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23화>
22. 어…… 공략집이……?(2)
“어…… 어떻게 나왔습니까? 사도님.”
“출동한 정예군의 대장이 디아나, 암브로시안, 레니스터, 레블로 맞습니까?”
일단 책의 내용을 확인해 본다.
교차 검증은 필수지.
“오오. 그렇습니다. 성전에서 그런 내용도 나왔나요?”
“역시 신은 위대하시다!”
“위대하시다!”
성전은 무슨. 사탄의 잡서요.
그래도 맞긴 맞네.
“이 중 레니스터 기사단장은 사망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드워프 로드 암브로시안은 무사히 땅의 성소로 향했다고 나오고요. 저는 나머지 두 분을 도와 모든 성소를 발동시킬 생각입니다.”
“아아…… 레니스터가…… 알겠습니다. 저희가 그동안 목숨을 걸고 이 성을 지키겠습니다.”
레니스터 기사단장과 친했는지 눈시울을 붉히던 백작이 곧 굳은 표정으로 결의를 담아 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상태로 보아하니 저 선봉대를 그대로 놔두고 성을 지키는 건 힘들어 보입니다. 제가 저 선봉대를 혼자 격파하고 가겠습니다.”
“예? 사도님 혼자서요? 안 됩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저희가 돕겠습니다!”
회의실의 모든 이가 벌떡 일어나서 나를 말렸다.
하지만 난 자신이 있었다.
아니, 자신이라기보다는 이 정도도 못해 낸다면 이 행성을 깰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일단 이 망할 공략집에서도 ‘정예 병력은 없는 선봉대로도 충분히 함락 가능한 트레인 요새’라고 했으니까 수준이 아까 그놈들 수준이겠지.
그런 수준이라면 무한 정력으로 체력만 계속 버텨 주면 충분히 승산이 있어.
이런 데서 죽으면 그냥 다른 행성 가는 거지 뭐.
그래도 이렇게 말하면 안 되니까…….
흠흠. 목소리를 가다듬고.
“성전에 이르길, 이것이 제가 나아가야 할 첫 번째 시련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질서의 세계를 위해서 제가 수행해야 할 첫 번째 시련! 저는 전쟁의 여신의 사도로써 기쁘게 이 임무를 이행할 것입니다.”
신의 사도 노릇이나 어디 톡톡히 해 봅시다.
목소리를 짙게 깔고 시작해 보자.
“이 검을 보십시오.”
검은 검신이 새하얗게 불타오른다.
아테네가 내린 신성력의 정수.
그 경건한 힘에 모두들 무릎을 꿇는다.
“미네르바께서는 저에게 신성력을 부여하셨고 마르스께서는 화살이 빗나가는 가호를 내리셨습니다. 거기에 헬레니스께서는 태양의 힘을 부여하셨으니, 세 신의 가호를 받은 저는 절대로 지지 않습니다.”
“미네르바 님에 이어서 마르스, 헬레니스 님까지……!”
“오오오. 신들께서 최후의 전사를 내리셨다!”
“멸망의 마룡 아카르디안의 대적자께서 오셨도다!”
“신이시여. 잠시나마 저희를 버렸다고 신을 의심한 미천한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습관적으로 아테나, 아레스, 아폴론이라고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입으로 튀어나온 말은 자연스레 이들이 받아들이는 신의 이름으로 번역되었다.
근데 생각해 보니 아테네, 아레스가 미네르바, 마르스인 건 로마식인 거 같은데, 아폴론은 왜 헬레니스지.
아, 몰라. 그런 건 안 중요해. 뻥이나 계속 치자.
“트레인 요새의 용사들이여. 저를 믿어 주십시오, 저를 가호하는 신들을 믿어 주십시오. 제가 첫 번째 시련을 수행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저 적들을 홀로 궤멸시켜 신께 바치겠나이다!”
검에 머금은 신성력이 폭발하듯이 빛난다.
영롱한 순백이 너무나도 아름답다.
와! 아테나가 신경 쓴 건가?
갑자기 이런 연출. 아주 좋아요.
“아아…….”
“신의 힘이시다.”
“미네르바이시여.”
“마르스이시여.”
“헬레니스이시여.”
“믿겠습니다. 최후의 전사를 믿겠습니다!”
“전신의 사도님을 믿겠습니다!”
워낙 신성력이 강해서 그럴까.
모두 눈물을 펑펑 흘리며 기도를 올렸다.
캬…… 신성력이 있으니까 너무 잘 믿어 주시네.
[폴룩스가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다면서 서운해합니다.]
아저씨…… 사람들이 아저씨 알아요?
폴룩스? 그게 누구야? 이럴 거 같은데. 분위기 깨요.
[폴룩스가 말문을 잃고 시무룩해합니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어.
여기선 대신들 이름을 말해야 먹힌다고!
모두의 배웅을 받으며 성벽을 뛰어넘고 적진을 향해 홀로 달려갔다.
적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른다.
혼자 적 선봉대를 격파하려 하다니.
하하하하. 미친 짓이야.
하지만 이 미친 행성은 미친 짓을 하지 않으면 절대 깨지 못하는 미친 난이도거든.
어디 오늘 누가 죽나 해 보자.
오크의 진영까지 열심히 달려온 이후 나는 멀리서 적의 진영을 살펴보았다.
그렇게 경비가 삼엄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성이 오늘 거의 함락되기 전이었는데 설마 저기서 쳐들어올 거란 생각은 안 했겠지.
오크의 군막은 빽빽하게 붙어 있었다. 아무래도 여기가 산악 지대에 건설한 요새라 그런지 넓게 진을 치기에는 공간이 좁았다.
이럴 때는 역시 화계인가?
화염 전차를 소환했다.
축복으로 인해 늘어난 마력.
거기에 중립 진영 마력 스탯도 한계까지 찍은 상황.
그랬기 때문일까. 이번에 소환한 불의 전차는 말이 한 필 더 늘어 있었다.
전차도 커져서 내가 충분히 탈 만한 공간이 되었고.
“화염 전차!”
“사도다!”
불빛 속에 비친 크고 조잡한 군용 천막.
아주 빽빽하게 붙어 있다.
오크들이 거기서 허겁지겁 튀어나온다.
하지만 그들을 하나하나 상대할 생각은 없다.
화염 전차를 이끌어 밀집된 천막 쪽을 그대로 주파한다.
“으아아!”
“불이다. 불!”
“빨리 피해!”
화르르르.
불의 전차를 이끌고 적진을 그대로 가로지른다.
불길이 전차의 행로를 따라 그대로 치솟는다.
오크 몇몇이 죽음을 무릅쓰고 전차의 돌진을 막으려고 몸을 날렸다.
아니, 전차보다는 나를 막으려 하는 것 같다.
불로 이루어진 전차를 가로막을 방법은 존재하질 않으니까.
기수인 나를 막을 생각이겠지.
하지만 나에게도 영체화가 있다.
“뭐…… 뭐냐! 으아아아!”
몸에 불이 달라붙으면서도 나를 껴안으려 했던 오크가 나의 몸을 통과한다.
그와 동시에 메아리처럼 들리는 비명.
유령처럼 몸이 변하는 영체화.
영체화를 하면 전차에서 떨어지는 건 아닌가 싶지만 그렇지 않았다. 전차는 타고 적의 공격은 피하는, 내 의지대로 좋은 것만 취사선택할 수 있었다.
사용을 하자 자연스럽게 컨트롤을 할 수 있게 된 영체화.
영혼 중개자이자 영혼 약탈자라 그런가. 아주 쉬웠다.
“크르륵. 일단 피해라!”
“마력이 떨어질 때까지 상대하지 마!!”
“도망가! 으아아아!”
마력이 빠지는 속도는 눈에 띄게 체감이 된다.
그래도 맨 처음에 소환할 때보다는 나았다.
그때는 단독으로 달리게 해서, 거리가 멀어지니까 마력이 그냥 뭉텅뭉텅 빠져나갔지.
하지만 지금은 타고 있으니까 그렇게까지 소모는 되지 않았다.
그래도 언제 전차가 사라질지 모른다.
그러니 일단 이 진영을 빠르게 가로질러 죄다 불바다를 만들어 놔야 한다.
10분을 달렸을까.
그 어떤 차를 탔을 때보다도 빠른 속도로 휭휭 적진을 지나갔다.
가슴에 쥐어짜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슬슬 끝이군.
마차의 속도가 점차 느려지더니 완전히 멈추며 스르르 줄어들었다.
흠. 이 정도면 적 진영을 반은 넘게 돌파한 건가?
그러면 일단 뒤의 불바다를 피해서 앞으로 달리자.
“사도의 마나가 끝났다!”
“죽여! 지금 죽여야 해!”
오크 놈들 끈질기네. 진짜.
이렇게 불지옥이 되었으면 도망가기 바쁠 텐데 나를 가리키며 추격해 온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전의가 강할 수가 있지?
블랙 드래곤 때문인가?
“크억!”
신체는 만전.
난 바로 뛰어올라 오크의 머리를 디딤돌 삼아 밟아 나아갔다.
오크가 나름 반항을 하려고 했지만 라디언드 실드까지 발동되어 있는 나에겐 역부족.
너무 방해를 하면 검으로 베어 가며 적진을 쭉 돌파했다.
“추격해라!”
아테나의 버프, 상태창 2개의 중첩, 거기에 중립 진영 능력치를 거의 한계까지 찍은 능력.
이들은 나의 상대가 아니었다.
진짜 공격은 아예 통하지가 않고 주먹질만 해도 오크의 머리가 깨지는 수준.
근데도 어떻게든 전의를 되살려서 나에게 덤벼 온다.
진영이 이렇게 불타고 있고 적은 공격에 기스도 안 나는 상댄데 나 같으면 벌써 도망가겠구먼.
블랙 드래곤 때문인가?
“전신의 가호.”
어느 정도 부대를 이룬 오크들이 나에게 일제히 손도끼와 투창을 던진다.
하지만 전신의 가호로 인해 모두 빗나가는 무기들.
원거리 무기에 대해 걱정할 것이 없어지니 나의 행보는 더욱 빨라졌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적 진영의 끝까지 도달했을 때.
마력이 다시 차오른 게 느껴졌다.
그럼 또 가 볼까.
“화염 전차 소환.”
날 추격하던 오크 부대가 멈칫한다.
“으아아아!”
“화염 전차다!”
“벌써!”
또다시 가 보실까.
화염 전차가 아무리 강력했다고 해도 오크 선봉대 진영을 다 태우긴 무리였지.
하지만 이렇게 계속 달리다 보면, 진정한 불지옥을 만들 수 있을 거다.
“막아야 해!”
오크들이 목숨을 도외시하며 영웅적으로 달려들었다.
아까 내가 영체화한 걸 못 봤는지, 또 몸을 던진다.
햐. 적이지만 감탄이 나오는 투지.
하지만 죽어 줄 수는 없잖아.
가볍게 영체화를 해서 피하고 다시 출발하는 불의 전차.
오크 진영 반대편부터 다시 화염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으으으…… 샤먼이 있어야 했는데…….”
“크르륵…… 정령이 없을 때 트레인 요새를 빨리 함락하려고 우리만 온 게 잘못이었는가…….”
“단 한 명의 사도에게 농락당하다니…….”
오크들의 절망이 들렸다.
나는 적을 가지고 놀았다.
난이도는 분명히 어려움이었는데 너무나도 쉬웠다.
마력이 차면 불의 전차를 소환하고 적 진영을 향해 달린다.
떨어지면 오크들이랑 싸우지 않고 도망간다.
그리고 마력이 다시 차면 또 불의 전차를 소환해서 달린다.
적에게 마법사가 없기 때문일까.
별 반격을 당하지 않고 그저 이 과정을 계속 반복했다.
이미 불타오르는 적진을 다시 주파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땐 삐약이가 나에게 일렁이는 화염을 흡수해서 차단해 준다.
거기에 질식사하며 쓰러지는 오크들과 달리 나는 멀쩡했다.
뭔가 몸이 진짜 이제 인간이 아닌 거 같은데.
D급 한계가 이런데 C급, B급이 되면 대체 얼마나 세지는 거야?
그렇게 적진을 모두 불태우고 나자 전투는 사실상 끝이 났다.
하지만 이 징글징글한 오크들은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살아남은 일부의 오크와 우르크가 나에게 악에 받쳐 돌진해 왔다.
“너희들은 왜 도망을 가지 않지?”
나는 하도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지금 진영이 다 불타오르고 이들도 온몸에 화상과 그을음이 묻은 채 겨우겨우 날 추격해 온 거다.
진짜 내가 오크였으면 진작 튀었다. 미친놈이 혼자서 돌진해 올 때부터 쎄한 느낌에 도망갈 각을 재고 있었을 거야.
“인간…… 어떻게 우리의 말을.”
“오크는 등을 보이지 않는다!”
“아니던데. 도망가긴 하던데.”
분명 공성전 때는 상대가 안 되니까 도망갔단 말이야.
“크르륵…… 밤에 아카르디안 님보다 두려운 존재는 없다.”
“차라리 여기서 죽는 것이 낫다! 동지들이여!”
“맞다! 사도를 죽여라!”
아카르디안은 블랙 드래곤의 이름일 터.
밤이 되면 더 안 도망가고 싸우는 건가?
크. 이런 미친놈들.
그래. 이제 불도 다 질렀겠다.
2라운드 시작이다.
다 죽어 보자꾸나.
* * *
[‘오크 학살자’ 칭호를 획득하였습니다.]
…….
[‘오크의 근력’을 완전히 얻었습니다. 사용자의 힘이 더 강하여 능력치가 더 이상 오르지 않습니다.]
…….
[SP가 1,000이 되었습니다. 프리미엄 상점 개방이 가능합니다.]
………….
[오크 선봉대를 궤멸시켰습니다.]
[서브 퀘스트 ‘적 선봉대를 와해시켜라’를 클리어하였습니다.]
[‘오크 정복자’ 칭호를 획득하였습니다.]
[SP 1,000을 얻습니다.]
[연계 퀘스트 ‘적 선봉대를 단독으로 와해시켜라’를 클리어하였습니다.]
[SP 1,000을 얻습니다.]
[능력치 포인트 3을 얻습니다.]
[전쟁의 여신 아테나의 축복이 강화됩니다. 아테나가 당신에게 미약한 관심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