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 2개-20화 (20/240)

<내 상태창 2개 - 20화>

19. 부서진 세계(2)

아니. 뭐에 죽었는지도 모르겠는데?

머리가 갑자기 엄청나게 아프더니 시야가 어두워지고 사망했다.

하도 금방이라 아픈 것도 잘 못 느꼈다.

어이가 없네. 머리통이라도 깨진 건가.

아. 삐약인 어떻게 됐지?

“삐약!”

오! 머리 위에 그대로 있네.

근데 대체 뭐에 죽은 거야?

[아우렐리아가 투석기 바위에 맞고 죽었다고 알려 줍니다.]

[폴룩스가 준비도 안 하고 들어갔으면 피닉스처럼 영체화라도 해야지, 바보냐고 비웃습니다.]

아. 진짜 할 말이 없네 이번 건.

헤파이스토스에게서 선물로 받은 갑옷도 장착하지 않고 그냥 맨몸으로 갔다.

아니 들어가자마자 투석기 바위가 날아올 줄 누가 알았겠냐만…… 이건 내 준비 태만이다.

요즘 잘나가니 영 긴장 풀렸구나.

“푸…… 풉. 벌써 오셨어요?”

엘프 알레나는 애써 웃음을 참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으아아아아.

쪽팔려!

“여러분. 난이도 높은 행성 가면 이렇게 될 수 있어요. 그러니 함부로 선택하시면 안 돼요.”

으아아아아! 실패 예시로 쓰이고 있다니!

엘프, 드워프, 헌터들의 피식거리는 모습에 얼굴이 화끈거리고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와! 올해 중 가장 쪽팔리다.

“들어가기 전, 영체화를 하셨어야 했는데…….”

“아! 영체화하는 법!”

“아까 물어봤는데 대답이 없으시기에 아시는 줄 알았어요. 영혼 중개자시니깐.”

드워프 내기하는 소리에 정신이 팔려서 알레나의 말을 흘려들었구나…….

으으. 자업자득이네.

그녀는 나에게 영체화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마력을 머리와 심장에 모으고 몸이 사라지는 이미지를 연상하라고 했다.

“처음에는 다들 이미지를 잡기 힘들어해요. 지금 다른 헌터 분들도 아직 출발 못한 이유가 영체화를 하지 못해서인데…….”

“어…… 이건가요?”

그냥 안개처럼 흐트러지는 장면을 연상하며 마력을 모았는데 몸이 유령처럼 반투명해졌다.

몸을 보니 옷까지 모두 투명해진 상태.

근데 말은 나오네.

“역시 영혼 중개자님이라 그런지 단번에 하시네요. 영체화 상태에서 말도 하시고…… 대단하시네요.”

내 무너진 자존심이 미세하게 회복되었지만, 아직도 쪽팔림은 가시질 않았다.

아, 이제 바싹 준비해야겠어.

“영체화하면 초반에 투석기 돌 맞고 죽진 않겠죠?”

“아. 투석기에 죽으셨구나. 네. 영체화하면 피할 수 있어요. 하지만 D급이시라 지속 시간이 길진 않을 테니 들어가자마자 안전한 곳 찾아서 정비하셔야 할 거예요. 그리고 고위 마법에는 영체화도 피해를 입으니 조심, 또 조심하셔야 해요.”

“그렇군요…… 근데 스타트 지점은 좀 안전한 곳으로 정해 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제가 말씀드렸지만 거기가 케브리안에서는 가장 난이도가 낮은 전장입니다. 케브리안은 망하기 일보 직전이거든요.”

알레나는 웃음기를 쏙 빼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미 한 번 죽으신 거 두 번 더 죽고 다른 행성에서 시작하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저희라고 케브리안 행성이 되살아나는 걸 왜 바라지 않겠어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녀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그래도 이왕 2번 더 죽어야 옮길 수 있는 거, 만반의 준비를 해 보고 도전하기로 했다.

나는 스테이터스 창을 보다가 SP로 스탯을 올릴 수 있다는 걸 기억해 냈다.

사실 1,000까지 모아 프리미엄 상점을 오픈하려고 했지만, 완벽한 준비를 하기로 했으니 SP도 아낌없이 투자해야겠다.

스테이터스를 올릴 때 필요한 SP는 10.

질서 진영 능력치는 질서 진영 SP로만 올릴 수 있고, 중립 진영 능력치는 중립 진영 SP로만 올릴 수 있다.

지금 SP는 더 쌓여서 질서 진영은 101.2, 중립은 31.1이었다.

일단 지금은 신체 능력에 투자하자.

질서엔 힘, 민첩을 5씩, 중립엔 신체 능력만 3을.

한데 힘이 20선을 돌파하려 하자 SP 소모가 20으로 늘었다.

15.5에서 5포인트 올리려고 했는데…….

결국 4.5만 올라서 힘은 20이 되었다.

최종 능력치는 다음과 같았다.

[이름 - 김지호

클래스 - 영혼 중개자

수호신 - 쌍둥이자리의 신 폴룩스

칭호 - 박쥐 각성자

레벨 - 24

힘 ? 20, 민첩 ? 19.5, 마력 ? 19SP ? 1.2]

[이름 - 김지호

클래스 - 영혼 약탈자

수호신 - 화산의 신 아우렐리아

칭호 - 없음

레벨 - 24

신체 ? C+, 마력 ? C+++, 기예 ? C--, 행운 - D++SP ? 1.1]

이제 좀 사람답군.

여기에 헤파이스토스의 갑옷을 장착하고 영체화 준비도 마쳤다.

처음에 대검만 등에 맨 채 케브리안을 갔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준비.

부주의로 죽는 건 한 번이면 족하다.

“또 내기할까? 일억으로. 난 한 시간.”

“난 두 시간.”

“삼십 분.”

“십 분.”

“일 분.”

이번에도 드워프들의 말이 들려왔지만, 철저히 무시했다.

전투에 집중하자.

케브리안 행성이 표시된 마나석 앞에서 케브리안으로 전송되며 나는 의지를 다졌다.

몸이 새로운 땅에 발을 디디자마자 바로 영체화를 했다.

쿵! 쿵!

내가 서 있는 자리에 돌무더기들이 그대로 떨어졌다.

근데 자세히 보니 돌뿐만이 아니라, 사람 머리, 아니 엘프 머리도 굴러다니고 있었다.

색이 변질된 채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죽음을 맞이한 얼굴.

후…… 징그럽군. 투석기에 머리도 담아 던지는 건가?

일단 주위부터 파악해 보자.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서 있는 곳은 성벽 위 같았다.

엘프 궁수들이 절망스런 표정으로 화살을 날리고 있고 인간과 드워프들이 성벽을 기어 올라오는 오크들을 막고 있었다.

사방에서 바위가 날아오고 성벽 위에도 간간이 적중했는데, 난 뭔 재수인지 두 번 다 바위 맞고 죽을 뻔했다.

이거 아무리 재수가 똥이라도 두 번 연속 이렇게 되기가 쉽지 않은데…….

엘프들이 그냥 빨리 죽고 돌아오라고 이런 데다가 떨구는 거 아냐?

으으음. 수상해.

“ERIJQEGNOEQRH!$!”

화살을 열심히 쏘던 남자 엘프가 날 보더니 활을 이쪽으로 향하며 소리를 질렀다.

뭔 소리 하는 건진 모르겠는데 별로 우호적이지 않아 보이는데.

아, 뭐지. 이쪽은 내 편 아니었어? 말은 어쩌냐?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하늘에서 빛이 내려왔다.

[전쟁의 여신 아테나가 케브리안 행성의 유일한 각성자 ‘김지호’에게 신의 가호를 집중해서 내립니다.]

[질서 진영의 스테이터스가 2배 증가합니다.]

[모든 공격에 천신의 신성력이 담깁니다.]

[질서 진영에 소속된 생명체가 그를 신의 사도로 대합니다.]

[이 세계의 주요 언어를 자동으로 번역하고 이해하며, 각성자의 말도 자동으로 번역됩니다.]

오. 2, 2배라니!

거기에 신성력이라니. 미쳤어!

전신의 근육이 한번 크게 요동치다 멈췄다.

갑옷 안에 있어 변화한 모습은 볼 수 없지만,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힘이 느껴졌다.

엘프 궁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빛에 멍하니 날 바라보더니 고개를 숙였다.

“이런 실례를! 전쟁의 여신 미네르바 님의 사도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저희를 이끌어 이 전투를 승리하게 해 주십시오!”

오! 들린다 들려.

근데 미네르바? 아테나가 아니고?

여기선 이름이 다르게 불리나.

어쨌든 뭐라고 설득할까 고민했는데 알아서 받아들여 주니 다행이군.

그때 시스템 창이 깜빡였다.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는 줄도 몰랐던 퀘스트 창이었다.

[케브리안 행성의 전장, ‘트레인 요새’로 소환되었습니다.]

[트레인 요새는 혼돈에 침식된 블랙 드래곤 아카르디안이 이끄는 몬스터 군단, ‘흑룡 군단’에 의해 점령당했던 요새입니다. 이 요새가 점령당하면서 세계수로 향하는 길이 열렸습니다.]

[메인 퀘스트.]

[난이도 불가능.]

[트레인 요새를 100일간 방어하라.]

[퀘스트 완료 보상.]

SP 100,000.

‘구세주의 일보’ 업적 달성.

‘케브리안의 용사’, ‘불가능에 도전하는 자’ 칭호 획득.

B급 이상 랜덤 스킬 상자 3개. B급 이상 랜덤 아이템 상자 3개.

와.

보상 딱 봐도 쩐다.

이건 무조건 깨야겠네.

공략집 펼치기에는 지금 요새가 벌써 함락당할 것 같으니 일단 방어전에 참가하자.

나는 성벽 앞으로 달려갔다.

한 걸음에 순식간에 공간을 뛰어넘었다.

예전 스테이터스만으로도 초인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차원이 다르다.

능력치는 2배가 올랐지만 실제로 적용된 힘은 그보다 훨씬 더 상승된 수준으로 느껴졌다.

성벽 아래에는 블랙 드래곤이 그려져 있는 깃발을 들고 있는 몬스터 군단이 보였다.

던전에서 보던 검은 오크랑은 달리 초록 피부의 오크.

오크의 선봉에 서서 전투를 독려하는 커다란 오크. 저번에 잡았던 보스 몹과 비슷하게 생겼다.

대부분 몬스터는 오크 군단이었으나 몇몇 군데는 다른 몬스터가 있었다.

개중 투석기를 다루는 건 황토빛 피부의 커다란 뚱보 몬스터였는데, 아마 오우거로 추정되었다.

재들부터 처리해야 하겠네.

나는 아르테미스의 활을 소환했다.

시위를 잡자 마나가 살짝 빠져나가며 빛의 화살이 생성되었다.

그 빛은 새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오우거를 목표로 잡고 있을 때.

“삐약!”

갑자기 삐약이가 빛의 화살에 날아가더니 후 하고 입김을 불었다.

부리에서 나온 숨결은 불길이 되어 빛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새하얀 빛에 붉은색이 추가되었다.

화염 버프인가?

좋아. 쏴 보자.

거리가 원래는 곡사를 해야 할 정도로 멀지만, 지금 2배 버프를 받은 나는 그냥 쏴도 될 것 같았다.

콰아아앙!

벼락같이 날아가던 화살이 오우거의 몸통을 꿰뚫고 그대로 땅바닥에 닿자 커다란 폭발을 일으켰다.

피닉스의 불이 시너지 효과를 낸 건지, 불길이 금방 번지며 투석기를 순식간에 불태웠다.

이거, 그냥 폭탄이잖아?

“야, 너. 짱인데?”

“삑삑!”

“대단하십니다! 역시 미네르바 님의 사도! 투석기 위주로 계속 부탁드립니다!”

옆의 엘프들이 활을 쏘면서도 기뻐 환호했다.

나도 기뻐서 환호가 절로 나왔다.

새로운 시스템 창이 떴기 때문이다.

[오우거를 쓰러뜨렸습니다. 경험치를 1,231 얻습니다.]

[영혼 약탈 스킬이 발동합니다. 거리가 멀어 효율이 감소합니다. SP를 3.8 얻습니다.]

[특성 흡수 스킬이 발동합니다. 거리가 멀어 효율이 감소합니다. ‘오우거의 근력’ 특성을 0.03% 흡수합니다.]

[완벽한 원형 유지 스킬을 통해 이를 여과합니다. 오우거의 근력 특성이 사용자의 힘과 신체 능력치로 변환합니다. 영혼의 오염을 완벽하게 막습니다.]

[힘이 0.07 오릅니다.]

[신체 능력이 조금 상승합니다.]

한 방에 죽은 오우거가 이렇게 많은 능력치를 주다니.

힘 0.07이면 한 15마리 잡으면 힘 1 오르는 거네.

거기에 SP도 3.8이면 10마리 잡으면 38?

와. 영혼 약탈, 완전 쩌는데?

가까이서 잡으면 더 주나?

“삐약아, 계속 쏘자!”

“삐약!”

일단 영혼 약탈 알림 창은 전투 중이니까 끄고.

신나서 화살을 계속 쐈다.

화살이 폭탄처럼 폭발하는 걸 알았으니 투석기 위주로 노려서.

쾅! 쾅!

투석기 10대를 순식간에 불태웠다.

오크의 화살, 손도끼 등 투척 무기가 이쪽을 향했지만, 위험 감지로 요리조리 피하면서 계속해서 투석기를 노렸다.

애초에 능력치가 2배로 펌핑이 되니 적의 공격도 훤히 보였다.

“삐약…….”

하지만 10발을 쏘고 나니 삐약이가 마력이 부족한지 화살에 불을 불어넣질 못했다.

그래서 그냥 쏴 봤지만 피닉스의 불이 들어가지 않으면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빛의 화살의 관통력은 총탄처럼 대단했지만, 오크들이 몸을 던져 투석기를 지키자 이를 완전히 뚫지는 못했다.

그리고 내 마력도 연속해서 화살을 쏘다 보니 어느새 많이 줄어 있었다.

마력을 채우려면 마력 화살은 못 쓰겠네.

그래도 최후의 수단은 아껴야 하니깐.

“저 화살 좀 주시죠.”

“여기 있습니다!”

엘프가 건네주는 화살을 받아 미친 듯이 쐈다.

한 발, 한 발 쏠 때마다 갑옷을 꿰뚫고 푹푹 꽂히는 화살.

갑주가 없는 곳을 맞추면 뒤에 있는 오크까지 관통해서 꽂혔다.

둥. 둥둥. 둥둥둥.

오크 군악대의 북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진다.

그와 함께 흑룡이 새겨진 거대한 깃발이 내가 서 있는 성벽을 향했다.

덩치가 큰 오크들이 이쪽 성벽으로 우르르 몰려오기 시작했다.

어, 쟤네 저번에 E급 던전에서 보았던 보스 몹 같은데…….

여기선 아주 부대를 이루는구나.

3미터 덩치의 오크 부대가 커다란 사다리를 각자의 어깨에 연결하듯이 눕혀 메고 매섭게 달려왔다.

엘프들이 일제히 응사하고 공격 마법도 쏘지만 오크들이 일제히 고함을 지르니까 공격 마법 태반이 중간에 펑펑 터졌다.

화살은 닿지만 단단한 중갑주를 입은 오크들의 몸에 그리 깊숙이 박히지 않았다. 다들 몸에 박힌 화살을 무시하며 미친 속도로 이쪽에 온다.

“질서의 사도를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짓이기고, 시체를 파먹어라!”

“산 채로 뜯어먹자!”

얘네 말도 번역해 주네.

뭐 이건 번역을 안 하고 뉘앙스만 들어도 알겠지만.

커다란 사다리가 성벽에 빠른 속도로 설치가 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떻게든 방어를 해 보려고 했지만, 워낙 몰려든 거대 오크들이 너무 많았다.

“으으…… 우르크들이 사도님을 알아보고 모두 몰려든 것 같습니다. 사도님. 피하십시오. 여긴 저희가 어떻게든 막겠습니다.”

엘프 하나가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거대 오크는 우르크라고 하나 보군.

그렇게 무서워서 온몸을 벌벌 떨면서 도망가라고 말해 주다니…… 마음은 고맙지만 말이야.

“여기 뚫리면 끝 아닙니까. 피할 데가 어디 있겠어요.”

“하…… 하지만 사도님이 저희의 유일한 희망이십니다. 여기서 죽으시면…….”

“그 유일한 희망. 더 믿어 보시죠.”

그래. 받은 스킬을 써 보자.

“화염 전차 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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