. 이거 무한 정력을 ON해야 성장한댔지.

그냥 켜 두고 누워 볼까.

킹사이즈 베드에 눕고 좀 빈둥거리다 보니 스르르 졸음이 왔다.

그래…… 스킬 켜 둔다고 잠이 안 오는 건 아니었지.

그냥 안 잘 수도 있는 거구나. 의지대로…….

그럼 오랜만에 자자.

“하아아암.”

한숨 자고 나니 하루가 지나 있었다. 시계를 보니 24시간을 잤다.

몸은 원래부터 컨디션이 좋았고.

그래도 자고 나니 뭔가 개운한 느낌이다.

삐약이도 신나서 날아다니는데 평소보다 활력이 있었다.

요놈도 안 쉬고 나랑 같이 고생했지 그러고 보면.

이제 알레나한테 가서 물어볼까.

아, 그 전에 인벤토리 물건이나 확인해 봐야겠다.

케브리안에서는 뭔가 여유가 없었는데, 지구는 아주 좋아.

인벤토리에서 검은 막대기와 구슬을 꺼냈다.

일단 막대기부터 연구해 봤다.

이건 대체 뭐에 쓰는 거지.

공략집을 뒤져 보았지만, 이 막대기나 구슬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쪽지에 있나 싶어 쪽지를 봐도 별 내용이 없고.

뭐 버튼이 있나 여기저기 눌러 봐도 영 반응이 없어서 삐약이에게도 보여 주었지만 녀석도 고개를 갸웃하기만 했다.

“이건 그냥 패스.”

다시 인벤토리에 쑤셔 넣었다.

그래도 미래의 선물에서 나온 건데 나중에 뭔가 쓸모가 있겠지.

그다음은 구슬이다.

검은색 구슬. 크기는 그냥 내 주먹만 하다.

이것도 이리저리 만져 보았지만, 뭐에 쓰이는 놈인지 감을 못 잡겠다.

이럴 때 아이템 설명 창이 딱 나오면 좋겠는데 참.

[특성 흡수 스킬을 감지했습니다.]

[완벽한 원형 유지 스킬을 감지했습니다.]

[‘재활용 창’을 활성화하시겠습니까?]

어. 재활용?

별다른 정보가 없었지만 일단 시스템 창에 수락을 눌러보았다.

[‘재활용 창’이 활성화됩니다.]

[특성 흡수 과정에서 여과된 불순물을 모으는 공간입니다. 원형 유지 스킬이 완벽하여 불순물이 더욱 잘 모입니다.]

모이면 뭐가 나온다는 건지 추가 설명은 없이 여기서 끝이 났다.

그리고 구슬은 스르르 분해되더니 곧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뭐지.

그냥 시스템 창 하나 더 만들어 주고 사라졌네.

이런 거 보면 다른 세계의 김지호 녀석 쓸 만한 거 같기도 하고…….

“재활용 창.”

재활용 창을 열어 보니 아까 보았던 검은 구슬 모양이 크게 확대되어 반투명하게 드러났다.

하나 아직 그 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아직은 뭐 쌓인 것도 없을 테니 그러려니 했다.

뭐가 나올지 기대되는구먼.

만족스럽게 인벤토리를 정리하고 집 안을 한번 둘러보았다.

부서진 세계에 갔다 온 지 지구 시간으로는 하루 지났는데, 자취방에 있는 내 짐이 어느새 다 옮겨져 있었다.

바로 나갈까 하다가 컴퓨터가 눈에 띄었다.

“세상은 별일이 없군…….”

10일 동안 싸우고 달리고만 하다 보니까 바로 나가기가 싫어져서 켠 컴퓨터.

막상 이 세상은 시간이 별로 지나지 않아 별 뉴스도 없었다.

그렇게 멍하게 기사를 하나하나 클릭하다가 연예 기사 하나가 눈에 띄었다.

[강시아, D급 헌터로 승급! 앞으로 헌터 관련 일에 전념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혀…… 연예계 은퇴하나?]

아.

그러고 보니까 연락 달랬지?

밥 사 달라는 게 왠지 용건이 있어 보였는데, 저 헌터 관련 일이랑 무슨 연관이 있나?

전화나 해 보자.

-여보세요?

“강시아 씨, 접니다. 김지호.”

-어머. 지호 씨. 드디어 연락 주셨네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밝게 전화를 받는 강시아.

나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D급 던전 한번 도전했다가 정신이 없었네요. 아, 이런 말도 하면 안 되나?”

부서진 세계 이야기하면 기억 조작된다는데.

-아, 그 정돈 괜찮을 거예요. 그리고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는 D급 헌터끼리는 비밀 유지 마법이 발동되지 않는다고 하네요. 친구랑 실험해 봤어요.

“친구 분도 D급이세요?”

-네. 그때 말한 그 전사요.

“아하. 그래도 전화상으론 어떨지 모르니. 난이도 어떤 던전 선택하셨어요?”

-아항…… 던전의 난이도요? 당연히 제일 쉬운 데로 갔죠.

어느 행성 골랐냐는 질문을 돌려서 하니 그녀가 바로 알아듣고는 그렇게 답했다.

오, 에슈타르 행성의 경험자.

거기 이야기도 들어 볼 수 있겠군.

-지호 씨, 저 밥 사 준다는 약속 잊지 않았죠? 오늘은 뭐 해요?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강시아가 먼저 적극적으로 들어왔다.

하. 살다 보니 이런 경우도 생기네.

“약속 당연히 알고 있죠. 오늘은 협회 가서 정보 수집할 거 같은데, 저녁엔 할 일 없어요.”

-그럼 강남에 있겠네요. 음…… 그냥 제가 프라이빗한 쪽으로 예약해 둘게요. 아니면 혹시 아시는 데 있으세요?

“아뇨. 근데 안 비싸죠?”

-어머. 그때 했던 말 기억하고 계셨어요? 호호. 하나도 안 비싸요. 그래 봤자 강남인데.

그래 봤자 강남이라니…….

그 발언이 비싸 보이는데요…….

어쨌든 강시아의 적극적인 푸시에 오늘 약속을 바로잡았다.

흠. 뭔가 용건이 있는 거 같아.

뭔 이야기 하나 들어나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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