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22화>
21 어…… 공략집이……?(1)
“전쟁의 여신 미네르바의 사도시여. 저는 아트라 연합국의 오하임 백작이라고 합니다. 오늘의 전투, 신화 속에서나 나오는 놀라운 장관이었습니다. 사도님이 아니셨다면 저희는 모두 죽었을 터…… 정말 감사드립니다.”
요새 사령부의 지휘관은 인간이었다.
백발의 머리칼에 주름진 피부, 각진 얼굴.
노익장 느낌이 나는 푸른 눈의 노인이었다.
지휘부는 인간, 엘프, 드워프가 같이 있었는데 모두 나에게 경의를 표했다. 어떤 이들은 절까지 하면서 우는 경우도 있었다.
“공치사는 괜찮습니다. 제가 강림한 것은 어디까지나 요새를 지키기 위한 것이니까요.”
“아아. 여신의 보살핌에 영광 있기를.”
“영광 있기를.”
“미네르바는 영원하시다!”
피딱지 묻은 채 지저분한 얼굴로 눈물을 글썽이며 신을 찬양한다. 그러면서 존경의 눈빛을 담아 나를 쳐다보는 세 종족.
아, 이 양반들. 하지 마요. 으으. 손발 사라진다.
빨리 본론으로 넘어가자.
“제가 강림하면서 듣기론, 이 요새가 뚫리면 세계수로 향하는 길이 열린다고 들었습니다. 근데 생각보다 요새 수비군이 적은 느낌이네요.”
아무리 미션이 어려워도 그렇다.
중요한 요샌데 수비하는 병력이 뭔가 수준 이하다.
사실 우르크가 나름 센 몬스터기는 하지만 지구에 파견된 엘프, 드워프라면 충분히 제압할 법한 몬스터인데…….
근데 너무 밀렸어.
엘프나 드워프는 정령도 다룰 수 있다는데 성벽에서 보니 활 쏘고 도끼로 막고, 그냥 인간 병사랑 다를 바가 없던데.
“그게 사실…… 저희의 주력 부대는 이미 성에 없는 상태입니다.”
“네? 이 요새는 어쩌고요.”
“블랙 드래곤 아카르디안. 흑룡 군단을 이끄는 검은 용이 대마법을 사용하여 이 지역의 정령계의 문을 봉쇄했습니다. 이 요새는 원래 사대 정령과 함께 수호하기 위해 설계된 요새. 정령력이 봉쇄되자 엘프와 드워프는 정령을 소환할 수 없게 되었고 강력한 정령 마법도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 그래서 못 썼군요.”
오하임 백작은 원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대로라면 저 오크 선봉 부대는 어떻게든 막는다 치더라도 흑룡 군단의 본대는 못 막을 게 확실했습니다. 그래서 저흰 정예 부대를 넷으로 나누어 트레인 지역의 사대 정령의 성소를 점령하여 정령계의 문을 다시 열기로 했습니다. 저희는 그동안 성을 사수하기로 했는데…… 그런데…….”
노장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주먹을 꽉 쥐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오늘 투석기에서 날아온 머리 중 성을 나간 부대원들이 있었습니다. 아마 일이 실패한 것은 아닌지…….”
“장군님. 그렇지 않을 겁니다!”
“저희가 계속 성을 지킨다면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 그렇게 말하는 좌중의 안색도 어두웠다.
와! 이거 답이 없는데?
지금 쳐들어온 애들도 선봉 부대라는데…….
본대 오면 쉽지 않을 거 같은데.
본대면 나랑 싸울 만한 놈들도 있을 거 같고.
그때 시스템 창이 떴다.
[정령계의 문이 봉인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령계의 문을 다시 열지 않는다면 트레인 요새의 방어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메인 퀘스트.]
[난이도 매우 어려움.]
[정령계의 문을 열어라.]
[퀘스트 완료 보상.]
사대 속성 정령 친화력 상승.
사대 속성 마법 강화.
트레인 요새가 트레인 정령 요새로 다시 가동.
SP 안 줘?
짜다. 짜.
그래도 정령 친화력에 마법 강화라…….
어차피 메인 퀘스트 요새 방어도 깨려면 정령계의 문을 열어야겠지?
[트레인 요새를 지키기 위해 사대 성소를 가동시켜야 하지만 지금의 요새 전력은 형편이 없습니다. 사용자가 떠날 경우 오크 선봉대에 의해 성은 함락될 것입니다. 요새를 지키기 위해 적 선봉대를 궤멸시켜야 합니다. 단독으로 궤멸시킬 경우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서브 퀘스트.]
[난이도 보통.]
[적 선봉대를 와해시켜라.]
[퀘스트 완료 보상.]
SP 1,000
오크 정복자 칭호 획득.
서브 퀘스트는 메인 퀘스트랑은 달리 Y/N이 가능했다.
적 선봉대라 하면 저 성 밖의 오크 부대인가.
아까 상대해 보니 무한 정력의 미친 효율로 인해서 가능할 것도 같은데…….
일단 받아 두자.
[서브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트레인 요새군의 사기는 최악입니다. 이런 시기에 단독으로 적을 격파하는 영웅적인 행보를 보인다면, 요새군의 사기는 크게 오를 것입니다. 이들은 사용자의 이름을 찬양할 것이며, 영웅담을 후대에 길이 남길 것입니다. 전쟁의 여신 미네르바도 사용자를 흡족하게 여기며 더욱 축복할 것입니다.]
[연계 퀘스트.]
[난이도 어려움.]
[적 선봉대를 단독으로 와해시켜라.]
[퀘스트 완료 보상.]
SP 1,000.
능력치 포인트 3.
전쟁의 여신의 축복 강화.
[퀘스트 수락 시 3일간 여신의 축복이 강화됩니다.]
퀘스트를 받자마자 뜨는 연계 퀘스트.
이번엔 혼자서 오크 선봉대를 궤멸시키라는 요구였다.
능력치 포인트도 주고 SP도 1,000 더 주는 건가.
거기 여신의 축복 강화…….
흠. 받아들이자 일단.
[전쟁의 여신 아테나가 3일간 축복을 강화합니다. 능력치가 2.5배 증가하며 ‘라디안트 실드(Radiant shield)’ 마법이 활성화됩니다.]
헤파이스토스의 갑옷에 새하얀 빛이 머금더니, 갑옷의 금속 위에 하얀빛이 깃들었다. 이게 라디안트 실드인가.
퀘스트도 수락했고…….
지금 빨리 공략집을 봐야겠어.
어차피 이 사람들은 공략집을 봐도 뭐가 뭔지 모르겠지.
“오오. 여신께서 사도님께 축복을 내리셨다!”
“예. 여신께서 저에게 축복을 내리셨습니다만…… 지금 상황이 쉽지 않군요. 그렇다면 잠시, 신의 계시가 담긴 성전(聖典)을 통해 이 사태를 해결해 나갈 방법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인벤토리를 열어 책을 꺼내려 할 때.
문득 인벤토리 구석에 있던 구슬과 검은 쇠막대기가 눈에 띄었다.
미래의 김지호에게 선물로 받고 등급 제한으로 꺼내지 못해서 그냥 구석에 처박아 뒀던 물건들.
저거 그러고 보니 D등급 땐 꺼낼 수 있었던 거 같은데.
일단 공략집이 먼저니 이거 보고 저 물건도 나중에 꺼내 보자.
[케브리안 행성 완벽 공략.]
[드디어 여기까지 왔구나. 처음 전투는 쉬웠을 거다. 트레인 요새야 이미 거의 다 점령된 상태니까.]
어? 뭔 소리야?
[엘프, 드워프들이 정령력을 못 쓰거든. 우르크들과 함께 성벽을 넘으면 손쉽게 학살할 수 있어. 여기서 빨랑 SP 1,000을 모아라. 이렇게 공짜로 SP 얻기 쉽지 않을 거야. 얘네들 SP 엄청 잘 줄걸? 아! 내가 이때 영혼 약탈자였어야 했는데.]
야. 잠깐…….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지. 요새를 장악해도 사실 정예 부대는 별동대로 트레인 지역의 숲과 산, 호수에 흩어져 있거든. 이놈들이 왜 거기로 갔느냐? 우리는 그 사실을 아는 데 꽤 오래 걸렸지만 형이 다 고문해서 공략해 뒀다. 정령의 성소를 깨우기 위해 갔다네? 뭐, 용 직속 추격대가 잡으러 가긴 한다만.]
야, 잠깐.
이게 무슨 소리야.
엘프가 적이라고?
아…… 아……!?
아, 씨. 설마?
그러자 예전에 느꼈던 위화감이 갑자기 떠올랐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페이지를 잡고 있던 손을 앞으로 넘겼다.
[회귀 후 김지호 버전 공략법.]
[십일월 일 일. 각성을 할 것이다. 튜토리얼에 불려 가면 설명 듣지 말고 고블린 대장장이한테 방패류를 달라고 한다. 방패 받으면 던전 문 열린 곳으로 달려서 던전핵을 잡는다. 임프가 공격해도 싸우지 말고 맞아라. 그냥. 오 분 안에. 꼭!]
이거. 첫 장부터 틀렸다고 생각했지.
난 6월 1일에 각성했고, 대장장이는 드워프였다고.
중립 진영 각성자니까 날짜 정도는 좀 어긋나겠다 싶었고.
고블린이야 관심도 안 가졌는데…….
이거, 씨발. 설마 오크네 진영이 중립 진영이었어?
아니. 아우렐리아 당신은 이거 안 거 아니었어요?
중립 진영 수호신이잖아!
[아우렐리아가 당연히 알고 있는 거 아니었냐고 반문합니다.]
아니 뭘 당연히 알고 있어!
오크 하면 누가 중립 진영이라고 생각해. 몬스턴데. 던전에도 있었잖아!
[아우렐리아가 던전에 있는 오크는 혼돈에 물든 오크라고 합니다. 피부가 검지 않았냐고 합니다.]
아니 피부가 검으면 죄다 혼돈이냐.
인종 차별, 색깔 차별해요?
아. 개 어이없네.
공략집 믿고 왔는데 이건 저쪽 공략집이잖아.
아. 게다가 쟤네는 완전 이지 모드구먼. 용이 정령력도 봉인해 주고 요새 장악해. 별동대야 그냥 처치하면 그만이겠네.
케브리안 오라는 이유가 있었네. 쉬우니까 오라는 거잖아.
질서 진영이 불가능이니 저쪽 진영이야 쉬움이겠지.
아아아. 미치겠네.
두 번 죽어야 하나?
지금 스탯 너무 풀로 찍어서 죽기도 쉽지 않을 텐데.
자살은 별로 하고 싶지 않고…….
아, 그냥 죽을까?
눈 딱 감고.
아아아. 아니야. 자살은 오바야…….
으으으으으으. 이게 뭐야!
깊게 한숨을 쉬면서 책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책 내용은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사대 성소의 위치.
트레인 요새 별동대의 예상 이동 경로.
그들을 이끄는 대장.
하이 엘프 디아나는 불의 성소로.
드워프 로드 암브로시안은 땅의 성소로.
트레인 기사단장 레니스터는 바람의 성소로.
엘프 레인저 단장 레블로는 물의 성소로.
이 중 레니스터는 이미 흑룡 군단의 추격대와 조우해 사망한 상태라 신경 쓰지 말라고 했고.
드워프 로드 암브로시안이 간 땅의 성소는 이미 발동되어 요새화되어 있으니 가장 나중에 공략하라고 했다.
하이 엘프 디아나와 레인저 단장 레블로는 흑룡 군단의 추격을 받고 있는데 그들과 합세해서 이들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나와 있었다.
둘 중 디아나를 가장 먼저 확보해서 타락 엘프로 만들어야 한다고.
그러면서 그녀를 타락 엘프로 만드는 방법이 쭉 나와 있었다.
그 내용은 아주 적나라했다.
……19금 하드 코어 야설을 보는 줄 알았다.
분량이 몇 페이지를 차지했다.
아주 쓰고 싶어서 안달이 났구나…… 김지호 이 자식. 더럽게 노네.
[그녀를 타락시키는 게 이번 행성 클리어의 관건이다. 사실 질서 진영을 장악하고 세계수를 부수는 건 쉬워. 근데 그 이후에 블랙 드래곤이 폭주하면서 혼돈의 문을 연 이후가 어렵지. 오크 장군들도 모두 블랙 드래곤에게 드래곤 피어로 복종 상태라 우리가 뭐라고 떠들어도 듣지 않아. 단 하나, 위대한 오크 영웅 그로쉬를 제외하고는…… 그냥 최대한 빨리 질서 진영 장악하면서, 디아나를 타락 엘프로 만들어 내 종으로 삼아야 해. 분노의 정령을 이용해야 하거든.]
결국 중립 진영 입장에서는 세계수 침공과 함께 이를 무너뜨리는 게 첫 번째 페이즈고.
그다음에 혼돈의 문이 열리고 나오는 혼돈 영역의 몬스터와 싸우는 게 두 번째 페이즈.
본 게임이라 이거군.
근데 지금 이 망할 질서 진영은 블랙 드래곤을 위시한 몬스터 군단 침공 막는 데만 해도 하드 코어 난이도고 말야.
나 전직할 때 천사랑 드래곤 있었는데 질서 진영의 대빵 천사는 어디서 뭘 하고 있냐!
[폴룩스가 천사들이 견제해 줘서 그나마 드래곤을 지금 눈앞에서 보지 않는 거라고 합니다.]
아…… 그래요…….
하아아.
어떻게 하지.
공략집이 중립 진영 공략집이지만 사실 쓸모가 없는 건 아니었다.
성소의 위치도 다 나와 있고 정예 부대의 진군 경로도 대략적으로 서술이 되어 있었다.
거기에 혼돈의 문이 열린 이후에 나오는 몬스터 대처법. 이런 것도 나름 쓸 만해 보였다.
후우우우.
그래. 한번 해 보자.
지금 내 능력치도 어마어마하고 버프도 쩌는데 깰 수 있어.
반쪽짜리, 아니 20프로짜리 공략집이지만 이제 이건 그냥 의존하지 말고.
정보나 얻는 데 만족하자고.
내가 더러워서 깬다. 이 행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